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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2-09-02 (금) 05:42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393    
교회 안에서 주님의 아름다운 덕을 (벧전 3:8-12)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삶을 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이렇게 가든교회 공동체로 부르실 때에는 우리를 축복하기 위해서 부르신 것입니다. 이미 신령한 복을 받아 누리고 있습니다. 본문 9절 하반절에도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전서는 처음 강해설교 시작할 때 말씀드렸듯이, 사도 베드로가 성령의 감동으로 로마 제국 하에 흩어져서 살면서 많은 고난과 핍박을 받고 있는 디아스포라 성도들을 위로하며 격려하기 위하여 쓰신 서신입니다. 그렇게 힘들고 어려워도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고 하신 바와 같이, 주님의 아름다운 덕을 세상에 나타내라고 합니다. 이 사회에서, 직장에서, 그리고 가정에서 말입니다. 3장 1-7절에서 살펴본 대로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가 어떻게 살아야 아름다운 덕을 나타내는지를 말씀하였습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하며, 겉 치장보다는 속 사람을 잘 단장해야 하며, 남편은 아내를 연약한 그릇으로 알고 사려 깊게 대하며 귀하게 여겨야 한다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래야 기도가 막히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오늘 본문에서는 마지막으로 교회 안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주님의 아름다운 덕을 나타내는 것인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선 다 마음을 같이 하라고 합니다(8절상). 교회 생활에서 하나된 마음으로 한 몸이 되었기에 내적으로 일치된 태도를 말합니다. 이 말씀이 교회 내에서 조금이라도 의견의 차이를 가지지 않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다양한 은사와 재능들, 그리고 서로 다른 성품들, 자라온 배경들 때문에 의견에 차이가 전혀 없을 수 없습니다. 문제는 의견의 차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차이들을 어떻게 다루는가에 있습니다. 그러한 차이들이 교회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비전, 목적을 향하여 조화를 이루며 생산적으로 영향을 끼쳐서 교회의 사역들을 부요하게 기여하도록 해야 합니다.
마음을 같이하여 공동체를 이루어 가는 것은 개인적이며 이기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 나라를 섬기고 서로에게 사랑을 베풀기 위하여 존재한다는 목적을 잃어버리지 않고 추구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형제를 사랑하며”라고 이어서 말하고 있습니다.
한 몸을 이루어 서로 사랑하는 것에 대하여서는 이미 1장 22절에서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3장 8절에서 다시 “다 마음을 같이하라”는 것은 성도들 서로 간의 관계를 한 가족의 사랑으로 이해하고 각자의 일치된 노력이 없이는, 교회 안에서 실제적인 아름다운 덕을 나타내는 조화가 일어나지 않을 것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11절 하반절에 다시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고 한 것입니다. 여기 화평이 바로 서로 마음을 같이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를 좇으라’고 하신 것은 ‘단호하게, 끈기있게 추구함’을 의미합니다. 다른 성경 말씀에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데살전 5:12-13)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마음을 같이하여 서로 뜨겁게 사랑하며 화평을 추구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이는 바로 한 공동체의 ‘Team Work’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도 부부가 화목하지 않으면 기도를 들으시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7절하). 교회도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화목하지 않고 서로 다투고 싸우면 교회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기도 응답을 원하신다면 화평을 추구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기도 응답이 복이 아니겠습니까?

이어서 사도 베드로는 마음을 같이하여 사랑하는 Team Work 이 잘 되도록 하는 세 가지 요소, 덕목들을 8절에 계속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형제 사랑에서 나오는 체휼(sympathetic)과 불쌍히 여김(compassionate)과 겸손(humble)입니다. ‘공동체의 정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불쌍히 여김’은 순수한 부드러운 마음을 뜻합니다. 이는 특히 다른 사람이 견디고 있는 고난, 고통을 볼 때 사람의 내면 깊은 곳에서 나오는 감정을 말합니다. ‘체휼함’은 그 부드러운 마음의 작용에 행동이 뒤따라지는 것을 말합니다. 즉 뚜렷하게 실천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할 뿐 아니라, 그 사람을 돕기 위하여 적절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그런데 때로 교회 안에서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기가 어려운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들 속에 있는 무언가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을 주춤하게 합니다. 대부분의 경우는 그 무엇은 바로 자존심이지요. 이 자존심, 자아를 버려야 하는데 버리지를 못해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한 어떤 때에는 도움을 주는 자들의 거만한 태도, 우월한 태도가 그렇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겸손’이라는 덕목이 추가된 것입니다. 겸손은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 짝에도 쓸모없어’ 라고 생각하며 소리치면서 나 자신을 비하하는 태도는 겸손이 아닙니다. 어쩌면 교만해서 그렇습니다.
겸손은 잘 아시다시피 자신의 연약한 부분을 인정하며, 그럼에도 자신을 불러 주심에 감사하며, 그 약한 부분에서 자라가기 원하고, 그것을 위한 도움을 기꺼이 받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겸손은 사람들이 인정해 주지 않아도, 박수를 받지 못해도 뒤에서 섬기는 것으로 만족하는 태도입니다. 겸손은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나 자신의 유익보다 우선하기를 원합니다.
   우리 교회 안에도 이런 ‘공동체 정신’, 아름다운 덕목들이 나타나서 좋은 Team Work을 이루어 주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9-10절에서는 ‘공동체의 언어’를 강조합니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9절)고 하면서 시편 34편 12-16절 말씀을 10절 이하에 인용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낯은 악행하는 자들을 향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10-13절)! 시편 34편은 다윗이 시기와 질투로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 왕을 피하여 블레셋 아기스(아비멜렉) 왕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입니다. 지혜의 권면입니다. 그런 사울 왕을 향하여 다윗은 복수하지 않았습니다.
9절의 악과 욕은 악한 마음으로 욕하며 말다툼을 일으키는 말입니다. 그래서 10절에 다윗의 시를 인용하여 ‘악한 말’과 ‘궤휼(속임)’을 다시 언급한 것입니다. 이것은 비방과 수군거림, 진실을 왜곡하고 파괴를 목적으로 하는 온갖 종류의 말을 가리킵니다. 누가 우리에게 악한 마음으로 욕할 때에 되받아서 똑같이 욕하는 것은 그 당시 마음이 후련할지 몰라도, 결과는 서로 고통받고, 관계에 큰 상처를 주고, 주님의 아름다운 덕을 나타내는 일을 막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것입니다.
   대신 복을 빌라고, 축복하라고 합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가 부르심을 받았다고 합니다. 복수는 성도의 사전에는 없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수없이 말씀하셨고, 성경에 얼마나 자주 나옵니까?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눅 6:27-28),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롬 12:14),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롬 12:17),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쫓으라”(데살전 5:15)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악한 말과 욕을 들을 때, 되받아 복수하지 않고 오히려 복을 빌어주어야 한다는 것은 예수님 말씀처럼 말로 우리를 공격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들에게조차 친절하게 대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불쌍히 여기면서 나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다 하더라도 진실로 용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에 부르심을 받은 우리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우리 모두는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았습니다. 우리 같은 죄인들을 택하셔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의 소유로 삼으신 것이 얼마나 감사하며,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그런데 그렇게 부르실 때에는, 더군다나 주님의 몸으로, 한 공동체로 부르실 때에는 특별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고”(9절하), “좋은 날을 보게 하려고”(10절상)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복을 유업으로 받으려면, 좋은 날을 보려면 서로 마음을 같이 하여야 합니다. 서로 뜨겁게 사랑하여야 합니다. 즉 ‘Team Work’을 이루어야 합니다. 서로의 의견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조화를 이루어 내야 합니다. 이는 어디를 향해 가는지 방향만 같으면 가능합니다. 교회가 존재 목적을 잃어버리지 않고 있으면 가능합니다. 물론 ‘공동체 정신(Team Spirit)’이 필요합니다. 성도에게 있어야 할 덕목들이라고 했습니다. 불쌍히 여기고, 체휼하며, 겸손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공동체에서 언어’를 조심하라고 합니다. 악한 마음으로 욕하는 자들에게 바로 되받아서 욕하지 말라고 합니다. 아니 오히려 복을 빌라고 합니다. 기도해 주라고 합니다. 그들조차 불쌍히 여기라고 합니다. 그런 삶이 우리를 부르신 주님의 아름다운 덕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마지막 12절 말씀에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낯은 악행하는 자들을 향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의 눈과 귀가 의인을 향하고 계시다고 합니다. 여기 의인이 바로 교회 안에서 마음을 같이하여 좋은 Team Work을 이루며,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체휼하며, 겸손히 섬기며, 말을 주의하여 욕을 듣더라도 보복하여 악한 말을 하지 않고, 오히려 불쌍히 여기며 기도해 주고, 복을 빌어주는 성도를 가리킵니다. 우리 주님께서 교회 안에서 그런 성도를 향하여 눈을 향하시고 귀를 기울이셔서 기도를 응답해 주고,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십니다. 우리 모두가 그런 복을 누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다가올 좋은 날을 기대할 수 있기 바랍니다. 우리를 한 공동체로 부르신 부름에 합당한 말과 행실로 주님의 아름다운 덕을 나타내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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