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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2-10-16 (일) 11:12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501    
성령을 좇아 행하라 (갈 5:16-25)



한 몸이 되어 사는 부부도 너무 달라서 다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모든 일에 사사건건 다투면 큰 문제입니다. 한 집에서 살기 쉽지 않습니다. 누군가 한쪽이 져야만 살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생활은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 사는데, 내가 원하는 것 하고, 예수님이 원하는 것 하고 많이 다를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해 보았을 것입니다. 죄의 유혹으로 인한 마음의 갈등 말입니다. 생각(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해야 하는데, 한쪽에서는 괜찮다고 육체의 욕심을 따라 하려고 하는 갈등 말입니다. 어떤 때는 말씀에 순종해서 이기는데, 어떤 때는 육체가 원하는 대로 하여 죄를 짓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이것을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17절)고 표현합니다. 여기 “소욕(desire)”이라는 말은 욕구, 갈망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육체가 갈망하는 것은 성령이 원하는 것을 거스리고, 성령이 갈망하는 것은 육체가 원하는 것을 거스린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서로 대적하면서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마치 십자가를 앞두고 기도하면서, 사랑하시는 세 제자들에게 좀 떨어진 데에서 기도하라고 했더니 자고 있는 것을 보시고,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 26:41)라고 하신 것처럼, 바울이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롬 7:22-23)라고 고백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육체의 소욕을 거스리고 성령을 따라 말씀대로 행하고 살 수 있을까요?

바울은 앞 문맥(13-15절)에서 복음으로 인하여 주어진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13절하) 하였습니다. 여기 “육체(sa,rx, flesh)”는 지난 번에도 말씀드렸듯 타락한 육체, 죄의 성향을 말입니다. 즉 허락하신 자유로 죄성을 따라 정욕에 빠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죄성이 다스리지 않게 주님이 다스리도록 내어 드려야 하는데, 그러려면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을 따라 행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16절)고 한 것입니다. Walk by the Spirit! 율법으로는 죄성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를 원하지만, 죄성은 하나님에게 불순종하게 합니다. 이 갈등에서 이기는 비결은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을 의지하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율법 아래 살아서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18절). 율법 아래 산다는 것은 종교생활하는 것을 말합니다. 종교생활가지고는 불가능합니다. 성령님을 신뢰하고 그 분의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성령님에게 양보(yield)해야 합니다. 항복해야 합니다.
만약 육체의 욕심을 따라 행하면 여러가지 큰 죄를 범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19-21절상) 하였기 때문입니다. 여기 처음 3가지, 음행(sexual immorality)과 더러운 것(impurity)과 호색(방종한 삶, debauchery)은 다 성적인 죄들을 뜻합니다. 그 다음 나오는 2가지는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대적하는 우상숭배와 술수(witchcraft), 즉 하나님 외에 죽은 신들을 섬기거나 마법의 약을 사용하여 악한 힘을 조종하거나 악령들과 접하는 무당들의 행위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그 다음 8가지, 원수를 맺는 것(hatred)과 분쟁(strife)과 시기(jealousy)와 분냄(anger)과 당 짓는 것(selfish ambition)과 분리함(불화, dissension)과 이단(faction)과 투기(envy)는 사회적인 죄로 인간관계를 깨뜨리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2가지, 술 취함과 방탕함(탐닉, orgies)은 서로 연관이 있는 단어들로 쾌락에 중독되는 것을 뜻합니다.
무서운 것은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21절하)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물론 성도들이 연약하여 성령의 인도함을 받지 않아서 이런 죄에 빠지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육체의 일을 습관적으로, 고의적으로 계속해서 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반대로 성령을 좇아 사는 자들은 그들의 삶에서 열매가 나타납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22-23절)고 하였습니다. 우선 “열매(fruit)”라는 단어가 단수로 쓰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9가지 열매는 다 연결된 하나의 열매로 보는 것입니다. 이성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지만, 성령님 곧 뿌리가 같은 한 나무에서 여러 열매들이 열리는 것입니다. 과수원 농사의 비유로 설명하였습니다. Tim Keller 목사님은 그의 갈라디아서 주석에서 이 구절을 설명하면서 성령님이 하시는 일의 특징 4가지를 말합니다.  ‘첫째, 마치 과일이 점점 커지듯이 그리스도인의 영적 성장은 점진적이다. 하루 아침에 성령의 열매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눈에 띄지 않게 자란다. 둘째, 성령을 받은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열매가 자란다. 23절에서 이 같은 열매를 금지할 법이 없다고 한 것처럼 말이다. 셋째, 성령의 열매는 내적인 뿌리에 연결되어 있다. 열매가 죽은 나무에서는 열리지 않는다. 또한 가지에서 떨어져 버린 열매는 이미 생명이 없다. 생명이 열매를 맺게 한다. 열매가 생명을 주는 것이 아니다. 넷째, 성령의 열매는 동시다발적이다. 앞서 “열매”라는 단어가 단수라고 하였듯이 열매 중 하나 혹은 몇개만 열릴 수 없다’ 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정도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열매는 작고, 어떤 열매는 클 수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조금씩이라도 다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열매를 하나씩 살펴봅시다. 1) 사랑(agape love)입니다.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이기적이지 않는, 다른 사람을 위하여 얼마든지 손해볼 수 있는 사랑입니다. 2) 희락(joy)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기쁨입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고난 가운데서도 기뻐합니다. 3) 화평(peace)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기에 염려나 걱정을 내려 놓습니다. 4) 오래참음(patience)입니다.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사람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불평하지 않습니다. 쉽게 화를 내지 않습니다. 인내합니다. 5) 자비(kindness)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합니다. 늘 섬기고자 하는 태도입니다. 6) 양선(goodness)입니다. 선함이 있습니다. 초지일관입니다. 일구이언하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에도 동일합니다. Integrity! 위선적이지 않습니다. 7) 충성(faithfulness)입니다. 일편단심입니다. 믿을만합니다. 자신이 한 말을 꼭 지킵니다. 8) 온유(gentleness, meekness)입니다. 외유내강을 뜻합니다. 유약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속은 강하지만 겉은 부드럽습니다. 겸손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온유하지 못합니다. 9) 절제(self-control)입니다. 자신의 감정과 의지를 내려놓을 수 있는 능력입니다. 우선순위를 잘 알기에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즉각적인 행동이나 말을 하지 않습니다.
처음 3가지 열매, 사랑과 희락과 화평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일수록 열매가 크게 자랄 것입니다. 그 다음 3가지 열매,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 드러나는 것입니다. 마지막 3가지 열매, 충성과 온유와 절제는 우리 속내와, 속사람과 관계가 있습니다.  
이런 열매의 특징들을 보면 다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좋은 관계 속에서 가장 기본적인 사랑이 있어야 희락과 화평이 주어지고, 다른 사람에게 오래참고, 자비와 양선을 베풀며 충성과 온유와 절제를 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사실 참된 믿음을 가진 자들은 이런 열매가 조금씩 다 있습니다. 문제는 자라가야 합니다. 너무 작으면 표시가 나지 않습니다. 성장해야 합니다. 성숙해져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자라갈 수 있을까요?                

그 다음 구절이 답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24절)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여겨야 합니다. 바울은 로마교회에도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롬 6:6-7)고 하였습니다. 동일한 진리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하나가 되었다, 주님에게 속하였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진리가 우리에게 성령을 좇아 살아갈 동기를 부여합니다. ‘아! 나는 주님과 연합한 자가 되었으니 나의 육체는 이미 십자가에 못 박혔다’ 라고 늘 여기고 살아야 합니다. 수동적이거나 소극적으로, 억지로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긍정적으로, 적극적으로, 자발적으로 육체는 죽었고, 내 안에 성령께서 산다고 여겨야 합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여태까지의 말씀을 요약합니다. [Slides 1-3]
바울은 오늘 본문의 결론을 이렇게 내립니다.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찌니”(25절)! 우리말 번역에는 문장이 계속 이어지는 것처럼 되어 있고, ‘만일(if)’ 때문에 원래의 뜻과 조금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원문에는 25절에서 문장이 끝나고 있으며, 26절은 문맥상 다음 장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원어의 뜻대로 번역하면, “우리가 성령으로 살았기에, 계속 성령과 같이 행하여야 한다(Since we live by the Spirit, let us also keep in step with the Spirit)” 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인침으로 새생명을 받았다면, 당연히 성령과 함께 보조를 맞추어서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의 원하시는 대로 살게 되어 열매를 맺게 됩니다.
[Slide 4] 이유는 우리 안에 있는 성령님은 적어도 다음과 같은 일들을 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 성령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 있도록 우리 심령을 비추어 줍니다.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기 때문에 깨닫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에 두고 제자들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리라 하였노라”(요 16:13-15). 정말 부활 승천하신 후에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사도들로 성령의 감동으로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딤후 3:16). 거듭나지 않은 육의 사람은 성령으로 쓰여진 말씀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거듭난 영의 사람은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깨닫게 됩니다. 2) 성령님은 우리의 속 사람이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도록 변화시키는 능력을 주십니다. 마지막 때에 우리 모두가 주님의 형상으로 변하는 것도 성령님이 하시는 일입니다(고후 3:18). 3) 성령님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시고 회개(회심)하게 하십니다(행 2:37). 우리의 심령을 찔러 잘못을 깨우쳐 주셔서, 죄책감이나 후회하게 함으로 바로 고쳐야 함을 깨닫게 하십니다(히 9:14). 원래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보내주신다고 하실 때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 16:8)고 하셨습니다. 4) 성령님은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우리로 소원을 두고 행하십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성령)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라고 하였습니다. 즉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하나님을 위한 선한 소원을 우리 마음에 주시며 그것을 행하게 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Slide 5]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마음껏 역사하시도록 우리 자신을 내어드려야 합니다. 성령이 원하시는 것을 못하게 하는 육체의 욕심을 버리고 성령을 좇아 행하여야 합니다. 바로 성령의 지배(control)를 받아 사는 ‘성령충만’입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 5:18)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성령충만하기 위해서 매일 하나님께서 진리의 빛을 비춰 주시고, 지은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을 향한 열정을 달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약속의 말씀을 굳게 믿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고,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모든 것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함 임을, 해가 되는 것은 막아 주시기 위함 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의지하고, 따르는 가운데 매순간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에 성령을 좇아 행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육체의 갈망을 따라 19절에서 21절에 언급한 일을 행한다면 그 책임을 져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지만, 때로 그 대가를 치르게 하십니다. 이는 성경에만 나타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이미 과거에 경험한 바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래되고 고장나서 소리조차 제대로 나지 않는 악기가 있는데, 그 악기의 대가의 손에 들어가면 그가 고치고 해서 소리가 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계속 닦고, 길들이니 어느 날 아름다운 음악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깨어진 그릇도 마찬가지입니다. 능력 있는 토기장이의 손에 들어가면 다시 만들어 귀하게 사용할 수 있는 그릇이 됩니다. 이처럼 주님의 손에 붙들려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그저 따라가기만 하면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귀한 악기, 자주 쓰임을 받는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 이후부터는 내 뜻, 내 육체가 원하는 대로 살지 않고, 늘 성령을 인도하심을 따라 행하고 살면서, 성령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고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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