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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2-10-30 (일) 08:42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396    
영영히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렘 35:1-11, 19)


자손을 이을 사람이 없어서 가문의 대가 끊긴다? 혹은 나라가 망한다? 아니 교회가 문을 닫는다? 얼마나 슬픈 이야기입니까? 반대로 대대에 이르도록 자손이 많고, 나라가 흥하고, 교회가 부흥을 한다면 얼마나 기쁜 이야기 입니까?
이 세상 역사상 그런 민족과 나라들, 교회들이 있었습니다. 오늘도 그런 흥망성쇠의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 하나님이 세우기도 하시고 헐기도 하시며, 심기도 하시고 뽑기도 하십니다(렘 45:4).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레갑 족속에게 대한 하나님의 말씀은 “그러므로 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레갑의 아들 요나답에게서 내 앞에 설 사람이 영영히 끊어지지 아니하리라”(19절)고 하신 것처럼, 하나님 앞에 그 족속은 영영히 지속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인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는 망했는데, 어떻게 해서 레갑 족속은 하나님 앞에 그런 복을 받았나요?

오늘 본문의 배경은 유다 왕 여호야김 시대, 애굽과 바벨론이 서로 팔레스틴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전쟁하는 때로서 유다는 풍전등화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1절). 당시 갈그미스 전투에서 유다가 의지하던 애굽이 대패하는 바람에 주도권이 바벨론으로 넘어가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왕하 24:7). 여호야김 왕과 그 백성들이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을 섬기던 때였습니다. 여호야김 왕은 예언의 말씀을 기록한 두루마리를 불에 태우기도 했습니다(렘 36:23).
예레미야 선지자는 유다 백성들의 패역과 불순종을 지적하면서, 대조적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신실한 믿음을 소유했던 레갑 족속을 소개합니다. 레갑 족속은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후손으로 겐 족속이라고도 불리웁니다(대상 2:55). 사사시대 드보라 때에 하솔의 야빈이 철병거 900승을 거느리고 시스라 군대장관을 보내 이스라엘을 치게 했을 때에 바락의 손에 의해 패배하고 도망할 때 겐 족속 중 헤벨의 아내 야엘이라는 여자가 자기의 장막으로 시스라를 유인하고, 그가 잠잘 때 머리에 말뚝을 박아 죽인 적이 있습니다(삿 4:21). 사실 레갑 족속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후에 계속 그 백성들을 따라가며 하나님의 말씀을 엿들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했을 때부터 그들은 유목민 생활을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팔레스틴 땅에서 유목 생활을 하던 중에 바벨론의 위협을 피해 예루살렘에 우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11절). 유대 땅에 전쟁이 일어나는 일촉즉발의 시간에 전쟁을 피할 수 있을까 하고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너는 레갑 족속에게 가서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을 여호와의 집 한 방으로 데려다가 포도주를 마시우라”(2절)고 합니다. 그들을 시험해 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그들이 포도주를 마시지 않을 것을 아셨으나, 그들의 신실함을 유다 백성들에게 보여주면서 깨우치기 위함이었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레갑 온 족속들을 하나님의 집에 모으고 포도주가 가득한 사발과 잔을 놓고 마시라고 권합니다(4-5절). 그랬더니 “그들이 가로되 우리는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겠노라 레갑의 아들 우리 선조 요나답이 우리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와 너희 자손은 영영히 포도주를 마시지 말며 집도 짓지 말며 파종도 하지 말며 포도원도 재배치 말며 두지도 말고 너희 평생에 장막에 거처하라 그리하면 너희의 우거하는 땅에서 너희 생명이 길리라 하였으므로 우리가 레갑의 아들 우리 선조 요나답의 우리에게 명한 모든 말을 순종하여 우리와 우리 아내와 자녀가 평생에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거처할 집도 짓지 아니하며 포도원이나 밭이나 종자도 두지 아니하고 장막에 거처하여 우리 선조 요나답의 우리에게 명한대로 다 준행하였노라”(6-10절)고 합니다. 즉 그들의 선조 가운데 레갑의 아들 요나답이라는 믿음의 사람이 그 후손에게 명한 것들을 200여년이 넘도록 신실하게 지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요나답이 누구입니까? 그는 아합 왕 때에 대부분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알 신을 섬겼는데, 요나답은 섬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후 왕과 함께 이스라엘의 모든 바알 숭배자들을 처형하였습니다(왕하 10:15-28).
그리고 그가 죽으면서 후손들에게 유언을 남긴 것 같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따라가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포도주를 마시지 말고, 농사도 짓지 않게 했습니다. 집도 짓지 말고 장막에서 유목생활을 하면서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라는 것이었습니다. 가나안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동화되어 하나님을 멀리하고 세상을 좋아하게 될까 염려하여 삶의 원칙을 제시한 것입니다. Guide line 을 준 것입니다.
그런데 그 후손들이 얼마나 신실하였든지 요나답이 죽고 난 후 200년이 지나도 그 약속을 지키며 살아온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포도주를 마시라고 해도 거절하고 선조의 약속을 지킨 것입니다. 얼마나 대단합니까? 조석으로 변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인데 말입니다. 어떻게 그들은 약속한 것을 변치 않고 지킬 수 있었을까요? 얼마든지 적당히 타협하고, 포도주도 먹고, 이사하며 옮겨 다니는 것이 불편하니 집도 짓고 편안하게 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가난하여 불편하여도 약속을, 원칙을 지키며 살았습니다. 저는 그 이유가 신실했던 선조의 믿음을 그 어떤 것보다 존귀하게 여기는 정신(spirit)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념(conviction)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기에 한번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신, 신념 말입니다. 박윤선 목사님도 그의 예레미야 주석에서 “레갑 사람들이 선조의 유훈을 순종하는 정신은 귀하다” 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우리 개혁주의 신앙의 정신이 아닙니까? 이 영적으로 혼탁한 세상 속에서 결코 세상과 타협할 수 없는 원칙들이, 약속들이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까? 개혁주의 신앙으로 지켜야 할 것들이 있지 않습니까? 교회가 크게 부흥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가난과 불편함 속에서 고난을 겪는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래야 하나님 앞에 떳떳하지 않겠습니까? 지조와 절개를 지키기 때문에 깨끗하고 순결한 양심을 가지고 세상에 대해 담대하게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나중에 주님을 만날 것을 생각하고, 로마 베스도 총독 앞에서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행 24:16)고 한 것처럼,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신앙, 코람데오의 신앙 때문에 신학과 경건이 일치하는 삶 말입니다. 신앙이 삶에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레갑 족속의 모습을 보고 유다 백성들에게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레갑의 아들 요나답이 그 자손에게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 한 그 명령은 실행되도다 그들은 그 선조의 명령을 순종하여 오늘까지 마시지 아니하거늘 내가 너희에게 말하고 부지런히 말하여도 너희는 나를 듣지 아니하도다 나도 내 종 모든 선지자를 너희에게 보내고 부지런히 보내며 이르기를 너희는 이제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켜 행위를 고치고 다른 신을 좇아 그를 섬기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나의 너희와 너희 선조에게 준 이 땅에 거하리라 하여도 너희가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며 나를 듣지 아니하였느니라”(14-15절)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 불순종해서 망한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개신교의 뿌리가 종교개혁에 있고, 그 개혁의 정신을 꾸준히 이어가고자 하는 개혁주의 교회(Reformed Church)에게는 오늘 주일이 의미 있는 날입니다.
지금으로부터 꼭 505년 전, 그리고 하루 후인 1517년 10월 31일 마르틴 루터가 로마 교황청을 대항하여 목숨을 내걸고 비텐베르그 교회 정문에 95개 조항의 항의문(thesis of protesting)을 붙였습니다. 천주교의 잘못된 비성경적 교리를 95개 조항으로 지적함으로 무너졌던, 타락했던 기독교 신앙을 재건하자는 종교개혁의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불길이 멜랑톤, 쯔윙글리나 칼빈을 통하여 전 유럽으로 확산되어 오늘날까지 개혁주의 신앙으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이전에도 언급하였듯이 당시 로마 천주교 교황과 성직자들의 윤리적, 도덕적 타락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습니다. 성직을 돈을 주고 사고 파는 일이 비일비재하였습니다. 그래서 10살도 채 되지 않은 어린아이가 추기경에 오르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하였습니다. 루터 바로 전 세대의 교황 알렉산더 6세는 많은 첩을 두고, 4명의 사생아를 낳은 파렴치한 자였습니다.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성직자 축첩 제도까지 만들려고 하였습니다. 한편 루터 당시의 교황 레오 10세의 취미는 도박이었다고 합니다. 귀족들과 추기경들을 모아 놓고 밤새도록 돈을 걸고 카드 놀이를 하는 것이 그의 유일한 취미 생활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교회에 천국 열쇠를 주었다는 예수님의 말씀(마 16:19)을 잘못 해석하여 그들 스스로 죽은 영혼들의 죄까지 사해 줄 수 있는 권위가 있다면서 면죄부를 팔아 많은 돈을 축적했던 것이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다 못한 청렴한 도미니칸 수도사였던 사보나롤라는 ‘네 자식을 몹쓸 놈으로 만들려면 로마 천주교의 성직자가 되게 하라’고 절규하였었습니다.
그런데 개혁주의자들이 막강한 권력의 로마 천주교를 대항하면서 순교의 각오로 개혁 운동을 일으킨 것은 윤리, 도덕적인 문제 때문 만이 아니었습니다. 로마 천주교회가 하나님을, 예수님을 잘못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믿느냐가 너무 중요합니다. 윤리나 도덕은 단지 겉으로 드러난 현상에 불과합니다. 타락한 윤리나 도덕으로 인한 잘못된 행동은 몇 사람만 죽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가르침은 수 세대에 걸쳐 수천만의 사람들을 죽입니다.
천주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할 자리에 전통, 의식(ceremony)을,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할 자리에 인간의 공로를 강조합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닙니다. 천주교는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야 할 자리를 교황 곧 인간의 영광이 차지했습니다. 그래서 교황이 예수님처럼 행세합니다. 마리아를 무죄한 사람이라고 하면서 숭배합니다. 사도들도 숭배합니다. 그들에게 기도합니다. 이러한 잘못된 가르침을 바로 고치겠다고 일으킨 운동이 종교개혁이었습니다.
개혁주의자들이 부르짖었던 것은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하나님의 은혜(Sola Gratia)! 오직 예수 그리스도(Solus Christus)!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 였습니다. 감사한 것은 1880년대에 우리나라에 처음 선교사님들이 와서 1901년에 최초로 세운 대한예수교 장로회신학교(평양신학교)가 개혁주의 신앙을 가르치는 신학교였습니다. 그래서 이런 신앙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을 전도하고, 목사들을 양육하면서 믿는 사람들에게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생활을 하게 하기 위하여 삶의 원칙을 세운 것이 술, 담배, 도박, 그리고 기생집에 가는 것을 금하였습니다. 그 후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믿는 자들은 그렇게 사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나중에 자유주의자들로 말미암아 이런 삶이 흐려진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바울은 영의 아들 디모데에게 “나의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 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딤후 1:3-5)고 하였습니다.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 적부터 섬겨오는 디모데의 거짓이 없는 믿음이 어디서 왔나요?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로부터 왔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청결한 양심으로 하나님을 섬겨온 선배들처럼, 거짓이 없는 믿음이기에 우리의 다음 세대들도 그 믿음을 본받을만 합니까?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하나님과 한 약속들을 잘 지켰듯이, 우리도 소중한 개혁주의 신앙의 유산을 잘 지키고 있습니까? 하나님과 한 약속들을 신실하게 지키고 있습니까? 신앙양심에 조금도 거리낌이 없이 주위 사람들에게, 후배들에게, 2세와 3세들에게 아름다운 신앙을 전수하고 있습니까? 오늘의 요나답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만약 그렇다면 레갑 족속이 받았던 복을 우리도 받게 될 것입니다. 어제나 오늘도, 아니 내일도 동일하신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가정들이 그런 복을 받아 누리기를 바랍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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