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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2-11-03 (목) 05:13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297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벧전 4:7-11)
   대부분의 성경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주전 4년 정도에 태어나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초림하시고, 부활, 승천하신 지도 어느덧 2026년가량 지났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났습니다. 아니 올해도 벌써 11월을 맞이했습니다. 이제 금방 2023년 새해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만큼 이 세상 마지막이 가까웠다는 뜻입니다. 우리 주님 언제 다시 오실른지 몰라도 작년보다는 가까워졌습니다. 아니 우리의 육체의 종말도 그만큼 더 가까워졌습니다. 우리 모두는 죽음을 향해 한걸음씩 다가가고 있습니다.
   성경을 알고, 이렇게 역사의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세상이 마지막 때를 향하고 있음을 깨달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 베드로가 성도들에게 이러한 마지막 때에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7절상).
   사실상 1500년 동안에 걸쳐서 구약성경이 오실 메시아를 예언했던 그대로 베들레헴에서 예수님이 탄생하시고, 마지막 3년 동안 공생애 사역으로 복음을 전하시고, 자신이 참 하나님임을, 메시아임을 여러가지 이적과 기사로 나타내시고, 자신의 예언대로 백성들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승천하시면서 다시 오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행 1:11). 그리고 2026년가량이 더 흘렀습니다. 성경은 바로 이 기간, 즉 오순절에 성령이 임한 후부터 주님 재림하시기 전까지 종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구속사적인 안목으로 보거나 예수님의 세상 끝 날의 징조를 예언하신 것들(마 24장)에 의하면 분명히 마지막 때인 것입니다.

   이 마지막 때에 성도는 기름을 준비하며 기다리던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마 25:1-10) 오실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니겠습니까? 물론 보통 사람들은 ‘그것은 이단들이나 하는 이야기가 아니냐, 혹은 2000여년 동안 내려온 이야기 아니냐’고 하면서, 2000여 년 동안이나 오지 않으셨는데 금방 오시겠느냐고 하면서, 우리 이 세상에서의 짧은 인생 즐기며 살자고 할른지 모릅니다. 허나 그들은 이생의 삶만 생각할 뿐 그 죽음 뒤의 삶은 전혀 생각지 않는 말입니다. 적어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를 입은 성도들은, 성경 말씀대로 곧 예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러 오실 것을 믿는 성도들은, 이 짧은 이생 다음의 영원한 삶을 고대하고 소망하는 성도들은 준비할 것입니다.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은 베드로는 오늘 본문을 통하여 우리 성도에게 네 가지의 명령을 합니다. 마지막이 가까웠음을 아는 성도는 이렇게 살아간다고 합니다.

첫째로,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합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7절)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마지막이 가까웠음을 아는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우리의 할 일이 기도라는 것입니다. 기도는 성도의 생활에서 우선순위의 첫째입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권고의 말씀이 아니라, 명령입니다. 마지막 때가 가까워 올수록 우리는 더욱 기도해야 합니다. 어떻게 기도합니까?
   정신을 차리고(be a clear in mind) 기도해야 합니다. 이 말은 두려워 떨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깨끗이 정돈하고, 중심을 똑바로 잡고, 주어진 상황을 잘 판단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환상이나 몽상 가운데 기도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을 차리고 올바로 성숙하게 드리는 기도입니다. 어린아이처럼 매일 자기 욕심을 채우려고 달라고만 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찬양과 감사와 함께 하나님 나라를 위해 그 뜻이 이루어지기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또한 근신하며(be a clear in head, be sober) 기도해야 합니다. 이 말은 부주의한 기도가 아니라 주의 깊게 온 정성을 기울여 드리는 기도입니다. 중언부언하는 기도가 아닙니다(마 6:7). 자신을 절제하여 드리는 기도를 말합니다. 게으르게 다른 데 시간을 다 써놓고 그저 짜투리 시간 날 때, 생각날 때만 하는 기도가 아니라, 시간을 정해 놓고 부지런히 온 마음을 다하여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말 번역에는 표현되어 있지 않으나 원어인 헬라어에는 기도가 명사형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정신을 차리라,’ ‘근신하라’ 가 동사형입니다. 그러니까 7절의 정확한 번역은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기도들을 하기 위해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라”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자주자주 기도해야 함을 뜻합니다.
물론 기도의 목적은 시험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마 6:13; 막 14:38), 우리의 대적 마귀와 싸워 이기기 위함입니다(벧전 5:8). 기도하지 않으면 이길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기도하고 있습니까? 얼마나 기도합니까?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며 자주 기도합니까?

둘째로, 열심으로 서로 사랑합니다.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8절)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성도들 사이에서 해야 될 의무입니다. 마지막 때가 가까워 올수록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게 사랑하라는 말씀은 직접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명령이기도 합니다(요 13:34). 아니 성경 전체가 성도들에게 주는 하나님의 큰 계명입니다.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자기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그런데 마지막이 가까워 올수록 더욱 서로 사랑해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사랑이 허다한 죄를 덮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십자가의 죽음으로 극치를 이루고 그 대속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가 사하여진 것처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서로의 죄를, 추한 부분을 덮어주며, 용서함을 의미합니다.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느니라"(잠 10:12)고 하였고,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고전 13:5)라고 했습니다. 즉 사랑은 용서입니다. 서로 비판하고 흉보며 손가락질하는 것은 성도의 태도가 아닙니다. 사랑은 이해하고 덮어주고 감싸주는 것입니다.
   어떻게 사랑합니까? 서로 열심으로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열심으로(evktenh,j, at full stretch)’라는 뜻은 ‘나 자신을 최대로 사용하여, 힘닿는 데까지’ 라는 말입니다. 이 단어는 마라톤 선수가 마지막 테이프를 끊는 것처럼, 높이뛰기 선수가 최선을 다해 Bar(수평막대)를 넘어서는 것처럼, 적당히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온 마음을 다하여 뜨겁게 사랑하는 겁니다.
   그리고, 서로 원망없이 대접하는 것입니다(9절). 베드로가 이 편지를 쓸 당시에는 떠돌아다니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핍박에 못 이겨 이리저리 방황하며 도망 다니던 성도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그러한 성도들을 만나면 숙식을 제공하며 대접하여 사랑을 표시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도 낯선 이가 우리 교회를 찾을 때나, 낙심되고 방황하는 성도들이나, 우리 교우들 중에 어려움을 당하는 성도, 외로운 성도들을 기꺼이 초대하여 대접하는 것이 성도의 도리입니다. 바쁜 이민 생활 가운데 어려운 일인지 모르나, 사랑이 있으면 그들에게 관심을 보이고 대접합니다. 예수님은 받기보다는 주는 이가 복되다고 하셨습니다(행 20:35).
   그런데 ‘원망없이’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말없이, 중얼중얼거림이 없이(without grumbling), 불평 없이 대접하라는 말씀입니다. 즉, 대접하되 말이 많고 불평하며 하는 것은 안한 것만 못하다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선한 일이라도 원망하면서, 불평하면서 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데 진심으로, 사랑으로 우러나서 대접하면 그렇지 않은데, 어떤 의무감이나 억지로 하게 될 경우에 이렇게 되지요.
   여러분은 최근에 누구를 사랑으로 대접했나요? 말없이, 불평 없이 사랑으로 대접한 것이 언제였나요?

세째로,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해야 합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10절)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성도들이 교회를 섬길 때 이렇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꼭 필요한 봉사입니다. 교회의 부흥에 꼭 필요한 것입니다. 어떻게 봉사합니까?
   은사를 받은 대로 봉사합니다. 은사를 받지 못하신 분은 한 분도 없습니다. 받고도 아직 모를 수는 있습니다 만은.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받은 성도들 누구에게나 은사를, 특별한 은혜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고유한 은혜일 수도 있고 공통적인 일반적 은혜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은혜이던 간에 받은 은사대로, 자기 믿음의 분량대로 봉사하는 것을 말합니다(고전 12:3). 자기의 맡겨진 것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한 청지기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받은 은사가 내 공로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거저 주신 은혜의 선물로 알고 청지기처럼 봉사하는 것입니다. 잠시 주인께서 내게 맡겨 주신 선물을 공치사없이 거저 남에게 베푸는 것입니다. 종으로, 청지기로 봉사하는 것입니다. 내가 주인이 아닙니다. 우리 주위에는 마치 자기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의 주인인양 행세함으로 좋지 않은 말을 듣게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여러분은 교회를 위해 봉사할 때에 어떤 마음으로, 어떤 태도로 합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나누는 것처럼, 종으로, 선한 청지기로 겸손히 맡은 일에, 주신 은사대로 봉사하시는 축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결론적으로, 사도 베드로는 우리의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의 궁극적인 목적을 말씀하십니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11절) 하였습니다. 즉, 마지막이 가까이 왔음을 아는 성도는 말과 행동이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고, 서로 열심으로 사랑하고, 선한 청지기 같이 봉사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그 전에 아주 중요한 말씀을 11절에 하고 계십니다. 어느 누구든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라고 하십니다. 말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약 3:2) 고 하셨습니다. 만약 우리가 말을 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은혜로운 말만 한다면 얼마나 하나님께 영광이 되겠습니까? 정말 우리는 말을 하기 전에 한 번 생각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지 생각한 후에 말을 합시다.
   또한 봉사를 할 때에도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고 하십니다. 내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고 하십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로 하는 것이지 내가 가진 것이 있어서, 잘나서, 내가 능력이 있어서 하는 것처럼 하지 말고 오로지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기에 봉사하는 것처럼 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려면 기도하고 나서 봉사해야 하겠지요.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우리는 마지막 때라고 해서 어떤 이단들이 행동하는 것처럼 공부고, 가정이고, 직장이고 다 팽개치고 살아가는 것 아닙니다. 그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주님이 재림하실 그 날까지, 주님이 천국으로 부르시는 그날까지 열심히 최선을 다하여 주어진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이 세상은 마지막 때가 분명히 있고, 그 때가 성경 말씀대로 가까이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성도들은 준비하며 살아야 하는데, 신앙생활의 기본적인 원칙을 오늘 본문의 말씀에 근거하여 나누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규칙적으로 시간을 정해 놓고, 삶을 절제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열심으로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이유는 서로 사랑하면 상대방을 용서하고 허물을 덮어주기 때문입니다. 원망 없이 서로 대접하며, 무엇이든지 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해야 합니다. 은혜를 받은 대로 거저 말없이 청지기처럼 봉사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서로 해야 합니다. 나 혼자만 하면 힘들어지고 시험에 들기 쉽습니다. 꼭 사탄이 그럴 때에 역사합니다. 그래서 계속 오늘 본문은 ‘서로(each other)’를 강조하기 위하여 세 번 반복하고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서로 대접하고, 서로 봉사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도록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못해서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잘못을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늘 기억하십시오. 무슨 말을 하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처럼, 은혜의 말씀 만을 나누십시오. 또, 무슨 봉사를 하든지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하는 것처럼 하십시오. 그래야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우리 모두 그렇게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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