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등록 비번분실

전체방문 : 5,075,691
오늘방문 : 552
어제방문 : 3163
전체글등록 : 3,859
오늘글등록 : 0
전체답변글 : 2
댓글및쪽글 : 18

좌측_배너 배너 001

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3-02-24 (금) 01:10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297    
마귀를 대적하고 고난을 견디라 (벧전 5:8-15)
여러분은 사탄, 혹은 마귀의 존재를 믿으십니까? 마귀가 있는 것은 알면서도 무시하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C. S. Lewis 는 그리스도인들이 사탄 마귀에 대해 말할 때에 하게 되는 두 가지 실수는 그에 대해 농담을 하거나 그를 무시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정말 곤란합니다. 마귀는 오늘도 그가 부리는 악한 영들을 이용하여 교회를, 그리스도인들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 6:12)고 하였습니다. 즉 우리들은 늘 영적 전쟁을 하는 십자가의 군사인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성경이 말하는 사탄 마귀가 주로 하는 일들은 1) 죄를 짓도록 우리를 선동합니다(대상 21:1). 2) 먹이를 찾아 세상을 두루 다닙니다(욥 1:7; 벧전 5:8). 3) 어떤 육체적 병을 일으킵니다(욥 2:7). 4) 믿지 않는 자들의 영적인 눈을 멀게 합니다(고후 4:4). 5) 불화살을 쏘아 댑니다(엡 6:16). 의심, 정욕, 교만의 불화살을 쏩니다. 6) 주님의 일을 방해합니다(데살전 2:18). 7) 하나님의 말씀을 훼손합니다(마 13:19). 빼앗아 갑니다. 8) 거짓의 아비로서 우리를 속아 넘어가게 합니다(요 8:44; 고후 2:11). 9) 광명의 천사로 위장합니다(고후 11:14).
그리하여 때로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행동하거나, 비합리적인 난폭한 행동과 말을 하게 하기도 하며, 악의에 찬 중상모략과 거짓말을 하거나, 잘못된 교리를 고집하거나, 자신의 영혼을 피폐하게 만드는 행위에 몰입하게 하거나, 두려움, 증오, 우울 등의 감정을 폭발시키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얼마나 우리가 경계를 해야 합니까?

사도 베드로는 5장 5-7절에서 우리에게 영적인 삶, 신앙생활을 성공하는 공식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기억하십니까? 신앙생활의 성공 = 순복 + 겸손 – 염려! 영적지도자들을 비롯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순복하며 겸손히 섬기되 염려는 주님께 던져 버리라고, 맡기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오늘 사탄 마귀가 어떠한 지 알고, 이 악한 영물이 우리 믿는 자들을 공격하고, 교회의 생명과 하나됨을 방해하는 능력을 가진 자를 대적하라고 합니다. 우선,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8절) 하였습니다. 마귀(dia,boloj, the devil)의 뜻은 ‘중상하는 자(slanderer), 참소하는 자(accuser)’ 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마귀를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계 12:10). 그런 자가 배가 고파 우는 사자가 먹을 것을 찾아 삼키려고 하듯이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러니까 “근신하라(be sober or self-controlled)”고 명령합니다. 정신을 차리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깨어라(be alert)”고 명령합니다. 자거나 졸지 말라고 합니다. 마치 적과 대치하고 있는 군대의 불침번 보초를 서는 무장한 군인처럼 말입니다. 언제 어디서 공격을 할지 모르니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안이하게 신앙생활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합니까? 그냥 마귀에게 노출된 상태이니 작은 미혹에도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9절)고 하였습니다. 여기 “대적하다(resist)”의 뜻은 ‘저항하다’라는 의미입니다. 뒤로 물러서지 말고 맞서 싸우라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믿음을 굳게 해야 합니다. 지난 주일에도 설명한 것처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마귀의 머리는 이미 상하였으므로 승리하였다는 믿음입니다. 마귀에게 굴복할 필요가 없다는 믿음입니다. 싸우면 절대로 지지 않는다는 믿음입니다. 이미 여태까지 베드로전서를 통해서 말씀해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택하심을 입은 자들이고(1:2), 거듭남으로 산 소망을 얻었고(1:3), 썩지 않는 기업을 받았고(1:4),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으며(1:5), 우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하나님의 기이한 빛에 들어갔고(2:9), 거룩한 나라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하였습니다(2:9).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말씀에 굳게 서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도 마귀에게 시험받으실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기셨습니다(마 4:1-11). 성령의 검인 말씀을 붙들고 나가면, 말씀을 선포하고 나가면 악한 영들을 반드시 패배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찌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 4:7)고 하신 약속을 성취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마귀와 싸우면서 상처를 입을 수 있습니다. 고난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기억할 것은 우리만 고난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형제들도 고난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믿음의 영웅들도, 2000여년 기독교 역사 속에서도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습니다(히 12:1). 고난 중에도 결국 승리한 증인들입니다. 언젠가는 다 만날 날이 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결론을 맺습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간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 권력이 세세무궁토록 그에게 있을찌어다 아멘”(10-11절)!
이는 이미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벧전 1:6-7)는 말씀을 반복하며 약간 다르게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부르시고 자녀를 삼으신 하나님의 은혜로 잠깐 고난을 받을지언정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우리를 온전하게(restore) 하시고, 용기를 주셔서 강하게 하시고, 기초를 견고하게 하신다고 합니다. 이미 베드로는 경험을 했습니다. 예수님을 세번이나 부인했던 자신을 온전하게 회복시켜 주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셔서 강하게 하고 굳게 하셔서 결국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였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마지막으로 이 서신을 받아볼 디아스포라 성도들에게 안부인사를 합니다. 이 서신을 전달할 실루아노와 영의 아들 마가를 소개합니다. “내가 신실한 형제로 아는 실루아노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간단히 써서 권하고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거하노니 너희는 이 은혜에 굳게 서라 함께 택하심을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12-13절)고 합니다. 실루아노는 사도 바울과 함께 선교여행을 했던 바로 그 실라입니다(참고 행 15:40). 그는 또한 베드로의 신실하고 믿음직한 동역자였기에 자신의 서신을 독자들에게 전달하도록 시킬 만큼 신뢰하였습니다.
베드로전서의 요지는 하나님의 참된 은혜를 이해하고, 그 은혜가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믿음을 지켜가며 계속 선교적 삶을 살도록 힘을 주는 것이기에 이 은혜 위에 굳게 서라는 것입니다. 바벨론에 있는 교회는 자신이 이 서신을 쓰고 있는 로마에 있는 교회를 가리킵니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나 헬라인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시를 바벨론이라고 별명으로 부르면서, 옛날 바벨론처럼 죄로 가득한 도시로서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자들로 가득하기에 그렇게 불렀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자신의 아들이라고 하는 마가는 이전에 바울과 함께 선교여행을 하다가 중도에서 하차한 ‘요한 마가’입니다(행 12:12). 바울은 그에 대하여 섭섭하게 생각했으나, 베드로와는 점점 가까워 지면서 동역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심지어 아들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신뢰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도 나중에 디모데에게 마가를 데리고 오라고 자신에게 유익했다고 하였습니다(딤후 4:11). 시작보다 끝이 중요한 것을 가르쳐줍니다. 베드로나 바울 같은 사도들에게 신실한 동역자들이 곁에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실라나 마가처럼 끝까지 신실한 동역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는 “너희는 사랑의 입맞춤으로 피차 문안하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 모든 이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14-15절) 하고 서신을 끝맺습니다. 당시의 성도들이 만날 때에 인사하는 모습이 얼굴에 입맞추는 것이었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표현으로 예배 의식의 일부였다고 합니다. 오늘날에도 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사입니다. 그리고 샬롬, 평강을 기원합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오늘도 마귀가 역사하고 있음을 알고 우리는 근신해야 합니다.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그리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안이한 상태로 있다가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시험에 빠집니다. 무엇보다 믿음을 굳게, 강하게 하여 대적해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고 하셨듯이, 이미 예수님이 마귀의 머리를 쳐서 상하게 하였습니다. 사실 마귀는 별로 힘이 없습니다. 성령의 검인 말씀으로 싸우면 반드시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오늘도 우리 가운데 충만할 줄 믿습니다. 우리가 범죄하지 않고, 겸손히 주님 안에 거하면 하나님의 은혜는 늘 함께 흐르는 줄 믿습니다. 끝까지 신실한 믿음으로, 사랑으로, 확실한 소망 가운데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1383 주일설교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은 (막 2:23-3:6) 한태일 목사 2024-04-14 24
1382 수요설교 진실한 믿음의 친구요, 동역자들 (빌 2:19-30) 한태일 목사 2024-04-12 32
1381 창립 30주년 기념 찬양 간증 집회(토요일 새벽) 관리자 2024-04-08 54
1380 창립 30주년 기념 찬양 간증 집회(주일 오후) 관리자 2024-04-08 43
1379 창립 30주년 기념 찬양 간증 집회(주일 오전) 관리자 2024-04-08 38
1378 창립 30주년 기념 찬양 간증 집회(토요일 저녁) 관리자 2024-04-08 31
1377 창립 30주년 기념 찬양과 간증집회(금요일 저녁) 관리자 2024-04-07 32
1376 절기설교 부활의 능력을 믿는다면 (요 20:1-18) 한태일 목사 2024-03-31 88
1375 수요설교 채찍질하고 조롱하며 때리더라 (요 19:1-3) 한태일 목사 2024-03-28 56
1374 절기설교 잘못된 믿음 (요 12:12-16) 한태일 목사 2024-03-24 61
1373 주일설교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으면 (막 2:18-22) 한태일 목사 2024-03-17 116
1372 주일설교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막 2:13-17) 한태일 목사 2024-03-10 216
1371 주일설교 회막을 향하여 진을 치고 (민 2:1-2) 관리자 2024-03-04 279
1370 수요설교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 (빙 2:12-18) 한태일 목사 2024-02-29 200
1369 주일설교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막 2:1-12) 한태일 목사 2024-02-25 300
1368 주일설교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막 1:40-45) 한태일 목사 2024-02-18 408
12345678910,,,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