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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3-03-09 (목) 06:03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559    
열매 있는 자가 되라 (벧후 1:1-11)
이 세상에서 전혀 쓸모없는 자가 된다면, 그래서 오히려 주위 사람들에게 민폐만 끼친다면 살고 싶지 않겠지요. 마치 병원 중환자 실에서 겨우 생명만 유지하고 있는 사람처럼 말입니다. 그런 분들은 거의 죽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꼭 그런 사람이 아니더라도 하나님이 건강을 주셨는데도 아무도 그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마찬가지 아닐까요?
하나님 나라의 문맥에서도 생각해봅시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도구로서의 삶이 아니라, 낭비만 하는 삶이라면 어떨까요? 그의 삶에서 전혀 열매가 없어서 어느 누구도 그로 말미암아 유익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과실/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제해 버리신다고 하셨습니다(요 15:2).
여러분들의 삶에서는 열매가 있나요? 있다면 얼마나 많은 열매를 맺고 있나요? 주위 사람들이 여러분의 열매를 먹고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까? 혜택을 입고 있습니까?

자신을 단순히 베드로라고만 밝힌 베드로전서와는 달리 베드로후서에서는 자신을 시몬 베드로로 소개합니다(1절). 유대 히브리 이름인 시므온의 헬라식 발음이 시몬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따르기 전의 이름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그에게 준 새 이름으로 ‘반석의 사람’을 뜻합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성령을 받은 후에 그는 정말 그 이름 답게 반석과 같이 되어, 담대하고 인내하며 사명을 잘 감당하였습니다.
자신을 종과 사도로 묘사함으로 그의 삶에 일어난 두 가지 변화를 암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dou/loj), 노예가 되어 주님에게 복종하며 기꺼이 따르는 자가 되었으며, 부르심을 따라 주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사도(avpo,stoloj)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겸손한 종이자, 권위있는 사도로서 소아시아 지방의 디아스포라 성도들에게 편지를 씁니다. 그들도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님을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그들에게 풍성하기를 바라는 인사말을 전합니다(2절). 하나님을,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경험적으로 안다면 은혜와 평강이 더욱 많아지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본론에 들어가서, 우리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보배롭고 큰 약속을 받은 자들이기에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성품(덕)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셨다고 하였습니다. 당시 핍박을 피해 흩어져 있던 디아스포라 성도들에게 우선 하나님의 능력이 그들에게 주어졌다고 합니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니라”(3절)고 하였습니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을 체험하여 앎으로 그 영광과 덕(goodness)을 나타내기 위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관한 모든 삶에 필요한 것들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바로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의 역사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약속대로 보내주신 성령님의 능력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4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영광과 덕을 기리기 위하여 능력을 주시는 성령님의 사역과 관련하여 주신 보배롭고 큰 약속입니다(요 14:15-17; 16:7, 행 1:4-5, 8). 우리가 정욕으로 세상의 썩어질 문화에 물들지 않고, 하나님의 성품(덕)을 나타낼 수 있도록 약속대로 성령님을 보내시고 우리 안에서 역사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죄성(sin nature)의 문화를 물리치고, 신성(divine nature)의 새 문화, 은혜의 문화를 창조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로 정욕적이지 않고, 상스럽지 않고, 세속적이지 않고, 시기와 질투하지 않고, 편가르기나, 거짓과 다툼이 없고, 오히려 화평과 관용하며 양순하고 긍휼과 선함이 가득한 모습이 드러나게 하신 것입니다(약 3:17-18). 열매가 있어 주님의 아름다운 덕을 드러내며 살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우애를, 형제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5-7절)고 하였습니다. 우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Savior)와 주(Lord)로 믿는 보배로운 믿음이 있다면, 거기에 걸맞게 덕을 나타내라고 합니다. 여기 ‘덕(ἀρετῇ, virtue)’은 도덕적인 탁월함, 혹은 선함(goodness)을 뜻합니다. 불신자와 달리 우리는 도덕적으로 부끄럼이 없어야 합니다. 아니 불신자들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의 도덕성이 있어야 합니다. 만약 믿는다는 사람들이 부도덕하게 살면 주님의 이름에 먹칠을 하며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불신자들보다 더 욕을 먹게 됩니다. 그러니 당연히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가지고 사는 것을 나타내야 합니다. 그리고 ‘지식(knowledge)’이라 함은 머리로만 아는 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2절에서 이야기한 실제적인 지식, 즉 생활에서 실천되는 경험적인 지식을 뜻합니다. 진리의 말씀을 바로 알아 무엇이 옳고 그른지, 어떤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위로와 격려가 되는지 아니면 상처가 되는지 구별할 수 있는 지식입니다. ‘절제(self-control)’는 자신의 욕구를 통제할 수 있는 내적인 힘을 뜻합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기꺼이 그런 것들을 버릴 수 있는 힘이 절제입니다. 다른 사람이 갖고 있는 세상적인 것에 대해 전혀 부러움이 없는 것입니다. ‘인내(perseverance)’는 자신에게 주어진 짐을 잘 지고 간다는 뜻입니다. 인생에 어려움이 닥쳤을 때 그것을 다루는 용기를 말합니다. 고난 가운데서도 잘 견디는 것입니다. 억지로 어쩔 수 없어서 견디는 것이 아닙니다. 소망이 하나님께 있기에 견디는 것입니다. 목숨조차 아깝지 않은 것입니다. ‘경건(godliness)’은 3절에서도 언급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나타나는 태도를 뜻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기에 그 말씀에 순종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알고 믿기에 무슨 말을 하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 앞에서 합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죄를 거절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선한 말과 행동으로 경건함을 나타냅니다. ‘형제우애(brotherly love)’는 가족 간의 사랑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주 안에서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교우들을 친 형제, 자매로 여기며 서로의 짐을 지고 나누는 것을 말합니다. 한 식구이니 당연히 짐을 나누어 집니다. 힘들어하는 형제, 자매를 나 몰라라 하지 않습니다. 손을 내밀어 붙잡아 줍니다. 그리고 마지막의 ‘사랑(ἀγάπη)’은 여러분들이 너무 잘 아는 희생적인, 무조건적인 사랑을 뜻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따지지 않습니다. 돌아오는 것이 없어도,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거저 주는 사랑입니다. 아무리 내게 잘못을 해도 예수님처럼 용서하고 용납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성품, 예수 그리스도의 덕이 우리의 삶에 보여지는 것이 열매가 있는 것입니다. 이 같은 성품들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성령님이 계시기에 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3절에서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이미 주셨다고 했고, 4절에서는 성령을 보내주신다는 약속을 하신 대로 보내주셔서 우리 안의 성령님이 그렇게 열매 맺을 수 있도록 해준다고 하였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23)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니까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대로 우리 자신을 내어드리면 됩니다. 나를 양보하면 됩니다. 그러나 내 자아를 양보하지 않고 고집을 부리면 결코 열매 있는 성도가 되지 못합니다.
즉 하나님의 인격이 우리의 인격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이 노력을 해야 합니다. 매순간 성령님께 항복해야 합니다. 바울처럼 자신의 몸을 쳐 주님에게 복종하게 해야 합니다(고전 9:27). 바로 성령 충만입니다. 말씀과 기도로, 신앙성장을 위한 독서로, 자신보다 성숙한 믿음을 가진 분들과 자주 교제함으로 믿음의 내공을 쌓아야 합니다. 열심히 덕을 쌓으려고 하고, 말씀의 지식을 넓혀가고, 실제로 적용하고, 절제하며 인내하고, 경건하기를 힘쓰며, 형제우애와 이웃사랑에 힘써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천국에 들어가는 것만으로 만족하면서 아무렇게나 산다면 어쩌면 그 믿음이 참 믿음인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갓난아기가 시간이 흐르면서 자라듯이, 참 믿음이라면 자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변화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에게 믿고 난 후에 변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각자 고유한 개성을 주신 것이 있기에 변하지 않는 성격이 있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성격 혹은 기질이라면, 주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그런 것들은 반드시 고쳐져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내려놓으면 성령님께서 고치십니다. 그래야 복음이 이 어두운 세상에 빛을 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열매를 맛보고, 감동을 받고 주님 앞으로 돌아오는 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전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치 못하고 그의 옛 죄를 깨끗케 하심을 잊었느니라”(8-9절)고 하였습니다. 여기 “흡족하다(in increasing measure)”는 단어는 현재분사로 쓰였습니다. 즉 지속적으로 열매가 있어야 하기에 우리로 하여금 주님을 더욱 알아 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게으르면 열매가 없다는 말입니다. 열매가 없는 자는 소경이라서 멀리 내다 보지를 못하고, 과거의 죄가 깨끗하게 되었음을 잊어 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해석자는 이 구절을 ‘눈먼 것과 근시와 망각으로 그들은 더 이상 과거의 죄나 현재 불순종이나 미래의 정죄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설명합니다.    

베드로는 결론적으로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10-11절)고 합니다. 더욱 힘써서 열매를 맺고 삶으로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시험에 들어 실족하지 않고, 주님의 영원한 나라로 향하는 길에서 낙오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풍성한 구원으로 영광의 대환영을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죽음으로 우리를 창조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여 새 사람으로 재창조하시고,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그 결과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딛 2:12) 하였습니다. 처음 구원받은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천국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양육(교육)을 받는 것입니다. 훈련을 받는 것입니다. 마치 자녀를 낳아 기르면서 교육시키는 아버지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경건치 않은 것을 버리게 하십니다. 세상 정욕을 버리게 하십니다. 근신함, 의로움, 경건함으로 살게 하십니다. 근신함(live sensibly), 곧 자신을 절제하며 하나님의 뜻에 민감하게 살게 하십니다. 의로움(righteously)은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의를 추구하는, 존경받을 만한 모든 말과 행동을 뜻하며, 경건함(godly)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가까운 데서, 친밀한 교제 속에서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그러니 사실 모든 믿는 자들은 자신을 절제하며 하나님의 뜻에 따르며 하나님의 의를 추구해야 합니다. 성령의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존경받을 만한 말과 행동으로 경건한 성도이어야 합니다. 물론 정도 차이가 있겠지요. 성숙도의 차이가 있듯이 말입니다.
보배로운 믿음이 있다면,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우애를, 형제우애에 사랑을 더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에 살면서 열매가 있어야 쓸모있는 인생입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는 인생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아버지를 기쁘게 하기 원하는 아름답고 고상한 마음에서 나오는 덕스러운 말과 행실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과 함께 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신앙생활을 오래할수록 더욱 성숙해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달라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녀들이 이전과 달라진 성숙한 모습을 보면 기뻐하며 자랑스럽듯이, 우리가 점점 성숙해지면서 많은 열매를 맺으면,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기뻐하며 흐뭇해하시고 더욱 풍성한 은사를 주실 줄 믿습니다.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요 15:8)고 하셨습니다.
또한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히 6:11-12)고 하였습니다.
엊그제 새해를 시작한 것 같은데 이미 3월이 시작하여 1주일이 지났습니다. 지난 시간까지 좀 자라신 것 같습니까? 열매들이 더 많아졌습니까? 우리 모두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맺어, 힘들고 지친 교포들이나 이곳 저곳에서 상처를 받은 심령들이 우리 교회에 와서 우리 모두에게, 우리 권사님들에게 감동을 받게 되었으면 합니다. 말로만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열매가 풍성한 아름다운 교회임을 깨닫고, 자신도 우리 교회에 속하여 열매가 있는 사람으로 주님의 아름다운 덕을 나타내기 원하는 분들이 많아지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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