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은 불확실한 것들, 상대적인 것들, 그리고 가짜들로 가득합니다. 사탄 마귀가 사람들을 속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주 흔들립니다. 예를 들면, 부부가 혼인서약을 하고 살아도 끝까지 서로에게 신실하지 못합니다. 서로 의심하게 합니다. 직장도 불안정합니다. 심지어 악한 영은 교회도 의심하게 합니다. 성경도 의심하게 합니다.
그러나 신구약 성경은 절대적인 진리입니다. 주관적이지 않고 객관적인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어떤 신화와 같지 않습니다. 그 의미가 숨겨져 있어서, 오직 똑똑한 종교적 엘리트들만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지적으로,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권위가 드러나는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진리가 계시된 성경이기 때문에 오류가 없습니다. 하나도 틀린 것이 없습니다. 믿으십니까?
이런 성경 말씀이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확신해야 할 것들로 가득합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의 마지막 부분인 오늘 본문에서 진실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확신해야 할 것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꼭, 확실히 믿어야 할 것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영생 곧 구원의 확신입니다.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목격한 증인으로서 성령의 감동으로 증언하는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하며, 이 아들이 있는 자는 생명이 있고, 아들이 없는 자는 생명이 없다고 하면서(11-12절),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13절)고 합니다.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우리에게 성경을 쓴 이유가 우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구원의 능력이 있는 주님의 이름을 믿는, 즉 우리 삶의 주인이 구세주 예수님이기에 우리에게 영생이 있다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지각을 주셔서 알 수 있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20절). 즉, 성경 말씀을 근거로 구원의 확신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를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 자는 이미 영생을 얻고 있으며, 나중에 심판을 받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이미 옮겨졌다고 하셨습니다.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는, 기도응답의 확신입니다.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14-15절)고 하였습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마치 부모가 아이들을 옆방에 재워 놓고, 방에 카메라를 달아서 다 보고, 아이가 내는 모든 소리를 듣고 하듯이,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의 신음소리조차 다 듣고 계십니다. 물론 우리가 기도하는 것을 다 응답하신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들으시는 줄 알고, 그것을 얻은 줄을 확신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기도는 대부분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도 그 뜻 안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해 주십니다. 우리가 원하는 방법이나, 우리가 원하는 시간이 아닐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만약 우리가 그 뜻에 맞는 기도를 드린다면, 100% 응답하십니다. 아무리 기도를 드려도 응답이 없는 것은 기다리는 시간을 통해 우리를 좀더 그 뜻에 맞게 바꾸셔서, 내 뜻을 온전히 버리게 하셔서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약 4:3)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붙잡고, 우리 자신을 말씀에 내려놓고, 복종시킬 때에 놀라운 응답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생각이나 뜻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실을 그 뜻에 따라 고쳐가야 합니다.
그러면서 담대하게, 끈질기게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제목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신이 설 때 그렇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그 뜻이 성취되는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확실히 믿으십시오!
때로 우리가 기도하고 싶지 않을 때에도, 기도에 대한 확신이 없을 때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는 것 같은 때에도 기도해야 합니다. 찬양해야 합니다. 기도응답은 우리 편에 달린 것이 아니라, 신실하신 하나님 편에 달린 것입니다. 그래도 여전히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복 주시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6)고 한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죄인들이 회개하고 돌이켜 하나님 앞으로 나오도록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백성들이라면 반드시 구원에 이를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16절)라고 합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만약 우리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를 짓는 것을 보면 기도해주라고 합니다. 그가 회개하여 여전히 생명 가운데 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망에 이르는 죄에 대하여는 기도해도 소용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사망에 이르는 죄”가 무엇입니까? 우선, 영벌을 받을 불신자들이 짓는 죄를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끝까지 부인하는 죄입니다. 복음을 거절하는 죄입니다. 또는 성령을 훼방하는 죄, 성령을 거역하거나 속이는 죄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무릇 훼방하는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사하심을 영원히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처하느니라”(막 3:28-29)고 하신 것처럼, 초대교회 때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죄 등을 말합니다(행 5:1-11). 어떤 특정한 죄라기 보다는 하나님 앞에 그 죄가 너무 중하여 영원한 사망, 지옥의 형벌을 면할 수 없는 죄를 뜻합니다. 예를 들면, 믿는 것 같다가 이단으로 바뀌어 다른 사람까지 이단으로 인도하는 자들의 죄 등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죄라고 다 같은 것이 아닙니다.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17절) 한 것처럼,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가 있는 것입니다. 진실로 회개하면 용서받는 죄가 있습니다. 즉,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는 사망에 이르는 죄를 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셋째로, 우리는 그런 죄를 이긴다고 합니다. 죄에 대한 승리의 확신입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18절)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의 특징은 그런 죄를 짓지 않습니다. 아무 죄도 짓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도 연약하여 시험에 들어, 유혹에 빠져 죄를 짓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에도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마 6:13)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범죄는 사망에 이르는 죄, 혹은 거리낌없이 계속 죄를 짓는, 죄 가운데 사는 삶을 말합니다. 이미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요일 3:9)고 한 말씀을 가리킵니다. 즉, 하나님이 그렇게 죄 가운데 있지 않도록 지키십니다. 악한 사탄 마귀가 만지지도 못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모든 것들을 이기게 합니다(롬 8:31-38). 승리하게 합니다.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넷째로, 우리가 하나님에게 속했다는 확신입니다.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19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이 세상에 살아가지만, 소속이 다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해 있지만, 불신자들은 사탄 마귀에게 속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 아래,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자들로서 살아가지만, 저들은 악한 자의 통치 아래 살아가는 것입니다. 비록 이 세상에 살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만나지만, 믿지 않는 자들이 당하는 어려움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그들은 탐심을 따라, 정욕을 따라 살면서 벌을 받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시련을 통해 정금 같이 나올 것입니다. 어려움을 당할수록 더욱 성령의 체험을 하고, 더 큰 은혜를 받습니다.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절하)고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세상에서의 여정을 걸어가면서 더욱 하나님에 대해 알아가며,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예수님이 참 하나님이시고, 영생을 주시는 분임을 확신하게 됩니다. 그래서 요한은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20절)고 하였습니다. 불신자들은 확신이 없기 때문에 자꾸 의심하고, 불안해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이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으로 오셨음을 알고, 그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의 길을 인도하신다는 것을 압니다. 영생의 길로, 평강의 길로, 진리로 인도하심을 확신합니다. 그래서 내일 일을 염려하지 않습니다.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신데 왜 염려하며 두려워하겠습니까? 확실히 믿는 다면, 확신한다면 전혀 염려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마 6:31-32).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필요를 다 아시고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상이 무엇입니까? 생명이 없는 것으로 그냥 사람들이 의미를 부여한 것입니다. 인간 안에 있는 종교심이 무엇인가 믿고 싶고 의지하고 싶어서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악한 영이 그런 것들에 맹목적으로 빠져들게 합니다. 사랑하게 합니다. 돈이든, 자식이든, 그 무엇이든 말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하라”(21절)!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믿을만한 것이 못 되는데 어리석게도 쉽게 유혹을 받습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 지각을 주신 것을 사용해야 합니다.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참된 자를 알게 하신 은혜를 붙들어야 합니다. 참된 것이 아닌 거짓을, 진리가 아닌 비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맹목적인 우상을 멀리해야 합니다.
마치 우리가 한국을 방문하였는데 어떤 사람이 미국에 대하여 열심히 이야기합니다. 미국에 한번도 가보지 못한 사람이 말입니다. 그럼 우리는 미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 금방 그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진리를 알고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 거짓인지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경험해본 산 지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확신입니다. 확신이 없으면 흔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확신의 근거는 성경입니다. 진리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지각으로 말씀을 읽고, 듣고, 배우고, 외우고, 묵상하십시오. 무슨 일이 닥쳐도 진리에 대한 확신이 있으면 불필요한 두려움이나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요한일서는 다른 서신서들과 달리 축복하거나 문안으로 끝맺지 않고, 확실히 믿으라고 하면서 끝을 맺습니다. 이유는 그 때나 오늘이나 흔들리는 시대에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확신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Slide] 성경에 근거한 영생, 구원의 확신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면 무엇이든지 응답이 있음을 확신하십시오. 죄에 대한 승리를 확신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확신하십시오. 끝까지 선한 길로 인도해주실 것을 확신하십시오. 이러한 확신들이 우리 영혼의 닻(anchor)입니다. 우리의 삶이 폭풍이 몰아쳐도 우리 영혼을 붙들어줄 확신들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