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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3-09-28 (목) 07:54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247    
새 사람이 되었으니 (엡 4:25-32)
사람들은 새것을 좋아합니다. 새집, 새 차 등 말입니다. 아마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기 때문에 새것을 좋아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하나님도 온 우주만물을 아무것도 없는데서 새것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다 보기에 좋았더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얼마가지 않아 싫증을 낸다는 것입니다. 새집, 새 차를 좋아하는 것이 얼마나 오래갑니까? 두어달? 길어야 1년도 못 갑니다. 인간의 죄성 때문에 그렇습니다. 온 우주만물도 인간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처음 창조한 모습대로 있지를 못하기 때문에 나중에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사 65:17; 참고- 계 21:1)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로 얼마 못가서 다시 옛 사람의 모습으로 살려고 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새 사람으로서 새 삶을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원칙(principle)을 세워 주셨습니다. Guide line을 준 것입니다. 새옷을 입은 사람답게, 구원을 받은 사람답게 살도록 말입니다.
즉, 어느 사람이 구원을 받았다는 믿을만한 증거는 과거에 은혜를 받고 그리스도를 영접한 경험이 아니라, 현재 생활에서 그리스도를 반영하고 사느냐는 것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새 사람이 되었으면 새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의 앞 문맥, 4장 17-24절에서 성도가 받은 구원의 의미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옛 사람일 때에 자기 중심적으로 허망한 것을 좇고 살았다면 이제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삶의 목적이 있는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옛 사람일 때에 하나님의 진리에 무지하였다면 이제는 그 진리를 알고 깨달아, 옛 사람의 부도덕한 습관들을 벗어버리며, 늘 성령의 도우심으로 새롭게 되려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오늘 본문은 더욱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새 사람의 삶의 원칙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실생활에 직접 적용할 수 있는 말씀들입니다. 즉, 새 사람이 되었다면  

첫째로, 거짓을 버리고 진실을 말하라는 것입니다.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25절)고 하였습니다. 새 사람을 입는다는 것은, 불신자들이 쉽게 하는 거짓말을 더 이상 하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성도가 죄를 전혀 안 짓고 살 수 없듯이, 연약하여 한두번 실수로 거짓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회개를 하지요. 그런데 본문에서 말하는 거짓은 습관적인 거짓말, 거짓된 삶을 가리킵니다. 이웃을 속이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거짓을 말합니다. 그런 자는 참 성도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매일의 삶에서 거짓을 계속하며 산다고 하면 그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고 사탄의 자녀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요 8:44)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하나님에 대하여, 그리스도, 생명, 죽음, 천국, 지옥, 성경, 선한 것이나 악, 모든 것에 관해 거짓을 말합니다. 또 부풀려 말한다든지, 진실로 시작했다가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든지 모두가 사탄의 역사입니다. 성도는 이러한 거짓을 버려야 합니다. 다만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truth)을 말하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 14:6) 라고 하였으며, 성령을 가리켜 "진리의 영"(요 14:17) 이라고 하였고,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니이다"(요 17:17)고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신자가 될 때에 그는 거짓의 영역에서 참된 것의 영역으로 옮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모양의 거짓도 새 사람에게는 맞지 않습니다. 본문 25절에 이웃이라는 것은 교회의 다른 성도, 형제, 자매들을 가리킵니다.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여야 하는 이유가 서로 한몸을 이루는 지체가 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일을 하실 때에는 진리인 그 말씀과 그의 사람들, 즉 교회를 사용하시는데, 교회에 속한 사람들이 거짓을 말하는 사람들이라면 사용하실 수가 없지요. 그러므로, 세상 밖에서도 그렇지만 교회 안에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더욱 진실을 말하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의 몸된 교회로서 일을 감당할 수가 없지요. 우리의 육체도 서로 진실되이 연결되지 않으면 몸이 망가지듯이 말입니다.
여러분은 거짓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하며 진실하게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로, 불의한 분을 품지 말고 의로운 분도 속히 해결하라는 것입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26-27절)고 하였습니다. 여기 "분(parorgismw)"이라는 단어는 잠깐 감정적으로 내는 화를 가리키는 단어가 아닙니다.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는 분노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의로운 분노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의 인격이 모독당할 때라든지, 하나님의 의나 목적이 해를 입을 때에, 악에 대한 진노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청결케 하실 때에 보이신 진노와 같은 것을 말합니다(요 2:15). 화를 내는 것이 죄가 되는 것은 내 자신의 이기적인 것에 해를 당할 때에 나는 불의한 분노를 말합니다. 그래서 그것이 미움이 되어 살인하게 되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 5:22)고 하셨습니다. 바로 불의한 분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하며 이기적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안위를 생각하며 내는 분노는 가능할 뿐 아니라 성경이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하루 해를 넘기면 안된다고 하는데, 이유는 그렇게 되면 마귀가 역사하여서 시작과 동기는 선한 것이었지만 나중은, 결과는 악하게 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의분이라도 오래가면 상대방에게 복수심이 생기며 결국,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을 더불어 평화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은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 12:17-21; 신 32:35) 는 말씀을 어기게 되는 것이니까요. 어찌하든지 사탄의 궤계에 넘어가서는 안됩니다.
여러분은 자주 화를 내십니까? 불의한 분노입니까? 의로운 분노입니까? 그 화가 얼마나 오래갑니까? 그리하여 사탄이 그 틈을 타고 역사하지는 않습니까? 불의한 분노가 아니라, 의로운 분노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루를 넘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남의 것을 도둑질하지 말고 열심히 일하여 나누라는 것입니다.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28절)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죄성이 있어서 이 세상에 아무도 남의 것을 훔치고 싶은 유혹에서 완전히 벗어나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훔치는 것을 재미로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적도 있는데 죄성이 가져다 주는 매력입니다. 그래서 미국의 많은 상점들도 물건을 잃어버릴 것을 생각하고 대신 가격을 올린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또한, 꼭 실제 남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일한 시간을 과장해서 급료를 받는다든지, 나라에 세금보고를 정식으로 하지 않고 떼어 가진다든지, 빚을 속인다든지, 일군들에게 공정한 급료를 지불하지 않는 것 등도 사실 도적질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지요. 그러므로 새 사람이 되었으니 더 이상 도둑질을 하지 말고 스스로 열심히 일해서 가난한 자와 나누며 구제하라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하나님이 인간을 향한 계획은 모든 사람이 일하는 것입니다(창 3:17).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데살후 3:10)고 하였습니다. 물론 성도의 노동은 선한 일이어야 합니다. 정직하고, 하나님께 영광돌릴만한, 생산적인 일이어야 합니다. 제가 늘 말하는, 성경에서 '선하다'고 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착하다' 하는 것과 뜻이 다르다고 하였지요. 성경에서 말하는 '선'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좋은 것을 말합니다. 성도는 절대로 하나님의 기준에 어긋난, 그의 거룩한 말씀에 벗어난 일이나 직장, 사업을 해서는 곤란합니다. 여러분의 손으로 정직히, 열심히 벌어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잔치를 배설하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저는 자들과 소경들을 청하라 그리하면 저희가 갚을 것이 없는 고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니라"(눅 14:13-14)고 하신 까닭입니다.
여러분은 열심히 정직하게 자신 스스로 일하여 가난한 자들을 돕기를 축원합니다.

넷째로, 건전한 말로 덕을 세우며 은혜를 끼치라는 것입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29절)고 하였습니다. 여기 "더러운(sapro,j)"은 '부패한, 썩은' 이라는 뜻으로, 주로 상한 과일이나 채소, 부패한 음식에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불신자들이 쉽게 내뱉는 욕이나 비정상의 농담, 음담패설, 야비한 말, 저주의 말 등을 가리킵니다. 우리 입에서는 나와서 안될 말들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세 번씩 부인하며 저주했던 베드로는 변화를 받은 후에 아마 다윗의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숫군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시 141:3)의 기도를 자주 하였을 것입니다. 주님 만이 여러분의 혀를 제어하며 입의 문을 지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물론 입술은 마음이 말하는 것을 표현할 뿐이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마 12:34)고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말씀하였습니다. 그래서 우선은 마음을, 생각을 늘 선하게 가져야 되지요.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빌 4:8)고 바울이 강권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하여 오늘 본문 29절에도 선한 말을 하되 오직 덕을 세우는 말과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말과 은혜가 될 말을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정말 소금처럼 썩는 것을 막고, 맛을 낼 선한 말을 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의 입술에서는 선하고 덕스러운 말이 나오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바울은 새 사람이 되었으면 변화 받아 실생활에서의 구체적인 원칙들을 설명하시며,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30절)고 하였습니다. 즉, 무엇보다 성도들에게 중요한 것은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근심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만 인격체가 아니라 성령님도 인격체이기에 여러분들이 옛 사람의 생활의 모습들, 불신자들의 모습과 말과 행실들을 하시면 성령님이 근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처음 예수님을 진실로 영접할 때에 구속의 날, 영광의 날까지 변함이 없도록 성령으로 인침을 받은 까닭에 성령님이 우리를 떠나시는 것이 아니라 근심하며 슬퍼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앞서 말한 분을 내는 것과 관계된 쓴 뿌리에 관한 못된 행동들을 31절에 열거하면서 모든 그런 것들을 버리라고 다시 강조합니다.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31절) 라고 말입니다. 악독(bitterness)과 노함(wrath), 분냄(anger), 떠드는 것, 즉 말다툼이나 공적인 곳에서 시끄러움, 훼방하는 것(slander) 등 모든 악의(malice), 즉 자연인, 불신자들에게서 쉽게 볼 수 있는 것들을 버리라는 말씀입니다. 오히려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32절)고 끝맺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성품을 닮아 서로 인자, 친절하게 하며, 부드러운 마음으로 불쌍히 여기며,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듯이 서로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서로 용서하라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미 새 사람을 입으신 여러분들, 어떤 변화가 있으셨습니까? 과거에 받은 은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변화된 생활을 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1) 거짓을 버리고 서로에게 참된 것, 진실을 말하기를 축원합니다. 2) 화를 내어도 의분이 되어야지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이 채워지지 않아서 내는 불의한 분노가 되어서는 안되고, 의로운 분이라 할지라도 하루를 넘기지 말고 속히 해결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탄이 그것을 사용하여 틈을 타고 시험에 들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3) 도둑질을 하지 말고 스스로 열심히 일을 하여 얻은 것을 가지고 나누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4) 말을 조심하되 더러운 말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고, 건전한 말로 덕을 세우며 은혜를 나누라고 하였습니다. 주위의 형제 자매들에게 도움이 되는 필요한 선한 말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성령이 근심하며 슬퍼하게 되고, 역사하지 못하여 악한 영이 오히려 역사를 하게 됩니다. 어떤 모양이라도 쓴 뿌리는 버려, 불신자처럼 악하게 살지 말고,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고, 서로 용서하되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용서하심과 같이 용서하라고 하였습니다. 헌신이 그저 추상적으로 주님께 헌신한다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그러한 삶이 구체적으로, 실제적으로 우리들의 생활에서 나타나기를, 새로운 사람으로 새 삶의 원칙대로 살기로 헌신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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