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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4-01-21 (일) 06:57
분 류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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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189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는 예수 그리스도 (막 1:9-13)




지난 주일에 살펴본 대로 자신을 희생하기 위하여 오신 종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한 세례 요한은 자기가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자신보다 훨씬 탁월한 능력의 주님이라고 선포하였습니다(1-8절).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음으로 역사의 무대에 등장합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9절) 하였습니다.
왜, 예수님은 죄인이 아닌데 죄 씻음의 세례를 받으러 나오셨나요? 세례 요한이 질문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마 3:15)고 하시면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Slide 1] 예수님은 회개할 죄가 있어서 세례를 받으신 것이 아니라, 죄인들과 하나가 되기 위하여,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하여, 그리고 세례 요한의 사역을 인정해주시기 위한 모든 의를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이 세례를 받으시는 행위가 사실 그가 성취하실 구속사역의 첫 걸음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세례를 받음으로 주님과 하나가 되어 언약의 백성으로서 인정되고, 그에 따르는 모든 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세례를 받고 나니 “곧 물에서 올라 오실쌔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10-11절) 하였습니다. 만왕의 왕으로 이 땅에 오신 주님의 대관식(Coronation) 혹은 세상의 구세주로 위임을 받는 장면입니다.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했다는 구절이 성경 전체에서 여기 밖에 없는데, 당시 비둘기라 함은 희생제물 중 하나였었기에 주님의 희생을 상징하는 것이 아닌가 여깁니다. 몇몇 부자들을 제외한 많은 가난한 사람들은 절기에 비둘기 정도 밖에는 구할 수 없었습니다. 아니면 비둘기가 온유와 평화의 상징으로서 예수님의 사역의 모습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여튼 왜 성령이 예수님에게 임하였을까요? 예수님께서 사람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고 하여 그의 신성이 없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태초부터 참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나 그의 인성으로 인하여 사역을 위한 기름부음이 필요하였던 것입니다.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사 61:1)라고 한 말씀처럼 말입니다. 그의 인성에 부어 주신 성령은 하나님 말씀을 전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요 3:34)고 하였듯이 말입니다. 이 성령의 힘으로 마귀들을 쫓아 내시며(마12:28), 이적과 기사를 행하십니다(행 2:22).
또한 성령이 임하실 뿐만 아니라 하늘에서 음성이 들립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즉,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시는 일에 삼위 하나님께서 모두 역사하십니다. 성자 예수님은 자신의 세례는 모든 의를 이루기 위하여, 이에 성령님이 임하시며, 이제 마지막으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직접 확인하시는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지금 자신을 죄인들과 동일시하며 마치 비둘기 제물처럼 성령께서 인정하시는 예수님을 향하여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십니다.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하는 표현은 아주 깊고 친밀한 관계를 뜻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아가페 사랑을 표현합니다. 이 단어는 모든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나타내기도 하였습니다(롬 1:7).

그리고는 예수님은 성령을 따라 광야로 가십니다.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 내신지라”(12절)고 하였습니다. 성령이 인도했다고 하지 않고, 성령이 “몰아 내신지라”고 한 것은 희생의 종으로서의 표현입니다. 종들은 ‘인도를 받는다’ 라기 보다, 몰아 내어지든지 아니면 명령을 받아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성령이 몰아 내실 때, 강권하실 때 따라야 합니다. 거역하면 곤란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셔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13절)고 하였습니다. 마가는 간략하게 예수님이 광야에서 40일 동안 사탄에게 시험을 받았다고 하지만, 마태는 상세하게 어떤 시험을 받았는지, 어떻게 이겨 내셨는지 설명합니다(마 4:3-11). 세 가지 시험입니다.
첫째로, 사탄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마 4:3)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마귀의 접근은 처음 하와에게 접근하던 방법과 똑같이 하나님 말씀에 대한 의심을 품게 합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창 3:1)고 하였던 것처럼,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40일 밤낮으로 굶주린 예수님이 분명히 배고프시기에 당연히 초자연적인 역사로 육체의 필요를 채우도록 시험하는 것입니다. ‘네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면 왜 광야에서 굶고 있느냐, 아니 어떻게 아버지가 그 아들을 그렇게 둘 수 있느냐, 너도 사람인데 먹어야 살지 않느냐, 만약 하나님 아버지가 그 아들을 광야에서 죽게 하면 그의 구속 계획이 어떻게 이루어 지느냐?’ 는 논리로 공격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말씀, 그 사랑, 그 보호하심에 의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지요.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네 능력을 네 개인적인 육신의 유익을 위하여 사용해도 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이 첫번째 시험은 처음 아담을 먹는 것 가지고 시험하였듯이 나중 아담, 예수님에게도 먹는 것으로 시험합니다. 아니 무엇보다도 하나님 아버지를 거역하게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오셨기에, 예수님의 뜻과 아버지 하나님의 뜻은 동일하기에(요 5:30),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요 4:34)고 제자들에게도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사탄은 하나님 아버지께 대한 예수님의 신뢰와 순종을 부수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시험을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마 4:4)고 하시며 이기십니다. 신명기 8장 3절의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예수님은 지금 당장 우리의 육신의 필요를 채우는 것보다 먼저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며 순종하고 그를 의지하는 것이 낫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신의 필요를 걱정하고 하나님께 불평하면 안됩니다. 바울은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 4:19)고 하였습니다. 아니 예수님께서 산상수훈 설교에서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리라”(마 6:8)고 하시면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6:33)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며, 지켜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를 순종하는 것이 지혜롭고 축복의 지름길입니다. 참 믿음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사탄은 예수님을 성전 제일 높은 곳, 아마 기드론 계곡이 보이는 곳에 데리고 와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 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마 4:6)라고 유혹합니다. 이번에는 사탄 스스로 필요한 상황을 만들어 다가옵니다. 예수님께서 첫번째 시험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기니까, 사탄도 하나님의 말씀, 시편 91편 11-12절을 인용하면서 다가옵니다. 지혜롭고 교묘하게 진리의 말씀을 자신에게 편하게 적용하여 예수님을 곤궁에 빠뜨립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만 산다고 하였으니 그 말씀 중에 한 부분을 선택하여 예수님을 시험에 빠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네가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고, 하나님의 말씀 만을 의지한다고 하였으니, 정말 네가 그 아들임을 증명하기 위하여 하나님 말씀이 진리임을 보여라. 네가 여기서 뛰어내리면 말씀대로 네 아버지께서 너를 도와줄 것 아니냐’ 라고 유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일 예수님이 사탄의 말대로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무사했다고 하면 많은 유대인들은 그 능력을 보고 참으로 메시아임을 인정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기적을 보는 것에 사람들이 매력을 느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신비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을 보며 믿으려고 하지요.
그러자 예수님은 이 시험도 “또 기록하였으되 주 너희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마 4:7)고 신명기 6장 16절 말씀을 인용하시며 시험을 이기십니다. 이미 예수님을 참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사람에게는 예수님이 세례 받으실 때에 성령이 임하시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늘로서 하신 말씀이상 더 큰 증거가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저는 최소한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예수님께서 성전 꼭대기에서 자신을 던지지 않았던 것이라 여겨집니다. 하나는, 사람들에게 기적을 보여 주면 그들은 한 번 더, 더 큰 기적을 요구하며 절대로 만족하지 못할 것을 알기 때문이며,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은 곧 그를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며, 그것은 죄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오늘날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시험하여 위험이나 유혹에 빠지게 되어 어려운 일을 만나면, 나중에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아담에게 왜 선악과를 먹었느냐고 물었을 때에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아내 하와 때문이라면서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창 3:12).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신실함을 보이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 자신의 욕심 때문에 모험을 하며 위험한 상황을 자초하면서 하나님을 시험하면 그는 책임지지 않으십니다.

두번의 시험이 실패로 돌아가자 사탄은 셋째로,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마 4:8-9)고 합니다. 어느 높은 산인지 정확히 모르나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이라고 한 것은 아마 그곳에서 저 애굽의 영화, 로마의 권력, 위대한 헬라, 물론 예루살렘까지 다 보여준 것 같습니다. 사탄은 ‘이 모든 것이 다 네 것인데 기다릴 이유가 있느냐, 왜 왕으로 와서 종의 삶을 살려고 하느냐, 나는 지금 이미 아버지 하나님께서 다 네게 약속하신 것을 네게 주려는 것이다. 그러니 내게 절 한번만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즉, 이 시험으로 하나님 외에 어느 누구에게도 경배하지 말라고 한 말씀을 불순종하도록 유혹하는 것입니다.   그냥 왕으로 다스리면 되지, 그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죽을 필요가 있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온갖 모욕과 고통 가운데 비참한 그 길을 굳이 고집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사탄은 오늘날도 이와 같이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세상 일, 권력, 명예, 정욕 등 무엇이든 우리가 원하면 가지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게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뭐 그리 말씀에 묶여 사느냐, 적당히 타협하고 살면 되지 일부러 고난의 길을 택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들의 마음이 돈, 인기, 명예, 권력, 정욕 등에 쏠려 있으면 그것이야 말로 사탄이 원하는 바 우리 자신을 우선하고, 하나님을 나중에 놓는 것이 됩니다.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말씀을 어기는 것입니다. 사탄은 위장하는 자(counterfeiter)입니다. 마치 하나님의 복인 것처럼 위장하면서 다가옵니다. ‘하나님이 네가 복받기를 원하지 않느냐 내가 더 빠른 길로 인도해 주마, 적당히 약삭빠르게 대중과 야합하여 처세하라, 그리하면 성공할 것이다’ 라고 말입니다. 사탄의 수법은 ‘모로가도 서울만 가면 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결과를 위해 수단을 합리화(justify)합니다. 또한 사탄은 거짓의 아버지(the father of lies)입니다. 내게 절하면 이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주겠다는 것이 참말입니까? 거짓이지요. 그러므로 여러분의 귀에 달콤하게 들리는 말에 속으면 안됩니다.
예수님은 다시한번 하나님의 말씀, 신명기 6장 13절 말씀을 가지고 사탄을 물리치십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마 4:10)고 합니다. 주님은 사탄이 넘어서서는 아니 될 지경까지 넘어선 것을 보고 물러가라고 꾸짖는 것입니다. 어떻게 주님더러 사탄에게 경배하라고 합니까? 하나님 한 분만이 경배를 받기에 합당하며, 그 분만을 섬기는 것이 우리 모두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로서 “복 있는 자”, 혹은 “복 받은 자”입니다. 영생의 삶을 이미 누리고 있는데 사실 그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미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신령한 복을 슬며시 위장하여 유혹하는 사탄의 속임수에 넘어가 값싼 것들과 바꾸지 마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며 의로운 생활로 축복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죄를 만들어 내는 이 세상에서 잠시 성공하는 것 같은 값싼 만족과 바꾸지 마십시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사탄은 오늘도 똑같은 방법으로 우리를 시험합니다. 1)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실 것이라는 믿음에 의심을 갖게 합니다. 그래서 내 뜻대로, 내 힘을 의지하여 문제를 해결하게 유혹합니다. 2) 우리 자신을 육신적으로든지, 물질적으로든지, 영적으로든지, 도덕적으로든지 위험에 빠지도록 모험을 하여 하나님께서 구해 주시도록 시험하게 합니다. 3) 우리의 이기적인 욕심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기 보다는 세상의 방법으로 그 욕심을 이루려고 유혹합니다. 이 세 가지의 유혹을 사도 요한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요일 2:16)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교훈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시험이 올 때에 시험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 눈을 주님에게 고정시키고, 주님을 따라 하라. 어떻게 그가 시험을 받고 어떻게 그가 시험을 이기며 사탄을 대적하였나 보라. 그에게 배우라’는 것입니다. 곧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으로(엡 5:17) 다 이기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말씀으로 이겨야 합니다. 그래서 암송이 중요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15),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히 2:18)고 하였습니다. 우리와 하나되기 위해 모든 의를 이루시기 위해 친히 세례도 받으신 분이셨으며, 성부 하나님에게 인정을 받으셨으며, 성령의 능력으로 모든 사역을 다 마치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이 우리를 도우시는 줄 믿습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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