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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4-02-15 (목) 09:02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221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 (빌 2:5-11)
[Slide 2] 사도 바울은 앞 문맥 1-4절에서 우리는 무엇보다 주님의 몸인, 교회의 하나됨을 지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됨을 지켜야 할 이유는 1) 그리스도 안에 어떤 권면이 있으며, 2) 아가페 사랑의 위로가 있으며, 3) 성령의 교제가 있으며, 4) 긍휼과 자비가 있으니 하나됨을 지켜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Slide 3] 어떻게? 1) 한 마음, 한 뜻을 품어야 하고, 2) 겸손한 마음으로 남을 낫게 여겨야 하며, 3) 다른 사람들을 돌볼 수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타적인(selfless) 사랑으로 말입니다. 이런 사랑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었기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5절)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 그렇게 완전한 본을 보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적인 표현으로 마치 찬송시(Hymn)과도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여정은 영광으로 시작해서 다시 영광으로 마치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단계를 거치셨나요?
[Slide 5-1] 첫 단계는 하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6절) 한 것처럼, 원래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와 동등한 영광을 누리셨는데, 아버지의 뜻에 따라 그 특권을 내려 놓으셨습니다. 여기 “본체(μορφῇ, form or fashion)”라는 단어와 7절의 “형체”라는 단어와 같습니다. 영화나 연극에서 배우들이 입는 옷을 생각하면 됩니다. 대통령이나 장군의 역이라면 그에 걸맞는 옷을 입어야 하듯이, 일시적으로 옷을 빌려 입는 것이 바로 ‘본체’ 혹은 ‘형체’ 라는 단어입니다. 즉 예수님은 근본이 하나님의 form or fashion 인데, 그렇게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그 영광의 지위를 버리셨습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바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사랑이었고, 또 하나는 우리를 향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피조물 중에서 천사보다 못한 우리 인간을 너무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은 아버지의 그 사랑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를 기쁘게 하기 원했고,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이루어 드리기 원했습니다. 얼마든지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있었으나 예수님도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셨기에 이 땅에 성육신 하신 것입니다. 즉 하늘의 영광과 지위를, 특권을 내려놓은 것은 우리를 향한 지극한 사랑이었습니다.

[Slide 5-2] 둘째 단계는 자기를 비워 종의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7절) 하였습니다. 그 놀라운 영광과 지위를 버리고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는데, 낮고 낮은 종의 모습으로 오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높은 지위나 그냥 평범한 사람으로 올 수도 있었는데, 종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야말로 이타적인 사랑으로  겸손의 극치를 보이신 것입니다. 자신을 비우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4-45)고 하신 것처럼, 모든 사람을 섬기려고, 대속물로 자신을 드리려고 종으로 자신을 비우셨습니다. 물론 아무리 자신을 비운다 해도 예수님의 신성(Divinity)까지 비운 것은 아닙니다. 이단들의 주장처럼 신성이 없는 그냥 인성만 소유한 사람으로만 오신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흠없고 순전한 어린 양으로 대속의 제물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저 첫 단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자신이 누려야 할 하늘의 영광, 지위, 특권을 버리신 것입니다. 여전히 하나님인데 사람의 form/fashion 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음식을 먹지 않으면 배도 고프셨고, 피곤하기도 하셨고, 울기도 하셨고, 아프기도 하셨습니다. 십자가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Slide 5-3] 셋째 단계는 가장 비참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8절)고 하였습니다. 그냥 낮아져서 종의 모습으로 사신 것이 아니라, 죽기까지 하나님 아버지에게 복종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에게 요구하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저주의 죽음이었습니다.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히 5:8-9) 말씀한 것처럼,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고난의 십자가를 지기까지 순종하셔서 구원의 근원이 되신 것입니다. 지옥의 고통도 맛보셨습니다(엡 4:9). 이유는 다시 말씀드리지만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고 한 것처럼, 그 사랑을 증명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Slide 7-1] 넷째 단계는 그 결과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9-10절) 하였습니다. 3일만에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지극히 높여 이 세상의 그 어떤 이름보다 존귀한 이름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이름 앞에 온 우주만물에 있는 모든 피조물이 그 이름 앞에 무릎을 꿇게 하셨습니다. 모든 천사들을 비롯해서 그 어떤 권세자보다 높은 영광과 지위를 주셔서 예수님을 높이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높이지 않는 자는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Slide 7-2] 다섯째 단계는 결국 모든 피조물들이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며,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Slide 7-3]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섯번째 단계는 하늘의 영광을 다시 누리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낮아질 대로 낮아진 결과 얻은 새 이름은 “주(Lord)” 입니다. 영원전부터 계셨던 성자 예수님은 구약에서도 때로 나타나셨습니다. 여호와이셨습니다. 여호와의 사자로 나타나셨습니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에게 멜기세덱의 왕의 모습으로, 길 가던 나그네 모습으로, 모세를 부르실 때에 딸기나무 사이에, 여호수아에게 군대장관으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풀부불에 던지웠을 때 거기 계셨습니다.
그렇게 영원한 신성을 가지신 제2위의 하나님이었으나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종의 삶을 사시다가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부활, 승천하셔서 하늘로 오르셨습니다. 저 천국에 부활의 몸을 입으신 분이 계십니다. 바로 우리 주님이십니다. 가장 위대한 이름으로 모든 사람이 주로 시인하며 하나님의 영광과 지위를 누리십니다. 예를 들면, 마치 여자가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게 되면 ‘어머니’ 라는 이름을 얻습니다. 세계 만국 공통으로 가장 존경받는 이름이 어머니라고 하지요. 그 때부터는 여전히 같은 사람이지만 아이를 낳고 키움으로 여자는 위대해지지 시작합니다. ‘어머니’라는 이름에 신비함이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도 근본 하나님이십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사랑하셔서 모든 것을 버리시고 우리와 같이 되셨습니다. 아니 더 낮아지셔서 고난의 종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셨습니다. 우리를 낳으셨습니다. 우리가 다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라는 위대한 이름을 얻으신 것입니다. ‘주’라는 이름이 ‘어머니’라는 이름보다, 아니 이 세상의 그 어떤 이름보다 위대한 이름인 이유는 가장 위대한 희생으로 절망적인 죄인들을 구원한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주님’의 자녀들입니다. 형제, 자매들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사탄 마귀로부터 지키시며, 우리를 절대 빼앗기지 않으십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 10:27-29)고 하셨습니다. 확실히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교회가 세상과 다른 것이, 더 나은 것이 무엇입니까? 성도가 세상 사람들과 다른 것이, 더 나은 것이 무엇입니까? 신앙생활의 기본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겸손입니다. 낮아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값을 지불하고 사신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귀중한지 모르기 때문에 사랑하고 섬기지 못하는 사람은 교회를 아무리 오래 다녔다 하더라도 아직 신앙이 한참 미성숙한 것입니다. 철들지 못한 것입니다.
[Slide 5] 온 우주만물의 그 무엇보다 크신 하나님의 아들이 낮아지셨습니다. 1) 하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2) 자기를 비워 종의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3) 가장 비참한 십자가의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Slide 7] 그러자 하나님께서 4)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5) 모든 피조물들이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6) 하늘의 영광을 다시 누리게 되었습니다. [Slide 11]
그렇다면 우리도 주님의 마음을 품고 얼마나 낮아져야 하겠습니까? 정말 주님의 손에 붙들려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귀하게 사용되려면 밑바닥까지 내려가 자존심이라고는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아야 합니다. 온전히 자신을 비워야 합니다. 그래야 모두를 포용하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사랑할 수 있습니다. 아니 하나님을 그렇게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한다면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위대한 마음입니까? 아니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높여 주신 것처럼 우리를 높여 주십니다.
우리도 내려 놓아야 합니다. 이 땅에서의 영화, 명예, 지위 내려 놓아야 합니다. 자신을 비워야 합니다. 특권의식을 버려야 합니다. 마땅한 권리를 주장하기 보다, 믿는 자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높이시고, 영광을 받으십니다.
김서택 목사님의 본문 설교집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 여성이 비오는 날 직장 옥상에 물건을 가지러 올라 갔다가 고압선에 감전이 되어 전신이 마비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사람들은 죽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말했지만, 젊은 그녀에게는 살아 있는 것이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웠습니다. 전신이 마비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도 없는 것이 가장 화나는 일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전신마비가 되기 전에도 들은 적이 있지만, 그 날의 감동은 사뭇 달랐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이 바로 자기와 같은 처지였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우리 때문에 엄청난 고통 속에 물 한모금도 마시지 못한 채 못 박힌 손과 발에 엄청난 통증을 느끼며 몇 시간 동안이나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을 생각하며 자신의 처지에 대한 분노가 조금씩 사라지고 새 소망이 돋아났다고 합니다.
우리도 십자가의 사랑의 감동과 감격이 식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예수님의 마음을 품을 수 있습니다. 아니 그 은혜를 경험했다면 당연히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살아야 합니다. 더군다나 교회로 모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우리들은 그 마음으로 하나됨을 지켜가야 합니다. 본래 죄인들은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아니었다면 서로 알 필요도 없고, 알아야 할 이유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보혈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셔서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그 크신 사랑과 은혜로 하나되게 하신 것을 감사하며, 한 마음 한 뜻으로 가족을 위하여,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사랑하고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면,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면, 낮아지면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주님의 종이기에 주님을 품고 사는 성도들의 종으로 살 수 있습니다. 인종이 다르고, 배경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신분이 다르고, 빈부 격차가 있다 하더라도 그 차이를 뛰어 넘어 하나되게 하신 것을 지켜 갈 수 있습니다. 아멘!
그렇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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