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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4-02-18 (일) 10:41
분 류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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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428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막 1:40-45)




세상을 살다 보면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풀 수 없는 상황에 부딪힐 때가 있습니다. 절망적인 상태에 빠지는 것입니다. 마치 수영을 못하는데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입니다. 지푸라기라도 잡으려고 하지만 지푸라기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주님을 알고 믿는 자들은 그런 상황에서도 절망하거나 낙심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바라보면, 의지하면 건져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고쳐 주시고, 각색 많은 병자들도 고치시며, 귀신들을 쫓아 내신 후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전도하십니다(29-39절). 한 동네에 가셨습니다(눅 5:12). 거기서 한 문둥병자가 예수님에게 나왔습니다. “한 문둥병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40절)! 문둥병(leprosy)은 오늘날 한센병(Hansen’s disease)로 불리는 것으로, 당시에는 가장 무서운 병이었습니다. 율법 레위기 13장-14장에서도 언급하는 피부병들 중 아주 부정한 병으로 취급되었습니다. 문둥병자는 자신의 병을 알리기 위해 특별한 옷을 입어야 했으며, ‘부정하다! 부정하다!’ 하고 소리를 치면서 다른 사람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해야 하는 책임이 있었습니다(레 13:45). 그가 다른 사람을 만짐으로 그 사람도 부정하게 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마치 시체를 부정하다 하여 만지지 못하게 한 것과 같이 걸어 다니는 송장처럼 말입니다.
아시다시피 문둥병은 육체의 한 부분에서부터 감각이 없어지면서 색깔이 변하고, 점점 심해짐에 따라 눈과 손과 귀 등의 얼굴 부분까지 일그러지는 병이지요. 그래서 문둥병은 ‘죄’에 대한 상징적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문둥병처럼 죄는 사람 전체에 악영향을 주고, 보기 싫게 부패되어 가며, 사람들과 단절이 되어 격리시킵니다. 죄의 속성을 잘 보여줍니다. 죄는 피부보다 깊습니다. 죄는 전염되게 되어 있습니다. 옛 이스라엘의 문둥병은 죄에 대한 생생한 객관적인 교훈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문둥병자는 율법을 따라 예수님을 멀리 떨어지기는 커녕, 오히려 예수님에게 다가와 꿇어 엎드립니다. 누가는 이 사람이 “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눅 5:12절하) 라고 하였습니다. ‘주’ 라고 부르는 것은 유대인들이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감히 부르지 못하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을 지칭할 때 쓰는 단어입니다. 즉, 예수님을 향하여 ‘주 하나님이여, 당신이 원하시면(if you are willing) 나를 고칠 수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제발 고쳐 주시겠습니까?’ 라고 호소하는 것입니다. 사실 조금 전에 말씀드렸듯이 당시 문둥병자는 가족과 친지가 있는 한 동네에서 살 수가 없었습니다. 정상인에게 나아올 수가 없게 격리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 동네에 들어와 예수님을 찾아왔는지 모릅니다. 아마도 고침 받기를 원하는 간절함과 절박감으로 ‘부정하다! 부종하다’ 외치지도 않고, 율법을 어기면서 라도 낫기 원했습니다. 병도 병이지만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은 참으로 외로운 자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기적이 이 문둥병자에게 일어났습니다. 그 자체만으로도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이 문둥병자에게 네 가지 뛰어난 면을 보는데, 첫째로 자신감(confidence)을 가지고 주께 나아왔습니다. 그는 명백히 주님 안에 있는 사랑과 부드러움을 느꼈기에 버림받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없이 나아왔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물리치지 않고 받아 주셔서 고쳐 주실 것이라는 확신으로 나아온 것입니다. 문둥병자로서 주님과 함께 함을 부끄러워하지도 않았고, 그를 두려워하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둘째로, 주님을 경외하며 나아왔습니다. 여기 ‘꿇어 엎드린다’는 단어는 ‘예배한다’는 뜻입니다. 즉 예수님을 예배하는 마음으로 간구합니다. ‘주여’도 그냥 호칭이 아니라 주님의 신성(Divinity)을 인정하는 말이었다고 여겨집니다.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의 임재를 느꼈기에 주님을 경외하며 나온 것입니다. 셋째로, 겸손히 나아왔습니다. “주여 원하시면” 라고 말함은 요구함이 아니라, 소망함을 뜻합니다. 구하기를 오직 주님의 뜻이면 고침을 받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왜? 내가 이런 병에 걸려야 합니까?’ 라고 불평과 원망을 하면서 항의하지도 않습니다. 보통사람 같으면 그럴텐데 말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긍휼을 구하되 선택은 주님에게 있음을 고백하는 간구입니다. 내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입니다. 분명히 고침을 받기는 원하지만, 고칠 수 있으신 주님의 능력을 인정하지만 고쳐달라고 떼를 쓰는 것이 아니라, 겸손히 주께 맡기는 것이었습니다. 넷째로, 믿음으로 나아왔습니다. “저를 깨끗게 하실 수 있나이다”고 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충분히 병을 고칠 수 있음을 절대적으로 믿었던 것입니다. 마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의 풀무불에 집어넣겠다는 위협 속에서도,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 3:17-18)라고 말했듯이 말입니다.
이 문둥병자에게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우리는 우리의 문제들을 가지고 주께 나아올 때에 1) 자신감(confidence)을 가지고 나아오느냐, 틀림없이 주님께서 사랑과 자비로 받아 주실 줄을 믿고 나아오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2)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경외하며 신령과 진리로 예배 드리며 나아오며, 3) 겸손히 주의 뜻에 순종하겠다는 마음으로 나아옵니까? 무엇보다도 4) 주님께서 문제를 해결하실 것으로 확실히 믿는 믿음으로 나아오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으로 나오는 그에게, “예수께서 민망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곧 문둥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41-42절)고 합니다. 우선 그를 민망히 여기셨습니다. “민망히 여기다(filled with compassion)” 라는 단어는 ‘뜨거운 열정으로’ 혹은 헬라어 원어를 보니 ‘속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는 불쌍히 여기는’ 것을 뜻합니다. 어떤 성경학자는 ‘화가 나서’ 라고 번역합니다. 이 추한 병이 사탄 마귀의 장난임을 아시고 인간을 고통스럽게 하는 그 장본인 때문에 속이 상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예수님께서 그 사탄 마귀의 역사를 멸하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손을 내밀어 만지셨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율법에 의하면 유대인이 문둥병자를 만지는 것은 육체적으로도 전염이 되고, 예식적으로도 금하게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레 5:3; 13:45-46) 주님은 그를 만지셨습니다. 그 문둥병자는 얼마나 사람과의 접촉을 그리워하였겠습니까? 다른 경우들처럼 주님께서 한 마디 말씀만 하셔도 고침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그를 만짐으로서 예수님의 분명한 가르치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만져 주심은 ‘내가 너와 함께 한다. 나는 이해한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랑의 열정을 가지고 고쳐 주시는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42절에 문둥병이 그에게서 떠나고 깨끗하여 졌다고 하였습니다. 그냥 말씀만 하셔도 병을 고치실 수 있는 예수님이 율법을 넘어서 손으로 이 사람을 만지신 것입니다.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시는 모습입니다. 문둥병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으시고 희생적인 사랑으로 만지시며 고쳐 주십니다. 그리고 자신이 율법 위에 계신 분으로 나타내십니다. 우리 주님은 그런 분입니다. 아 멘!

깨끗이 고쳐 주신 후, 받은 은혜에 대한 보답은 무엇보다도 말씀에의 순종으로 나타나야 하기에, 그에게 예수님께서 “엄히 경계하사 곧 보내시며 가라사대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 깨끗게 됨을 인하여 모세의 명한 것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43-44절)고 하셨습니다. 이는 아직은 때가 아니고, 사람들이 그저 병만 고치기 위하여 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에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하십니다. 자신이 단순히 기적을 베푸는 분으로만 인식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오신 목적,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고 외치는, 즉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사람에게 명하기를 가서 율법을 따라 제사장에게 깨끗하게 되었음을 보이고 감사의 제사를 드리고 나서(레 14장), 가족과 친지들, 사회로부터 격리된 불행한 삶으로부터 회복되도록 하십니다. 물론 주 예수의 오심의 목적이 병 고침이 아니라 죄를 깨끗하게 하시기 위하여 오셨지만, 심지어 육신의 무서운 병을 깨끗하게 하심에 그 일례를 보여주십니다. 즉, 문둥병자를 고치심과 같이 주님은 우리의 죄를 치유하시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문둥병자가 마치 걸어 다니는 송장과 같다면, 치료받은 사실은 죽었던 송장이 살아난 것과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사장과 같은 종교지도자들이 그런 일은 마땅히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 해석해야 하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참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고침을 받은 문둥병자는 예수님 말씀에 순종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니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나 사방에서 그에게로 나아오더라”(45절) 하였습니다.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했으나, 자신이 혼자 조용히 간직하기에는 너무 행복한 경험이었기에 그는 소문을 낸 것 같습니다. 나는 ‘부정하다! 부정하다!’ 에서, 나는 ‘정하다! 정하다!’ 소리를 지른 것입니다. 그 사람 뿐만 아니라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 소문을 퍼뜨렸을 것입니다. 그러자 허다한 무리가 예수님을 찾아와 말씀도 듣고 병도 고치려고 모여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할 수 없이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고,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셔서 기도하기 원하셨습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마가복음 전체의 주제를 가리키는 요절이라고 하면,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고 할 수 있습니다. 정말 예수님은 종의 모습으로 우리 죄인들을 섬기려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목숨을 우리를 위해 희생하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그 모습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문둥병자를 그대로 두면 점점 몸이 망가지고, 마음도 망가져서 외롭게 죽어갔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아니면, 복음이 아니면 마치 걸어 다니는 송장이 점점 더 부패해져서 비참하게 끝을 맺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자신의 병을 인정하고 고침 받기를 원하는 이 문둥병자와 같이 예수님을 찾고, 예배하는 마음으로 간구하는 사람들이 많이 없다는 것입니다. 즉 자신이 죄인인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죄 사함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막 2:17)고 하신 것입니다. 자신이 죽을 병이 걸렸음에도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의사가 필요가 없지요. 자신이 죄인인 줄 아는 사람이 예수님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20세기 초 40년 이상 영국 웨스트민스터 교회 목회를 했던 유명한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만약 당신이 죄에 대해 무감각하여 주님이 필요함을 못 느낀다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의 개인적인 구세주가 아니다. 당신의 본성이 악함을 깨닫지 못하면, 당신 자신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면 구세주가 필요 없다. 사도 바울의 말(엡 2:1)을 빌어 죄 가운데 죽은 자인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알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다’ 라고 했다고 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만이, 애통해 하는 자만이 하나님 나라를 소유할 수 있습니다(마 5:3-4).  그리고 사랑의 주님은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절하)고 하였습니다. 아 멘!

사랑하는 여러분!
본문의 문둥병자는 자신의 부정함을 인정하고, 고침 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1) 자신감(confidence)을 가지고 주께 나아왔습니다. 2) 주님을 경외하며 나아왔습니다. 3) 겸손히 나아왔습니다. 4) 믿음으로 나아왔습니다. 그 결과 우리 주님께서 그를 민망히 여기시고 즉시 고쳐 주셨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아직도 자신이 죄인인 줄 모르고 살아갑니까? 죽을 병이 걸렸는데 인정하지 않으시면 고침 받을 길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하였고,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 5:12) 하였으며,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 하였습니다. 누구나 죄인인 결과 다 죽게 되어 있습니다. 육신적으로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죽은 자들입니다. 그러나 죄인임을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 승천하셨으며, 오늘도 살아 계셔서 우리의 주가 되심을 받아들이며 회개하면 죄 사함을 받고, 죽을 병이 고침을 받아 산 것처럼 영생을 누립니다. 믿음으로 주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며 ‘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면 됩니다. 그러면 주님이 ‘내가 원하노니 깨끗하게 될지어다’ 하시며, 살려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십니다. 아 멘!

이미 그렇게 믿어, 영생을 누리며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여러분!
우리가 믿기 전에 점점 부패해가는 송장이었는데 살려 주셨다면, 우리도 주님처럼 우리 주위에 죄 가운데 거하는 분들, 영적, 육체적, 정신적 죽을 병이 걸려 암흑 속에 살아가는 분들, 우리는 모르지만 지옥의 고통 속에 아무도 찾아와주지 않는 외로워하는 분들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민망히 여기며 부드러운 손길을 내미셔야 합니다. 만져 주셔야 합니다. 내 자신이 아니라, 여러분 안에 거하시는 예수님이 내미시는 손입니다.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손입니다. 누구라도 그 손을 받아들이기를 바라고 기도하면서 사랑의 touch 를 느낀다면 그 영혼을 살릴 수 있습니다.
아니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 하더라도 고통과 환란을 당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여전히 우리를 민망히 여기시며 사랑으로 만져 주시는 분입니다. 건져 주십니다. “주여 원하시면” 하고, 겸손히 간구하십시오. 다윗은 그러한 구원의 하나님을 경험하였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케 하셨도다”(시 40:1-2)! 다윗처럼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그 분의 손을 붙잡고 이겨 나가는 은혜가 풍성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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