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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4-06-02 (일) 07:45
분 류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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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847    
복음의 능력은 (막 4:1-20)



복음은 생명력이 있어서 반드시 열매가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살아 역사하는 성령님이 내주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그 열매가 반드시 있습니다. 그런데 왜 교회를 다니는 분들에게 때로 열매를 찾아볼 수 없을까요?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야 하는데 왜 그 능력이 나타나지 않을까요? 사탄 마귀와 싸워서 승리하기 보다, 패배하는 적이 더 많은지요?

교회의 머리가 되시며 주인되시는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본질과 그 특징들을 사복음서에서 여러 비유의 말씀을 통하여 계시하셨습니다. 눈에 보이는 완전한 하나님 나라, 천국은 나중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야 하지만, 이미 2020여년 전에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 약속대로 성령을 보내셔서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우리 주님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들을 다스리시기에, 이미 영적인 하나님 나라는 임한 것입니다. 그 모형(type)이 교회입니다. 그의 택하심 받은 성도들이 만왕의 왕이신 주님의 다스림을 받으며 하나님 나라를 이루고 있고, 그들의 삶을 통하여 이 땅에 주님의 뜻이 나타나며 그 증거들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마가는 3장에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바알세불, 사탄의 종이라고 고소하자 예수님은 그들이 성령을 훼방한다고 하면서, 성령을 훼방하는 죄는 영원히 용서받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22-29절). 그리고, 하나님의 가족은 영적으로 주님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고, 주님 뜻대로 사는 모든 자가 하나님의 자녀들로 한 가족이라고 하였습니다(31-35절).
본문에 이어서 바닷가에서 가르치는 예수님께 나온 많은 무리들을 피하여 배에 올라 앉으시니, 온 무리는 바다 곁 육지에 있습니다(1절). 그 때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비유를 이야기합니다. 비유(parable)라 함은 영적인 진리를 나타내기 위하여 실제 삶의 상황으로 빗대어 하는 이야기를 말합니다.
본문의 씨 뿌리는 비유는 공관복음에 다 기록된 것으로 하나님 나라(교회)의 시작, 혹은 그 근원을 말해줍니다. 복음서에 비유의 말씀을 예수님께서 다 해석하시는 경우가 별로 없는데, 오늘 이 비유는 제자들이 물을 때에 그 해석까지 하시고 있습니다(마 13:1-15; 눅 8:4-15). 당시에 농부가 씨를 뿌릴 때에 오늘날처럼 기계로 땅을 잘 고르고 해서 뿌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기구가 없었습니다. 그저 손으로 대충 고를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손으로 씨를 뿌리면 길가에도, 바위(돌) 위에도, 가시떨기 속에도 뿌려질 수 있었습니다. 이 비유에서 씨는 복음, 곧 하나님의 말씀이며, 흙은 사람의 마음을 가리킵니다. 잘 살펴보면 흙, 혹은 땅 자체의 그 본질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똑 같은 흙인데 어디에 떨어지느냐는 것입니다. 복음(말씀)을 들을 때에 네 종류의 마음이 있어서 그들이 그 말씀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받아들이는지 비유로 설명하십니다.

첫째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반응하지 못하는 강퍅한 마음입니다. "씨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 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먹어 버렸고 (3-4절) 하셨고, 그 해석을 15절에 “말씀이 길 가에 뿌리웠다는 것은 이들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단이 즉시 와서 저희에게 뿌리운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하였습니다. 누가는 사탄이 “그들로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눅 8:12) 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이유가 그 마음이 길가처럼 강퍅함에 있는 것입니다. 구약에 때때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목이 굳은 자로 표현되기도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천국 비밀을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를 제자들이 물을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11절) 하시면서,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하여 설명하기를 “이는 저희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12절; 사 6:9-10)고 하셨듯이, 영의 눈을 감고, 영의 귀를 닫은 외인, 즉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의 완악한 마음을 꾸짖는 모습을 봅니다. 하나님에 대해 관심이 없고, 영적인 일에도 전혀 무감각한 자입니다. 복음, 하나님의 말씀에 전혀 마음이 없는 자입니다. 즉 씨가 길가에 뿌려졌기 때문에 땅 속으로 파고 들지 못하여 사람에게 밟히거나, 새가 와서 먹어버리는 것입니다. 마귀가 와서 빼앗아 간다고 하였습니다. 죄의식이나 부끄러움이 전혀 없으니 사탄의 공격에 무방비 상태인 것입니다.

둘째로, 피상적으로 듣는 얄팍한 마음입니다.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5-6절) 라고 하시며, 그 해석을 16-17절에 "또 이와 같이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이들이니 곧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간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라고 하였습니다. 누가는 돌밭을 바위라고 하였으며(눅 8:13), 마태와 누가는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날 때를 시험을 받는 때로 이야기하고 있고, 넘어지는 자를 배반하는 자라고 했습니다(마 13:21). 심령이 강퍅하여 전혀 무반응을 보인 자와 달리, 이 사람은 전혀 거리낌이 없이 복음을 받습니다. 아니 하나님 말씀에 대하여 금방 감동을 받아 흥분하며 기뻐합니다. 그런데 환란과 핍박의 시험이 오면 금방 넘어집니다. 주님을 배반합니다.
어쩌면 복음을 전하는 자의 책임인지도 모릅니다. 너무 쉽게 복음을 설명하고는 그에 따르는 대가, 예를 들면 죄로부터 돌아서는 진정한 회개, 자아를 내려놓고 십자가를 지는 것, 옛 삶의 방식으로부터 돌아서는 것 등을 가르쳐 주지 않아서 넘어지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종종 입으로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며, 교회에 나아와 예배도 드리고, 기도도 하고, 헌금도 하고, 봉사도 하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자기 경험을 말하기도 하지만, 전혀 삶에서 열매가 없는 자입니다. 돌밭(바위) 위에 떨어졌기에 뿌리까지 습기가 내려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싹이 나지 않습니다. 감정적인 흥분이 잠시, 일시적입니다. 금방 차가워집니다. 왜냐하면 그의 심령은 변한 게 없으며, 그의 감정이 쉽게 변하기 때문입니다. 참된 회개(회심)를 하지 않은 자입니다. 이런 자들은 말씀을 듣고 구원에 이르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종교인일 뿐입니다. 그래서 환난이나 핍박을 당하면, 시험이 닥치면 언제 내가 예수를 믿었었나 하는 식으로 돌아서고 맙니다. 구원을 받은 것에 대한 대가를,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섬기고 사는 대가를 전혀 치르지 하지 않습니다. 희생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험이 오면 넘어지고 맙니다. 이유는 애초 중생하지 못한, 새로운 피조물이 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죄의 심각성을 모르고, 주께서 정결케 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없고, 의에 대한 목마름과 그의 말씀을 사모하며, 주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주를 위하여 고난을 받겠다는 심령이 아니라면, 넘어지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그러나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딤후 3:12)고 하신 것처럼, 참 성도는 이 땅에서 핍박이 있습니다만,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벧전 5:10)하신 말씀을 믿고 이겨냅니다.

셋째로, 세상에 얽매어 갈라진 마음입니다. “더러는 가시 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으므로 결실치 못하였고"(7절) 라고 하신 후, 예수님이 그 해석을 18-19절에 하시기를 "또 어떤 이는 가시 떨기에 뿌리우는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치 못하게 되는 자요" 라고 하였습니다. 즉 이 사람은 너무 세상적이어서 그 마음에 말씀이 깊게 내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듣고, 믿는다고 말하는데 그는 여전히 세상 것들을 사랑하기에 그것에 대한 근심으로 영적인 일, 영원한 것에 대해 눈이 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들이 영원한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하며, 심령에 진정한 만족을 줄 수 없는 데도 세상 유혹과 욕심이 가시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막습니다. 그래서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자신의 부와 소유, 명예, 쾌락 등에 온 관심과 주의를 기울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경고하기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고 하였고, 요한도 경고하기를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요일 2:15-16)고 하였습니다. 입으로만 신자라고 말하며, 성령의 열매가 없는 신자들은 짓는 죄에 대하여 근심하지 않습니다. 악을 미워하고 의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가시와 같은 잡초로 삶이 둘러싸여 있습니다. 만약 그가 정말 믿는 사람이라면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듯이(마 6:24), 결국 나중에 세상을 사랑하고 주님도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함을 깨달아 회개할 것입니다. 그 믿음이 진짜이면 세상을 버릴 것이지만, 믿음이 가짜라면 세상을 사랑한 죄가 말씀을 막아 버리고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합니다.

넷째로, 말씀을 잘 받아 열매 맺는 착하고 좋은 마음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8절에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배와 육십배와 백배가 되었느니라"고 하신 후에, 20절에 설명하시기를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배와 육십배와 백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고 하였고, 이를 누가는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눅 8:15)고 하였습니다. 여기 좋은 땅이라 함은 기본적으로 구성성분이 다른 것이 아니라, 씨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음을 말합니다. 그 마음 밭이 받을 준비가 되었기에 하나님의 말씀에, 복음에 올바로 반응하여 믿고 실천합니다. 구원을 받기 전에는 주를 영접한 사람이던, 거절한 사람이던 기본적으로 본성이 같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죄를 덜 짓고 살았기에 좋은 땅이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육을 받지 못해 무식한 사람이라도 좋은 땅일 수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고등교육을 받아 유식한 사람이라도 좋은 땅이 아닐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진심으로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며, 주로 모시고 살고자 하는 사람의 마음은 착하고 좋은 땅인 것입니다. 누가복음에서의 ‘착하다’는 원어의 뜻은 ‘목적에 부합하다’는 의미입니다. ‘좋은’은 ‘선하고 유익한’이라는 뜻입니다. 씨 뿌리는 자의 목적에 부합하는 마음, 그 분 앞에서 선하여 유익을 끼치고자 하는 마음에 떨어진 씨가 열매를 맺는 것은 당연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며,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의 영의 귀를 열어 주사 그 말씀을 듣고 깨닫게 하시며, 온전히 받아들이게 하십니다. 말씀에 순종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시험이 와도 잘 참습니다. 복음의 능력으로 열매를 맺습니다. 그에게는 영적인 열매, 전도의 열매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기독교 역사가 증거하고 있습니다(행 1:8).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인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갈 5:22-23).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빌 1:11)하신 것처럼, 삶에서 의의 열매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하며 주야로 묵상하는 자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는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시 1:2-3). 또한 예수님께서 자신을 포도나무로 사람을 가지로 비유하시면서 나무에 붙어있지 않는 가지는 열매를 맺지 못하기에 밖에 버리게 되어 말라져서 불에 던져 사른다고 하였습니다. 반대로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과실을 많이 맺는다고 하였습니다(요 15:1-6). 오해하지 마십시오. 열매를 맺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구원받았기에, 착하고 좋은 마음에 씨가 떨어졌기에 나중에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예수님은 지금 제자들과 그의 이름을 증거하는 성도들을 격려하기 위하여 이러한 좋은 땅의 비유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길가와 같은 강퍅한 마음, 돌밭(바위) 위 같은 얄팍한 마음, 가시 속의 세상적인 마음을 소유하고 있지만,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에 열려 있어 잘 받는 마음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며, 자신의 생각을 포기하며, 마음을 여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씨를 뿌려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초점은 ‘참된 성도는 열매를 맺게 되어 있다’라는 것입니다. 참된 교회의 사명은 씨를 뿌려 열매를 거두는 것입니다. 비록 어떤 때에는 길 가에 뿌릴 수도 있고, 바위 위에 뿌릴 수도 있고, 가시 떨기 속에 뿌릴 수도 있습니다만, 좋은 땅을 만나 뿌림으로 열매를 거두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 열매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사명은 하나님의 말씀, 복음의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그 책임을 감당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용하여 모든 종류의 심령 밭에 씨를 뿌리기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이 길가는 아니더라도, 혹시 돌밭(바위)나 가시 떨기 같은 분은 없습니까? 하나님께 간구하십시오. 성령님이 여러분의 마음을 주장하셔서 늘 착하고 좋은 마음, 씨 뿌리는 목적에 부합하고 선하고 유익한 마음이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복음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어떤 사람의 간증을 듣고 감동을 받는 것과 자신이 신실하게 사는 것과 다릅니다. 좋은 글을 읽고 감동을 받는 것으로 끝나며 안됩니다. 무슨 말씀이든지 즉각적으로 순종하지 않으면 열매가 없습니다.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순종의 대가를, 주님을 섬기는 대가를 치를 수 있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부귀영화보다는 주를 더 사랑하는 믿음이기를 바랍니다. 죄를 미워하고 의를 사랑하는 마음이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좋은 땅에 뿌려진 씨로 때가 되어 열매를 맺게 되기를 바랍니다.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끝으로 유명한 Charles Wesley 의 시, ‘꺼지지 않는 마음 제단의 불’을 나눕니다.

오, 깨끗한 하늘의 불을 전해주려고 하늘로부터 오셨던 분이여
비천하오나 내 마음의 제단 위에 거룩한 사랑의 불을 밝혀 주소서
내 마음 제단 위의 불이 영원히 꺼지지 않고 타올라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게 하소서
겸손한 기도와 뜨거운 찬양 속에서 두려워 떨며 그 근원으로 돌아가게 하소서

예수님이여!
내 마음에 당신을 위해 일하고 말하고 생각하고 싶은 갈망을 주소서
나로 하여금 그 거룩한 불을 지키게 하소서
내 안에 있는 당신의 은사, 성령을 따라 살게 하소서

나는 당신의 온전하신 뜻을 위해 기꺼이 믿음과 사랑의 행위를 되풀이 하겠나이다
죽는 순간에 이를 때까지 당신의 끝없는 자비로 나를 인쳐 주시고
내 마음의 제물을 완전케 하소서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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