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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
한태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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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일 |
2024-08-22 (목) 08:06 |
ㆍ분 류 |
수요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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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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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족하는 신앙 (빌 4:8-13)
이런 무명의 영시가 있습니다.
It was spring. But it was summer I wanted, The warm days, And the great outdoors.
It was summer. But it was fall I wanted, The colorful leaves, And the cool dry air.
It was fall. But it was winter I wanted, The beautiful snow, And the joy of the holiday season.
It was winter. But it was spring I wanted, The warmth, And the blossoming of nature.
I was a child. But I was adulthood I wanted, The freedom, And the respect.
I was 20. But it was 30 I wanted, To be mature, And sophisticated.
I was middle-aged. But it was 20 I wanted, The youth, And the free spirit.
I was retired. But it was middle age I wanted, The presence of mind, Without limitations.
My life was over. But I never got what I wanted.
우리 인간들의 불만족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시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이 시인과 마찬가지로 늘 불평하며 무엇인가 다른 것을 원하십니까?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자신에게 사랑을 베푸는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감사하면서 항상 기뻐하라는 주제의 빌립보 서신을 보냈습니다. 4장에 들어와서 그들이 주 안에서 굳게 서라고 하였습니다(1절). 유오디아와 순두게 사이의 불화로 교회 전체가 어려움을 겪고 있기에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권하였습니다(2절). 그리고 바울의 동역자들을 도우라고 하였습니다(3절). 그리고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면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해야 한다고 또 다시 강조하였습니다(4절). 또, 믿음이 있다면 문제에 부딪쳤을 때 감사함으로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6절). 감사함으로 기도하면 주님의 평강이 임하며, 주께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신다고 하였습니다(7절)
그리고는 본문에 이어서 믿음이 있다면, 늘 경건한 덕목들을 생각하며 자족하는 신앙이어야 한다고 합니다.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8절)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가 “생각하라(consider, ponder, meditate)” 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너무 생각하지 않고 삽니다. 아니면 생각을 해도 쓸데없는 일, 악한 일을 생각합니다. [Slide 5] 솔로몬이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잠 23:7절상)라고 하였듯이, 예수님도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눅 6:45)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사나요?
바울은 믿음이 있다면 무슨 일을 만나도 감사함으로 기도하면서, 생각이 달라져야 한다고 합니다. 믿기 전과 믿은 후의 생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참되고 (not false, untrustworthy, or imagined), 경건하고 (not shameful, twisted, or foolish), 옳고 (not wrong, sinful, or rebellious), 정결한지 깊이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또 어떻게 하는 것이 사랑받을 만하며 (not distorted, ugly, or offensive), 칭찬들을 만한 것이 (not gossipy, slanderous, or sarcastic) 무엇인지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덕을 세우는 (not inferior, wasteful, or flawed) 것인지를, 하나님께서 찬양 받으실 (not insulting or evil) 것인지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현재 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우리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애굽에 노예로 팔려간 일을 요셉이 당시에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였겠습니까? 어쩌면 요셉은 자신이 왜 애굽에 와 있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하지만 노예로서 주인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은 옳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유혹을 이기는 것이 그의 형편에 참되며 경건하며 칭찬받을 만한 것이었습니다.
참된 일, 경건한 일, 옳은 일, 정결한 일, 사랑받을 일, 칭찬받을 일, 덕스럽고, 기림이 되는 일 이런 일들이 하나씩 모여 너무나도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내는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님의 큰 뜻을 알기 어렵거든, 작은 일에서부터 어떻게 하면 덕을 세우고 기림이 되는 것인지 생각하라는 말입니다. “무엇에든지”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어떤 형편이나 처지에 상관없이, 무슨 일을 만나든지, 어떻게 하면 덕을 세우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 깊이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유명한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마태복음 6장 25절 이하 ‘염려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설교를 강해하면서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의 가르침에 의하면 믿음은 근본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의 교훈을 잘 관찰하고 연구하는데 시간을 보내야 한다. 성경은 아주 논리적이다. 우리는 믿음을 무슨 허무맹랑한 전설이나 신화를 믿는 것으로 생각하면 안된다. ‘우연히 놀라운 일이 우리에게 닥치겠지’ 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니다. (미신이겠죠) 믿음은 생각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예수님은 공중의 새를 보고 생각해 보라. 그리고 결론을 내보라. 들의 풀과 백합화를 보고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공감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생각을 깊이, 많이 하니까 염려한다고 말하는데, 사실은 생각을 올바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염려 자체만 놓고 많이 생각 하거나, 공상 즉 쓸데없는 생각이나 망상 즉 허무한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리의 말씀을 가지고 생각을 올바로, 논리적으로 깊이 하면 믿음이 생기고 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인격적이라서 그렇습니다. 지성과 감성과 의지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을 올바로 하게 된 후에는 행하여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생각만 하고 맙니다. 결단한 것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래서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9절)고 하였습니다. 산 지식, 참 진리를 배워서, 마음에 받아들이고 난 후, 생각하고 체험적으로도 깨달은 것들을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올바른 생각들, 무엇에든지 경건한 덕을 세우고자 하는 생각들을 실천으로 옮기라는 말씀입니다. 생각을 했으면 사실 당연히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는데, 그렇지 않고 주저하고 있다면 즉시 행동으로 옮기라는 말씀입니다. 평강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믿음으로 말입니다.
물론 믿지 않는 사람들도 때로는 이웃돕기 등 선행을 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도 양심을 따라 악한 생각을 버리고 선한 생각을 하면 더러운 욕망이 가라앉으면서, 선한 충동을 따라 어느 정도의 선행, 덕행을 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본래 죄성이 있기에 그것이 오래 가지 못합니다. 마치 흙탕물이 가라앉았다가 휘저으면 다시 더러워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믿는 사람 안에는 죄성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있습니다. 성령이 믿는 사람들 속 마음에 역사를 합니다. 그래서 죄성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의 음성을 따라 생각하고 행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에 성령의 열매인 아름다운 경건한 미덕들이 밖으로 표출됩니다. 물론 믿는 우리들이라고 해서 완전하지 않습니다.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면 놀라고, 억울한 일을 당하면 분노합니다. 잠시 염려과 걱정으로 불안해하며 근심에 빠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금방 하나님의 뜻을 붙들고, 감사하며 기도하고, 생각하면 경건한 덕을 세우게 됩니다.
선택입니다. 죄성을 따라 살 것인지, 성령을 따라 살 것인지 말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성도로서의 미덕을 생각하고 살면 감사와 기쁨이 넘치게 되어 있습니다. 자족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간증을 합니다. 자신을 본받아 자족하라고 합니다.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10-12절) 하였습니다. 바울이 2차 전도여행 중 루디아의 집에서 빌립보 교회를 개척한지 10년 이상이 되었습니다(행 16:11-40). 그리고 3차 전도여행 때 잠시 들렀었습니다(행 20:6). 그 후에 빌립보 교회에서 에바브로디도 편으로 쓸 것을 보냈습니다(16절 이하). 그래서 그들이 바울을 생각해준 것에 대해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한다고 10절에 말한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에 여유가 있어서 보낸 것이 아니라, 희생적인 사랑으로 보낸 것을 알았기에 말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어떤 형편에든지 자족하는(self-sufficient) 것을 배웠다고 합니다. 오해하면 안되는 것이 바울은 스스로 어느 누구의 도움이 없이도 자신의 능력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자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 안에서 자족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때를 신뢰하고, 주님이 필요를 채우시는 분임을 믿는 것입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이후로 주어진 어떤 상황을 통과하면서 자족하는 것을 배웠다는 것입니다. 궁핍할 때도, 풍부할 때에도 주님을 의지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할 때에도 주님에게 감사하면서 신앙의 길을 걸어왔기에 모든 일에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명한 말씀인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13절)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문맥을 생각하면 이 구절은 어떠한 형편에든지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주님 안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얼마나 잘 오용되고 있는 구절입니까?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우리가 세운 개인적인 비전이나 꿈을, 부와 명성을 얻을 수 있음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기복주의 신앙을 주장합니다. 아닙니다! 여기 “모든 것”은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 살아남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삶에 굴곡이 많아도 내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얼마든지 헤쳐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직 주님께서 참고 인내할 능력을 주시며 이기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돈으로, 교육으로, 술수로, 세상 지혜로,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아니라,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이 감당할 능력을 주십니다.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오늘도 주님 안에서 자족하고 있습니까? 참 믿음이 있는 성도라면 일상 생활에서 경건의 능력이 나타나야 합니다. 항상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저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에든지 예외 없이 참되며, 경건하며, 옳으며, 정결하며, 사랑받을 만하며, 칭찬받을 만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덕을 세우며,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이 되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실천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형편이든지 주 안에서 자족해야 합니다. 우리의 필요를 채우실 주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지금이 아니면 주님의 때가 있을 줄 믿고 맡겨야 합니다. 주님의 능력으로 이겨 나가야 합니다. 바울처럼 배우십시오. 그런 삶의 지혜를 익히십시오. 우리도 얼마든지 자족하는 신앙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감사하며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은혜가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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