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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4-08-30 (금) 05:52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146    
향기로운 예물 (빌 4:14-23)
우리 교회 교인들은 제가 절기설교를 제외하고는 늘 성경책을 차례대로 강해설교를 하는 것을 압니다. 실제로 그렇게 해왔습니다. 수요예배도 부목사님들의 설교 외에 저는 오늘로서 빌립보서 강해를 마치게 됩니다. 그리고, 30여년 목회하면서 일부러 헌금에 대한 설교를 한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워낙 교인들이 오해를 하고 시험을 받기 때문입니다. 어쩌다가 그날 해당하는 성경 본문이 헌금에 대한 말씀이기에 그대로 풀어 설교를 했는데도 시험을 받아서 교회를 떠난 경우도 있습니다. 안타깝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목사가 성경에 있는 말씀을 교인들 떠날 것이 두려워 그대로 설교를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 앞에 부끄럽고 신실한 목사가 아닌, 양들의 눈치나 살피는 비겁한 목사입니다. 사람을 두려워하기 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바른 목사가 아니겠습니까?
바로 오늘 본문이 헌금에 대한 말씀입니다. 헌금을 제대로 하지 않는 분들에게는 또 부담이 되는 설교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거룩한 부담입니다. 성령님의 인도입니다. 성도에게서 헌금은 아주 중요합니다. 얼마나 주님에게 헌신되어 있느냐는 말로, 혹은 몸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헌금으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유명한 Tony Evans 목사님은 ‘성도의 신앙척도는 그 사람의 check book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예수님이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신,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21)고 하신 것처럼, 그 사람이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얼마나 마음을 드리고 있느냐는 그가 온전히 헌금을 하고 있고 그 외의 돈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로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아시다시피 헌금은 사람에게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바치는 제물입니다. 그래서 본문에도 바울은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 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표현이요 헌신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여태껏 전도여행을 하면서 자족하는 신앙을 배웠다고 했습니다(4:11-12). 우리도 형편이 어떠하든지 자족하라고 했습니다. 무엇에든지 예외 없이 참되며, 경건하며, 옳으며, 정결하며, 사랑받을 만하며, 칭찬받을 만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덕을 세우며,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이 되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한 후 실천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저 항상 감사하며, 우리의 필요를 채우실 주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주님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13절). 얼마든지 감사하며 자족할 수 있습니다.
이제 바울은 빌립보서를 마무리하면서 빌립보교회 교인들이 보낸 헌금에 대하여 감사하고 있습니다. 헌금에 대해 말하는 이유가 자신은 어떤 형편에든지 자족하기에, 자신이 돈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위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태껏 살펴보았듯이 빌립보교회는 모범적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서로 하나되지 못하는 분열을 보이고 있고, 세상적인 자랑과 자기 욕심을 채우는 지도자들도 있었고, 육체의 할례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감사와 기쁨이 없기에 바울은 계속 기뻐하라고 명하였습니다.
이제 끝으로 그들이 한 두번 보내준 헌금에 대해 감사하며 권면하고, 인사와 축도를 합니다.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예하였으니 잘하였도다”(14절)라고 합니다. 여러 문제가 있는 교회이었으나, 자신의 삶에 고통에 동참하는 헌금을 한 것을 칭찬합니다. 그동안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느라고 유대인들에게 공격을 받았으며, 네 번의 선교여행을 하면서 이만저만 고난을 겪은 것이 아닙니다(고후 11:23-27). 또, 육체의 가시로 말미암아 건강하지도 않았습니다. 가진 것도 별로 없이 지팡이 하나만 의지하고 선교여행을 한 것입니다. 가는 곳마다 적극적인 지지를 받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빌립보교회는 헌금을 보내곤 했던 것입니다. 특히 마게도냐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 한번 두번 쓸 것을 에바브로디도 편에 보내 준 것입니다(16절). 2차 전도여행 시작하자 도와준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에게 큰 위로가 된 것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바울이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목사나 선교사에 대한 헌금은 그의 고통과 사역에 동참하는 의미라는 것입니다. 즉 여러분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설 때에 (고후 5:10) 목사나 선교사와 함께 하나님 나라를 위한 사역에 동참한 자로 서게 될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까지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무엇을 했는지 잘 알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뜻대로,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역의 열매를 다 알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름대로 애를 써도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헛수고한 것으로 나타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열심히 일을 했으나 헌금생활을 온전히 하지 않아 상을 다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물론 경계해야 할 것은 기복신앙입니다. 헌금을 단지 하나님께 복을 받기 위하여 하려는 신앙입니다. 마치 다른 종교나 미신처럼 하나님을 복주머니로 알고, 하나님을 이용하여 자기 욕심을 채우려는 것은 비성경적이며 잘못된 신앙입니다. 개혁주의 신앙은 구원의 은혜를 비롯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가 많기에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감사하며 드리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그들에게 헌금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과실이 번성하기를 구함이라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17-18절)고 하였습니다. 오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금 헌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자신이 선물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들의 유익을 위하여, 열매가 풍성하기를 원하기에 헌금에 대해 말한다고 합니다. 앞 문맥에서 말하였듯이 자신은 모든 것이 풍부하다고 합니다. 부자라는 말씀이 아니라, 자족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미 그들로부터 받은 것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 헌금이 그들에게 유익하여 풍성한 열매을 위함이며,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자녀가 철들어 부모의 은혜를 갚으려고 할 때에 무엇이 정말 부모를 기쁘게 할까요? 부모가 좋아하는 것을 사드리는 것일까요? 그것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부모가 훨씬 좋아하는 것은 열심히 신앙생활하며, 사회에서도 빛과 소금으로 살아 모든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모습일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누구의 자녀인지 사람들이 물을 것이고, 부모에게 칭찬과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은혜를 갚는 길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신실하게 하여, 말씀대로 살아 드리는 것입니다.
즉, 빌립보교인들이 헌금한 것은 자신들에게 유익한 것이었습니다. 온전한 헌금생활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을 마음대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드린 후 남는 것으로 생활하는 사람은 돈을 제대로 사용합니다. 남은 돈도 하나님의 은혜로 주신 것으로 알고 절약하며 삽니다. 욕심대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 성도들이 재정적으로 자꾸 어려운 것은 돈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고, 불필요한 부분에 돈을 많이 쓰기 때문으로 생각됩니다. 돈 욕심으로 투기 목적으로 주식투자를 한다든지, 부동산을 산다든지 말입니다.
서론에서도 언급하였지만, 바울은 18절에서 헌금의 의미를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라고 하였습니다. 구약의 용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면 향기가 올라갔습니다. 번제물 위에 부은 포도주 향기가 올라갔습니다. 즉 제사의 절정은 바로 그 향기에 있었습니다. 헌금은 사람을 도우라고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신앙생활의 절정입니다. 십일조와 헌물을 아깝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하나님을 잘 모르는 분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줄을 모르는 분입니다. 신앙생활의 진미를 모르는 것입니다.

이어서 바울은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토록 영광을 돌릴찌어다 아멘”(19-20절)! [Slide 5] 오늘 본문의 요절이자 결론입니다. 빌립보교인들이 헌금함으로 쓸 것이 부족했을 텐데, 하나님이 그 부족함을 채워 주실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도우셔서 주님 안에서 영광 가운데 풍성하게 모든 쓸 것을 채우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아버지에게 세세무궁토록 영광을 돌릴 것이라고 합니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우리가 헌금을 하면 건강도, 재물도, 소원도 이루어 주어 행복하게 된다는 기복신앙이 아니라, 온전한 헌금생활을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필요한 것을 넉넉히 풍성하게 채워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로 수입이 들어오든지, 분별력을 주셔서 돈을 쓸데없는 곳에 사용하지 않는다든지, 불필요한 지출을 막아 주십니다. 뜻밖의 일이 생겨서 낭비하지 않게 도와 주십니다. 그리고 실제 직장생활이나 사업체를 도와 주셔서 풍성하게 하십니다.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 멘!

바울은 21-23절에서 빌립보교회에 마지막 문안인사를 합니다. 주 안에 있는 성도들에게 문안하며, 자신과 함께 있는 형제들과 모든 성도들이 그들에게 문안한다고 합니다. 특히 바울은 가이사 집의 안부도 전합니다(22절). 가이사는 로마 황실인데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그 권속 중에 복음을 듣고 믿는 그리스도인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그들 심령 속에 있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여러분의 헌금생활은 어떠합니까?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향기로운 예물로 드리고 있습니까?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9:7-8)고 하였습니다. 여기 7절에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라는 뜻이 헌금을 얼마 하겠다고 마음에 정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 마음에서 우러나서 드린다는 뜻입니다. 마음과 함께 드린다는 뜻입니다. 사실 마음이 함께 하지 않는 헌금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헛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진심이 아닌 것을 하나님께서 모르시겠습니까?
한번은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예배를 드릴 때 부자가 연보하는 것과 가난한 과부가 연보하는 것을 보았습니다(막 12:41-44; 눅 21:1-4). 부자가 가난한 자와 비교해 많이 연보하는 것과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연보하는 것을 보신 후에, 주님께서는 그 과부가 연보를 더 많이 했다고 하였습니다. 렙돈은 그 당시 로마 화폐의 가장 기초단위였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1불 혹은 5불짜리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가난한 과부가 헌금을 더 많이 했다는 것은 그가 가진 것 전부를 헌금했기 때문입니다. 액수가 얼마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마치 마게도냐 지역 교회 성도들은 가난하지만 풍성한 연보를 하여 바울이 은혜를 받고 고린도교회에 알게 한 것처럼 말입니다(고후 8:1).
즉, 양(quantity)보다 질(quality)를 더 중요하게 여기시는 주님이십니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사람을 칭찬하십니다. 그래서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헌금으로도 교회를 섬길 수 있는, 도울 수 있음을 감사하며, 기쁜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건강과 시간과 직장, 사업체로 열심히 일하여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쓰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그의 나라와 영광을 위한 목적적 수단이 된다는 것이 복이라는 말씀입니다. 바울이 말한 것처럼, 목사나 교회의 유익보다도 드린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듯이 항상 주는 자, 베푸는 자가 복이 있는 것입니다(행 20:35).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 6:38)고도 하셨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면 우리의 모든 필요를 넉넉히 풍성하게 채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물론 우리의 욕심(greed)을 채우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민감하시기 바랍니다. 성령님의 감화, 감동을 뿌리치지 마십시오. 그의 인도를 받으십시오. 믿음으로 반응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그저 감사하며 기뻐하십시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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