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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4-09-08 (일) 10:32
분 류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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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108    
어떤 마음입니까? (막 7:1-13)



만약 하나님께서 오늘 여러분의 마음을 들여다본다면 어떤 마음일까요? 온통 하나님을 향한 마음인지요? 아니, 지난 한 주간 어떤 마음으로 사셨는지요? 하나님을 생각하며 사셨나요? 우리 주님을 경외하며, 찬양하며, 감사하며,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셨습니까? 아니면 온통 세상 일로 바쁘게 지내셨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오늘 구약의 이사야 선지자가 그러했듯이(사 1:13-17),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위선적인 모습을 가증스럽게 여기며 꾸짖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셨어도 마음이 담기지 않은 제사와 예식을 도저히 받으실 수가 없습니다. 이유는 전혀 의미 없는, 마음에도 없는 형식적인, 외식적인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예배 드리는 자의 마음이 청결하지 못하면 그는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향한 정직하고 진지한, 진실한 예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른 것들에 마음을 빼앗겨 죄를 지으며 하나님께 올바로 예배를 드린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어서 다 이루었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려니와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고 어린 양으로 제사 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으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이 하는 그들은 자기의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을 기뻐한즉 나도 유혹을 그들에게 택하여 주며 그 무서워하는 것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으며 내가 말하여도 그들이 청종하지 않고 오직 나의 목전에 악을 행하며 나의 기뻐하지 아니하는 것을 택하였음이니라”(사 66:2-4) 하였습니다. 그들이 정성껏 희생 제물을 드린다 하여도 이방인들과 다름이 없다는 것입니다. 범죄자인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이 가난하고 겸비하여 통회하는 마음이 아니고, 교만하고 불순종으로 하나님을 거역하는 마음이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십니까? 지난 주일에는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나타내 보여 주셨습니다.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 한 가운데서 폭풍을 만나 어려움을 당할 때에 바다 위로 걸어오셔서 그들을 구해 주시며, 믿음이 자라기를 바라는 주님이셨습니다(막 6:45-52). 그 후에 주님은 게네사렛 땅에서 많은 병자들을 또 고쳐 주십니다(53절 이하). 아마 12년을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지고도 고침을 받았다는 소문(마 9:20-22)을 들었는지, 병자들이 와서 “예수의 옷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성함을 얻으니라”(막 6:56하)고 하였습니다. 비록 사람들이 피상적인 믿음으로 자신의 유익만을 위하여 주께 나오는 것이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사랑으로 다 고쳐 주십니다.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은 또한 공의의 하나님이시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거역하는 자들을 심판하십니다. 자신에게 나아오는 자들에게는 사랑으로 고쳐 주시지만, 자신을 부인(거역)하는 자는 심판(정죄)하십니다.
바로 그 심판(정죄)하는 장면이 오늘 읽은 본문에 나타납니다. 주제가 23절까지 이어지는데, 첫 부분인 7절까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의 대화 속에서 그들의 위선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미 2장 16절부터 3장 6절에서 그들과의 논쟁에서 지적하였던 내용입니다. 그 때 저들은 예수님이 죄인과 세리들과 밥 먹는 것을 보고, 안식일에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먹은 일로, 손이 마른 병자를 고치는 것을 보고 시비를 거는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지적했더니 그 때부터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3:6). 이제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율법을 전공한 학자와 바리새인을 더 불러와서 고소할 거리를 찾아 예수님에게 시비를 걸고 있습니다(1절).

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 제자 중 몇 사람이 씻지 아니한 손을 떡을 먹는 것을 보고, “이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묻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유전을 준행치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5절) 라고 트집을 잡고 시비를 겁니다. 이방인을 대상으로 복음서를 기록한 마가는 이 시비의 배경을 설명합니다.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이 장로들의 유전을 지키어 손을 부지런히 씻지 않으면 먹지 아니하며 또 시장에서 돌아와서는 물을 뿌리지 않으면 먹지 아니하며 그 외에도 여러가지를 지키어 오는 것이 있으니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음이러라”(3-4절)고 하였습니다. 식사하기 전에 위생적으로 손을 깨끗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씻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결례식을 말합니다. 이 전통(유전)은 제사장들이 제사를 드리기 전에 손을 씻는 결례식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 결례식이란 그 목적인 부정한 것이나 불결한 것을 만진 손을 정결케 하는 의식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시체를 만졌다든가, 이방인들과 접촉하였다든가 하였을 경우에 자신을 정결하게 하는 의식입니다. 그런데 제사를 위한 결례식을 음식을 먹는 것에까지 적용을 하는 규칙을 그들이 전통(유전)으로 정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랍비들은 그렇게 손을 씻고 음식을 먹는 것이 ‘영생을 얻음을 확신할 수 있다’라고 까지 말하였습니다. 심지어 그 손을 씻지 않고 자면 마귀가 그 손에 있다가 불결한 손을 가지고 먹은 음식을 통하여 몸 안으로 들어간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사실 결례식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언약의 한 징표로 주신 상징적인 예식으로 마음의 할례, 마음이 청결하라는 영적인 진리를 담고 있는 것이지, 그 예식 자체에 무슨 가치나, 영적 유익이나, 축복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생각해보면 사실 역사상 사람이 만들어 놓은 종교는 그러한 예식이나 의식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그런 것으로 자신들에게 무슨 유익이 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부인하는 유대종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가라사대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6-7절)고 하십니다. 그들의 외식(위선, hypocrite)을 꾸짖으시면서, 이사야서 29장 13절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는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입으로만 하나님을 존경하지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멀리 떠나 사람이 만든 계명, 곧 전통을 가르치며 주장하니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한다고 합니다. 여기 “외식”이라는 원어는 당시 연극배우들이나 가장하는 사람들(pretenders)에게 사용되었던 단어입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 것 같지만, 속 마음은 그렇지 않고 사람들 눈치만 보며 겉으로, 입술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가짜입니다. 그러니 그들의 속 마음을 다 알고 계시는 주님께서 외식하는 자라고 꾸짖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예수님은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라 또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유전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8-9절) 라고 하십니다. 즉, 그들의 문제는 장로들 혹은 랍비들에게서 내려오는 전통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위에 있었습니다.
사실 그 전통이란 율법을 이해하기 위한 해석으로 보충 설명하는 것들(Mishna)인데 주객이 전도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전통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도록 돕는 수단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거꾸로 말씀을 지키지 않는 도구로 전락한 것입니다.
그래서 한 예로 십계명 가운데 제 5계명을 언급하십니다.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였거늘”(10절) 하시면서,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이리라 하셨거늘”(출 21:17) 라는 말씀까지 인용합니다. 그런데 “너희는 가로되 사람이 아비에게나 어미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제 아비나 어미에게 다시 아무 것이라도 하여 드리기를 허하지 아니하여 너희의 전한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11-13절)고 하십니다. 너희는 어찌 아비나 어미가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말하면서 공경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순종할 의무를 피하기 위하여 단지 말로 “고르반(하나님께 드릴 것이다, 혹은 드림이 되었다)” 고 핑계하니 계명을 범하는 것이 아니냐고 꾸짖습니다. 사실 “고르반(Corban)” 이라 함은 하나님께 구체적으로 드려진 희생 제물, 서원을 말합니다. 민수기 30장 1-10절 말씀을 근거로 하나님께 드린 서원은 부모님을 포함하여 어떤 개인적인 헌신보다 앞선 것으로, 한 전통은 어느 사람이 자신의 모든 것은 다 고르반이라고 불러도 된다고 하였습니다. 문제는 전통을 지킨다고 하면서 더 큰 사랑의 율법을 무시해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시 저들은 그 부모가 와서 도움을 청할 때에 실제로 하나님께 드릴 것도 아니면서, 그렇게 말함으로 부모에게는 허락하지 아니한 것입니다. 마음이 부모를 공경하기 싫은 것입니다. 즉 전통을 핑계삼아 책임을 회피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폐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당시 유대인들로부터 최고로 존경받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향하여 그들의 죄를 지적하고 계십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함이 아니라, 그저 말씀보다 전통을 더 생각하기에 문제가 된 것입니다. 속 마음이 부패해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신령과 진정(in truth)으로(요 4:24)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마음은 오직 그 마음이 하나님께 속해 있을 때입니다. 하나님께 속해 있는 마음 만이 죄로부터 정결함을 받은 마음이요,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칭함을 받은 마음입니다. 손을 씻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마음을 씻는 것입니다. 즉, 참되고 경건한 예배란 내면의 하나님 사랑과 올바른 자세이지 외형적인 말이나 행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일 뿐만 아니라 한 주간 올바로 신앙생활할 수 있는 비결도 우리의 마음이 온전히 하나님께 향하여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앞으로 메시아를 통하여 주실 새 언약에 대해 예언하시면서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겔 36:26-27)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로 영접하고 회개하기 전에는, 성령으로 새롭게 되기 전에는 바리새인이나 서기관처럼 위선적이고 피상적인 자기 의를 넘어설 수 없습니다. 원죄로 인한 속 마음의 타락이 변화될 수 없습니다. 절대로 오해하지 마십시오. 예식이, 의식 자체가 나쁜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때때로 좋은 전통이 우리를 고상하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속성들을 기억하게 하고, 경외하게 합니다. 전통은 율법을 더 잘 지킬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하든지, 변질시키게 되면 그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요, 올바른 예배와 삶의 장애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미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었다 하더라도, 사탄 마귀의 끊임없는 공격으로부터 이겨내며, 진실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성령의 인도를 받아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도, 산상수훈 설교를 통하여도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 5:8)라고 강조하셨듯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입술의 말보다도 속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전통을 지키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오늘날의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다른 사람의 신앙생활하는 모습에 대하여 우리의 잣대로 비판하여 부끄럽게 해서는 안됩니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의 은혜 안에서 자유하게 해야 합니다. 미성숙한 모습을 품어야 합니다. 그들이 짓는 죄를 지적하기 전에 우리 안의 비슷한 죄가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약 1:23-25)고 하였습니다. 죄를 모르는, 죄가 없으신 예수님은 누구나 판단하고 심판(정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같은 죄인이기에 주의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을 변호하며 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비판할 이유가 없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죄를 짓고 있다고 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은 우리를 죄의 권세로부터, 사탄 마귀의 공격으로부터, 세상 미신으로부터 우리를 자유하게 합니다. 확실히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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