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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4-11-28 (목) 06:47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157    
우리로 형통하게 하시리니 (느 2:11-20)
어떤 분들은 무슨 일을 계획은 세우고, 준비를 다 한 것 같은데 실제로 일을 시작하지는 못하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미루고 미루다 그만 그 일을 성취하지 못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작이 반이다’ 라는 격언이 생긴 것 같습니다. 머리로만, 말로만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분들입니다.
지난 번에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위하여 멀리 페르시아 수산성에서 용의주도하게 준비하는 느헤미야의 모습을 보았습니다(2:1-10). 기도하고 기다리며, 미리 일어날 일들을 예상하며 치밀하게 준비하였던 느헤미야였습니다. 그리하여 왕의 질문에 응답과 요청을 잘 함으로써 이제 허락을 받아 예루살렘에 도착하게 됩니다. 오늘은 드디어 일을 시작하는 느헤미야의 모습에서 은혜를 받기 원합니다. 하나님이 그의 일을 어떻게 형통하게 하셨을까요?

먼저, 그는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3일을 기다립니다. 11절에 “내가 예루살렘에 이르러 거한지 3일에” 라고 하였습니다. 지난 번에도 보았지만, 오늘도 서두르지 않는 느헤미야의 모습을 봅니다. 아마 보통 사람 같았으면, 흥분이 되어 속히 일을 시작하려 하지만 느헤미야는 3일을 기다렸습니다.
그가 무엇하며 기다렸겠습니까? 제가 믿기로 또 기도하며 기다렸을 것입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손길을 의지하는 모습입니다.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홀로 의미있는 시간을 보냅니다. 누군가가 말하기를 ‘한 사람의 참된 인격은 그 사람이 홀로 있을 때, 아무도 그를 바라보지 않을 때에 나타난다’ 라고 하였습니다. 공감이 가는 옳은 이야기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혼자 있을 때의 모습, 인격이 우리가 어떤 인격자인지 나타냅니다. 바로 그 때에도 바라보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CORAM DEO) 신실한지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그 홀로 있는 시간에 하나님께서 느헤미야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그리고 나서 현장 답사를 나섭니다. “내 하나님이 내 마음을 감화하사 예루살렘을 위하여 행하게 하신 일을 내가 아무 사람에게도 말하지 아니하고 밤에 일어나 두어 사람과 함께 나갈쌔 내가 탄 짐승 외에는 다른 짐승이 없더라”(12절) 하였습니다. 몰래 혼자서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아니하고 밤에 두어 사람과 함께 성을 돌아봅니다. 보다 자세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하여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입니다.
바로 이것이 느헤미야가 형통할 수 있었던 큰 비결이었습니다. He was faithful behind the scenes! 혼자 있을 때, 아무도 보지 않을 때에 신실하였습니다.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셨습니다.

주신 지혜를 따라 13절부터 15절에서 설명하고 있는 대로, 예루살렘 중간 서쪽에 있던 골짜기 문에서 말을 타고 나와 성벽을 따라 죽 내려갔습니다. 가다 보니 처참하게 무너져 버린 성벽의 잔해들이 보입니다. 무너진 성벽을 바라보며 아픈 마음으로 분문(Dung Gate)까지 이릅니다. 분문은 고상한 표현입니다. 쉽게 말하면 똥문입니다. 당시만 해도 성 내에서 나오는 모든 인분(人糞)은 이 문을 통과하여 폐기하였습니다. 이 분문 밑에는 골짜기가 있었는데 이 골짜기의 이름이 ‘힌놈의 골짜기’입니다. 예루살렘이 있는 모든 쓰레기와 분뇨들이 이 곳에 버려졌습니다. 그러므로 힌놈의 골짜기는 완전히 저주받은 땅인 셈입니다. 이 골짜기에서는 사시사철 생활 쓰레기 및 각종 오물들을 태우는 연기가 끊이지 않고 피어 올랐고 악취 역시 끊일 날이 없었습니다. 23년 전 저도 이스라엘 순례하면서 이 곳을 통과해 보았습니다. 분뇨 같은 것은 보지 못했지만 아직도 쓰레기들이 즐비하게 널려 있었고 악취들이 풍겼습니다.
이 분문에서 예루살렘 성 동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샘문이 나옵니다. 샘문 안에 있는 셀라 못 바로 옆에는 예수님께서 소경의 눈을 뜨게 해 주신 실로암 못이 있습니다. 샘문 옆에 있는 골짜기는 기드론 골짜기라고 합니다. 이 기드론 골짜기를 건너가면 바로 그 앞에 산이 하나있는데, 바로 그 산이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날 밤 기도하시던 겟세마네 동산입니다.
샘문에서 곧장 위로 올라가다 보면 실로암 못과 연결된 ‘파서 만든 못’ 이라는 왕의 못이 있는데 유명한 히스기야 왕이 물을 성 중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지하로 약 4 마일 정도의 터널을 만들어 끌어 올린 못입니다(왕하 20:20). 그 곳부터는 수풀이 너무 우거져서 말을 타고는 도저히 지나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거기서부터는 느헤미야가 걸어서 올라가 성벽을 살펴본 후에 돌이켜 골짜기 문으로 돌아왔습니다.
즉, 느헤미야는 현장 답사를 통하여 예루살렘 성이 어느 정도나 훼파되었는지 살피고 성 주변의 중요한 지점을 둘러보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또다시 느헤미야의 용의주도한 모습을 봅니다. 하나님 앞에서 주의 일을 할 때에 믿음으로 일을 밀고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을 잘 파악하고, 정보나 자료를 수집하여 용의주도하게 준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답사를 하고 돌아온 느헤미야는 그 날 밤에는 아무에게 이야기를 하지 않고(16절), 다음 날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아 놓고 말합니다. 혼자 만의 시간을 가진 후에는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하여 도전합니다. 왜 성벽을 재건해야 하는지 동기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독불장군 식으로 혼자서 성벽을 재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17절에 “후에 저희에게 이르기를 우리의 당한 곤경은 너희도 목도하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무하고 성문이 소화되었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여 다시 수치를 받지 말자” 라고 합니다. 우리 말 번역에는 처음에 한번만 있고, 두번씩이나 빠져 있는 대명사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라는 말입니다. 17절의 정확한 번역은 ‘우리가 당한 곤경은 너희 모두가 다 보는 바와 같다. 예루살렘이 황무하고 성문이 다 불타 버렸으니 자, 이제 우리 함께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여, 다시는 우리가 수치를 받지 말자’ 입니다. ‘내가’ 도 아니고 ‘너희가’ 도 아닙니다. ‘우리가’ 입니다. 즉, 여태껏 그렇게 방치하여 두었다고 그들을 비난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 함께 해야 할 일이고, 우리 함께 수치를 당하지 않아야 하겠다는 공동체 의식입니다. 바로 이러한 말이 백성들로 하여금 성벽을 재건하여야 하는 동기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들 내적으로 품고 있는 속 마음을 헤아린 것입니다. 그래서 온 백성이 이 일에 동참하도록 하였습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소원을 그 모든 백성들의 마음에 확산시켰습니다. 저변 확대에 성공하였습니다. 그들에게는 아직 남아 있는 선민 의식, 애국심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벽 재건에 동참할 것을 권하면서 그간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떻게 도우셨는지를 고백합니다. “또 저희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고하였더니”(18절상) 하였습니다. 성벽 재건을 못하게 하던 아닥사스다 왕이 마음이 바뀌어 자신에게 중건하도록 허락을 하고, 조서를 주며, 필요한 재목, 물품들을 제공하였는가를 말한 것이지요. 그러자 모든 백성들이 크게 호응하며 일어섰습니다. “저희의 말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18절하)! 이제 모두 힘을 내어 선한 일인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러자 이 일을 반대하는 세력들이 나타납니다. 10절에서도 느헤미야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근심하던 무리들이 전면에 나타납니다. “호른 사람 산발랏과 종이 되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이 이 말을 듣고 우리를 업신여기고 비웃어 가로되 너희의 하는 일이 무엇이냐 왕을 배반코자 하느냐”(19절) 합니다. 모두다 힘을 내어 일을 시작하려 하는 바로 그 순간 어김없이 등장하는 사탄 마귀의 하수인들입니다. 성벽 재건 계획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비난합니다. 업신여기고 비웃으면서 ‘너희가 정신이 나갔다. 그 일이 어떤 일인데 해 낸다는 말이냐. 불가능한 일이다. 못할 것이다’ 라고 하면서 그 일은 아닥사스다 왕을 배반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 때에 느헤미야가 어떻게 하였을 것 같습니까? 왕의 조서를 내어 보이며 ‘이것 똑똑히 보아라. 왕이 이미 허락을 하였다’ 하지 않았겠습니까? 더 나아가 그들에게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로 형통케 하시리니 그의 종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 오직 너희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이 없고 권리도 없고 명록도 없다”(20절) 하였습니다.
느헤미야는 자신과 예루살렘 백성들이 성벽을 재건하는 일이 하나님의 뜻으로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지금 옳은 일에 방해하는 어느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았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일을 반대하는 그들과는 상종조차 금하였습니다. 오로지 하나님 외에는 그 일을 막을 분이 없음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궁금하지 않습니까? 느헤미야 주위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그것 보십시오. 사람들은 진정으로 새 성벽을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위에 반대가 너무 심하니까 더 이상 이 일을 추진하지 맙시다. 벌써 성벽이 무너진 채로 살아온 지가 150년 이상 되었는데 뭐 새삼스럽게 새로 중건하려고 합니까? 지금까지도 그냥 그렇게 지내왔는데 그만 둡시다’ 라고 몇 사람이나 이야기하였는지 궁금하시지요. 그런 사람들이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조금도 자신의 희생이 없이, 힘드니까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생각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지 말자는 사람들이 말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이 원래 생각대로 밀고 나갑니다.
모든 지도자에게 있어야 할 자질 가운데 꼭 필요한 것이 자신에 대한 혹은 하나님의 일에 대한 비난(criticism)을 잘 다루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지도자는 그 비난에 대하여 바른 태도로 판단합니다. 그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옳은 비난 같으면 잘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으면 지혜롭게 무시합니다. 지금 느헤미야를 대적하는 무리들은 이스라엘 백성들도 아닙니다. 그러니 백성들에게 ‘여러분들, 그들은 우리 공동체 사람들이 아닙니다. 무시하고 나갑시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세력들을 무시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한 가지 아셔야 할 것은 그들이 거기서 떠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벽 재건이 끝날 때까지 거기 있었습니다. 공사가 반쯤 진행되었을 때에도 “저들의 건축하는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느 4:3)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저들은 성벽 바깥 쪽에서 소리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가 20절에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고 명록(종교적 예식에 참여할 권리)도 없다고 한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우리의 눈이 여러 군데로 쏠릴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눈을 맞출(fix)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실망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도 실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자꾸 괴롭히는 사탄 마귀에게 눈을 맞출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계속 힘만 들게 됩니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영적으로 탈진하게 됩니다. 혹은 여러분 자신에게 눈을 고정할 수도 있습니다. 그 때에는 교만에 빠지게 되고, 자꾸 다른 사람과 비교하게 되어 버립니다. 균형을 잃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눈을 고정해야 합니다. 절대로 실수가 없으신 분에게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모든 일의 Director 이신 분에게 눈을 맞추어야 합니다. 어디를 보고 나아갈지는 선택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여러분의 눈이 목표가 없이 방황하면서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있다면, 하늘의 하나님에게로 눈을 맞추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삶의 주관자에게 눈을 맞추시기 바랍니다. 종은 주인에게 눈을 맞추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주께서 우리로 형통하게 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느헤미야의 가슴 속에 있던 작은 소망은 예루살렘 모든 백성들의 소망이, 꿈이, 비전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용의주도한 계획이 이제 드디어 실천에 옮겨져서 모두 함께 일을 시작하게 됩니다. 물론 반대에 부딪치지만 결코 하나님의 일을 중단하게는 못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도자가 하나님 앞에서 가져야 할 중요한 자질은 믿음이요, 소망입니다. 모름지기 꿈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도자는 무너진 성벽을 보면서 ‘야! 힘들겠구나. 안되겠네’ 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지도자가 하나님 나라 일을 위해서는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백성들에게 외칠 때 일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을 때에, 그것은 모든 백성들에게 재앙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자신의 부흥이나 가정의 부흥, 교회의 부흥이 모두 가능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담대한 모습으로 나아가는 은혜의 종들의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느헤미야 한 사람이 그런 믿음과 소망을 확실히 가졌을 때에 그것이 모든 사람의 믿음과 소망으로 확대되었듯이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홀로 있는 시간이 너무 중요합니다. 아무 사람도 보지 않는 그 시간에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계실 때에 여러분의 인격이 드러납니다. 그 때에도 신실하십시오. 정직하십시오. 홀로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하십시오. 은혜를 주십니다. 지혜를 주십니다. 그리고 잘 준비하십시오. 주의 깊게 생각하고 계획을 세우십시오.
그리고 지도자라면 바라보는, 따르는 자들과 함께 하십시오. 그들의 마음에 함께 일할 동기를 부여하십시오. 그리고는 시작하십시오. 미루지 마십시오. 또한 방해하는 세력들이 나타날 텐데 잘 대처하십시오. 삶의 초점을 하나님께 맞추십시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라는 적극적인 믿음을 가지고, 꿈을 이루어 주실 소망 가운데 앞으로 전진하십시오. 느헤미야에게 역사하셨던 하나님,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동일하신,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형통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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