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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4-12-01 (일) 07:17
분 류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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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149    
신앙고백이 진실하다면 (막 8:27-33)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가르치는 사역의 절정, Pivot Point를 이루는 사건입니다. 배우는 학생들이었던 12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중요한 질문을 합니다. 모든 인간이 응답을 해야 할 궁극적인 질문,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냐?” 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영원한 운명이 달린 가장 중요한 질문입니다. 어느 영혼이든지 언젠가 이 질문에 반드시 대답을 하여야 합니다.
벳세다에서 소경을 고쳐 주신 후(22-26절) 이제 남은 시간이 얼마 없는 것을 아시는 주님께서는 군중들과 종교지도자들을 피하여 제자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시면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른 것입니다(27절). 가이사랴 빌립보 지경은 당시 그 아들 헤롯 빌립이 분봉왕으로 다스리던 곳으로 갈릴리 호수 북쪽으로 약 25마일 떨어진, 다메섹에서 남서쪽으로 40마일 떨어진 요르단 강가의 아름다운 평원이었습니다.

본문의 사건은 공관복음에 다 기록되어 있는데, 병행구절인 누가복음 9장 18절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 중요한 질문을 하시기 전에 홀로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27절)고 물으시자, “가로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28절) 고 대답합니다.
서언에서 언급하였듯이 예수님 이 땅에서의 사역의 우선순위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가르치고 계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자신을 누구라 하는지 묻고 있습니다. 여기 사람들이란 유대인들, 유대주의자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그 사람들의 생각을 모르는 바가 아닙니다만, 제자들이 알고 있는가 test하는 것입니다. 불신앙과 외식으로 가득찬 유대주의자들의 대답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의 생각이 어떠한지 관심이 있으신 것입니다. 그동안 그들도 주님의 교훈도 들었고, 기적도 체험하고 나서 사람들의 주님에 대한 판단이 어떠하다고 묻는 것입니다.
그러자 어떤 사람은 세례 요한이라고 한다고 제자들이 대답합니다. 아마 자신의 불륜을 죄라고 지적한 세례 요한을 목 베어 죽인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의 두려움(마 14:1-2)에 공감하는 자들과, 어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난 것으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이는 엘리야, 즉 죽음을 보지 않고 불수레를 타고 하늘로 올라간 엘리야가 다시 세상에 온 것으로 믿었습니다. 구약 선지자 가운데 가장 위대한 자로 여긴 엘리야에 대한 예언,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말 4:5)라는 말씀이 성취된 것으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이들은 유대인들 사이에서 존경받는 구약의 선지자 중 하나인 예레미야로 여겼습니다(마 16:14).
이 모든 경우가 다 예수님을 오실 메시아의 선구자(forerunner)로 여길 뿐이지, 메시아로는 생각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부인하지는 않았지만 그를 구세주로 영접하지는 못했습니다. 그 날 이후로 오늘날까지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높이 평가하며, 그저 성인으로 여길 뿐이지 그의 하나님 되심이나 주권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제자들로부터 사람들이 자신에 대하여 어떻게 말하는지 들은 주님은 이제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29절)? 제자들은 그런 대답이 부적절함을 알았기에 그들을 대표하여 베드로가 예수님에 대해 가장 위대한 고백을 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29절하)! 병행구절인 마태복음에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마 16:16) 하였습니다. 이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아주 간단하고도 결정적인 고백입니다.
그는 먼저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합니다. 그리스도란 히브리어의 메시아의 헬라어 역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수차례 예언한, 이스라엘의 구세주, 최상의 기름부은 자, 대 선지자, 오실 대제사장,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를 뜻합니다. 베드로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예수님을 가리켜 메시아로 고백합니다. 안드레가 처음 예수를 만나고 나서 그를 메시아로 고백했으며, 나다나엘은 주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요 1:41, 49)라고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료 유대인들처럼 제자들도 메시아가 오면 하나님의 백성들을 그 대적들로부터 구원하여 이 땅에 그의 나라를 영원히 세워 통치할 메시아로 가르침을 받아 왔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그 놀라운 능력으로 로마 정권을 대항하여 사용하지 않으심을 보고 정말 예수님이 메시아인지 의아하게 생각하였었습니다. 그의 겸손함, 온유함 등은 그들의 고정관념의 메시아와는 맞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메시아가 핍박과 조롱을 받고 죽임을 당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자신이 이 땅을 떠나서 다시 올 것이라고 할 때에 도마는 대경실색하며 모든 제자들을 대표하여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니이까”(요 14:5)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또 이 위대한 신앙고백 안에는 예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그 분은 메시아, 그리스도(구세주)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이 온 우주 만물의 창조주시며 주권자이십니다. 무슨 전설이나 신화에 나오는 추상적인 신이 아니라 살아계신 참 하나님이십니다. 물론 베드로가 잠시 후 주님에 대하여 한 말이나 행동을 보면 이 고백을 할 때에는 삼위일체의 하나님, 예수님의 전체 사역의 본질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실수합니다.
하지만, 사실 누구든지 예수님을 참 하나님으로, 구세주로 고백하는 자들은 영적으로 영원히 축복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 고백을 하게 하신 이가 육신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라고 하였습니다(마 16:17).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할렐루야!

지난 2000여년 교회 역사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이렇게 올바른 신앙고백하지 못하는 이단이 얼마나 많습니까? Christian Science 에서는 ‘예수는 마리아의 하나님에 대한 영적 교통의 소산이며, 그 잉태가 영적인 것으로, 그리스도도 형체는 없으며 영물이며, 예수는 하나님은 아니다’ 라고 합니다. 영지주의자들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몰몬교에서는 예수는 ‘하나님 아버지와 마리아의 육체적 관계의 결과 탄생한 신으로, 사람도 누구든지 그렇게 신이 될 수 있다’ 라고 하며, 통일교에서는 ‘예수는 인간 속의 나 자신이며 신적 표상이다. 내가 그리스도라고 긍정함으로써 너 자신에게 계시하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예수는 인간이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바로 천사장 미가엘이 육신으로 나타난 것이며 하나님이 그를 창조했다. 영원히 죽었다. 영적으로는 부활했어도 육체로는 부활하지 못했다’고 하였습니다. 제7일 안식일 재림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와 똑같은 타락한 인성을 입었다. 하나님은 아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유일신교(Unitarianism)나 뉴 에이지 운동에서는 예수는 사람이었다. 그의 출생은 신적인 것이었다. 우리의 출생도 예수의 출생처럼 신적이었다’고 하였습니다.
나폴레옹도 예수님을 가리켜 ‘I know men and Jesus is no mere man (내가 인간들을 아는데, 예수 그는 단지 특별한 인간이었다)’고 인정할 뿐이었습니다.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그렇게 비슷하게 말하고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저 성인 정도로만 알고 고백합니다. 이 모두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하는 사탄의 소리입니다.
한편, 초대교회 때에 로마의 심한 박해로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땅을 판 지하 묘지, 카타콤에서 살다가 죽은 많은 신실한 신자들이 있었습니다. 로마 주변에 약 10여 곳이 있다고 하는데, 그 길이가 350-900마일로 약 4-6층으로 되어 있고, 약 400년 간을 그들이 사용했는데 약 7백만의 묘가 있다고 합니다. 그 카타콤에 매장된 자들의 비문 등이 많이 발굴되어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거기 나타난 대부분의 비문(묘비명)이나 조각은 모두 성도들의 순교, 부활 소망, 영생에 관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귀한 것이 그들의 신앙고백의 표시인 익투스(ἰχθύς), 물고기의 표시입니다.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 우리의 구세주”라는 헬라어의 머리글자를 모은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베드로의 고백과 동일한 이 신앙고백이 우리가 고백하는 사도신경의 요점이기도 합니다.   물론 물고기 모양은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 4:19)고 하신 말씀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아직 때가 되지 않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경계하신 후(30절),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저희에게 가르치시되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31-32절상),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들고 ‘그런 말씀하지 마시라고’ 간청합니다 (32절하). 그랬더니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가라사대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33절) 하셨습니다. 조금 전만 하더라도“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29절)라고 위대한 고백을 하였던 베드로가 사탄의 도구가 되어버린 것은 우리에게 또 하나의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즉, 신자가 되었다 하더라도 성령의 조명에 의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그 말씀을 순종하려는 마음이 없이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베드로처럼 신자들이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의 뜻을 고집하면 곧 사탄 마귀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충분히 그럴 수가 있음을 보여주는 본문의 내용입니다.
지금 주님께서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게 된다고 하십니다. 이 세 부류의 유대종교 지도자들은 바로 유명한 산헤드린 공회의 구성원들이었습니다. 장로들이라 함은 이스라엘에 산재한 12지파의 지도자들이며, 대제사장들은 사두개인들이며, 서기관들은 대부분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당시 권력을 가진 자신들의 위치에 위협을 느끼며, 예수님을 배척하고 거역하기 때문에 그들의 손에 의하여 많은 고난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그들의 손에 죽임을 당합니다. 범죄를 증명하는 그 어떤 것도 발견하지 못한, 거짓 고소에 의해 처형당합니다. 그러나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반드시 제 3일에 살아날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예수님에게 그런 예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베드로에게 사탄아 물러가라고 하십니다. 자신 더러 사탄이라니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광야에서 사탄에게 세번째 시험을 받으실 때에도 사탄에게 꼭 같은 말을 하였습니다(마 4:10). 그때부터 지금까지 사탄은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주님의 일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오늘도 신자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뜻과 반대가 되는 생각을 하게 하며, ‘내 길이 하나님의 길보다 더 낫다’ 라고 속삭입니다. 사탄이 베드로도 사용하여 하나님의 뜻을 거역했다면, 어떤 신자도 유혹하기에 충분히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에 동의하는 듯 좋아했던 신자가 금방 돌아서서 사탄의 계획을 따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따른다면, 하나님 편에 있다 가도 금방 사탄의 편에 설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을 가리켜 누구라고 합니까? 제자들처럼, 카타콤에서 신앙을 지켜간 성도들처럼, 개인적으로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요 나의 구주시다’ 라고 하십니까? 초대교회 신자들은 이 신앙고백 때문에 순교의 피를 흘리고 죽었습니다. 오늘도 저 북한 땅에서는 이 위대한 신앙고백 때문에 진실한 성도들이 수없이 핍박을 받으며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민 생활이 많이 힘드십니까? 초대교회 당시보다는, 북한에서 고생하는 성도들 보다는 훨씬 낫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여러분이 믿는 예수님을 오늘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리스도로 고백한다면 본문의 베드로와 같은 실수를 하면 안됩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에 왜 베드로가 사탄에게 넘어갔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십니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33절하)! 그가 사탄에게 이용당한 이유는 하나님의 일보다는 사람의 일에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짧은 생각으로, 죄성으로 생각하였기에 하나님의 뜻을 적대하고 사탄의 편에 서서 말하였던 것입니다. 자신의 관점 만을 주장할 때에 더 이상 하나님의 관점을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여러분들이 세 가지를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구속 계획은 사람의 계획과는 너무 다르다 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우리는 오늘 잘 하다 가도 내일 실패할 수 있는 연약한 존재이기에 계속 하나님의 말씀을 먹으며, 양육을 받고, 기도하지 않으면 사탄의 유혹에 빠져 넘어지는 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우리를 훈련시키시고 정결케 만드시는 데에는, 예수의 제자가 되는 데에는 반드시 고통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다음 주일에 살펴볼 8장 마지막 문단의 제자도입니다.
아무쪼록 예수님에 대해 익투스(ἰχθύς), 진실한 신앙고백이 있다면 말씀을 올바로 깨닫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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