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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4-03-17 (월) 09:43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640    
마음으로 우리를 영접하라(고후 6:11-13, 7:2-4)


우리들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잘 유지하려면 무엇보다도 의사소통(communication)이 잘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의사소통이 자기 방식대로, 자신이 해 오던 대로만 하려 하기 때문에 잘 소통이 되지 않아 상대방에게 의혹을 남기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계속되면 결국 서로를 불신하게 되어 관계가 깨어지게 됩니다.
여태까지 살펴본 고린도서에 의하면 사도 바울과 고린도교회 교인들 중 사이에 불신의 장벽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니 그저 서로 담을 쌓고 지내는 정도가 아니라 그들 중에서는 바울을 비방하고 공격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바울에게는 큰 고통이었습니다. 근본적인 이유는 바울이 전하는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외에는 아무 것도 인정하지 않고, 죄 문제를 많이 지적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 중에는 바울이 자기들의 신앙을 의심하는, 믿지 못하는, 사랑이 없는 사람처럼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들 가운데 유대주의자들의 영향을 받아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지 않는 자들과 거짓된 교훈을 받아들여 진리에서 떠나는 자들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지난 주일에 살펴본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1절)는 간곡한 말을 하였던 것입니다.

사실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의 영적 아버지였습니다. 복음으로 그들을 낳았고, 고린도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바울과 그들 사이에 오해가 생겨서 소수이긴 하지만 그들의 마음이 닫혀버린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악영향이 교회 전체에 미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었으니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라”(11-12절)고 합니다. 늘 그러했듯이 바울은 진솔하게 말합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도, 죄에 대해서도 그렇게 정직하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을 향한 마음도 진솔하게 표현합니다. 애초에 주님을 몰랐던 고린도인들이었으나 바울을 만나서 주님을 알게 되고, 믿게 되었던 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악한 사람들의 영향을 받아 마음을 닫아버린 것이었습니다.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은 그들을 향하여 넓은 마음으로 품고 사랑하고 있는데, 그들의 마음이 좁아진 것이었습니다. 아마 바울이 자꾸 죄 문제를 설교하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요즘도 많은 사람들이 축복의 설교, 위로와 칭찬의 설교를 듣기 원합니다. 죄를 지적하며 회개하라고 하는 설교를 싫어합니다. 하지만 설교자는 양들이 듣기 좋아하는 설교만 할 수 없습니다. 양들이 듣기 좋아하던 싫어하던 성경 말씀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이 있어서 사람을 변화시키며,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메시지 만이 사람을 회심시킬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참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일반적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주기만 한다면 둘 사이의 관계는 회복이 되고, 좋게 유지가 되는 것입니다. 부자 관계에서나 부부 관계에서도 그렇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는다면 사람은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과 그들과의 관계가 회복이 되려면 자신의 마음을 그들이 알아주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양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13절)고 부탁합니다. 만약 그들이 바울을 영적 아버지로 인정한다면 자녀로서 보답하는 자세로 마음을 넓히라는 것입니다. 인정하지 않더라도 좀 그 마음을 알아주라는 것입니다. 사랑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자녀가 부모의 마음을 알아준다면 어느 자녀가 부모를 공경하지 않겠습니다. 공손히 부모의 말을 잘 들을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으로 우리를 영접하라 우리가 아무에게도 불의를 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해롭게 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속여 빼앗은 일이 없노라”(7:2)고 합니다. 만약 그들이 오해를 풀고, 바울의 진심을 알아준다면 마음으로 바울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 동안 거짓 선지자들의 영향을 받아 바울의 인격 자체를 의심하고 있기 때문에 불신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강조합니다. 자신은 어느 누구에게도 불의를 행한 적이 없고, 어느 누구도 해롭게 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속여서 무엇을 빼앗은 적도 없다라는 것입니다. 다만 죄에 대하여 지적하고, 십자가를 강조한 것은 그들을 싫어하거나 무시해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정말 그들의 영혼을 사랑해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들 중에 거짓 교훈을 전한 자들이 고린도교인들의 영혼을 망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귀에 듣기 좋은 설교로 그들을 인정하고 칭찬해 주니 좋아서 거짓 선지자들, 즉 악한 사람들을 오히려 잘해 주었던 것입니다. 사람은 간사해서 자기를 알아주고 칭찬해 주는 사람을 위해서는 어떤 희생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을 하며 마음을 활짝 엽니다. 그래서 아첨하는 사람들이 대접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의를 행하는 것이며, 영혼을 해롭게 하는 것이며, 속여서 빼앗는 것입니다. 사탄에게 속아 넘어가는 것입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내가 정죄하려고 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말하였거니와 너희로 우리 마음에 있어 함께 죽고 함께 살고자 함이라”(3절)고 합니다. 무슨 말을 하고 있습니까? 바울이 죄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그들의 죄를 지적하는 것은 그들을 정죄하려는, 심판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인간들 속에는 죄성이 있기 때문에 한번 은혜를 받고 나서도 얼마든지 진리를 떠날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를 지었다면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히 6:4-6)고 하였기에, 타락하여 지옥에 가지 말고 함께 천국에 가자는 말입니다. 속히 진실로 회심하여 자신처럼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패한 이유가 다음 세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가르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제대로 전수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메시아에 대한 소망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음을 가르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저절로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개개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세주로 영접해야 했습니다.
오늘날 교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 출석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하나님 나라 백성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가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자녀들이 자동적으로 하나님 나라 백성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회심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교인으로, 집사로, 권사로, 장로로, 목사로 일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진실로 죄인임을 깨닫고, 회심한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진정한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삶의 방향이 바뀌어짐을 경험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를 정말 깨달은 사람만이, 하나님 아버지의 그 큰 사랑을 정말 깨달은 사람만이, 부활을 확실히 믿고 소망하는 사람만이 참된 하나님 나라 백성이요, 하나님의 자녀인 것입니다.
이렇게 진심으로 회심하여 변화를 받은 사람들이 한 사람, 한 사람 늘어가는 것이 진짜 교회의 자랑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할렐루야!
바울은 정말 그들을 사랑했기에 그들과 완전히 하나가 되었다고 하면서 그들을 향한 자신의 헌신을 강조합니다. “너희로 우리 마음에 있어 함께 죽고 함께 살고자 함이라”(3절하)! 진정한 아버지의 마음이, 어머니의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마치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 가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는 곳에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한 것처럼, 온전히 헌신이 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함께 죽고 함께 살고자 함이라” 할 정도면 그들도 마음을 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어서 바울은 “내가 너희를 향하여 하는 말이 담대한 것도 많고 너희를 위하여 자랑하는 것도 많으니 내가 우리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치는도다”(4절)라고 합니다. 여기 “담대한 것도 많고”라는 뜻은 믿어준다는 말입니다. 비록 그들이 바울을 오해하여 비방하고 해도 믿는다는 것입니다. 뭐 그들이 믿을만해서 믿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그들은 죄를 짓기도 하고, 불신앙적이며, 헌신이 되지 않았어도, 하나님을 믿기에 믿는다는 것입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 1:6)고 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하여 고린도교회에 복음의 씨를 뿌리게 하시고, 물을 주게 하셨으니 반드시 열매를 거두게 해 주실 줄 믿었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자랑하기까지 한다고 합니다. 아니 자랑하는 것도 많다고 합니다. 물론 그들의 죄된 모습이나 미성숙한 모습, 불신하는 모습 등을 자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연약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고린도교회를 향한 뜻을 이루어 가고 계심을 자랑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바울은 디도에게 고린도교회를 자랑했습니다. “내가 그에게 너희를 위하여 자랑한 것이 있더라도 부끄럽지 아니하니 우리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다 참된 것 같이 디도 앞에서 우리의 자랑한 것도 참되게 되었도다”(7:14)라고 하였습니다. 아직도 믿지 않는 몇 사람들과 유대주의자들을 제외하고 대다수는 그래도 바울의 자랑거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다른 교회들에게도 자랑하였는데, 자신이 그들을 자랑한 것처럼 증거를 보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여러 교회 앞에서 너희의 사랑과 너희를 대한 우리의 자랑의 증거를 저희에게 보이라”(8:24)고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환란 가운데서도 그들 때문에 위로를 받으며 기뻐한다고 합니다(4절하).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그렇습니다. 상대방의 진심을, 진실을 알아준다면, 믿어준다면 의사소통에 좀 문제가 있어도 관계가 좋아질 수 있습니다. 회복될 수 있습니다. 마음을 활짝 열고 이해하면서 말을 할 수 있다면 말입니다. 즉 관계가 깨어졌을 때, 갈등이 생길 때 해결책은 열린 마음입니다. 사랑의 마음입니다. 사람을 품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에게 마음을 넓게 열라고 합니다. 자신의 마음을 받아들이라고 합니다. 사랑을 받으라고 합니다. 아비가 자녀를 사랑하듯 사랑한다고 합니다. 불의를 행한 것도 아니고, 해롭게 하려고 한 적도 없고, 속인 적도 없다고 합니다. 정죄하고 심판하려고 죄를 지적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죄가 있음을 깨닫고 십자가의 은혜를 받아들이라고 합니다. 얼마나 자신이 그들에게 헌신이 되어 있는지 함께 죽을 수도 있고, 함께 살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들에게 대하여 여태껏 부정적으로만 이야기한 것처럼 들리지만, 긍정적으로도 믿고 있다고 합니다. 그들을 자랑도 하고, 자기의 위로와 기쁨이 되기도 한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만약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그 진심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바울은 곧 하나님의 마음을 스스로 표현한 것입니다. 교회를 다니고, 직분을 맡았다고 해서 모두 다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죄에 대한 회개, 회심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십자가의 사랑을 경험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어야 합니다. 성령을 받았어야 합니다. 그래서 진실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고백하며 받아들였어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는 이미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을 깨닫고, 마음을 활짝 열고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주님으로 받아들이신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도 마음을 넓게 하십시오. 넓은 마음으로 품으십시오. 우리 교회 안에서든지, 가정에서든지 어떤 갈등이 있다면 누가 옳고 그른지 가리기 전에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며 품고 용납하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참 사랑입니다. 아가페 사랑입니다. 그리하여 관계가 회복이 되고, 이전보다 더 관계가 깊어지기를 바랍니다. 내 관점에서만 생각해서 생긴 오해를 가지고, 의사소통을 잘 하지 못하여 생긴 문제라고 한다면 바울처럼 진실을 토해내시기 바랍니다. 여전히 사랑하고 있기에 믿는다고 말하십시오. 상대방이 완전해서가 아닙니다. 내 마음에 들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어느 누가 완전합니까? 어느 누가 하나님 마음에 쏙 들겠습니까? 우리는 다 부족합니다. 제발 마음을 넓히십시오. 상대방을 받아 주십시오. 우리 하나님처럼 그 모습 그대로 말입니다. 우리는 못하지만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을 하실 수 있습니다. 성령님께 순종하십시오. 따르십시오. 무조건적인 사랑이 사람을 감동시킵니다. 변화시킵니다. 할렐루야!
저는 부족하지만 정말 바울처럼 여러분에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을 향하여 마음이 활짝 열려 있습니다. 여러분의 영적 아비로서 말합니다. 제발 여러분도 마음을 넓히시기를 바랍니다. 진솔한 마음으로 저를 영적 아비로 받으십시오. 여러분의 복입니다. 대부분 여러분들도 그렇겠지만, 저는 어느 교인에게도 과거에 불의를 행한 적이 없고, 해롭게 한 적이 없고, 속인 적이 없습니다. 거꾸로 불의를 당한 적은 있고, 해를 받은 적은 있고, 속아본 적은 있었어도 말입니다. 말에 실수 한 적은 있었어도,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복음과 부활의 소망만을 설교하기 원합니다. 성경 말씀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그대로 설교하기 원합니다. 성경이 죄라고 하면 죄를 설교하고, 회개하라고, 돌이키라고 권면하기 원합니다. 성경이 죄인을 사랑하며 위로하라고 하면 그대로 전하기 원합니다. 물론 앞으로도 두렵고 떨린 마음으로 여러분의 목사로서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려고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도 여러분들을 사랑하기에, 믿고 싶고, 자랑하고 싶고, 목회가 힘들어도 여러분들을 생각하며 위로를 받기 원합니다. 여러분들이 제 기쁨이 되기를 원합니다. 아니 우리 모두 서로 그런 은혜가 충만하여 우리 교회가 참된 사랑의 공동체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정말 함께 죽고 함께 살고자 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이런 교회를 사모하는 교인들이 와서 서로 뜨겁게 사랑하며 주신 사명 감당하는 이 지역 사회의 모델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마음을 넓게 하십시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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