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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4-04-19 (토) 11:14
분 류 절기설교
ㆍ조회: 1592    
십자가와 함께 일어난 기적들(마 27:45-54)
[정사기념예배]

아들이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받는다는 것은 정말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런데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받으시는 이런 가슴 아픈 일이 우리 기독교 신앙의 중심적인 사건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잊고 있습니다. 우리의 부모는 불완전하고 우리도 온전한 자녀인 적이 없습니다. 또 우리가 부모가 되었어도 불완전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께 있어서 하나님은 완전하신 아버지셨습니다. 우리 주님도 완전하신 아들이었습니다. 완전하신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완전한 교제가 있었고, 그것은 완전한 사랑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들이 아버지에게 버림을 받으신 사건이 십자가에서 있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만왕의 왕,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유기(遺棄), 버림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래서 숨을 거두시기 전에 부르짖으시기를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즉,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46절)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 고난의 절정에서 이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달리셨다가 오후 3시 가까이 운명하시기 직전에 부르짖으신 이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라는 외침은 그 영혼뿐만 아니라 육신의 처절한 고통을 견뎌낼 수 있는 한계에서 토하신 부르짖음이었습니다. 왕이신 예수님께서는 진노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께로부터 쏟아지는 진노의 형벌을 당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의 몸을 입으신 우리 주님께는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의 단절을 경험하시던 그 분 영혼의 아픔을 또한 반영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들께서 잘 아시다시피 왕이신 예수님께서 처음 이 땅에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신 성탄의 사건에 기적들이 일어났습니다. 처녀의 몸에서 나신 예수님이셨습니다. 동방박사들이 별을 따라 베들레헴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천사들이 그의 탄생을 축하하며 목자들 앞에 찬양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돌아가실 때에도 기적들이 일어났습니다. 주님께서 영혼과 육신의 처절한 고통을 당하실 때에 이 세상에는 기적들이 나타났습니다. 물론 돌아가신 후에 기적 중의 기적인 부활이 있었습니다만, 오늘 본문에서 마태는 십자가에 매달려 6시간을 고통 중에 물과 피를 다 쏟으시면서 숨을 거두시는 장면에 일어난 기적들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정오 임에도 불구하고 온 땅에 어두움이 약 세 시간 가량 임하였습니다(45절).
45절에 “제 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더니” 하였습니다. 유대 시간으로 제 육시는 정오, 12시를 가리킵니다.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시간입니다. 폭풍우가 몰아치기 때문에 검은 구름이 뒤덮여서 어두움이 임한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에 폭풍우가 임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우기인 경우에 한 두번 있을까 말까 합니다. 우기가 아닌 유월절을 지키는 때였습니다. 그리고 오후 3시까지 온 세상이 깜깜하였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주장하는 일식 현상도 아닙니다. 주권적으로 자연을 다스리시는 창조주가 내리신 기상 이변이었습니다. 이 현상은 저절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적이었습니다. 이 자연의 이적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십자가 사건에 대한 당신의 마음을 표현하셨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당신에게로 나오도록 초청하시는 분이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러한 기적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그 어두움 아래 행해지고 있는 일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은 것임과 또 그것이 어둠 아래 있는 인간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사건임을 가르쳐 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둘째는,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진 것입니다(51절상).
십자가 상에서 계속해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목마르다”(요 19:28), “다 이루었다”(요 19:30),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 24:46) 라고 크게 소리를 지르시고 나자 그 영혼이 육신을 떠났습니다(50절). 그러자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져 둘이 되고”(51절상) 말았습니다.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번 대속죄일에만 지성소의 휘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 안에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법궤)가 있었습니다. 대속죄일에 희생 제물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 안에 들어가 언약궤가 놓여져 있는 속죄소에 뿌렸던 것입니다. 백성들의 죄를 일시적으로 사하는 상징적인 예식이었습니다. 오실 예수님, 십자가의 피를 예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 상에서 숨을 거두시자 이 지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져 둘로 나뉘어져 버렸습니다. 십자가 사건이 영적으로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가를 보여 주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기적입니다. 그것은 이제 매년 희생 제사를 드리던 율법의 의식은 필요가 없다라는 의미입니다. “그(예수)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예식)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엡 2:14-16) 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더 이상 희생 제물이 필요 없다라는 말입니다.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가지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히 9:25-26) 하였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인하여 그를 믿는 사람들은 이제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지성소 안에 들어가 하나님을 만나려면 중보자인 대제사장이 대신하여 간접적으로 만나지만, 이제는 죄 용서를 비는 것도,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하는 것도 직접 나아가 말씀드릴 수 있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고해성사와 같은 것은 필요 없게 되었다 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예수)의 육체니라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예수님)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함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 10:19-22)고 하였습니다.

세 번째 기적은 지진이 일어난 것입니다(51절하).
51절 하반절에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하였습니다. 물론 지진은 어디서나 어느 때나 일어날 수 있는 자연 현상입니다만, 바로 왕이신 예수님께서 숨을 거두시는 시간에 일어난 것입니다. 첫번째 기적과 마찬가지로 창조주 하나님께서 일으키신 이적입니다. 마치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대면하고 십계명을 받을 때에 지진이 일어났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을 그렇게 버리시고 저주에 이르도록 하심이 그토록 마음이 아프시고, 진노하셔서 일으키신 지진으로 여겨집니다. 훗날 나타날 하나님의 심판의 예고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가라사대 내가 또 한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이 또 한번이라 하심은 진동치 아니하는 것을 영존케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든 것들의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니라”(히 12:26-27)고 하였습니다.

네 번째는, 무덤에서 자던 성도들이 많이 일어난 것입니다(52-53절).
52-53절에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그 때에 부활하여 있다가 사흘 후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함께 많은 사람에게 보인지 알 수 없습니다만, 분명한 것은 예수님께서 운명하신 후에 어두움이 걷히고, 죽었던 많은 성도들이 부활하여 사람들이 알아 보았다는 것입니다. 마치 죽은 나사로가 나흘 만에 부활한 것처럼 말입니다. 기적이지요. 이것은 나중에 모든 성도들이 영광의 몸으로 부활할 것을 미리 예고하시며 보여주신 이적입니다. 그래서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 15:19-22)고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백부장과 군인들의 고백입니다(54절).
54절에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되는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가로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하였습니다. 어두움이 임했고, 지성소의 휘장이 찢어졌고, 지진이 일어났고, 무덤에서 죽은 성도들이 살아났습니다. 그러나 이 마지막 기적이 가장 위대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조금 전까지 예수님을 모욕하고 조롱하던 로마 군병들과 그 장교 백부장이었습니다. 이방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6시간을 지켜보며, 일어난 기적들을 체험한 후에 예수님을 가리켜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진실한 믿음의 고백이었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성령의 감동으로 마태가 기록한 사실을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에 변화가 있도록 하셔서 믿음을 주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여러분들도 이 중요한 고백을 진심으로 하신 적이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며, 구세주가 되심을 말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구원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오늘 이 십자가 상에서 운명하시며 하신 말씀과 있었던 기적을 보면서 라도 진실로 믿고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이 모든 기적들은 십자가 만이 영생에 이르게 하는 유일한 소망임을 가르쳐 줍니다. 십자가 만이 죄 문제를 해결해 주고 있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던 당시 세상도 어두움 속에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백성들도, 제사장들도, 서기관들도, 정치가들도 모두 한 가지로 치우쳐 어두움을 사랑하고 어두움의 일을 행하였습니다. 오늘 그들의 눈 앞에 펼쳐진 흑암은 바로 그들의 영적인 상태를 육신의 눈으로도 볼 수 있도록 베풀어주신 교훈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고통 중에 하나님 아버지께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도 “가만 두어라 엘리야가 와서 저를 구원하나 보자”(49절) 하였습니다. 기적이 일어나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탄생하실 때에 동방박사들을 빛으로 인도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오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순간에는 어두움을 내리셨습니다. 주님께서 탄생하실 때에도 캄캄한 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도 그 분께 경배하기 원하는 자들은 별빛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오늘도 이 어두운 세상 가운데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성령을 보내시고 인도하시는 빛이신 예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계시의 말씀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성경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부르짖으며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받으시는 것이 곧 우리를 구원하시는 방법이었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를 그 모든 죄와 슬픔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하여 오신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방법은 철저히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고난 앞에서도 담대하시고,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눈물을 보이시지 않으시던 주님이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고 부르짖으시는 모습 속에서 우리는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깨닫습니다. 여기서 우리의 신앙 생활을 위한 보석 같은 가르침을 발견하게 됩니다.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의 성품과 함께 배우는 것은 죄, 오직 죄만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단절을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지속적인 불순종으로 이어지는 죄는 하나님께 버림받은 느낌을 받게 합니다.
그리고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라고 부르짖으신 말씀은 사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엉겁결에 토해내신 비명도 아니었고, 궁리해 내신 기도도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시편의 말씀이었습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시 22:1)! 지옥을 넘나드는 혼절의 고통 가운데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주님의 부르짖음은 성경 말씀이었습니다. 처음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에도 성경 말씀으로 이기신 주님, 마지막 숨을 거두시면서도 성경 말씀으로 기도하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과 여러분과의 관계는 어떠합니까?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없는 삶의 표준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것이 여러분의 인격의 특징이 되고 있습니까? 이 땅에서 고난 받을 때에 우리 주님처럼 진리와 더욱 하나되는 영적인 모습이 있습니까?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면서 눈물로 자기의 감정을 말하여도 진리의 말씀을 따라 살려고 마음을 기울이지 않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복음은 우리 주님의 마음입니다. 피 묻은 복음이 낯선 것은 우리 주님의 마음에 낯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에게 있을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이 세상에서 버림을 받아야 할 차례입니다. 십자가를 모르는 이 세상을 위하여 말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은 이 우리의 죄 문제만 해결한 것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 궁극적으로는 우리 생활 구석 구석이 모두 예수님과 같이 되게 하는 힘도 주시기 때문입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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