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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4-04-28 (월) 22:56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627    
성경적인 연보(고후 8:1-8)



어떤 사람이 돈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영적 상태를 진단할 수 있는 계기(barometer)가 될 수 있습니다. 돈 자체는 나쁜 것도 아니고 좋은 것도 아닙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부패하고 타락한 사람은 필요 외의 돈을, 아니 필요한 돈마저도 죄를 짓는데 사용하는가 하면, 믿음의 사람은 좋은데 사용합니다.
그래서 언젠가 말씀드렸듯이 신자의 영적 상태를 알아보려면 그 사람의 check book 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돈을 주로 어디에 사용하는지 보면 그 사람의 마음을 안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너희 보물이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느니라”(눅 12:34)고 하셨습니다. 즉 그 사람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는 돈을 어디에 사용하고 있는가로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돈을 소유하는 것을 금하지 않습니다. 당연하지요. 돈이 있어야 살기 때문입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재물을 얻는 능력을 주신다고 했습니다(신 8:18). 예를 들면 구약의 믿음의 선조들 욥(욥 1:3), 아브라함(창 13:2), 이삭(창 26:12-13), 야곱(창 30:43), 보아스(룻 2:1), 솔로몬(왕상 10:23) 등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물질의 복을 주셔서 당대의 부자로 살았다고 합니다.
신약에 들어와 초대교회에서는 로마제국의 핍박 아래 살았기 때문에 성도들 가운데 부자가 많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로마 콘스탄틴 대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정하고 나서야 부자 성도들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게 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딤전 6:17-18)!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그를 순종하는 자에게 영혼의 복뿐만 아니라, 물질의 복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신 15:4-6; 26:15; 28:11).
그러나 성경은 돈을 사랑하는 것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습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돈을 너무 좋아하다가 망한 사람들이 성경에 나옵니다. 예를 들면 아간은 돈을 사랑하다가 자신은 물론, 온 가족과 그의 나라까지 망하게 하였습니다(수 7:1-25). 발람 선지자도 돈을 사랑하다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저주할 뻔 하였으나 타고 가던 나귀가 갈 길을 막는 바람에 못하고, 자신은 죽고 말았습니다(민 22-24장; 31:8). 들릴라는 돈을 사랑하여 사랑했던 삼손을 배신하였고, 결국 수 천명을 죽게 했습니다(삿 16:4-6, 27-30). 가롯 유다는 은 30전에 예수님을 팔아 넘겼고(마 26:14-16), 자신은 자살하여 저주받아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을 받게 되었습니다(마 26:24; 행 1:25).
이렇게 되는 이유는 돈을 사랑하다 보면 하나님을 잊어버리기 쉽기 때문입니다(신 8:11-14; 잠 30:9). 하나님을 의지하는 대신에 돈을 의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시 52:7; 잠 11:28). 말씀을 막아버리는 속임수에 넘어가기도 하고(막 4:19), 교만해지기도 하고(신 8:14),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며(말 3:8), 다른 사람의 필요를 무시하기 때문입니다(요일 3:17).
그래서 성경은 돈을 어떻게 올바로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가족들 즉 형제, 자매의 필요를 돕고(딤전 5:8), 미래를 위해 저축하고(잠 21:20; 30:25),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하여 사용하라고 합니다(마 6:33). 만약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사용하면 복을 쏟아 붓는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주리라”(눅 6:38절상)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고후 9:6)라고 하였고, 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 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고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이미 고린도전서에서도 언급을 했듯이 당시 예루살렘 교인들이 대부분 천한 계급의 가난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수년간 가뭄으로 인하여 흉년이 들어 기근이 도처에 발생하여 큰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른 지역에 자신이 세운 교회들에게 예루살렘교회를 돕자고 권면하였던 것입니다. 그랬더니 마게도냐에 있는 교회들, 즉 빌립보교회, 데살로니가교회, 베뢰아교회 들은 자신들도 환란의 시련과 극한 가난에 처해있으면서도 풍성한 연보를 넘치게 하였던 것입니다(1-2절).
그래서 그런 교회들을 본받아 고린도교회 교인들도 정성껏 연보를 하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고린도교회에게 디도를 보내어 연보를 요청했었는데, 스스로 은사도 많이 받았다고 하고, 믿음의 말과 지식에 뛰어났다고 하는 그들은 정작 헌금을 모으다가 중단한 상태였습니다(6-7절). 아니 마게도냐에 있는 교회들보다 더 신령하다고 하는 고린도교회가 연보하는 일에는 약하고 가난한 그들보다 뒤떨어져서 되겠느냐고 바울이 도전하는 것입니다. 즉 교인들 중에도 성경공부도 나름대로 열심히 하여 성경도 많이 알고, 믿음이 있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 남을 위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훈련이 전혀 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면, 머리만 커져 있고 몸은 아주 작은 가분수 믿음입니다. 내가 희생하여 섬길 줄을 모른다면 어딘가 잘못된 믿음입니다. 구원을 받을지는 몰라도 부끄러운 구원이 될 것입니다.
물론 바울은 “내가 명령으로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다른 이들의 간절함을 가지고 너희의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코자 함이로라”(8절)고 합니다. 연보를 꼭 하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다만 테스트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말로만 사랑한다고 하지 말고, 진짜 사랑한다는 증명을 해보라는 것입니다. 실제 행동으로 보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의 증거 중 하나가 연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희생하면서 남을 도움으로써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행 20:35; 마 10:8). 받는 기쁨보다 주는 기쁨이 훨씬 더 큰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면 마게도냐에 있는 교회들이 가난 속에서도 풍성한 연보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디에 있었을까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1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 그 은혜가 말라버린 사람은 연보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은혜를, 부활의 소망을 가진 사람은 연보도 풍성하게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비록 가난해도 저희의 힘에 지나도록 희생하며, 자원하여 연보를 하였던 것입니다(3절). 누가 억지로 하라고 해서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스스로 마음에 우러나서 한 것입니다. 그것도 넘치는 기쁨으로 드렸습니다(2절). 할렐루야!
어쩌면 우리 성도들은 고난 속에서 더 열심히 주님을 섬기는 것 같습니다. 생활에 여유가 있고, 아무 걱정거리가 없고, 돈도 많은 사람들의 신앙생활은 역동적(dynamic)이지 않습니다.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붙들지 않고도 얼마든지 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려움이 빠져있는 성도들은 한 순간도 하나님을 붙들지 않고는 살 수가 없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을 멀리한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마게도냐의 교인들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하나님을 붙들고 살았기 때문에 그저 자신들이 가난하다고 해서 예루살렘교회를 돕는데 빠질까, 하나님의 복을 받는데 빠질까 생각하며 힘에 넘치게 연보를 했습니다. 그것도 기쁨으로 말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가만히 보면 가난한 것과 헌금하는 것은 다른 것 같습니다. 가난하더라도 마게도냐 교회들처럼 이렇게 헌금은 받은 은혜에 감사하여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하는 것입니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7)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억지로 하지 마십시오. 인색하게 하지 마십시오. 자기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으로 풍성하고 너그럽게 주면서, 하나님께 인색한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헌금은 우리 성도들의 특권 중 하나입니다. 그 자체가 축복입니다. 바울은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우리의 바라던 것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4절)라고 하였습니다. 연보를 통하여 성도들을 섬긴다는 것입니다. 우선 먼저는 자신을 주께 드렸다고 합니다. 자신을 주께 드리고 나니 돈에 대하여 자유함을 얻게 된 것입니다. 사실 영원한 지옥에서 고통을 받아야 할 우리가 구원을 받고, 천국에서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살게 되었다고 하는 은혜를 생각한다면, 주님께 다 드린다 해도 이 세상에서 아무 것도 아까울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마게도냐 교인들은 믿음을 갖게 되면서 자신의 모든 소유를 주님께 명예이전을 하게 된 것입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온통 주께 드렸으니, 하나님의 뜻을 좇아서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에게 먼저 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 예루살렘교회를 도왔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요구임에도 불구하고 드리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가진 것이 내 자신의 소유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 힘으로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었는데 왜 주님의 것이냐는 것이지요. 그러나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여긴다면, 하나님의 은혜로 여긴다면 하나도 아까울 것이 없지요.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세요. 만약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건강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직장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가족에게 어려움이 있다면, 아니 생명을 거두어 가신다면 어떻게 일을 할 수 있습니까?
믿는 자들은 모두 다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산다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 자신에 대하여는 죽은 자로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갖고 있는 것은 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은사(선물)이라고 이야기 하면 대부분이 병을 고치는 치유의 은사나, 방언의 은사만을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사실은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은사(선물)입니다. 생명도, 직업도, 건강도, 시간도, 지식도 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믿지 못한다면 아직 복음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없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복음과 부활을 믿은 다음, 주님과 영적으로 연합이 이루어진 다음에 우리는 다 죽었습니다.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이 세상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신앙훈련이라고 하는 것은 버리는 훈련입니다. 초신자일 때에는 작은 것을 버리지만, 믿음의 경륜이 더해갈수록 더 많은 것을 버리고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게 됩니다. 위대한 믿음은 자꾸 버리고, 내려 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신앙생활을 오래 했다 하더라도 자기 것으로 알고 꽉 쥐고 있는 사람들은 자라지 않는 부끄러운 초신자인 것입니다.

그러니 생각해 보십시오. 믿음이 있는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건강과 시간과 지식과 지혜를 가지고 허락하신 직장이나 사업체에서 열심히 일하여 번 돈을 감사함으로 헌금을 하여, 그 헌금이 교회를 운영하고, 다른 성도들을 섬기는 일에, 전도와 선교하는 일에 사용이 된다고 하니 얼마나 가치 있게 사용되는 것입니까? 뿌듯하지 않습니까? 아무나 그런 특권을, 축복을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 저는 헌금이 성도의 특권일 뿐만 아니라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준 것들 을 가지고 선한 청지기로서 선용할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의 형제, 자매들을 도울 책임이 있습니다. 마땅히 도와야지요.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언젠가도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돈이 필요해서 오늘 본문과 같은 말씀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복을 주시기 위하여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결코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고 하나님께 복을 받을 생각은 마십시오. 오히려 저주가 임한다고 성경은 말합니다(말 3:9).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십시오. 우리는 잠시 맡고 있는 청지기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감당해야 할 일은 사람들을 살리는 일입니다. 사람들의 영혼을 치유하는 일입니다. 복음의 능력으로 말입니다. 이 능력은 사랑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이 진실이라면 베풀며 살게 되어 있습니다. 드리고 살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손해를 본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기를 원한다면 그것보다 못한 돈이나 시간, 건강을 포기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 때에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믿는 것이 참 진리임을 깨닫게 됩니다. 참 사랑임을 깨닫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렇게 살 때에 살아계신 하나님께서는 약속한대로 복을 주십니다. 귀하게 여기십니다.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인데도 말입니다. 확실하게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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