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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4-05-19 (월) 10:20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780    
사랑이 성숙해지려면(아 5:1-6)



5월이 가정의 달이라고 하지만, 사실 모든 달들이 가정의 날이어야 하고, 날들이 가정의 날이어야 하는데, 우리가 가정의 중요성을 잊어버리고 소홀히 하기에 적어도 5월만큼은 더욱 우리의 가정에 더 마음을 쓰게 하려는 생각으로 정해 놓았다고 믿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어머니 날을 맞이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의 고통 속에서도 어머니의 안위를 생각하고 배려하는 주님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우리도 어머님들을 공경하고 감사해야 하며, 또한 어머니들이 한나와 같은 신앙의 어머니들이 되기를 바라면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아가서의 솔로몬의 사랑 이야기를 통하여 가정의 근본이, 기초가 되는 부부 사이의 사랑에 대하여 살펴보기 원합니다. 한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여 가정을 꾸미고 살아가면서 사랑을 주고 받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 사랑이 더욱 성숙해져야 하겠기에 말입니다. 그리하여 가정이 잘 세워져야 하겠기에 말입니다.
사실 처음 사랑이 자라가며 성숙해져 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풋사랑에서 성숙한 사랑에 대하여 배워 간다는 것은 변화가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사랑의 실천이 점점 많아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처럼 희생을, 치러야 할 대가를 지불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랑은 귀한 것입니다. 항상 피와 땀과 눈물을 동반합니다. 이러한 참 사랑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사랑의 대상을 세우고, 치유하고, 자존감을 높여주어 살아갈 이유가 있음을 알게 해줍니다. 어떻게 압니까? 예수님의 발자취를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경험한 자들에게는 생명의 역사, 치유의 역사, 새로운 삶의 역사, 인생 문제가 해결되는 역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리차드 포스터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큰 믿음이 아니라, 긍휼히 여기는 사랑의 마음이다.’ 그래서 사랑은 사랑의 대상을 위하여 기도하게 합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잘 세워져 가도록 여러 모양으로 돕습니다.

아가서는 솔로몬이 포도원지기의 딸 술람미 여인을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여 가정을 꾸미어 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많은 성경학자들이 솔로몬의 사랑이 예수님의 사랑을 예표하고 있으며, 술람미 여인은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라고 합니다. 마치 신약에서 예수님을 신랑으로, 우리를 신부로 비유하고 있음과 같이 말입니다.
5장에서는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 사이의 사랑을 무너뜨리려는 장애를 넘어서서 더 성숙한 사랑으로 세워가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1절에서는 솔로몬 왕이 신부 술람미 여인의 품에서 첫 날 밤의 기쁨과 사랑을 누리고 나서, 계속되는 혼인잔치에 참석한 하객들에게 마음껏 먹고 마시라고 합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다음 날인지 아니면 며칠 지난 다음인지 술람미 여인이 멀리합니다. 문을 열지 않습니다. 술람미 여인은 “내가 잘찌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 열어 다고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 이슬이 가득하였다 하는구나”(2절) 라고 합니다. 솔로몬이 문을 두드립니다. 사랑의 음성으로 말입니다. 이 때 음성을 듣고 문을 열어야 부부 사이 사랑이 깊어지고, 성숙해져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본질은 잘 듣는 것입니다. 듣지 않으면 사랑은 허물어집니다. 상대방을 들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자의 음성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사람은 듣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은 상대방을 듣습니다. 그냥 듣는 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에 집중하여 듣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관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의 생각, 그의 감정, 그의 삶의 변화에 깊은 관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말하는 것보다 잘 듣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약 1:19)고 하였습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말을 잘하는 사람보다 잘 들어주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듣는다’라는 단어의 의미는 주로 청종하는 것입니다. 듣고 순종하기 위하여, 실천하기 위하여 듣는 것입니다. 즉 내가 잘 듣는다는 것은 순종하겠다는 것을 뜻합니다. 가정을 세우는 아내의 가장 특출한 모습은 남편을 청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을 받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은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엡 5:22)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결혼식 주례사에서 듣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이유는 1960년 대에 확산된 여권신장운동(feminist movement)과 아내들도 직장생활하며 돈을 벌게 되면서 경제력이 생기다 보니, 감히 남편 말에 복종하라고 할 수 없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라고 합니다. 여기 아내나 남편 앞에 어떤 수식어도 없습니다. 능력있어 돈을 잘 벌고, 건강하고, 책임감이 있고, 신앙이 좋은 존경스러운 남편에게 순종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남편이 그렇다면 순종하기가 얼마나 쉽겠습니까? 어떤 노력이나 훈련이 필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남편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남편이기에 의지적으로, 자발적으로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노력하는 것입니다. 물론 주 안에서 순종하는 것입니다. 주님 말씀에 어긋난 것을 순종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말씀에 어긋난 것이 아니면 하나님의 뜻임을 알고 내 권리를, 내 주장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물론 아이들이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처럼(엡 6:1), 혹은 종이 상전에게 순종하는 것처럼(엡 6:5) 순종하라고 명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남편이 그의 아내를 아이처럼, 종처럼 취급하면 안됩니다. 자신과 동등한 하나님의 자녀로 알고 보호하며 지켜줄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내 아내이기 전에 하나님께 속한 인격체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딸입니다. 소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이어서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엡 5:23-24)고 하셨습니다. 순종의 원리를 교회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로 설명하셨습니다. 교회(성도)는 주님의 몸이요, 교회의 머리는 주님이기에 교회(성도)는 주님에게 순종하게 되어있다는 말씀입니다. 질서와 지도력의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머리 되신 예수님께 순종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내들은 자신의 머리 되는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도 "아내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벧전 3:1)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아내들은 남편을 비판하거나, 바가지를 긁거나, 설교하려고 하기 보다는 오히려 남편 앞에 단순히 선한 행위로, 복음의 능력과 아름다움이 그녀 자신의 삶에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나타냄으로 남편들로 스스로 깨닫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럴 때 불신 남편까지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남편에게 더 사랑을 받게 되고, 남편의 존경을 받게 됩니다.
한편, 하나님이 남편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십자가 사랑입니다. 사실 남편에게 범사에 복종하라는 말에 아내들이 불만을 가질 수 있지만 자세히 성경을 살펴보면 차라리 그것이 더 쉽습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엡 5:25)고 하셨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되 자기 목숨까지 온전히 내어 줌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교회(성도)를 위하여 목숨을 버린 것처럼 죽도록 사랑하는 것입니다. 감정적으로도 사랑해야 하고, 친한 친구처럼 사랑하기도 해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처럼 헌신적으로, 희생적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내를 위하여 목숨 바쳐 헌신하는 것입니다. 억지로 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예수님처럼 은혜로 희생하는 것입니다. 아내가 매력적이어서, 사랑할 마음이 일어나서 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아내가 어떻게 생기고, 무슨 행동을 하고 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아내가 남편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보다 남편이 아내를 이해하며 사랑하는 것이 훨씬 더 깊고, 크고, 넓어야 합니다. 마치 주님의 사랑이 성도들의 주님 사랑보다 더 깊고 큰 것처럼 말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이렇게 사랑해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5:26-27)고 하셨습니다. 즉 아내는 남편보다 더 연약한 그릇이며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이기에(벧전 3:7), 남편이 아내를 죽도록 사랑하면 둘이 하나님 앞에 순결하고 거룩하여 아무런 흠이 없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남편이 아내를 그렇게 사랑할 때에 자신도, 아내도, 가정도 타락한 세상으로부터 정결케 되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선다는 말씀입니다. 그 사랑은 아내를 정결하고, 의롭게, 세상으로부터 구별되게 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 같이 하리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엡 5:28)고 하였습니다. 한 몸이 되었으니 당연한 말씀입니다. 자신의 몸은 잘 돌보면서 아내는 무엇을 먹든지, 잘 쉬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면 오늘 말씀하시는 사랑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아내가 힘이 필요하면 힘을 주고, 격려가 필요하면 격려해 주고 하며 잘 돌보아야 합니다. 무슨 말을 할 때에 귀담아 들어 주어야 합니다. 아내를 단지 가정부로, 음식하는 사람으로, 때때로 자기가 필요할 때에 자기를 복종하는 종으로, 섹스 파트너로만 안다면 대단히 잘못된 남편입니다. 아내는 내 사랑을 받을, 보살핌을 받을, 하나님께서 주신 소중히 여겨야 할 연약한 보물로 알고 따뜻이 보호하며, 절대 안전함(security)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엡 5:29-30)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제 육체라고 하였습니다.
예외는 있습니다만, 이렇게 사랑하는 남편을 아내는 잘 순종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절대적이면서도 상대적입니다. 순종하면 사랑 받게 되어 있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순종하게 되어 있습니다.

본문에서 지금 술람미 여인의 잘못은 남편의 음성에 순종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음성을 들었지만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입니다. 지체하고 있습니다.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의 부름에 대하여 “내가 옷을 벗었으니 어찌 다시 입겠으며 내가 발을 씻었으니 어찌 다시 더럽히랴마는”(3절) 하면서 지체하고 있습니다. 벗은 옷을 다시 입기 싫었고, 씻은 발을 더럽히기 싫어서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이제 이미 결혼했으니 좀 소홀히 한들 어떻게 할 수 있겠냐는 식입니다. 사랑의 감격이 벌써 식었던 것입니다. 방심하는 것입니다. 교만해진 것입니다. 사랑이 깨어지지 않으려면, 아니 성숙해지려면 무엇보다도 경계해야 할 것이 교만입니다.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나 같은 사람 선택하여 결혼해 준 감사의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방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태하지 않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나를 비우고 상대방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의 방문을 두드린 것은 사랑을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문을 열어주지 않으니까 문과 문빗장에 몰약을, 향수를 바르고 갔습니다(5절). 사랑의 흔적을 남기고, 가야 할 길을 급히 떠났던 것입니다. 술람미 여인이 일어났을 때에는 이미 늦었던 것입니다(6절). 불러도 응답이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솔로몬처럼 우리를 사랑해주시는 분이 우리 예수님입니다. 오늘도 피 묻은 손을 내밀어 주십니다.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만약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지 않으면 우리의 마음 문에 사랑의 흔적을 남기십니다. 때로 방심하고, 나태하고, 교만한 우리를 계속 부르시며 찾아오십니다.
술람미 여인이 늦게 나마 문을 열어보니 그 손에 사랑하는 솔로몬이 바르고 간 몰약의 즙이, 그 향기가 그녀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오해한 것이 아닙니다. 아마 급한 일로 그 자리를 떠난 것입니다. 그는 아내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의 무한한 사랑에 감격할 뿐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사랑에 여러분의 마음 문을 여십시오. 주님의 사랑은 무한합니다. 우리는 신실하지 못해도 주님은 신실합니다. 오늘도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시는 주님의 손에는 피 묻은 못 자국이 있습니다. 이 사랑을 입고 사는 우리들의 사랑도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이 남편과 아내를 세워주는 사랑이요, 성숙하게 하는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사랑에 늘 귀를 기울이십시오. 순종하십시오.
사랑의 성숙을 방해하는 장애물들을 경계하시고, 제거하십시오. 방심과 나태와 교만을 멀리하십시오. 늘 깨어 기도하며, 늘 겸손히 상대방을 섬기십시오. 기회가 있을 때 최선을 다하십시오. 사랑이 절실할 때 채워주는 사랑을 경험하게 되면 그 감격이 오래 갑니다. 그 동안 받은 상처가 치유됩니다.
우리 주님처럼 사랑은 자주 찾아가는 것입니다. 포기하지 않습니다. 오해하지 않습니다. 잠시 물러갔다면 어떤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사랑은 신뢰합니다. 믿어줍니다. 아무리 좋은 인연, 좋은 만남이라도 참 사랑으로 가꾸어 가지 않으면, 사랑이 자라가지 않으면, 성숙해지지 않으면 결국 실패합니다. 힘쓰고 애쓰면서 가꾸어 가야 합니다. 어떤 분이 ‘인연이란 그냥 두어도 저절로 자라는 야생초가 아니라, 인내를 가지고 시간과 공을 들여야 비로서 향기로운 꽃을 피우는 한 포기 난초와 같은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공감이 가는 이야기입니다. 사랑은 가꿀수록 아름답습니다. 깊어가고, 넓어갈수록, 성숙해질수록 열매들이 많아집니다. 주위 사람들에게도 유익을 끼칩니다. 이런 아름다운 사랑을 가꾸고, 나누고, 전파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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