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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4-06-19 (목) 10:49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1667    
할례의 참된 의미는(수 5:1-9)
누구나 느끼는 것이지만 세상살이가 녹록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나서 모든 것이 다 잘 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는 다시 돌아가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상태에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 때 우리 믿는 자들이 기억해야 할 것이 반드시 고비를 넘어가야 하는데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이 우리 앞에 있다는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다만 우리의 보통 생각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순종해야 합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눈 앞에서 하나님께서 요단강을 가르시는 것을 목격하면서 가나안 땅에 들어왔습니다. 놀라운 기적으로 그들이 요단강을 건넜다는 소식이 가나안 족속들에게 전해지자 그들을 크게 두려워했습니다. “요단 서편의 아모리 사람의 모든 왕과 해변의 가나안 사람의 모든 왕이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말리시고 우리를 건네셨음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자손들의 연고로 정신을 잃었더라”(1절)고 하였습니다. “마음이 녹았다”는 뜻은 큰 두려움으로 인하여 완전히 절망하였다는 말이며, “정신을 잃었다”는 뜻은 영혼이 남아있지 않았다는 말로 전의를 상실하였다는 말입니다. 사실 가나안 족속들은 그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널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건널 수 있는 기술이나 장비도 없고, 돌 다리를 놓는다 하여도 오랜 시간이 걸리고, 다리가 만들어졌다 해도 그 많은 백성들이 다 넘어오기는 힘들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요단강을 믿고 있었는데, 그 강이 갈라지면서 쉽게 다 건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모두 놀라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Panic 상태가 되어 버린 것이었습니다.
오늘날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은 겉으로는 아무런 표시를 하지 않지만, 교회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일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삶에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반대로 교회의 성도들이 서로 싸워서 분열이 되면 너무 좋아합니다. 욕을 하면서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하며 말씀을 붙들고 살아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나타내 보여주어야 합니다. 고난 속에서도 주님의 평강과 기쁨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들 뒤에 있는 배후세력인 사탄, 마귀가 놀라고 두려워하게 됩니다.

헌데 요단강을 건넌 즉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명령을 하십니다. 가나안의 적들을 눈 앞에 두고 남자들에게 할례를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2절) 하였습니다. 이유는 출애굽 세대는 다 할례를 받았었지만, 광야세대 즉 40년 광야생활 중에 태어난 2세들은 할례를 받지 않았습니다(4-5절). 어쩌면 그들은 할례 받기를 꺼려했는지 모릅니다. 매우 고통스러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니 지금까지 할례를 받지 않고도 잘 지내왔습니다.
그런데 요단강을 건넌 지금 할례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대적이 눈 앞에 있는데 말입니다. 사실 1절 말씀은 나중에 여호수아가 성경을 기록하면서 알게 된 적들의 상태를 기록한 것이지, 당시에는 대적들이 그렇게 전의를 상실하고 정신이 나간 상태인줄 몰랐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지금 그들에게 할례를 행하라고 하는 것은 죽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할례를 행한 즉시 가나안 족속들이 쳐들어 오면 다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즉 각오를 하고 죽기까지 순종하는 모습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다 할례를 받았습니다(3절). 그래서 그곳을 할례산이라고까지 이름하였습니다. 아마도 오십만이 넘는 남자들의 성기 표피를 잘라서 다 버리게 되니 그것들이 쌓여서 산처럼 되었겠지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할례를 받았던 출애굽 세대는 거의 다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밟지를 못하게 되었는데, 출애굽의 경험도 없고, 할례도 받지 않은 2세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순종한 것입니다. 죽을 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의 말씀에 청종치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맹세하사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마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들로 보지 못하게 하리라 하시매 애굽에서 나온 족속 곧 군사들이 다 멸절하기까지 사십년 동안을 광야에서 행하였더니 그들의 대를 잇게 하신 이 자손에게 여호수아가 할례를 행하였으니 길에서는 그들에게 할례를 행치 못하였으므로 할례 없는 자가 되었음이었더라”(6-7절)고 하였습니다.

할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의 몸에 남긴 언약의 표시입니다. 당시에 마치 소나 말 등 짐승에게 자신의 소유라는 표시로 낙인을 찍는 것과 같습니다. ‘너는 내 것이라’(사 43:1)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네 마음대로 살지 말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구별되게 살라는 것입니다. 죄성을 따라 살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할례를 받고 출애굽한 이스라엘 1세대들은 그렇게 살지 않았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하나님을 거스려 살았습니다. 불평과 불만으로 살았습니다. 불순종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형식적으로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가 하는 것보다 하나님 앞에 자신이 얼마든지 죄성을 따라 살 수 있는 교만한 사람인지 깨닫고,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는 믿음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마음의 할례”(렘 9:26, 31:33; 롬 2:29)를 강조하셨습니다. 새 언약의 특징입니다. 세례도 마찬가지입니다. 물 세례 받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령세례를 받았으니, 성령을 따라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주님과 연합하여 하나가 되었으니, 늘 잊지 않고 주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죄성을 이기며 사는 것입니다. 말씀을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께서는 할례를 받은 출애굽 2세대에게 의미심장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온 백성에게 할례 행하기를 필하매 백성이 진중 각 처소에 처하여 낫기를 기다릴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날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굴러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곳 이름을 오늘날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8-9절)고 하였습니다. 순종하여 할례를 받고 나서야 그들에게서 애굽의 수치가 굴러갔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출애굽 1세대들은 하나님의 기적으로 애굽을 떠났지만 마음은 여전히 애굽의 종이었습니다. 애굽에서의 살던 사고방식, 정신상태, 그 문화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조금만 힘들면 여호와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다음 세대는 죽음을 각오하고 말씀에 순종하여 할례를 받았을 때에 비로서 그 애굽의 노예근성을 뗄 수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노예의 수치를 벗어버릴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오늘날도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세상적인 사고방식, 세상 풍조를 따라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탄의 종으로 살던 때의 모습으로 그냥 사는 것입니다. 노예근성으로 사는 것입니다. 감옥에 갇힌 사망 선고를 받은 죄수가 사면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감옥에서 나아와 계속해서 수의를 입은 채 죽을 사람인 것처럼 사는 것입니다.
교회를 오래 다녔기에 직분도 맡고 일을 하면서도 조금만 자기 생각과 맞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들도 똑 같은 것입니다. 아직 노예의 수치를 벗어버리지 못한 모습인 것입니다. 이런 분들은 한 번쯤은 죽기를 각오하고 다시 마음의 할례를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마음의 할례, 성령의 세례를 받으셨습니까? 믿기 전 사탄의 노예로 살던 때의 모습이 아직도 그대로 있습니까? 아니면 변화를 받아 의의 종으로 사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무조건 순종하고 사십니까? 죽기를 각오하고 말입니다.
본문을 통해서 깨달으셔야 할 것이 하나님께서는 이미 가나안 족속들의 정신을 다 빼놓고, 전의를 상실하게 하신 후에 그들에게 할례를 행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죽기를 각오했으나, 죽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앞 길을 다 열어 놓으시고는 순종을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기를 각오하는데, 결코 죽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제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더 이상 사탄의 노예가 아닙니다. 그렇게 살 이유도, 필요도 없습니다. 좁은 길, 외길을 가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지만, 그래도 그 길이 좋은 길, 의의 길입니다. 영광의 길입니다. 축복의 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교회에게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2-24)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권위를 인정한다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지요. 여러분 모두에게 그런 은혜가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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