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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9-06-10 (월) 06:35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45    
성령님께서는(요 16:7-15)


우리 모두는 이 시간이 있기까지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고 살아왔습니다. 앞으로도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감당하지 못할 것입니다. 만약 누가 ‘나는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어. 나 혼자 힘으로 얼마든지 살 수 있어’ 라는 분이 있다면, 그 분은 참으로 교만한 분일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를 정말 도우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보혜사’라는 뜻이 돕는 자, 위로자 입니다. 여러 모양으로 우리를 도우시는 분, 인도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오늘날 성령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많은 신자들이 편협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방언이나 신유의 은사 아니면 심령의 뜨거운 감정 등만을 생각합니다. 빙산의 일각이라고 할까요? 한 부분만을 보고 그것이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의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이 알아야 할 것은 삼위의 한 분인 성령님도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처럼 인격체라는 것입니다. 즉 성령님의 지적인 역할도 있고, 감정적인 역할도 있고, 의지적인 역할도 있다라는 말입니다. 우리를 도우셔서 지적으로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감정적으로 우리 심령을 뜨겁게 하시고, 주님의 뜻 받들어 의지적으로 일하게 하시는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본문의 문맥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몇 시간 전 어느 다락방에서 자신이 이 세상을 떠난 후 어떻게 될까 염려하는 제자들에게 계속 말씀을 전하십니다. 예수님을 믿음 때문에 제자들이 세상에서 미움을 받고, 핍박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15:18-27). 그리고 나서 성령님에 대한 말씀을 하는 이유는 제자들이 세상에서 미움을 받거나 핍박을 받아도 실족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라고 합니다(16:1). 왜냐하면 핍박이 심해져서 출회(출교)를 당하거나 죽임을 당하게 되기 때문입니다(2절). 제자들이 놀라게 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는 동족 유대인들이 그렇게 자신들을 핍박하여 쫓아내고 죽이기까지 하면서 생각하기를 자기들이 그렇게 하는 것이 나름대로 하나님을 잘 믿기 때문에, 잘 섬기기 위해서 라는 것입니다.
아니 어떻게 같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이해하고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미워하고 죽이는 것이 하나님을 잘 믿고 섬기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영적으로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저희가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3절)고 하셨습니다. 참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기에, 마치 장님이 코끼리 다리를 만지면서 코끼리가 어떻다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온전한 진리의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의 한쪽만 믿으며, 자기들 나름대로 하나님을 믿고 열심을 낸다고 하기에 그런 일을 자행한다는 것입니다. 진리를 몰라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하여 열심이 있고, 체험도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너무 모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J I Packer 라는 신학자는 그의 유명한 ‘Knowing God’이라는 책에서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에 대하여 아는 것’은 다르다고 지적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아는 것은 간접적으로 아는 것이지, 실제로 인격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직접 만나서 알게 되고 믿어져서, 하나님이 나의 삶에 실제적인 분이 되는 것이야말로 진리에 눈이 떠지는 것입니다. 신구약 성경 전체의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올바로, 잘 알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람을 올바로, 잘 알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우리가 어떤 사람을 잘 아는 비결은 동거동락하면서 같이 사는 것입니다. 함께 교제하면서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게 되면 예수님의 죄에 대한 죽으심과 의에 대한 부활에 체험적으로 동참하게 됩니다. 즉 우리는 영적으로 죽은 자이었다가 믿음으로 다시 살아난 사람들 입니다. 그 후에 하나님과 지속적으로 교제를 하고 삶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 그냥 머리로만 아는 지식적인 앎이 아니라 인격적인 앎이 되어 하나님과 아주 가까운, 친밀한 그의 자녀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다시 한번 이런 말씀을 들려주는 것이, 자신이 떠난 후 핍박을 당하면 지금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이겨내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하십니다(4절). 그리고, 제자들을 떠나서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는데 그들이 지금 주님께서 어디로 가는지 묻지는 않고 마음에 근심이 가득한 모습을 보았습니다(5-6절).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지금 떠나는 것이 제자들에게 유익이라고 하시면서 자신이 떠나야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어 주시겠다고 하십니다(7절). 그리고는 성령님께서 하실 일에 대하여 설명하십니다.
먼저 성령님께서 세상에 대하여 하실 일(8-11절)과 믿는 자들에게 하실 일(13-15절)을 말씀해 주십니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8절)고 하셨습니다. 여기 ‘책망한다’라는 말은 ‘꾸짖는다, 선고한다’의 의미로서, 의사가 환자를 검사하여 최종적으로 병명을 선언하는데 사용한 단어입니다. 즉, 권위와 위엄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죄가 무엇인지 깨닫게 하고, 회개하도록 한다는 뜻입니다. 성령님이 오시기 전까지는 이 세상 사람들이 하는 말만 듣고 자기 나름대로 의의 기준을 가지고 살았지만, 성령님이 오신 후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책망하며, 판결을 내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세상을 책망할 때 주로 세 가지 주제에 대하여 하는 데 바로 죄 혹은 죄책감, 그리고 의와 심판에 관한 것입니다.
첫째로, ‘죄’는 한 마디로 인간이 하나님을 모르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불신앙으로 말미암는 모든 것입니다. 죄에 대하여 책망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죄 가운데 그대로 거하겠다고 선택한 것에 대하여 앞으로 묻겠다는 것입니다(9절). 둘째로, 10절의 ‘의’는 사람들이 자랑하는 자기 의를 뜻합니다. 즉 남들이 갖고 있지 않은 것을 자기들이 갖고 있기에 더 잘 살아야 하고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근거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공부든지, 돈이든지, 외모든지, 권력이든지, 건강이든지, 그 어떤 것이든지 간에 자랑이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런 자랑이 하나님 앞에 인정이 되겠느냐는 말입니다. 인간이 자랑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 가지고 남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성령께서 책망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의롭다고 인정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의’ 밖에 없습니다. 이 땅에서 인정받지 못한 예수님의 의를 예수님이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좌정하심으로 그들이 눈으로는 보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10절),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의 ‘의’에 대하여 책망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책망한다는 뜻으로,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셨다가 하나님 아버지에게로 올라 가셔서 친히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으로서 입증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믿는 사람들이 자랑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심판에 대하여 책망한다는 것은 잠시 이 세상 공중권세를 가진 사탄을 심판하시는 것처럼, 아들 예수 그리스도 대신 사탄을 택한 자들을 심판으로 책망하신다는 뜻입니다(11절). 사탄, 마귀는 어떤 존재입니까? 타락한 모든 인간의 생각과 삶을 지배하던 자가 아니었습니까? 많은 사람들을 속여서 그저 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출세하는 것이 전부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런 삶은 실패한 삶입니다. 우리 믿는 자들도 과거에는 이 사탄의 가치관에 속아 넘어가서 살던 사람들이 아닙니까? 그러나 성령님이 오셔서 그것이 틀렸다고 증거하기 시작하셔서 고치지 않았습니까? 할렐루야!

예수님께서는 성령님이 오셔서 세상에 대하여 책망하실 것을 말씀하신 후에 더 많은 말씀을 전하고 싶었지만 제자들이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 그만 하신다고 합니다(12절). 그리고는 성령님께서 믿는 자들에게는 어떤 일을 하실 것인지 말씀해 주십니다.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게 하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13-14절)고 하셨습니다.
성경이 완성되기 전에는 성령님께서 진리의 말씀을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허락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구약의 선지자들과 사사들이나 몇 왕들, 그리고 신약의 선지자나 사도들에게만 말입니다. 하지만 성경이 완성된 후에는 성령님께서 믿는 자들의 심령에 조명하셔서 성경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경험하게 하시며, 적용하게 하십니다. 이러한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야 진리의 말씀이 우리 가운데 역사하여 역동적인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성령님은 자기 마음대로 말씀하시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하십니다. 오직 하나님께 들은 말씀, 예수님의 말씀만을 말하시지, 말씀하시지 않는 영적인 세계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말씀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의 영광만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을 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15:26).

마지막으로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리라 하였노라”(15절)고 하셨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은혜는 다 주님의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제 몇 시간 후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셔서 승천하신다고 해서 주님의 모든 시대가 끝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계속하여 세계 역사의 주인공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여전히 살아계셔서 성령님을 통하여 하늘의 신령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부어주십니다. 주님께서 떠나신다고 해서 성령님이 다 맡아서 따로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계속 주님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는데, 그 일을 성령님을 통하여 하신다는 뜻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여전히 주님입니다. 아버지의 것은 모두 주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여전히 주님의 이름으로 구하고, 주님께 도움을 간구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하늘의 모든 지혜와 능력을 부어주십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말입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오늘은 올해 성령강림주일입니다. 2000여 년 전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50일만에 120명의 성도들이 모여 있던 어느 다락방에 약속하신 성령이 강하게 임하셨습니다. 그 이후로 모든 믿는 자들에게 성령님이 인을 치십니다(엡 1:13). 그리고 영원토록 내주하십니다.
여러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성령님의 인침을 받으셨습니까? 그렇다면 그 성령님께서 여러분의 심령 안에서 마음껏 역사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내 자신을 부인하고, 내려놓아야 합니다. 성령님의 지배를 받으셔야 합니다. 여러분이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을 막으면 안됩니다. 성령님께서는 오늘도 여러분들을 사용하셔서 세상을 책망하시기 원하십니다.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꾸짖으라고 하십니다. 물론 지혜롭게 하셔야 합니다. 한편, 어떤 사람들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축복의 통로가 되셔야 합니다. 이미 패해버린 사탄, 마귀의 영향권에서 그들을 건져내야 합니다.
이 일을 잘 감당하려면 여러분이 진리의 말씀을 좋아해야 합니다. 가까이 해야 합니다. 성령님은 말씀을 좋아하게 하십니다. 진리의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삶에 진리의 말씀으로 인한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타성에 젖은 습관적인 예배 생활, 기도 생활을 청산하셔야 합니다. 미지근한 신앙, 미숙한 신앙에서 머무르고 있으면 안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참된 부흥을 원하십니까? 영적 성숙을 원하십니까? 성경은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히 5:12-14)고 하였습니다. 신앙생활 한 지는 오래 되었는데 아직도 영적 미숙아를 벗어나지 못했다면 영적 진단을 해 보아야 합니다. 그저 형식적으로 교회를 왔다 갔다 하고 있지는 않는지, 내 자신의 믿음은 왜 자라지 않는지 말입니다. 의의 말씀을 지속적으로 경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확실히 믿고 자신의 삶에 적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말씀대로 살아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으로 알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헬렌 켈러는 ‘하나님의 말씀은 굳은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부서진 마음을 아물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유는 성령님이 역사하셔서 그렇습니다. 복음의 능력은 성령님의 역할입니다. 성령님은 새로운 피조물이 된 우리들에게 능력을 주셔서 말씀대로 살게 하시고, 사탄, 마귀를 이기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죄를 버리고 성령님의 능력이 우리의 삶에 나타나도록 간구해야 합니다. 성령충만을 간구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얼마든지 지금보다 훨씬 더 역동적이고 능력있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믿는 자 안에 살아 있습니다. 우리 힘으로는 세상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붙들고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에 성령의 능력이 임하셔서, 우리를 도우심으로 모든 어려움을 능히 이기게 하실 것입니다. 그런 은혜가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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