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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1-02-21 (일) 07:38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3    
회개한 죄인으로 인한 하늘의 기쁨 (눅 15:1-10)


철들은 자녀라면 어떻게 해서든지 부모를 기쁘게 해드리려고 합니다. 부모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립니다. 부모가 자신 때문에 걱정하지 않도록, 부모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애씁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조금만 믿음이 있어도 자기 중심의 이기적인 삶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하나님을 실망시켜 드리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쁘시면 자신도 너무 좋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립니다. 자신도 그 마음을 닮기 원합니다.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누가복음 15장에는 하늘의 기쁨, 하나님의 기뻐하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누가복음 9장 51절부터 계속해서 십자가를 향하여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는 예수님께서는 14장에서 하늘나라 잔치에 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7-24절). 왕의 초청을 거부하고 여러 가지 핑계로 준비된 잔치에 오지 않는 유대종교지도자들의 불신앙을 꾸짖고, 대신 그들이 천하게 여기는 가난한 자, 장애인들, 이방인들을 초청하여 잔치에 참여하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허다한 무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보고, 망대 건설 비유와 어떤 왕이 전쟁에 임하는 비유의 말씀으로 자신을 따르는 자는 그 대가를 치를 각오를 하고 우선순위를 올바로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25-33절). 맛을 내는 소금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35절하)라고 하시니, 유대인의 주류사회에서 소외된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가까이 나아옵니다(1절). ‘세리(tax collectors)’는 로마제국을 위하여 일하는 유대인으로서 권력을 사용하여 자기 백성들의 돈을 착취하며, 이방인의 더러운 돈을 만지며 이방인들과 접촉하기에 유대 사회에서 버림 받는 자들이었습니다. 또한 ‘죄인(sinners)’은 유대인들이 보기에 율법을 지키지 않으며 불의한, 부도덕한 행동을 하는 자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유대종교 지도자들이 그런 사람들에게 붙인 경멸적인 칭호가 ‘죄인’이였습니다. 율법을 지킨다는 자신들은 자칭 ‘의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런 세리와 죄인들을 영접하며 기쁘게 음식을 함께 먹는 모습을 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원망하는’ 것입니다(2절). 여기 ‘원망하다(diagoggu,zon, murmur or grumble)’의 뜻은 수군대며 비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세리와 죄인들을 영접하며 함께 교제하는 것을 영 못 마땅하게 여기며 비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10)고 하셨듯이, 예수님은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을 영접하며, 교제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두 가지 비유의 이야기를 통해 교훈하십니다. 첫째 비유는 잃어버린 양의 비유입니다(4-7절). 100마리의 양을 치던 목자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100마리의 양을 소유했다면 엄청난 부자입니다. 양 한 마리가 한 드라크마(데나리온, silver coin)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니 아마도 이 목자는 100마리 양의 주인에게 고용된 사람으로 생각됩니다. 그 정도 부자가 직접 목동 일을 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리고 목자라는 직업도 유대 주류사회에서는 천한 계급에 속했다고 합니다. 비록 이스라엘 12지파 족장들 가운데 야곱도 목자였고(창 30:31; 31:4), 요셉도(창 37:2), 모세도(출 3:1), 다윗(삼상 16:19; 17:15, 20, 34) 등도 양을 치던 목자이었지만 말입니다. 아니 성경에 자주 하나님과 예수님이 목자로 표현되었습니다.
문제는 이 목자가 100마리 양을 데리고 들로 나갔는데, 세어보니 한 마리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니까 99마리를 들에 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를 찾으려고 애쓴 것입니다. 이리 저리 다니면서 찾고 찾다가 드디어 그 한 마리를 찾았습니다. 너무 기쁘고 즐거워서 어깨에 매고 집에 돌아와 100마리를 다 우리에 넣어 두고서는 그의 친구들과 이웃을 불러 모아 잔치를 하며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6절하)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7절)고 하십니다. 잃어버린 한 영혼이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할 때에 하늘에서, 하나님께서 엄청 기뻐하시며 즐거워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처럼 율법의 모든 의식과 절기와 규례를 지키는 99의 자칭 의인들이 하늘의 기쁨을 주지 않습니다.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는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천국잔치의 기쁨의 축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회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피조물로 주님을 따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대부분의 유대종교인들처럼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지 못하고 회심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따르지 않습니다. 안타깝게도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회개하지 않더라도 구원 받은 줄로 착각하였던 것입니다. 위선과 외식으로 치장하며 특권을 누리던 그들에게 충격을 주면서 그 가면을 벗으라고 하시는 비유입니다.
그들은 유대사회에서 소외된 자, 가난한 자, 장애인, 이방인들에 대한 사랑과 연민, 관심, 돌보고자 하는 하나님의 마음에 대해 무지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성육신 하신 하나님, 우리 예수님은 선한 목자로서 잃어버린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 것이었습니다(요 10:11).

예수님은 잃어버린 양의 비유를 이야기해도 그들이 못 깨달을 것 같아 또 다른 비유를 이야기합니다. 잃어버린 드라크마 은전의 비유입니다(8-9절). 이번에는 한 여자가 등장합니다. 앞선 비유의 목자처럼, 당시에 여자는 사람 숫자에 끼지도 못하는, 차별대우를 받고 있었습니다. 여자를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그런 사회적, 문화적 배경에서 비유를 이해해야 합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목자나 여자나 하찮게 생각할지 모르나 예수님은 달랐습니다. 아니 유명한 시편 23편을 보셔도 다윗은 하나님을 목자로 표현하는가(1절) 하면, 원수들 앞에서 진수성찬의 밥상을 차려주는 어머니로 표현하였습니다(5절).
어느 여자가 열 드라크마(데나리온, silver coin) 은전이 있었습니다. 한 드라크마 은전이 당시 앞에서 언급한 양 한 마리 가격, 혹은 보통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열 드라크마이면, 오늘날 하루 노동자 일당을 보통 $150로 생각하면 $1.500 정도입니다. 그리 많은 돈도, 또 적은 돈도 아닙니다. 그러나 이 여자에게 있어서는 너무 귀중한 한 드라크마입니다. 아마 결혼 지참금으로 부모가 준 것을 모은 돈이었든지, 아니면 비상금으로 생각됩니다. 요즘 말로 표현하면 결혼 반지를 사려고 준비해 놓은 돈과 같은 것입니다. 어떻게 잃어버렸는지 모르지만 은전 하나가 없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등불을 들고, 온 집안을 빗자루로 쓸며, 부지런히 찾고 또 찾는 것이었습니다(8절). 어쩌면 앞의 잃어버린 양을 찾는 목자보다 작은 은 동전이라서 그런지 더 열심히 찾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집 안에서 무엇을 잃어버린 후 찾으려고 온 집안을 다 뒤지며 찾아 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별로 중요하지 않고 얼마든지 다시 구할 수 있는 것이면 대충 찾다가 그냥 포기하지만, 너무 중요한 물건으로 다시 구하기는 어려운 것이라면 찾을 때까지 찾고 또 찾고 할 것입니다. 이 여자도 그렇게 열심히 찾다가 드디어 찾았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그래서 이 여자도 친구들과 이웃을 불러 모아서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았노라”(9절하) 한다는 것입니다. 당연하지요. 예수님은 그 기쁨을 또 하늘의 기쁨이라고 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10절)고 하십니다. 7절 말씀을 반복하십니다. 잃어버린 택자 한 사람을 찾아 그가 회개하고 돌아오게 되면 하나님 아버지는 물론 하나님의 천군천사들도 다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천국잔치가 성대하게 열린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천사들도 기뻐하는데, 여러분도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그렇게 기뻐하며 축하하는지요? 잔치를 베풀 만큼 기뻐합니까? 이런 하나님의 마음처럼 죄인들을 향한 그런 사랑, 연민, 관심을 가지고 있으신지요?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아직도 이 세상에서 잃어버려진 채 살아가시는 분이 계십니까? 오늘도 애타게 찾고 계시는 주님이십니다. 99양을 다 두고라도 한 마리 양을 찾는 목자처럼,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를 찾으려고 온 집안을 다 뒤지는 어느 여자처럼 찾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에게 너무 소중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난 분이기 때문입니다. 구세주이신 예수님이 필요한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오늘 본문의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처럼 자신은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하십니까? 착하게 살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너무나 큰 죄를 지어서 용서가 안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세상에 죄인 아닌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롬 3:23). 다 죄인입니다. 그 결과 죽음이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롬 5:12; 6:23). 아니 이미 영적으로 죽었습니다(엡 2:1). 하나님만이 살려 주실 수 있습니다. 구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구원하시고 자녀 삼으시기 위하여 그 아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이미 오래 전에 성경에 약속하신(사 7:14) 대로 약 2000여 년 전에 동정녀의 몸에서 성령으로 탄생하시고, 또 약속하신(사 53장; 마 16:21) 대로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약속하신(시 16:10; 마 16:21; 요 2:19-21) 대로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죄인임을 깨닫고 회심하시면 됩니다. 마음과 생각을 바꾸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짝사랑을 그냥 그대로 두면 안됩니다. 나중에 크게 후회하게 됩니다. 마음을 열고 그 사랑을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오늘도 이 부족한 종을 통하여 여러분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고 하셨으며,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 용서 받지 못할 죄는 없습니다. 복음을 거절하는 성령훼방 죄 외에는 말입니다. 아직도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오늘 설교를 듣는 분 가운데 한 분이라도 회개하고 돌아오시면 하늘에서 하나님과 그 천군천사들이 기뻐 즐거워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누가복음 14장부터 계속되는 주제가 하늘의 잔치입니다. 15장에서는 그 천국잔치의 기쁨, 하나님 아버지의 기쁨, 함께 하는 천사들의 기쁨이 한 영혼이 진리의 복음을 듣고, 그 크신 사랑과 은혜에 감동을 받아 회심하고 돌아올 때에 넘친다고 합니다. 우리가 다 경험해본 것입니다. 아주 귀한 것을 잃어버렸다가 찾았을 때의 기쁨 말입니다. 죽었다고 생각한 사람이 살아났을 때의 기쁨 말입니다.
간절히 찾다가 찾았을 때의 하나님의 마음이 여러분의 마음입니까? 아니면 그런 기쁨에 별로 관심이 없습니까? 그래서 찾지 않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잊었던가, 영적 침체에 빠진 것입니다. 기억하셔야 합니다. 바울은 에베소교회를 향하여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엡 2:3-5) 하였습니다. 우리가 바로 그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이었고, 잃어버린 한 동전이었습니다. 믿음을 주셔서 회개하고 고귀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회복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셔야 합니다. 자신의 아들을 희생해서라도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자녀를 삼으셔서 풍성한 은혜로 살아가게 하시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아직도 사춘기 학생들처럼 철들지 않았다면 더 회개하셔야 합니다. 깨달으셔야 합니다. 계속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시게 할 것입니까? 언제까지 말입니까? 천국잔치에 동참하여 함께 즐거워하며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 영혼의 귀함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그렇게 기뻐하신다는 것을 알 때에 주위에 아직도 잃어버린 영혼이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복음을 나누어야 합니다. 오늘 비유의 목자처럼, 어느 여자처럼 우리 예수님은 먼저 죄인들을 찾아 나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듯이(요일 4:19)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처럼 찾아 나서야 합니다. 우리의 책임입니다. 교회의 책임입니다. 우리가 먼저 잃어버린 자에게 사랑의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합니다. 오래 참아야 합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들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벧전 3:15) 하였듯이, 온유함(gentleness)과 존중함(respect)으로 그들을 만나야 합니다. 우리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이 사명 감당하라고 우리를 부르시고, 구원하시고, 자녀를 삼으셨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우리 주님의 마음이 우리의 마음이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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