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등록 비번분실

전체방문 : 5,022,582
오늘방문 : 148
어제방문 :
전체글등록 : 3,841
오늘글등록 : 0
전체답변글 : 2
댓글및쪽글 : 18

좌측_배너 배너 001

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1-06-06 (일) 03:24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928    
재림을 기다리며 믿음으로 끈질기게 기도하라 (눅 18:1-8)


기도는 성경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합니다.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우상에게 절하며 바라고 원하는 것을 요청합니다. 그들이 하는 기도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하는 기도와 무엇이 다른가요? 그들은 그들의 신과 흥정을 합니다.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겠다는 식입니다. 또는 뇌물(돈)을 주면서 자기 편에 좋게 들어달라고 조종합니다(manipulate). 혹은 그들의 신에게 자신이 복을 받기에 합당하다고 주장하며 협박을 하듯이 축복해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 아버지에게 드리는 성도들의 기도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우리의 뇌물을 받거나 하여 조종 당하지 않습니다. 흥정한다고 들어주지 않습니다. 물론 서원의 기도가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의 출발이, 근거가 다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로부터 무엇이 필요한 분이 아닙니다. 다 가지신 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설득하기 위하여 드릴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꿰뚫고 계십니다. 하나님에게 사람이 축복 받기에 합당하다고 주장할 수가 없습니다. 연약한 죄인이라서 그렇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단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꼭 필요할 뿐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인격적인 하나님이기에 개인적인 교제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만나 대화하기를 원하십니다. 그저 복을 달라고 우상에게 하는 기도와 달리, 하나님은 우리가 그의 임재 안에 들어가는 것을 기뻐합니다. 다만 그렇게 대화를 하는 중에 재림이 가까울수록 더욱 악해지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그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이 힘들기에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합니다. 고난이 있기에, 우리의 대적 사탄 마귀를 물리치기 위하여 기도하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기도하고 있습니까? 어떻게 기도합니까?
 
지난 주일에 17장 마지막 부분에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고 믿는 모든 사람들은 우리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며, 다시 오실 영광의 주님을 손꼽아 기다린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하여 오시는데, 그 때가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리 멀지 않았기에, 아니 우리는 언제 세상을 떠날지 모르기에 혹시 아직 준비가 되지 않으신 분들 더 늦기 전에 지금 믿어야 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이제 18장에서는 재림을 기다리며 종말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어떤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서는 불의한 재판관 앞에서 끈질기게 강청하는 한 과부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말씀하고 계십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1절)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8절에서도 언급하듯이 문맥상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늘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재림이 늦는다고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말하는 기도는 필요한 제목들을 작성하여 요청해서 즉각적으로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끈기를 가지고 하나님께 계속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들이 하나님의 때에 응답하실 것을 믿고 포기하지 않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여기 ‘낙망하다(evgkake,w)’는 ‘악에게 지다(give in to evil), 마음을 잃다(loose heart)’ 라는 뜻으로 우리말 번역이 잘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모양으로든지 응답이 있을 때까지 마음을 잃지 말고, 악에게 지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믿음으로 계속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이 교훈을 강조하기 위하여 예수님은 비유의 이야기를 합니다.

“가라사대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2-3절) 하였습니다. 이 비유에서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한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불의한 재판관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한 재판하는 권세이었으나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니 자기가 능력이 있어서 그렇게 된 줄 알고 권세 없는 평범한 사람들을 무시합니다. 특히 과부와 같이 소외되고 긍휼을 베풀어야 할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더 심하게 합니다. 또 한 사람인 과부는 억울한 일을 당하여 재판관에게 정의를 호소합니다. 만약 재판관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였더라면 억울한 과부의 사정을 듣고 공정하게 재판을 하였을 것입니다. 아니 율법에 의하면 고아나 과부에게는 더 공정하게 하며,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을지라”(출 22:22-23; 참고 신 10:18; 24:17-21; 27:19)고 하였습니다.
불의한 재판관이 자신의 억울함을, 원한을 풀어주지 않자, 과부는 자주 그에게 찾아갑니다. 밤낮으로 찾아가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합니다.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불의한 일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재림이 가까울수록 이 세상은 더 악하여지기 때문에 더 많은 불의한 일을, 억울한 일을 당할 때가 있을 것을 비유적으로 말씀했다고 여겨집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과부처럼 밤낮으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결국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불의한 재판관은 과부의 억울함을 해결해 줍니다.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4-5절)고 하였습니다. 한 동안은 들어주지 않다가 속으로 생각해보니 안 들어주다가는 계속 와서 자신을 번거롭게, 귀찮게 할 것 같아서 그 원한을 풀어주었다는 말입니다. 5절에 ‘괴롭게 한다(u`popi,azw)’는 원래 ‘얼굴을 쳐서 눈퉁이를 까맣게 만들다’ 라는 뜻입니다. 바울이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 9:22) 에서 ‘자신의 몸을 치다’ ‘자신을 스스로 징계하다’ 라는 의미로 사용한 단어입니다. 이 과부의 억울함을 들어주지 않으면 자꾸 괴롭혀서 자신이 망가질 것 같아서 들어준다는 것입니다. 비록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웬만한 사람들을 무시하는 재판관이지만, 자기 몸이 다칠 것 같아서 들어준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래서 과부의 원한을 풀어줍니다. 즉 불의한 사람이라도 자기를 생각해서 마음을 바꾸게 하는 방법을 과부는 사용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에게 적용할 때에는 그 경우가 달라집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기적으로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행동하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응답하는 것은 자신의 인자하고 긍휼이 많으신 성품에 근거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를 향한 무한한 사랑에 근거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7절)고 한 것입니다. 불의한 재판관도 자기가 더 이상 괴롭힘을 당하지 않기 위하여 과부의 원한을 풀어주었는데, 하물며 의로운 재판관이신 하나님이,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그 사랑하는 택한 자들의 밤낮 부르짖는 원한을 풀어주지 않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중요한 문구가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 입니다. 아무나 그렇게 부르짖으면 들어준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스스로 선택하여(마 24:22; 롬 8:33; 엡 1:4; 골 3:12; 딤후 2:10 등) 자녀를 삼으신 우리들의 밤낮 부르짖는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선택하여 자녀를 삼았으니 책임을 지고 그 원한을 풀어주겠다는 뜻입니다. 오래 참지 않고 말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진리의 말씀으로 약속하신 하나님을 정말 믿느냐는 것입니다. 믿는다면 억울함을 해결해달라고 밤낮으로 기도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 믿음이 없거나 작아서 그렇게 끈질기게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8절)고 하신 것입니다. 인자가 올 때, 즉 재림하실 때 그런 믿음이 있는 자를 찾아 내겠다고 하십니다. 원어에 의하면 8절 하반절의 “믿음을 보겠느냐”의 믿음 앞에 정관사가 붙어 있습니다. 즉 “그 믿음을 보겠느냐”는 것입니다. 재림을 기다리면서 이 세상에서 당하는 불의한, 억울한 일을 놓고 하나님에게 밤낮 믿음으로 기도하는 자를 찾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인자하신 분이며, 선하신 분이며, 자비와 긍휼이 풍성한 분임을 믿으며 말입니다.
혹시 조금만 무슨 일을 당하며 금방 낙심하고 침체되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마치 하나님 아버지가 없는 분처럼, 아니 있어도 자신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분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는지요? 한 두번 기도해보고 아닌가 보다 포기하지는 않는지요?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들은, 우리 주님의 재림을 간절히 기다리는 성도들은 이런 믿음으로 기도하며 살아갑니다.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가 나타나기를 위하여 밤낮 간구합니다.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물론 이 세상에서 불의한 일이나, 불공정한 일,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열심히 하고자 할 때 반드시 어려움은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에게 “너희 마음을 굳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데살전 3:13)고 한 것입니다.
참 믿음으로 살아가려면 마음을 굳게 해야 합니다. 어려운 일이 닥친다 하더라도 낙심하면 안됩니다. 오히려 당연한 것으로 알고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밤낮으로, 필사적으로, 끈질기게 간구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 첫 설교 6장에서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시고, 7장에서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마 7:7-8)고 하지 않았습니까? 끈질긴, 끈기 있는 기도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사실 억울함이 있다면, 원한이 있다면 그렇게 기도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뭐 그렇게 억울할 것도 없고, 원한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기도하지 않겠지요. 혹은 믿음에 문제가 있으면 그럴 것입니다. 끈질기게 기도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은 항상 옳은 결정을 하시는 분입니다. 얼마든지 신뢰할만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선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주기도문에서도 가르쳐 주셨듯이, 기도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막무가내로 요청하여 받아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세상의 우상신들을 믿는 자들이 하는 기도입니다. 우리 성도들의 기도는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며 교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만나서 교제를 하기 원하십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녀인데 억울한 일을 당하면 풀어주셔야 할 분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이시니, 그 때는 정말 간절히, 끈질기게 밤낮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때로는 응답하는 데에 시간이 길게 걸릴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인가 일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마치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계 22:20)라고 사도들이 주후 1세기 말부터 기도했지만, 그 후에도 수많은 제자들이 그렇게 기도하지만 아직 오지 않으신 까닭이 이 세상에는 아직도 회개하고 돌아와야 할 택하신 자들이 있기 때문인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예수님 재림하시고 나면 그치게 될 것입니다. 그 때는 찬양만 할 것입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 세상에 이런 믿음이 있는 자를 찾겠다고 하셨습니다. 어찌하든지 주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무슨 세상 일로 인하여 낙심하지 마시고 항상 기도하십시오. 특별히 억울한 일을 당하시면 흔들리지 마시고 믿음으로 끈질기게 기도하여 응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1375 수요설교 채찍질하고 조롱하며 때리더라 (요 19:1-3) 한태일 목사 2024-03-28 9
1374 절기설교 잘못된 믿음 (요 12:12-16) 한태일 목사 2024-03-24 29
1373 주일설교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으면 (막 2:18-22) 한태일 목사 2024-03-17 84
1372 주일설교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막 2:13-17) 한태일 목사 2024-03-10 176
1371 주일설교 회막을 향하여 진을 치고 (민 2:1-2) 관리자 2024-03-04 237
1370 수요설교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 (빙 2:12-18) 한태일 목사 2024-02-29 157
1369 주일설교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막 2:1-12) 한태일 목사 2024-02-25 258
1368 주일설교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막 1:40-45) 한태일 목사 2024-02-18 377
1367 수요설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 (빌 2:5-11) 한태일 목사 2024-02-15 154
1366 주일설교 예수님의 마음은 (막 1:29-39) 관리자 2024-02-12 270
1365 주일설교 예수님의 권세와 능력 (막 1:21-28) 한태일 목사 2024-02-04 370
1364 수요설교 하나됨을 지켜라 (빌 2:1-4) 한태일 목사 2024-02-01 110
1363 주일설교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르심 (막 1:14-20) 한태일 목사 2024-01-28 117
1362 주일설교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는 예수 그리스도 (막 1:9-13) 한태일 목사 2024-01-21 147
1361 수요설교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빌 1:22-30) 한태일 목사 2024-01-18 102
1360 주일설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과 준비 (막 1:1-8) 한태일 목사 2024-01-14 104
12345678910,,,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