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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1-11-21 (일) 00:58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604    
감사해야 할 이유 (2) (시 100:1-5)



우리의 창조주이시며 목자되시는 하나님

오는 목요일 올해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오늘 2021년 추수감사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 각자가 한 해를 돌아보면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 선물이 많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은 과거를 회상하며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후 9:15)고 하였습니다.
사실 성도의 삶은 매일 매일이 감사요, 매 주일이 감사요, 한 달의 생활이 감사요, 한 해와 한 평생이 감사입니다. 하지만 특별히 추수감사주일을 맞아 저는 여러분과 함께 우리 하나님께서 여전히 온 세상을, 나를 다스리시기에 감사해야 한다고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데 이어, 본문을 통하여 우리가 감사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를 살펴보기 원합니다. 오늘 시편도 93편과 마찬가지로 제 4권에 속하는 시편으로 어렵고 힘든 이스라엘 백성들 중 믿음으로 노래하는 시편기자의 모습을 봅니다.

우선 시편기자는 여호와 하나님을 즐거이 부르며, 기쁘게 섬기면서 노래하며 감사하라고 합니다.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찌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찌어다"(1-2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주님과 함께 하는 행복, 기쁨 가운데 즐겁게 찬양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속으로만 하는 감사가 아닙니다. 감사는 사랑과 마찬가지로 바깥으로 표현이 되어야 합니다. 기쁨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여기 ‘섬긴다’는 뜻은 경배와 찬양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말입니다. 4절에도 성전에 들어가서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하였습니다. 즉 하나님께 대한 감사는 받은 은혜의 감격 속에 우리의 영으로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하여 수고를 아끼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 사랑이 필요한 자들을 돌보며 섬기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을 즐거이 부르며, 기쁘게 섬기며 감사를 드려야 합니까?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찌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오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3절)라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알찌어다" 라는 명령입니다. 무엇 때문에 감사하는지 경험적으로 알라는 것입니다. 모르면서 어떻게 감사를 합니까?
그러면 하나님에 대하여 무엇을 알라는 것입니까? 하나는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창조주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피조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은 물론, 우리를 지으신 자인 줄 모르면 인본주의가 되는 것입니다. 다 내가 잘나서, 인간들이 똑똑하여 이만큼 된 줄로 여기고 교만하여 지니 어떻게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까? 하나님은 우리 어머니의 태를 사용하여 우리를 창조하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시고 새롭게 재창조하셔서 전지전능하신 만왕의 왕,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으니 정말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으니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절하)고 하였습니다. 우리 인생이 다 주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만약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건강과 시간과 재물을 허락하셨으면, 그것들에 대하여 감사를 드리며 청지기로서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시험과 고통 속에 슬픔을 허락하셨으면 그러한 때에도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며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그 섭리를 믿고 감사하여야 합니다. 바울은 "내가 궁핍함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1-13)고 옥중에서도 넘치는 감사의 편지를 쓴 것입니다. 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참된 지성인이 누구인가? 모든 경우에 배우는 자이다. 참된 강자가 누구인가? 자신을 절제하는 자이다. 참된 부자가 누구인가? 가진 것에 자족하는 자이다." 우리도 자족(content)하기를 배우며, 다 주님에게 속한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주님의 소유가 되었으니, 주인되시는 주님이 다 책임져 주십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양이로다” 라고 하였습니다. 양은 눈이 나빠서 한 치 앞도 잘 못보고, 연약하여 자신을 지킬 수도 없고, 넘어지면 홀로 일어설 줄도 모른다고 합니다. 목자가 지팡이와 막대기로 갈 길을 인도해야 하고, 푸른 초장과 물가로 데리고 가서 먹이고 마시게 해야 하고, 사나운 짐승들로부터 보호해야 하고, 더러워지면 씻겨주어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의 모습이 아닙니까?
그런데 성경은 주님이 우리의 선한 목자이며, 우리는 주님이 기르시는 양이라고 합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 10:11)라고 하셨으며, 이어서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 10:14-15)고 하였습니다. 자기 양을 위하여 기꺼이 목숨을 내 놓는 구속자(Redeemer)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선한 목자의 돌보심을 받는 양이니 하나님께 감사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어떠한 형편에서도 과연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며 떠나지 아니하시고 책임지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아니 주님이 우리를 만드셨고, 구속하셨고, 소유라고 하시고, 세상 끝날까지 돌보시는 목자라고 하였는데 우리가 무엇을 더 원하겠습니까?

그리고, 마지막 5절에 "대저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 성실하심이 대대에 미치리로다" 하면서 시를 끝맺습니다. 3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신 일에 대한 감사라고 하면, 5절은 하나님이 누구신가, 어떤 분이신 가에 대한 감사입니다. 1) 하나님은 선하시다, 좋으시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은 늘 선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도 선하다고 하였습니다(롬 12:2). 복음의 의미도 좋은 소식이라는 뜻이지요. 다윗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체험한 후에 "너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다 알찌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 34:8) 라고 고백하였습니다. 2) 하나님은 인자하시다, 사랑이시다는 말씀입니다.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니 얼마나 깊고 크신 사랑입니까? 우리가 끊임없이 들어온 말씀입니다.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주가 되시며, 목자가 되십니다. 3) 하나님은 성실하시다, 신실하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도 조석(朝夕)으로 변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과거에도, 현재도 선하십니까? 그렇다면 미래에도 선하실 것이니 변하실까 염려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과거에도 사랑하셨지요? 지금도 사랑하십니까? 물론입니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변함없이 사랑해 주실 것입니다. 이유는 하나님은 변함없이 영원히 신실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감사를 드리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하였습니다(롬 10:10). 이 마음으로 고백되는 신앙을 행동으로 나타내는 표현이 "감사합니다" 말입니다. 이 감사의 표현이 입으로 찬양드림으로, 기쁨과 즐거움의 소리침으로, 기도드림으로 나타납니다. 경배와 찬송으로 예배를 감격 속에 드림으로 나타납니다. 주를 섬기고 봉사함으로 나타납니다.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것도 신앙의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이주한 청교도들이 기근과 염병과 인디안들의 공격에 시달리면서 자유의 땅에서 처음으로 얻은 양식을 인하여 감사드리는, 즉 신앙 자유에 대한 은총을 감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감사는 신앙고백의 표현입니다.
또한 감사는 성장하는 신앙을 나타냅니다. 우리 신앙의 본질은 생명에 있습니다. 그런데 생명은 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감사는 신앙성장과 비례합니다. 성숙한 자녀들이 부모에게 감사하듯이 성숙한 성도들이 늘 감사하게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감사할 때 신앙은 성장하고 성숙하게 됩니다. 반대로 원망하고 불평할 때 신앙은 퇴보합니다. 초대교회도 날마다 성전에 모이면서 찬양을 드렸습니다. 로마 제국의 박해가 심하여 교회가 땅 속에 들어가 카타콤의 생활을 할 때에도 저들은 언제나 찬송하였습니다. 진리의 사자들이 로마 원형경기장에 끌려 죽으러 들어갈 때에도 모여온 로마의 신자들은 찬송을 하면서 그 순교자들을 전송하였습니다. 요즘 현대음악이야 그렇지 않지만 고전음악에서 교회음악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바하나 헨델, 하이든, 모짜르트, 베토벤 등을 위시한 대가들의 곡들은 모두 위대하신 하나님의 창조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에 기초한 감사의 고백들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의 삶은 감사의 찬양을 노래하는 삶입니다. 기쁘거나 슬프거나, 성공할 때에나 실패할 때에나 언제나 그 입술에 찬양이 끊이지 않습니다.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는 말하기를 "마귀의 세계에는 감사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사람들에게는 마음이 있습니다. 밝고 명랑한 마음이 있는가 하면, 어둡고 침울한 마음이 있습니다. 밝은 마음은 소망이 있는 감사의 마음입니다. 어두운 마음은 미래의 소망 없는 마음입니다. 밝은 마음은 진보와 향상, 창조와 생산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두운 마음에는 불평과 의심, 원망과 절망의 슬픔이 가득합니다. 현재도 물론이지만 과거 역사가 늘 증거해 주고 있는 것이 신앙으로 감사하며 밝은 마음으로 살 때에는 성장하고 전진하는 것이었지만, 불평하고 원망할 때에는 뒤로 후퇴하며 실패하는 것이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바로 신앙이 성장하는 사람입니다. 감사는 우리 신앙의 여로에서 성화되어가는 좋은 사인(sign)입니다. 우리가 미국에 살고 있지만 여러분이 처음 와서 미국 사람들을 대할 때에 그들이 가장 잘 사용하는 두 가지 말을 배우게 됩니다. 하나는 "Thank you", 다른 하나는 "Excuse me" 입니다. 조그마한 일에도 감사할 줄 알고, 조그마한 실수에도 사과할 줄 아는 청교도들의 기독교적 문화의 유산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감사는 축복받은 신앙의 증거입니다. 왜냐하면 감사는 축복을 체험한 결과 나타나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로 다할 수 없는 은혜를 인하여 감사합니다. 은혜 받은 결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감사는 더 큰 축복에 대한 새로운 약속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자그마한 축복을 받고, 그래서 감사를 드리는 사람은 반드시 더 큰 축복을 받게 됩니다. 왜냐하면 감사는 우리의 과거와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천국의 영광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많은 은혜와 복을 주신 것은 그것을 받고 누리는 것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일 사람이 은혜와 복을 받고도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끝이지만,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깨닫고 감사드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번쩍 안아서 완전히 다른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로 데리고 가십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이미 많은 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복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받은 복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은 더 엄청난 영광의 복을 받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 세상의 많은 은혜를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과 감사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이 세상에 주어진 원초적인 복만 받고 끝납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사람은 그 전에 생각할 수 없었던 놀라운 하나님의 복을 영원히 누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그의 백성입니다. 그의 걸작품입니다. 그 분의 소유입니다. 선한 목자이신 주님이 기르시는, 돌보시는 양입니다. 선하시고, 인자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독생자의 목숨을 내어 주시기까지 하시면서 구원해 주신 은혜로 사는 우리가 아닙니까? 그 은혜에 넘치도록 매일, 매 주일, 매 달, 매 해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사랑하시는 주께 감사를, 찬양과 경배를, 섬기고, 예물을 드림은 마땅하지 않습니까? 신앙고백의 표현이 아닙니까?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까?
한 해를 돌아보며 내 자신과 가정과 교회에 주신 축복들을 헤아려 보지 않겠습니까?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소원하는 것이 우리에게 향하신 것이 아닐까요? "모든 것을 너희를 위하여 하는 것은 은혜가 많은 사람의 감사함으로 말미암아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고후 4:15)!
비록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으나 즐겁게 노래하며, 기쁘게 주님을 섬기며 넘치는 감사를 드리면서 올 해를 잘 결산하여, 새로운 내년을 바라보며 더욱 우리의 비전에 초점을 맞추어서 전진하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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