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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2-11-20 (일) 05:47
분 류 절기설교
ㆍ조회: 297    
은혜의 가시 (고후 12:7-10)



좋은 일이 생겨도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자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이기를 거절한 사람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당연히 좋은 일이 생기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뿐만 아니라, 아무 일이 없어도, 평안해도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겨도, 힘들고 어려운 중에도 감사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항상, 범사에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합니다.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엡 5:20) 하였고,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전 5:18)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실제로 어려운 중에, 고통 중에 감사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런 때에도 감사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의 사도 바울에게서 배울 수가 있습니다.

   바울이 어떤 사람입니까? 사도들 중에 가장 훌륭한, 뛰어난 사도가 아닙니까? 그는 놀라운 영적 체험을 많이 한 사람입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신 환상과 계시가 많은 사람입니다(고후 12:1). 그의 영혼이 천국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2-4절). 비록 3인칭 단수를 사용하고 있으나 누구나 바울 자신을 가리키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말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실제로 겪은 일이지만 보통 사람은 실감할 수 없는 경험이었기 때문입니다. 여기 바울이 언급하는 하늘의 뜻을 설명하자면, 첫째 하늘은 눈에 보이는 하늘이며, 둘째 하늘이 눈에 보이지 않는 우주를 가리킨다면, 셋째 하늘(2절)은 낙원(4절)은 곧 천국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살아 생전에 하나님께서 계신 곳을 다녀온 경험을 한 것입니다. 마치 죽은 상태에서 몸은 그대로 있는데 그의 영혼이 빠져나간 같은 경험을 한 것입니다. 14년 전이라고 하면(2절), 주후 55-56년 사이에 고린도후서를 기록했으니, 아마도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다소로 돌아온 다음(행 9:30), 그리고 그가 안디옥 교회로부터 바나바와 함께 최초의 선교사로 파송을 받기 전 사이에 경험한 일로 여겨집니다.  
   그런데 만약 오늘날 누가 이런 체험을 하면서 주님으로부터 많은 환상과 계시를 직접 받는다고 한다면 얼마나 그것들을 자랑하고 다니겠습니까? 하지만 오늘날은 하나님께서 그 때 바울에게 허락하신 이런 천국에 다녀오는 환상이나 계시로 나타나지 않으십니다. 처음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초대교회들이 막 태동할 당시에 있었던 이런 일들은 신구약 성경 66권의 계시가 끝난 후에는 우리 하나님께서 이렇게 계시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누가 비슷한 이야기를 하면 속지 마십시오.
   사실 당시의 거짓 사도들이 그런 환상과 계시를 받았다고 자랑하고 다녔습니다. 물론 거짓입니다. 성령 하나님의 계시가 아닌 사탄, 마귀의 계시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전혀 말하고 싶지 않지만, 무익하지만, 부득불 그런 사람들 앞에서 또한 고린도교인들에게 이 놀라운 경험을 증거한다고 합니다(1절). 이유는 거짓 사도들의 주장이 거짓임을 증명하기 위하여 말입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그런 체험이 없는 사람의 말은 아예 들으려고 하지도 않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정말 자랑하고 싶은 것은 자신의 약한 것들이라고 합니다(5절). 왜냐하면 그런 놀라운 신비한 경험을 했다고 해서 자신에 대하여 사람들이 지나치게 생각하지 않기를 원했던 것입니다(6절). 그런 신비한 경험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을 과대평가를 하지 않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물론 거짓이 아닌 다 진실한 말들이지만 말입니다.
   그러면서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7절)고 합니다. 즉 바울은 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육체의 가시를 주셨는지 잘 깨닫고 있습니다. 여기서 ‘가시(sko,loy, thorn)’라고 하는 것은 원어에 의하면 실제로 ‘말뚝(wooden staff)’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성경학자들마다 바울이 이야기하는 육체의 가시에 대한 해석이 다양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육체적인 질병으로 안질이나 말라리아 열병, 아니면 류마티즘, 혹은 간질병 등으로 생각합니다. 문제는 그의 질병이 어떤 것이었던 간에 그것이 주기적으로 찾아왔으며, 그 때마다 그를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가는 무서운 병이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사탄의 사자라고 표현했겠습니까(7절)?
   그래서 그가 간절히 어떻게 기도했느냐 하면,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8절) 하였습니다. 바울이 세 번이라고 말하는 것은 당시에 한번에 40일 작정을 하고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그동안 통틀어 120일을 육체의 가시를 없애 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여러분! 바울은 치유의 은사가 있던 사람이 아닙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질병을 고쳐주었습니까? 자기 설교를 듣고 졸다가 창문에서 떨어져 죽었던 유두고를 살린 바울이 아니었습니까(행 20:9-11)? 그런데 자신의 육체의 질병은 못 고치고, 하나님께서 고쳐주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7절에서 두 번씩이나 강조하면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이 질병을 준 것은 자고(자만)하지 않기 위해서 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 질병 때문에 교만하지 않을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관점으로 질병을 바라본 것입니다. 인간의 관점은 질병이 싫은 것입니다. 고통이 불행인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은 다릅니다. 질병이, 고통이 바울을 연단하여 더욱 겸손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주님 닮는 사람으로 성숙하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더욱 주님을 의지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것도 은혜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에게 있어서 가시는 무엇입니까? 그 괴로운 가시로 인하여 여러분이 겸손해 져서 더욱 성숙하게 되고, 더욱 주님을 의지하게 된다면, 더욱 주님을 닮아가게 된다면 오히려 그 가시에 대하여 감사를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를 괴롭게 하는 가시 때문에 내가 더욱 하나님을 가까이 하게 되었으니 감사해야 합니다. 그런 감사의 모습이 믿지 않는 자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약한 것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결코 가시가 불평의 조건이나 실패의 조건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감사의 조건이 됩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기도하고 해도 가시가 없어지지 않으면, 가시를 없애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가시를 바꾸려고 하지 마시고 나를 바꾸어야 합니다. 내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만약 가시 같은 사람이 옆에 있다면 그를 이해하려고 하십시오. 그를 긍휼히 여길 마음을 달라고 하십시오. 축복하며, 격려하고 사십시오. 하나님께서 그 가시를 품을 수 있는 능력을 허락해 주십니다. 내가 달라집니다.
    바울이 육체의 가시를 없애 달라고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어떻게 응답하셨습니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하신지라”(9절상)고 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육체의 가시가 있는 그대로 내게 감당할 은혜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 가시 때문에 내가 약하여질 때, 겸손해질 때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 가시 때문에 끝까지 교만하지 않고 주님의 뜻을 따라 가도록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은혜의 가시라는 말씀입니다.
   이 깨달음 이후로부터 바울의 생각과 태도가 달라집니다.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을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9절하)! 육체의 가시로 말미암아 연약해진 자신의 모습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고 기뻐하면서 오히려 자랑했더니 주님의 능력이 나타나더라는 말씀입니다. 할렐루야!
   우리들의 신앙생활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기도를 자주 안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기도의 내용입니다. 무작정 고통을 면하게 해달라고만 하는 기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문제가 해결이 되어야 한다고 고집하는 기도의 내용입니다. 기도는 그게 아니라 하나님 앞에 내 관점, 내 생각은 내려놓고, 하나님의 관점으로 볼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달라고 부르짖는 것이 참된 기도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 제 생각에는 이렇게 해결해 주시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제 눈에는 그것이 축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니라고 하시면 내려놓지요. 하나님의 관점으로 볼 수 있도록,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려주세요’ 라고 부르짖는 것이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기도입니다. 바로 주님께서 가르쳐준 주기도문의 내용입니다.  
   여러분! 만약 모든 것이 우리 뜻대로 된다면 우리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교만하여 타락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가 주님을 떠나지 못하도록 육체의 가시들을 주십니다. 모든 것을 우리 뜻대로 되지 않게 하시고 자주 힘들게 하심으로 우리의 실체(reality)를 보게 하십니다. 하나님을 의존해야 하는 피조물임을 깨닫게 하십니다. 만약 우리 중에 우리 혼자 힘으로 모든 것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위험한 인물입니다. 이유는 그가 지금 교만한 자리에 있으며 언제 넘어질지 모르는 그런 상태에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얼마나 잘 넘어지는 사람인지 아시고 여러가지 안전장치를 마련해 놓으신 것입니다. 끝까지 주님을 붙들고 그 분께 매달려 있게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래야 주님의 능력이 나타나니까요.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런 주님의 능력을 체험했기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10절)! 자신의 연약함에 대한, 가시에 대한 관점이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뀌니 약한 것들을 싫어하거나 수치스럽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기뻐한다고 합니다. 오히려 그것을 자랑한다고 합니다. 이유는 그럴 때 곧 하나님의 능력으로 강해짐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올해 추수감사주일을 맞이 헸습니다. 한 해를 돌아보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만, 우리는 늘 범사에 감사하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하는 것은 감사할 제목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감사할 생각을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의 관점으로만 모든 것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은 모든 것이 풍부해도 감사하지 못합니다. 더 원하는 것이 있어서 말입니다. 반대로 전혀 감사할 제목이 없는 것 같은 분들이 감사하는 것을 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관점으로, 믿음으로 삶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각과 태도가 달라집니다. 그대로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위로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은혜의 가시’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롬 8:28-29절상)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가시도 합력하여 선을 이룰 줄 믿습니다. 그 아들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게 하려고 주신 것이니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 없는 것들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있는 것들을 생각하며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하여 내 믿음을 강하게 하시든지, 날 더욱 겸손하게 하셔서 주님을 닮아가게 하실 것입니다. 원망하고 불평할 대상을 감사할 대상으로, 은혜의 가시로 여기십시오.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역사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미국 남북 전쟁에 참여했던 남군의 무명 상이용사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힘이 센 강한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약한 자 되게 하시어 겸손히 순종하는 법을 배우게 해주셨습니다.
부자가 되어 행복하게 살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으로 지혜롭게 인생을 살도록 해주셨습니다.
권력을 주셔서 사람들의 칭송을 받으며 살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권력 없는 자가 되게 하시어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인으로 살게 해주셨습니다.
인생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즐기고 감사할 수 있는 생명을 주셨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간구한 것은 아무것도 받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소망했던 것은 모두 받았습니다.
나 자신의 모습 이대로 나는 하나님의 복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 중 한 사람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가시를 남겨 놓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건강 문제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결혼의 실패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부족한 학력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육체적인 장애일 수도 있습니다. 그 어떤 것이든 간에 그 부분이 자기를 끊임없이 겸손하게 하며, 그것 때문에 주님을 늘 의지하게 되어 그 약한 부분을 자랑하게 되고 사랑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고 들려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있어서 치명적인 약점이 자랑거리가 되고, 면류관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절대로 모든 것을 다 주시기 않습니다. 그래야 우리가 끝까지 주님께 붙어 있게, 주님을 의지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때로는 고난의 풍랑을 만나게도 합니다. 그 풍랑을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헤쳐 나가게 하십니다. 풍랑조차 하나님의 은혜이기에, 사랑이기에 감사합니다. 아 멘!
Happy Thanksgiv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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