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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4-07-07 (일) 06:17
분 류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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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233    
큰 광풍이 일어나도 두려워 말라 (막 4:35-41)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뜻밖의 광풍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중한 병에 걸린다든지,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가 위기를 만난다든지, 그들이 먼저 세상을 떠난다든지,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당한다든지, 혹은 어떤 이유이든 영적으로 침체되는 것을 경험하는 등 말입니다. 그럴 때 여러분은 어떻게 대처하십니까?
지난 주일에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유의 말씀을 설명을 듣고(4:26-34), 우리 모두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참된 성도이기 바라는 마음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해하고, 감동을 받으며, 신뢰하고, 따라가는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늘 복음의 씨를, 진리의 말씀을 열심히 뿌리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정말 결과는 하나님의 주권에 맡기고, 우리는 실제로 담대히 씨를 뿌리는 자들이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씨를 뿌리려고 하는데 광풍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창 1:26) 하셨습니다. 즉 사람을 창조하신 후 그들에게 복을 주어 생육하고 번성하여 온 땅을 정복하며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였습니다(창 1:28).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후에는 그 권세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땅과 함께 저주를 받고 그 영광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권세가 사탄에게로 넘어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세상의 부패, 각종 질병과 고통, 죽음, 환란, 슬픔, 전쟁과 기근 등 온갖 재앙을 가져오는 사탄의 세상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원래 에덴동산에서는 이런 불행이 사람에게 없었습니다만, 죄가 들어온 다음부터 모든 재난이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크신 계획 안에는 그렇게 죄로 말미암아 고통 당하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섭리가 있으셨기에,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심으로 택자를 구속하시고, 다시 나중에 재림하심으로 이 땅을 완전히 새 하늘과 새 땅으로 구속하실 것입니다. 죄의 고통과 각종 질병과 슬픔에서, 재앙들로부터 거룩과 의와 진리와 평안과 사랑과 아름다운 것들 만이 있는 세상으로 바꾸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히브리서 기자가 예수님을 가리켜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오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3)고 하신 것처럼, 우리는 주님에게 이 세상 모든 만물을 주장하시는 능력이 있음을 알고, 믿습니다. 주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시고 주장하실 능력이 있다면 다시 재창조하실 능력도 있으시며,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실 능력이 있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육신으로 이 땅에 오심은 이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심으로 그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음을, 구약에서 약속된 메시아임을, 인간을 죄에서부터 구속하실 분임을, 주권자이심을 나타내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도 마가도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바로 그런 분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즉, 본문은 예수님께서 광풍도, 즉 자연도 다스리시는 무한한 능력을 나타내 보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 광풍이 몰아쳐도 함께 하시는 주님을 의지하고 안심하라는 것입니다.

“그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저희가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35-37절)고 하였습니다. 앞서 하나님 나라 비유를 마치신 예수님은 길이가 13마일(20km)쯤 되며, 넓이가 8마일(13km)쯤 되는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려고 배에 올랐습니다. 여기 “저편으로”는 요단강 동편에 있는 거라사(Gerasene)를 가리킵니다(막 5:1). 12제자를 비롯하여 주를 따르려는 다른 제자들도 다른 배를 타고 갔던 것이었습니다.
여기 “제자들”이라 함은 그 뜻이 단순히 ‘따르는 자, 배우는 자, 학생’의 의미를 갖고 있는데, 성경에 나오는 제자들 중에는 약 4부류가 있는 것 같습니다. 1) 호기심에서 주님께서 하시는 일이 좋아서 따라다니던 제자, 주님의 말씀도 좋고 베푸시는 기적도 볼 만하여 따라다니지만 구세주로 믿지 못하는 제자들입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결국 떨어져 나가는 제자들이지요(예: 요 6장). 2) 예수님의 말씀과 능력을 지적으로는 받아들이지만 중생의 체험이 없는 제자들입니다.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가 없어서 그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고, 영생을 누리지 못하는 무리들입니다(예: 요 3장의 니고데모). 3) 남들 앞에서 공적으로 믿지 못하고, 몰래 믿는 자들입니다(예: 아리마대 사람 요셉). 4) 참된 제자로 공적으로도, 사적으로도 주님께 헌신되어 있음을 나타내 보이는 제자들입니다. 아마 지금 예수님과 함께 배를 타고 갈릴리 저편으로 가는 자들에는 이 모든 부류의 제자들이 다 있었지 않았는가 생각됩니다.
여러분은 어느 부류의 제자입니까? 첫째 부류와 둘째 부류는 믿는 자들이 아닙니다. 셋째 부류는 초신자 혹은 믿음이 연약한 성도입니다.

아마 하루 사역을 마치시고 날이 저물 때(35절) 주님이 탄 배는 당시 어부였던 베드로나 야고보나 요한 등이 사용하던 작은 배였다고 여겨집니다. 갈릴리 바다는 북쪽 해발 9,200 ft 나 되는 헐몬산에서 요단강 계곡을 끼고 내려오는 차가운 북풍이 때때로 남쪽의 더운 열기와 만나서 큰 폭풍을 일으킨다고 합니다.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딪혀”(37절) 라고 하였는데, 바로 이 폭풍(Thunderstorm)을 말합니다. 이 폭풍으로 말미암아 물결이 배 안에 들어와 덮여서 가득하게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그 날 하루의 사역이 피곤하셨던지 깊게 잠을 자고 계셨던 것입니다(38절상).
하지만 이 모두가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었던 사건입니다. 비록 배 안에 물이 차고 곧 파선될 것 같아도 결코 그렇게 내버려둘 주님이 아니시지요.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이시지만 인간의 몸으로 피곤을 느끼시고 주무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 때에 제자들의 반응은 어떠하였습니까? “제자들이 깨우며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38절하)고 하였습니다. 12제자들 가운데 어부들이 많았기에 스스로 노력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더 이상 방법이 없음을 알고, 이제 죽을 것 같기에 주님께 요청하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를 더 이상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절망의 상태로 몰고 갑니다. 서론에 언급하였듯이 사람들은 무서운 죽을 병에 걸린다든지, 가까웠던 사람이 죽었다든지, 직장을 잃어버리든지, 큰 일이 닥쳐서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을 경우에야 하나님께로 눈을 돌리게 되니까요. 지금 제자들도 자기들 나름대로 노력하다가 안되어서 지치고 무서워지니 그제야 주님을 찾습니다. 만약 그들이 함께 배를 탄 주님을 온전히 믿었다면 그런 요동을 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자기에게로 돌아서는 것을 항상 기뻐하십니다. 특히 영혼 구원에 관하여는 더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도 잠깐 병도 고칠 수 있고, 잠깐 위로도 얻으며, 잠깐 경제적이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도 있고, 인생살이에서 다른 도움들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감당하지 못할 큰 광풍을 만났을 때에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어떠한 도움도 받을 수 없습니다. 그 초자연적인 능력의 기적을 체험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죄인이 자신의 죄를 시인하면서, 믿음으로 절망 가운데 부르짖는 소리를 듣기 원합니다. 자신에게 속한 택자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립니다.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기를 기다립니다.

곧 파선될 것 같은 상황에서 구원을 요청하는 제자들의 부르짖음에 대한 주님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물론 주님께서는 우선 광풍을 잔잔하게 하십니다.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39절)! 우리가 인생의 광풍을 만나도 두려워 하지 않을 이유는 1) 주님의 말 한마디에 광풍도, 자연도 순종합니다. 창조주의 말씀에 피조물은 순종하게 되어 있습니다. 보통 폭풍은 천천히 그 기세를 숙이게 되어 있지만, 이번은 다릅니다. 한 마디 말에 즉각적으로 꺾어져 버립니다. 질병과 마귀를 다스렸던 주님은 자연도 다스리십니다. 뿐만 아니라 죄를 용서하시는 능력과 죽은 자를 살리시는 능력도 있으십니다. 믿습니까?

예수님은 그리고 나서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40절)고 하였습니다. 동일한 사건을 기록한 마태는 그들이 믿음이 적어서 무서워하고 있다고 기록하였습니다(마 8:26). 즉, 주님께서는 ‘나를, 내 능력을 믿지 못하느냐?’고 제자들을 꾸짖으시는 것입니다. ‘여태까지 좇아 다니면서 보지 못했느냐? 나와 함께 있으면 절대 위험하지 않음을 모르느냐? 너희를 사랑하는 내가 죽도록 내어 버려둘 것 같으냐?’고 하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시편의 말씀들을 알고 있었습니다. “여호와 만군의 하나님이여 주와 같이 능한 자 누구리이까 여호와여 주의 성실하심이 주를 둘었나이다 주께서 바다의 흉융함을 다스리시며 그 파도가 일어날 때 평정케 하시나이다”(시 89:8-9, 참고 107:23-30)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지금 주님은 자신이 그렇게 예언된 메시아, 하나님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갈릴리 바다에서 이런 말씀에 대한 성취를 나타내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알고 믿는 성도는 그 어떤 것에도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2)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을 돌보시고 계시고, 앞으로도 돌보실 것이기에 어떤 위험이나 고통도 그들을 어찌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광풍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보게 하시니, 우리는 환란 가운데 이 사실을 알고 하나님을 묵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실 어떠합니까? 많은 성도들이 주님의 사랑과 능력을 알면서도 실제로 광풍이 몰아치면 주님을 믿고 의지하지를 못하고, 오늘 제자들처럼 무서워하거나 불안해합니다. 하긴 12제자들도 그러했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계속 강해져야 하고, 자라가야 합니다. 더해가야 합니다. 신자라고 해서 모두 성숙하지는 않습니다. 믿을수록 더욱 주께 부르짖으면서 믿음을 더해달라고 간구하여야 합니다. 마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막 9:23)고 하신 주님께, “내가 믿나이다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막 9:24) 라고 부르짖은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모두 채워 주실 분으로 알고 있다고 하면서도, 무슨 일을 만나면 얼마나 쉽게 그 분을 신뢰하지 못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줄 알면서도 얼마나 쉽게 그 사랑을 잊고 삽니까? 바로 믿음이 적은 연고입니다. 아니 너무나 작은 주님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겨자씨만한 믿음도 없는 것입니다(마 17:20). 정말 전지전능하신 크신 능력의 주님을 믿지 못해서 조금만 무슨 일이 생겨도 두려워하며 걱정하는 것이지요. 3) 이러한 능력의 주님을 믿기에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꾸짖음을 듣고 나서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 하였더라”(41절)고 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이러한 초자연적인 현상 앞에 도무지 예수님이 어떠한 사람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주님을 두려워합니다. 이러한 초자연적인 능력을 본 적이 없었던 그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과 권세를 체험한 욥은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욥 42:5-6)고 하였고, 베드로도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밤새껏 빈 그물로 고기잡이 하다가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고 나서는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5:8)고 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조금만 나타내셔도 사람들은 감히 그 앞에 설 수가 없습니다. 이 제자들도 갑자기 이 초자연적인 능력을 체험하고서 그 거룩하심 앞에, 그 능력 앞에 주님을 두려워 하며, 경외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갈릴리 바다의 광풍을 잠잠케 하셨던 그 주님이 오늘도 온 우주 만물을 다스리고 주장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광대한 은하계는 물론 작고 작은 원자에 이르기까지, 또한 모든 생물들까지도 균형 있게 다스리고 계십니다. 물론 앞으로 재림하셔서 죄로 물들은 이 세상을 정결케 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만드실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소망이 아니겠습니까? 아니 지금도 주님께서는 그를 믿고 의지하는 자에게 영원한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인생 항로에서 어떤 풍랑을 만나더라도 잠잠케 하시며, 매일의 삶 속에 슬픔과 고통을 이겨낼 있는 힘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 분이 우리와 함께 영원히 동행하십니다. 확실히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아 멘!
당시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던 믿음 없던 제자들보다는 나아야 하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그들보다 훨씬 많은 계시를 받았습니다. 더욱 하나님에 대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계획들)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계획들)이라”(렘 29:11)고 하셨고,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 8:35)고 하였습니다. 그 어떤 재앙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무슨 일을 만나도 주님만 의지하고 살겠다는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께 무릎 꿇기를 거부합니다. 죄는 자기 스스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만해서 그렇지요. 그러나 믿음이 있는 성도는 오직 예수님 만을 통하여 하나님께 속한 생명과 진리를 공급받습니다. 일상의 사소한 것도 주께로 온 것임을 알고, 믿고 감사합니다. 어떤 어려움도 주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고 그를 의지합니다. 주님에게 도움을 구합니다.
어떤 광풍이 여러분에게 몰아치고 있습니까? 어쩌면 주님께서 나를 쳐다보라고, 나를 의지하라고 주신 광풍인지 모릅니다. 내 믿음의 현주소를 확인하라고 주시는 것인지 모릅니다. 인격적인 주님께서 인격적으로 다가오시는 것입니다. 나를 창조주로 인정하라고, 광풍도 말씀 한 마디에 순종할 수밖에 없는 전능하신 분으로 알고, 믿고 안심하라고 하십니다. 이러한 주님을 확실히 믿고 어떤 광풍 속에서도 두려워 말고 안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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