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등록 비번분실

전체방문 : 5,015,535
오늘방문 : 1314
어제방문 : 2119
전체글등록 : 3,841
오늘글등록 : 2
전체답변글 : 2
댓글및쪽글 : 18

좌측_배너 배너 001

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0-09-20 (일) 09:19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744    
담대하고 끈질기게 기도하라 (눅 11:5-13)


20세기 영국 스코틀랜드의 개혁주의 신학자이며 목사였던 John Baillie 는 그의 기도문에서 ‘내 영혼의 영원하신 하나님! 오늘 첫 생각이 주님이게 하시고, 오늘 첫 열망(desire)이 주님을 향한 예배이게 하시고, 오늘 첫 말이 주님의 이름이게 하시고, 오늘 첫 행동이 주님 앞에 무릎 꿇는 기도이게 하소서’라고 시작하며, 세상에 살되 세상의 것이 되지 말게 하소서. 무엇을 사더라도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것처럼 살게 하소서. 만일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살게 하소서. 아직 내게 드러내지 않은 주님의 아름다움에 대한 비전을 주셔서 세상의 작은 아름다움에 만족을 누리지 않게 하소서.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사라지더라도 오직 주님만 홀로 남아 존재하실 것이며, 남아있는 모든 것은 주님 안에 존재할 것입니다 … 나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 이르기까지 쉬지 말게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의 내용과 맥락을 같이 하는 기도입니다.
교회가, 성도가 영적으로 살아있다면, 건강하다면 이렇게 기도하며 살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은 영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병들어 죽어가는 사람입니다. 사실 영적으로 건강한 성도는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며, 그 분의 능력을 요청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엄청난 능력을 주시는데, 그 능력의 도구가 바로 기도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통하여 주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즉 Power Line 입니다. 스위치를 켜시면 됩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기도의 능력을 가르쳐 주시면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더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 14:12-14)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에 성령님을 보내셔서 기도하게 하시는데, 기도를 하면 주님께서 하시는 일을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약속을 믿는 자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내용으로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신 후 오늘 본문에서 만약 우리가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기도한다면 ‘담대하고 끈질기게 기도하라’고 비유의 말씀을 해주시면서 기도의 자세를 강조하십니다. 먼저 한 밤중에 찾아온 친구의 비유를 말해주십니다.
한 친구가 여행 중에 밤에 자기의 집을 찾아 왔습니다(6절). 당시에 여행하는 나그네들이 많았는데 아는 친구가 하룻밤 머물고 가려고 찾아온 것입니다. 율법의 가르침을 따르는 유대인의 관습에 따르면 나그네가 집에 들르면 대접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 집에 먹을 것이 넉넉하지 못하여 이웃집 친구에게 떡 세 덩이를 빌리기 위하여 문을 두드립니다(5-6절). 그런데 그 이웃 친구가 안에서 말하기를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소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7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무례한 요청입니다. 한밤 중에 아이들도 다 자는데 먹을 것을 달라고 문을 두드리니 거절을 해도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거절한다고 그 이웃을 비난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이런 상황에서 ‘친구’이기 때문에 떡을 주지는 않을지라도 “그 강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8절하)고 하십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친구라 하더라도 문을 이미 잠갔고, 가족들이 다 자고 해서 일어나 떡을 줄 마음은 없지만 그 친구가 강청하기에 허락한다는 말씀입니다. 여기 ‘강청함(ἀναίδεια)’의 뜻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담대함, 끈질김을 의미합니다. 즉,이 비유의 핵심은 우정 때문에는 요청을 들어주지 않아도 담대하고 끈질긴 요청에는 들어준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 예수님께서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9-10절)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에게, 하나님 나라 백성들에게 주신 가장 큰 약속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분들이 이 구절을 남용하여 무조건 하나님을 자기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주시는 복 주머니로 알고 적용하는데, 너무 잘못된 것입니다. 우선 이 약속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약속, 오직 하나님의 자녀, 성도들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여기 “너희에게”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하나님께 속한 자녀들에게’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약속을 믿고 주장하는 자녀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순종하며 사는 자들입니다. 주의 뜻에 순종하는 자들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요일 3:21-22)고 하였고,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바 담대한 것은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요일 5:14)고 하였습니다. 즉 주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기도할 경우에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의 초점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간구하라는 것이었는데,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도움이 없이 하나님의 뜻을 알 도리가 없습니다. 그 뜻을 아는 지혜를 얻으려면 간구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도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 1:5)고 하였습니다. 우리에게 성경 말씀을 있지만, 우리가 부딪히는 모든 상황마다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주시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상황은 자주 바뀌니까요. 그러나 정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간구하며 그의 말씀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요 15:7). 그의 말씀 안에 거하지 않고는 기도를 올바로 할 수가 없습니다. 아니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친밀한 부자 관계의 교제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도움이 필요한 것입니다. 말씀에 대한 이해와 조명(illumination), 우리를 격려하시고 강하게 하시는 성령의 도우심 말입니다. 그래서 ‘지혜가 필요하거든 네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라.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 그리하면 받을 것이고, 찾을 것이고, 하늘 문이 열릴 것이다’라는 말씀입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9-10절 말씀은 담대하고 끈질기게 적극적으로, 참고 인내하며 간절히 간구하라는 것입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는 모두 현재, 명령형입니다. 지속적으로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입니다. 점점 요구하는 정도도 강하여 지지요. 어린아이들이 원하는 무엇을 달라고 할 때의 떼쓰는 모습이 아닙니까? 소극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이 되는 것은 강하게 적극적으로 구하여야 합니다. 나의 책임을 다하면서 말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그 뜻임을 확신하며 직장을 달라고 요청한다면 그의 인도하심을 구하면서 열심히 직장을 찾아 다녀야 합니다. 만약 죄를 짓는 형제가 있어서 권면하고 도와야 한다면, 그에 대하여, 그가 처한 상황에 대하여 알 수 있는 모든 것을 알려고 노력하며, 합당한 하나님의 말씀을 성경에서 찾아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허락하신 말씀을 받아 들이지 않으면서 주께 구하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믿음이 아닙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너희 중에 아비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11-13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그 자녀들을 향한 사랑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어떠하다고 합니까? 육신의 부자 관계를 예를 들어서 설명하지요. 아들이 생선을 달라고 하는데 뱀을 줄 아비가 어디 있으며, 달걀을 달라고 하는데 전갈을 줄 아비가 어디 있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악한 아버지라도 자기 자식에게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말씀이지요. 사탄에 사로잡힌 아버지가 아닌 다음에야 육신의 아버지 자기 본성이 자기 자식의 필요를 어떻게 해서든지 채워주게 되어 있다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13절에 “하물며(πόσῳ μᾶλλον, how much more)”를 주의 깊게 보셔야 합니다. 악한 육신의 아버지도 그러한데, 하물며 선하시고, 은혜와 자비가 풍성하신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의 자녀들이 필요한 것을 구하는데 모른 척 하겠느냐. 한도 끝도 없이 선한 것을 주시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아마 인간 관계에서 가장 이타적인(selfless) 관계가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가 아니겠습니까? 특별히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 어떤 희생도 치르려고 하지요. 정말 목숨까지라도 주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러한 위대한 부모의 인간적인 사랑도 하나님 사랑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유한하고, 부족하고, 모르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뜻에 따라 순종하며 간구할 때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시는 것에는 끝이 없습니다.
한편 마태복음에서는 “하물며 너희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11절하)라고 하였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13절하) 하셨습니다. 즉 좋은 것이 구체적으로 바로 성령님입니다. 정말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약속하신 대로(요 14:16; 16:7) 오순절에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던 제자들에게 성령님이 임하셨습니다. 오늘날도 믿는 자들에게는 이미 성령님을 주셨고, 성령님의 역사로 우리의 간구하는 것들이 응답되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자들의 삶에 모든 좋은 것을 주시는 이유가 성령님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우리로 죄를 깨닫고 회개하게 하시며, 우리를 죄의 권세로부터 자유 하게 하시며,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며, 전도도 하게 하시며,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중보의 기도도 하게 하시며, 구체적인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며, 이웃을 사랑하게 하시며, 소망을 주십니다. 그래서 바울도 하나님 아버지께 에베소교회를 위하여 기도할 때에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엡 3:16)라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유명한 영국의 Martyn Lloyd-Jones 목사님은 ‘사람이 무릎을 꿇었을 때 가장 높은 경지의 위대함이 나타난다’고 하였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가져오는 기도를 통하여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 안에서, 그 뜻 안에서 무릎을 꿇고 간구하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문제는 기도에 이렇게 엄청난 능력이 있음을 악한 마귀가 잘 압니다. 그래서 할 수만 있으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기도를 못하게 합니다. 바쁘게 만들고, 이유를 만들고, 어떨 때에는 핍박을 하여 기도를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민감한 사람들은 이러한 마귀의 공작을 알고, 모든 난관을 뚫고 나아가서 기도로 승리하는 것입니다.
또한 아무리 기도를 해도 응답이 없습니까?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기도를 하는데 응답이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 본문은 그에 대한 답을 주고 있습니다. 주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의 내용대로 기도할 때 우리의 자세, 태도에 대하여 교훈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담대하고 적극적으로 끈질기게 기도하고 있습니까? 항상 기도하고 낙망하지 말아야 할 강청하는 기도의 비유는 누가복음 18장에도 나옵니다. 억울한 원한이 있는 과부가 악한 재판관에게 귀찮게, 번거롭게 계속 원수에 대한 원한을 갚아달라고 요청하니 결국 들어준다는 비유입니다(눅 18:2-5).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눅 18:7)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만약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 기도라면 반드시 응답이 있습니다. 조금 기도해보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응답이 있을 때까지, 좋은 것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채워주실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육신의 아버지보다 더 사랑이 많으시고, 능력이 많으신 분임을 확신하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가장 친한 친구보다도, 우리 육신의 아버지보다도 훨씬 낫습니다. 정말 믿어도 됩니다. 우리의 필요를 반드시 채워주십니다. 성령님이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특권이 바로 아버지를 믿고 구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내게는 엄청난 기도제목이 하나님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사소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기도가 들어가는 곳마다 죽었던 것이 다시 살아나는 역사가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죽어있는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기도의 물을 주어야 합니다. 가정이 죽어갑니까? 어려움이 있습니까? 기도의 물을 주어야 합니다. 기도의 물을 주면 가정이 살아납니다. 영혼이 죽어가는 사람이 있습니까? 기도의 물을 주면 살아납니다. 육체적으로도 죽어갑니까? 기도의 물을 주면 살아납니다. 물론 하나님의 뜻 안에서 말입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 내 뜻입니다. 그러므로 응답이 없는 것도 응답입니다.
오늘 주신 약속의 말씀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간절히 담대하고 끈질기게 구합시다. 얻게 될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담대하고 끈질기게 찾읍시다. 찾게 될 것입니다. 문을 두드립시다. 열릴 것입니다.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처럼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그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우리의 필요를 위하여 그렇게 기도함으로 응답을 체험하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1375 수요설교 채찍질하고 조롱하며 때리더라 (요 19:1-3) 한태일 목사 2024-03-28 2
1374 절기설교 잘못된 믿음 (요 12:12-16) 한태일 목사 2024-03-24 28
1373 주일설교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으면 (막 2:18-22) 한태일 목사 2024-03-17 84
1372 주일설교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막 2:13-17) 한태일 목사 2024-03-10 174
1371 주일설교 회막을 향하여 진을 치고 (민 2:1-2) 관리자 2024-03-04 236
1370 수요설교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 (빙 2:12-18) 한태일 목사 2024-02-29 156
1369 주일설교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막 2:1-12) 한태일 목사 2024-02-25 258
1368 주일설교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막 1:40-45) 한태일 목사 2024-02-18 374
1367 수요설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 (빌 2:5-11) 한태일 목사 2024-02-15 153
1366 주일설교 예수님의 마음은 (막 1:29-39) 관리자 2024-02-12 269
1365 주일설교 예수님의 권세와 능력 (막 1:21-28) 한태일 목사 2024-02-04 369
1364 수요설교 하나됨을 지켜라 (빌 2:1-4) 한태일 목사 2024-02-01 109
1363 주일설교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르심 (막 1:14-20) 한태일 목사 2024-01-28 117
1362 주일설교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는 예수 그리스도 (막 1:9-13) 한태일 목사 2024-01-21 147
1361 수요설교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빌 1:22-30) 한태일 목사 2024-01-18 102
1360 주일설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과 준비 (막 1:1-8) 한태일 목사 2024-01-14 104
12345678910,,,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