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등록 비번분실

전체방문 : 5,103,774
오늘방문 : 1949
어제방문 : 2700
전체글등록 : 3,864
오늘글등록 : 0
전체답변글 : 2
댓글및쪽글 : 18

좌측_배너 배너 001

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1-03-21 (일) 01:06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836    
하나님 나라 중심의 바른 신앙 (눅 16:14-18)


종종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분들을 보면 안타까운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더 마음이 아픈 것은 믿는 것 같은데 바른 신앙이 아닌 분들입니다. 이단은 물론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이해하거나 자신 나름대로 하나님을 만들어 믿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종교인들처럼 위선적인 신앙으로 잘 믿는 척하면서 사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런 모습을 책망하였었습니다.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사 29:13상) 하셨고, 그 결과 “그러므로 주 여호와 내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나의 진노와 분한을 이곳에 붓되 사람과 짐승과 들나무와 땅의 소산에 부으리니 불 같이 살라지고 꺼지지 아니하리라”(렘 7:20)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정말 나라가 망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앞 단락(1-13절)에서 예수님은 옳지 않은 청지기 비유 이야기를 하면서 교훈하며,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난 번에 말씀드렸듯이 우리 인간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이 사실 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기에, 주인인 하나님으로부터 잠시 맡아 관리하다가 주님께서 부르시면 다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떠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 나라에서 주님을 만나면 셈을(2절), 회계를 해야 합니다. 신실하고 성실하게 청지기의 일 하였는지 평가 받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 어두움의 아들들도 머리를 써서 불의하지만 앞날을 준비하며 자신의 살 길을 찾아 행하는데, 빛의 아들들은 그렇게 앞날을 생각하지도, 준비하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빛의 아들들도 말씀의 지혜를 가지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추구하며 미래를 위하여, 영원한 보상을 위하여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재물, 두 주인을 섬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13절).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니 누가는 기록하기를,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14절) 하였습니다. 여기 ‘비웃다(ridicule or scoff)’의 원어는 ‘코를 뒤집다(turn up one’s nose)’라는 뜻입니다. 멸시하고 조롱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들은 예수님을 향해 몸짓을 해가며, 속된 말로 표현하면 ‘웃기고 있네’라고 한 것입니다. 곧 그들은 하나님을 주인 삼은 것이 아니라 돈을 주인 삼고 사는 것입니다. 세상의 명예와 권력과 정욕을 주인 삼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위선이라고 한 것입니다.
자신을 향해 비웃는 그들에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15절)고 하십니다. 사람의 평가와 하나님의 평가가 얼마나 다른지 말씀하십니다.
우선 그들은 스스로 옳다, 의롭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옳다, 의롭다고 해주셔야 할텐데 말입니다. 율법을 좀 지켰다고 스스로 그렇게 여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율법의 행위로는 그(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롬 3:20절상)라고 하였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의롭게 되는데 말입니다(롬 3:24). 문제는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높임을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들 보기에 자신들은 율법도 지키며, 지혜롭고, 돈도 많고, 지위도 있으니 하나님에게 사랑을 많이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이 높이면 그것을 하나님은 미워합니다. 여기 ‘미워하다(bde,lugma, detestable or abomination)’라는 단어는 ‘몹시 싫어하는, 가증스러운’이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 앞에서는 가증스러운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외모만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화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마 23:27-28)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속 사람을, 마음을 보지 못합니다. 솔로몬은 기도하기를, “주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사유하시며 각 사람의 마음을 아시오니 그 모든 행위대로 행하사 갚으시옵소서 주만 홀로 인생의 마음을 아시나이다”(왕상 8:39)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고 삽니까? 아니면 사람의 눈을 의식하고 삽니까? 누구의 눈에 옳다고 인정을 받고 싶은가요? 하나님의 눈, 아니면 사람들의 눈입니까?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16절)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기왕 말을 꺼낸 김에 바리새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율법과 선지자의 의미를 밝혀주심으로 그들이 정말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물론 율법과 선지자는 구약 전체를 가리킵니다(눅 24:27). 즉 하나님의 구속사(Redemptive History), 구원 역사의 분기점이 세례 요한이라는 것입니다.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요, 신약의 메시아의 도래를 예언한 세례 요한이기에 그렇습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처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 3:2; 눅 3:3)고 진정한 하나님 나라를 선포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요한이 온 이후로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 나라에 침입하는(force), 즉 ‘힘있게’ 들어가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으니라”(마 11:12)고 하셨듯이 말입니다. 마치 하나님의 나라는 사탄의 공격을 당하여 때때로 부인되고 거절당하게 되어 있어,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이 세례 요한을 욕하였으며, 헤롯 왕은 그를 고문하고 옥에 가두었고 끝내 죽였습니다. 즉 세례 요한은 순교하고, 이어서 예수님도 곧 십자가에 죽고 맙니다. 사탄은 오늘날까지 하나님 나라 백성들을 괴롭힙니다. 천국에서 빼앗아 내려고 합니다. 그러나 끝까지 참고 인내하며 승리하는 자가 성도들이라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은혜의 나라에 들어가는 자는 중생하게 하시며 확신하게 하시는 성령님의 주권적인 능력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그 능력을 힘입어 ‘힘있게’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바리새인들은 율법과 선지자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하면서도 돈을 좋아하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높임을 받는 것에 마음을 쓰는 것이 너무 잘못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율법과 선지자의 가치를 무시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러나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의 없어짐이 쉬우리라 무릇 그 아내를 버리고 다른데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요 무릇 버리운 이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17-18절)고 하셨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우선 율법의 한 획의 무게가 하늘과 땅의 무게보다도 무겁다고 합니다. 천지는 없어지기 쉬워도 율법의 한 획이 없어지기는 어렵다는 뜻입니다. 구약성경도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그 권위를 없애는 것보다 천지를 없어지게 하는 것이 쉽다는 것입니다. 구속 역사가 하나님 나라의 시대로 들어간다고 해서 말씀이 무효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사 40:8)고 하였고, 예수님께서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7-18)고 하셨듯이 말입니다.  
다만 이제 예수님 안에 있는 새로운 계시에 비추어서 주장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는 전혀 다르고 새로운 방식으로 율법의 정신과 의미, 그 목적을 보여주시고 알려주셨습니다. 율법은 결코 사람들을 위협하여 강압적으로 지키게 하고, 판단하는 근거가 아닙니다. 율법은 성도들이 순종을 통해 하나님에게 대한 사랑을 표현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돌보는 것이 바로 율법이 요구하는 핵심임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은 그 효력을 상실하지 않습니다. 글자 한 획조차 없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히브리어나 아람어의 한 획은 글자의 의미를 다르게 하고 단어의 의미를 다르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우리말 알파벳의 ㅋ 에서 중간의 한 획을 빼면 전혀 다른 ㄱ 이 되거나 ㅌ 에서 중간의 한 획을 빼면 ㄷ 이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구약성경의 완전한 의미와 이해를 부여하신 것이지, 예수님이 그것을 대신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율법의 유효성을 입증하기 위하여 율법 가운데 한 조항을 제시합니다. 바로 이혼과 간음에 관한 계명입니다. 합법적인 이혼과 비합법적인 이혼에 관한 랍비들의 논쟁을 주제로 택하셨습니다. 신명기 22:13-20절과 24:1-4절이 논쟁의 근거가 되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신명기 24:1-4절 말씀을 자신들의 이기적인 욕망을 채우려고 잘못 해석해서 쉽게 이혼하였던 것입니다. 아내가 요리를 태우기만 해도 부정하다고 이혼 사유로 삼았다고 하니 말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구약성경이 이혼을 장려하거나 용인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의도한 것은 하나님 나라 시대가 되었다고 해서 쉽게 이혼하고 쉽게 간음해도 괜찮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시대가 되었어도 변함없이 그 말씀이 유효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더 강하게 가족을 중요시 하고 율법을 성취하려고 하시는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이 이혼을 싫어하시기에 예수님은 간음에 대한 구약의 가르침(출 20:14, 신 5:18, 22:22)과 연결시키셨습니다. 그래서 이혼을 간음과 동등한 것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율법을 가장 잘 지키시는 분이었습니다. 성취하신 분이니 당연하지요.
결론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예수님이 이혼과 간음 예기를 꺼낸 것은 바리새인들의 위선을 드러내기 위해서였습니다. 비록 그들이 율법을 지킨다고 하지만 사실 어기는 것이 많았습니다. 문제는 하나님 나라 진리에 대한 태도입니다. 진리를 알기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니 두 주인을 섬기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어떤 신앙으로 삽니까? 스스로 열심히 노력하면 옳다고, 의롭게 된다고 믿고 있습니까? 사람들에게 잘 보이면, 인정을 받으면 된다고 믿으십니까? 여러분 가운데 그런 분이 한 분도 없기를 바랍니다. 올바로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 진리를 믿어야 합니다. 힘있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야 합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주로 영접하신 분들은 이미 들어오셨습니다. 그러나 아직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외모보다, 사람들 앞에 겉으로 나타내지는 것보다 속 마음, 속 사람의 인격을 보시는 하나님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아주 싫어하시는 것이 외식, 위선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가증스럽다고 하셨습니다. 겉으로 보여지는 것에 신경 쓰는 분들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인정 받기를 원하는 분들은 어쩔 수 없이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추구해야 합니다. 바로 사탄 마귀가 원하는 것입니다.
믿는 우리는 늘 ‘내가 누구인가’, 정체성을 잊으면 안됩니다. 우리는 믿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하나님 나라의 법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오늘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고 살아야 합니다.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부딪칠 때에 성령을 따라야 합니다. 억지로가 아닙니다. 복음, 즉 받은 은혜, 선물 때문에 그렇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고 하였지 않습니까?  
         
우리 믿는 자들의 관심은 온통 하나님 나라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은 곧 하나님 나라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도 우리를 기뻐하시고, 우리의 모든 문제도 다 해결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에 관한 첫 설교인 산상수훈에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고 하신 약속처럼 말입니다. 확실히 믿고, 하나님 나라 중심의 바른 신앙으로 살아서 ‘하나님’에게 인정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1384 주일설교 피곤한 사역 가운데 제자들을 세우심 (막 3:7-19) 한태일 목사 2024-04-21 21
1383 주일설교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은 (막 2:23-3:6) 한태일 목사 2024-04-14 78
1382 수요설교 진실한 믿음의 친구요, 동역자들 (빌 2:19-30) 한태일 목사 2024-04-12 47
1381 창립 30주년 기념 찬양 간증 집회(토요일 새벽) 관리자 2024-04-08 72
1380 창립 30주년 기념 찬양 간증 집회(주일 오후) 관리자 2024-04-08 69
1379 창립 30주년 기념 찬양 간증 집회(주일 오전) 관리자 2024-04-08 60
1378 창립 30주년 기념 찬양 간증 집회(토요일 저녁) 관리자 2024-04-08 49
1377 창립 30주년 기념 찬양과 간증집회(금요일 저녁) 관리자 2024-04-07 47
1376 절기설교 부활의 능력을 믿는다면 (요 20:1-18) 한태일 목사 2024-03-31 112
1375 수요설교 채찍질하고 조롱하며 때리더라 (요 19:1-3) 한태일 목사 2024-03-28 67
1374 절기설교 잘못된 믿음 (요 12:12-16) 한태일 목사 2024-03-24 72
1373 주일설교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으면 (막 2:18-22) 한태일 목사 2024-03-17 127
1372 주일설교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막 2:13-17) 한태일 목사 2024-03-10 225
1371 주일설교 회막을 향하여 진을 치고 (민 2:1-2) 관리자 2024-03-04 291
1370 수요설교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 (빙 2:12-18) 한태일 목사 2024-02-29 212
1369 주일설교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막 2:1-12) 한태일 목사 2024-02-25 317
12345678910,,,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