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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4-01-14 (일) 07:52
분 류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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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181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과 준비 (막 1:1-8)




모든 일이 다 그렇듯이 영화를 찍거나 연극을 공연하기 위하여는 무엇보다 준비가 중요합니다. 총감독은 배우들은 물론 조명, 기구 등 그 어느 것 하나 빠짐이 없이 준비를 한 후에 공연을 시작합니다. 마찬가지로 인류 역사의 총감독은 하나님이시며, 무대의 주연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수천년 인간의 역사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BC (Before Christ) 와 AD (Anno Domini)로 나뉘어졌듯이 말입니다.
죄인들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BC 에서는 구약을 통해 메시아, 그리스도가 오실 것이라는 약속의 예언을 해주셨고, AD 에서는 신약을 통해 약속대로 메시아,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심으로 나타내 보이셨고, 이제 다시 오심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새해가 되어 우리가 살펴볼 마가복음은 위로의 아들 바나바의 조카로 요한 마가(로마식 이름)가 로마인들, 즉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쓰고 있습니다. 그는 바울의 1차 전도여행에 동참했다가 중도에 탈락하여 바울과 바나나가 갈라지게 되는 원인을 제공하였습니다만, 연단을 받고 나중에 다시 바울과 함께 끝까지 선교를 하게 된 사도입니다(딤후 4:11).
앞에 언급하였듯이 로마인들을 대상으로 복음서를 기록하기에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복음서를 쓴 마태나 누가처럼 예수님의 족보를 열거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로마인들은 메시아의 자격조건보다는 실제 행동에 더 관심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마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종의 모습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족보가 필요 없었습니다. 종에게 족보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마가는 1절을 시작하면서 바로 자신의 복음서의 주제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예수” 라는 이름은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아내 마리아가 임신한 것은 성령으로 된 것이라고 알려주면서,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 1:21)고 한데서 주어진 이름으로, 주의 사자 설명대로 구약의 “여호수아”와 같은 이름의 곧, ‘여호와의 구원’ 이라는 뜻입니다. 또 “그리스도”는 ‘메시아’의 헬라어 표현입니다. 예수님의 직분(직함)을 뜻하는 것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자’ 입니다. 대제사장, 선지자, 왕의 세 직분을 가진 예수님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라 함은 예수님의 신성(Divinity), 곧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즉 마가는 복음서를 시작하면서, 이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로 그는 평범한 종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 오신,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신 분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즉 인간에게 복음, ‘좋은 소식’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하나님을 불순종한 것에 대해, 죄악이 세상에 들어온 것에 대해, 사탄 마귀가 소란을 일으키고 반항한 것에 대해 놀라지 않으셨습니다. 다 보고 있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죄, 가인의 죄, 저와 여러분의 죄를 다 보았습니다. 그리고 구원계획을 세우신 것입니다. 태초부터 말입니다(엡 1:4-5).
그래서 때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드디어 메시아, 그리스도로서 사역을 펼치기 전에 하나님은 그의 길을 준비하셨습니다. 구약 이사야 선지자와 말리기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말입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예비하리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2-3절) 말입니다. 이는 이사야 40장 3절, 말라기 3:1절 말씀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주님 오시기 600여년 전 이사야의 메시아에 대한 예언은 고난의 종의 모습니다(사 53장). 또, BC 400-300년 전의 말라기의 메시아에 대한 예언은 심판주의 모습입니다. 의인과 악인을 갈라놓는 심판입니다(말 3:18). 이 두 경우 모두 메시아에 앞서서 하나님이 보내시는 자가 그 길을 예비한다고 합니다.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는 비유적인 표현은 왕의 나가는 길에 앞서 그의 신하들이 그 길을 잘 준비하여 왕의 여정을 편하게 해주는 책임을 말합니다.
그런데 누가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서 광야에서 소리를 외치는데, 바로 세례 요한입니다. “세례 요한이 이르러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4절)라고 하였듯이, 그는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제사장 사가랴와 엘리사벳 부부의 오랜 기도 후 천사의 계시로 태어나, 이제 30세가 넘어 광야에서 외칩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 3:2)고, 죄 사함을 받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한 것입니다. [Slide 2-1] 즉,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 복음을 전하는 자의 메세지는 죄를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는 말입니다. 물론 요한은 물세례를 의미했으나,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실제로는 성령세례를 의미합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유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광야는 반항과 불순종의 상징입니다. 하나님의 기적들을 경험하며 출애굽을 했건만, 하나님을 불신하고 바로 약속의 땅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광야에서 40년을 방황하고 나서야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회개의 세례를 받기 위하여 광야로 나옴으로 인해 그들이 하나님을 불신하며 거역한 것을 인정하며 새로운 시작을 다짐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세례”의 원래 의미가 죄 씻음을 뜻합니다. 그래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라고 했습니다. 사실 이방인들이 유대교로 개종할 때 부정한 사람이 정결하게 된다는 뜻으로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 유대인들에게 세례를 받으라는 것은 그들도 죄로 인하여 부정하게 되었으니 정결하게 됨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자신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하면서 의롭다고 여겼던 그들에게, 단지 선민의 혈통이라서 저절로 죄 사함의 구원이 임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회개가 필요함을 가르쳐주는 것이었습니다. 제사를 드릴 때에 제사장들에게 행하던 형식적인 결례식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들도 불신, 불순종에서 돌아서서 오실 메시아를 향해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고 요한은 촉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그들도 죄 사함을 받게 되며, 메시아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요한이 그렇게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더니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5절)고 하였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약 30만명이 요한에게 나아와 물세례를 받은 것으로 추정합니다. 예루살렘에서 요단강까지는 약 84마일 정도입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먼 거리를 걸어서 나아와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그들도 죄 사함이 필요함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도 사람들 앞에서는 물세례도 받고, 기도도 하고, 소위 교회 생활을 하는 것 같아도, 실제로 회개(회심)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령세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언제,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조금 어려운 일이 닥치거나, 죄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정말 구원받은 사람은, 정말 회개(회심)한 사람은 표시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전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난 사람은 다릅니다. 참된 회개(회심)의 열매가 있습니다.

한편 마가는 세례 요한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요한은 약대털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6절) 하였습니다. 별로 가진 것이 없었던 그였습니다. 당시 약대(낙타)의 털옷은 가공되지 않은 정말 단순한 옷이며, 메뚜기는 가난한 사람들이 먹는 음식이었고, 석청은 일종의 야생꿀(wild honey)입니다. 그 모습은 구약의 엘리야 선지자와 비슷하였습니다(왕하 1:8). 이는 당시 주류사회의 종교 지도자들의 부유하고 사치한 모습과는 너무 달랐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역이 엘리야의 사역과 마찬가지로 개혁과 주의 길을 준비하는 사역임을 깨닫고 있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말 4:5) 라는 말씀 때문에,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올라간 엘리야가 다시 내려와서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리라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의 옷차림과 행동 때문에 엘리야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나중에 제사장들이나 레위인들이 그에게 누구냐, 그리스도냐, 아니면 엘리야냐 라고 물었을 때에(요 1:19-21),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라고 하면서, 다만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하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들이 다 그렇게 광야에서 은둔생활을 하며, 가난하게 세례 요한처럼 지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 복음을 전하는 자는 철저하게 사람(세상)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세상 것들에 연연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는 자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또한 “그가 전파하여 가로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7절)고 하였습니다. 당시의 신은 밑창이 가죽으로 되어 있으며, 슬리퍼처럼 발가락 사이로 신들메가 통과하며 발을 고정시키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길은 포장도로가 아니었고, 먼지투성이 였으며, 비오는 날에는 진흙탕이 되었습니다. 당시 신들메를 풀고 발을 씻기는 것은 종(노예)가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요한이 자신을 예수님에 비하면 종보다 더 못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보다 훨씬 능력이 많으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30)고 하였습니다. 그야말로 주의 길을 준비만 하는 겸비한 자세입니다. 자기 앞에 30만명이 세례를 받을 정도되면 얼마든지 자기 의를 내세우며 교만해질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즉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자, 복음을 전하는 자는 겸손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하면 안됩니다. 어떻게 하든지 세례 요한처럼 우리의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드러나야 합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사역은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상징적인, 잠정적인 것임을 분명히 선포합니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거니와 그는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시리라”(8절)! 요한은 그들의 정결함, 회개를 통해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고자 하는 열망을 상징하는 외적인 예식, 물세례를 행하고 있지만, 메시아의 세례는 성령의 세례를 줄 것이라고 합니다. 내적인 변화, 마음에 할례를 받는, 심령이 정결하게 되는 세례로서 진정한 죄 사함, 죄책감으로부터 구원해줄 것이며, 영생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이 성령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요 14:16) 고 약속하신 것처럼, 승천하신 후 오순절에 성령이 부어지고 임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세워질 때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 2:38)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믿을 때 받는 은혜가 성령 세례입니다. 성령의 인침을 받는 것입니다(엡 1:13). 이것이 체험적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마다 다 다를 수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중요한 것은 성령 세례에 대한 확신입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시지 않았다면 우리 중에 예수님을 믿을 자가 한 사람도 없었을 것입니다. 믿어지게 하는 성령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을 가리켜 ‘여자에게서 태어난 사람 중에 가장 큰이’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마 11:11상) 라고 말입니다. 엄청난 칭찬입니다.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보다도, 모세, 엘리야, 다윗 등 어떤 구약의 인물들 보다도 더 위대한 사람이라고 하십니다.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한 사자(messenger)로서 책임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인격과 사역의 내용이 그런 칭찬을 받을 만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세례 요한이어야 합니다. 주님의 재림의 길을 준비하는 자들입니다. 온 세상을 심판하기 위하여 다시 오실 주님이십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 후 부활하시고 40일 후 승천하시는 것을 쳐다 보고 있던 제자들에게 흰옷 입은 천사가 이르기를,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 1:11)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궁극적인 결론인 심판의 주로 오십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좋은 소식 즉 복음의 메세지를 전하는 자들입니다. 1)  전해야 할 내용은 회개하고 성령세례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무시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죄사함을 받아 구원에 이르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한 복음, 메시지를 전하는 자로서 세례 요한처럼 2) 세상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3)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말과 행실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세상에서 구별되게 행동해야 합니다. 늘 우리 자신은 낮아지고 주님은 높아져야 한다고 마음을 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회개(회심)하여 죄사함을 받고, 성령을 받으라고 외쳐야 합니다. 그들도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약 2 주일 전 한국의 배우 이선균 씨가 죽음으로 온 나라가 슬퍼하였습니다. 유명한 영화 기생충에 출연하여 스타덤에 오른 배우인데 마약 복용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 가운데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안타까운 것은 그가 쓴 유서에서 아내에게 ‘이것 밖에 방법이 없는 것 같다’ 라는 대목입니다. 마약 스캔들로 인하여 취소된 영화 출연 계약과 광고 위약금이 100억 가까이 되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그가 복음을 들었다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성령세례를 받았다면 하는 아쉬움이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아직도 죄에서 돌아서지 못하신 분이 계십니까? 아직 회개(회심)하지 못하셨습니까? 성령을 받지 못하셨습니까? 하나님 살아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바라보고 계십니다. 아니 곧 다시 오십니다. 깨끗이 해결하십시오. 돌아서십시오. 진실로 회개하여 죄 사함의 축복을 체험하며, 성령을 받아 변화된 삶을 살며, 주님의 평강과 기쁨을 누리는 영생의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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