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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7-08-10 (목) 10:33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1421    
아마겟돈 전쟁(계 16:12-21)
우리 믿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당하는 고통과 믿지 않는 사람들이 나중에 당하는 고통과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믿음 때문에, 말씀대로 살려고 하다가 고통을 받고 어려워도 주님 붙들고 잘 참고 이겨나가면 그 가운데서 주님 주시는 기쁨과 위로가 있고 더욱 성숙해지며 결국 영원한 평강과 축복의 날들을 맞이하지만, 저들은 지금 좀 편하고 자기들 마음대로 육체의 정욕을 따라 살지만 나중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우리는 지난 수요일에 이 세상 마지막 재앙인 일곱 대접 재앙 중 다섯 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16:1-11). 첫 번째는 헌데 재앙이었습니다. 온 몸에 헌데가 나서 고통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바다가 피가 되어서 모든 고기가 죽는 재앙이었습니다. 세 번째는 인간이 마시는 물의 근원인 강물이 피로 변하여 사람들이 피를 마시게 되는 재앙이었습니다. 네 번째는 태양이 불을 뿜어 내는 바람에 사람들을 태우는 재앙이었으며, 다섯 번째는 적 그리스도인 짐승의 보좌에 대접이 쏟아지니 그 나라가 어두움에 쌓이며 사람들이 아파서 혀를 깨무는 재앙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회개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저주하였습니다. 고통 가운데서도 정신을 차리지 않고 여전히 교만하니 멸망 받기로 작정된 자들입니다. 하나님께 버림 받은 자들입니다.

오늘 본문은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 재앙입니다. 여섯 번째는 바로 아마겟돈 전쟁으로 인한 재앙입니다. 그들이 설마 했던 것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또 여섯째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더라”(12절)고 하였습니다. 유브라데 강은 로마제국과 동방의 나라들의 경계선을 의미합니다. 이 큰 강 때문에 동방의 나라들이 로마제국과 전쟁을 하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로마제국을 보호하는 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강이 말라버리면 이제 그들과 큰 전쟁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상징적인 의미로, 훗날 나라들 사이의 전쟁을 막고 있는 장벽이 허물어져서 마지막 큰 전쟁이 벌어지도록 하나님께서 그리로 그들을 모으는 것입니다(14절).
이어서 사도 요한은 “내가 또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13-14절)고 하였습니다. 사탄 마귀인 용의 입과 적 그리스도인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더러운 영의 소리가 나옵니다. 수많은 개구리들이 소리를 지르듯이 말입니다. 귀신의 영이라고 했습니다. 악령입니다. 무슨 소리를 지를 것 같습니까? 거짓 예언입니다. 거짓된 것을 믿게 하는 영입니다. 소리를 지르며 억지로 밀어붙입니다. 참된 것을 믿게 하는 성령님이 하는 일과 정반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정말 무서운 것이 사람들에게 거짓을 진짜로 믿고 확신하게 하는 것입니다. 절대로 안전하지 않은데 안전한 것으로,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전쟁인데 이길 수 있는 것으로 확신하는 것입니다. 종교적입니다. 이단이 그래서 무서운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파고드는 세상 것들에 목숨을 거는 세속주의, 질병으로부터의 해방이나 물질적인 복만을 추구하는 기복주의, 사람의 감정을 흥분하게 하여 이성을 잃게 하는 열광주의도 마찬가지입니다. 경계해야 합니다.
이러한 귀신의 영의 조종을 받으며 이적을 행하면서 온 세상 나라 지도자들을 아마겟돈으로 모읍니다. “세 영이 히브리 음으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16절)고 하였습니다. 소위 세상을 멸망하게 하는 제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게 되는 곳을 말합니다. 아마겟돈은 히브리 음으로는 ‘하르 므깃도’로서 므깃도의 산이라는 뜻입니다. 예로부터 므깃도에서는 전쟁이 자주 일어났었습니다. 예를 들면 유명한 여 사사 드보라와 가나안 왕 야빈과 대전쟁이 일어났던 곳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상징적인 장소일 뿐입니다. 이 마지막 대 전쟁에 관하여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 그의 군대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우고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 고기로 배 불리우더라”(19:19-21)고 하였으며,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 모래 같으리라”(20:8; 참고 겔 39장)고 하였습니다. 즉 이 전쟁으로 말미암아 모든 불신자들이 둘째 사망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날이 언제 올지 모르기에, 예수님께서는 “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15절)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주님께서 의의 옷을 입혀 주셨건만 그 옷을 벗고 세상 사람들과 똑 같이 생활하는 것을 여기 ‘벌거벗고 다닌다’고 표현하였습니다. 그런 삶이 자기의 부끄러움이라고 합니다. 아니 어쩌면 그런 상황 속에서 주님께서 오심으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에이, 주님 곧 오시겠다고 하신 것이 오래 전부터인데 아직도 안 오셨으니 오늘도 오시지 않을 것이야. 오늘 죄를 짓는다 하더라도 회개하면 되지 뭐’라고 하면서 세상 사람과 같이 산다면 말입니다.
그러나 깨어 있어 의의 옷을 항상 입고 다니는 자는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는 자입니다. 주님께서 도적 같이 오신다는 것은 갑작스럽게, 오지 않을 것 같은 시간에 오신다는 것입니다. 집을 비웠을 때 도적이 오는 것처럼 사람들이 방심할 때 오신다는 것입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종말의 사건들을 이야기하면서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른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 24:42-44)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긴장하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오늘 오실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그런 마음자세로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신부인데, 신부는 결혼식 날을 위하여 얼마나 준비를 합니까? 자기 옷을 벗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 날까지 순결을 지키고자 애쓰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주어진 날들을 깨어 준비하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마지막 일곱 번째 대접 재앙이 나옵니다. “일곱째가 그 대접을 공기 가운데 쏟으매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가로되 되었다 하니”(17절) 하였습니다. 이 재앙은 사람의 생명에 가장 필요한 공기가, 대기가 영향을 받습니다. 사람이 숨을 제대로 못 쉬게 되는 것입니다. 그 때에 성전의 보좌에서 주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되었다(It’s done)’는 것입니다. 이제는 정말 끝장이라는 뜻입니다.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이 있고 또 큰 지진이 있어 어찌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옴으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18절)! 심판주 하나님의 진노의 음성이 들리자 엄청난 지진이 일어납니다. 리히터 지진계로는 잴 수도 없는 지진입니다. 자연계의 최후의 지진입니다. 회복이 불가능한 지진입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가라사대 내가 또 한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히 12:26; 학 2:6-7)고 한대로, 세상 종말에 하늘까지 진동하는 지진입니다.
그 때에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데 없더라”(19-20절)고 하였습니다. 바벨론은 적 그리스도인 짐승의 나라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 나라가 세 갈래로 갈라졌다는 것은 완전한 파멸을 뜻합니다. 이에 따라 만국의 성들도 종말을 고합니다. 여기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기억하셨다는 말씀은 소름이 끼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하나님께서 어떤 일이나 사람을 기억하셨다는 기록은 노아의 홍수 사건 때 외에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홍수 심판 후에 방주 안에 있는 호흡을 하는 모든 피조물들을 기억하셨다는 말씀(창 8:1)과 무지개를 보고 하나님께서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는 언약을 기억하겠다는 말씀 밖에는 없었습니다(창 9:16). 그런데 지금 바벨론의 악행을 하나님께서 다 기억하셨다가 그에 대한 진노가 한계에 도달하여 세상 나라들이 그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는 것입니다. 물의 심판이 아니라 불의 심판입니다. 섬도 산도 다 타서 없어집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늘이 무너집니다. “또 중수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내리매 사람들이 그 박재로 인하여 하나님을 훼방하니 그 재앙이 심히 큼이러라”(21절)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보는 우박이 커 봐야 탁구공이나 뭐 야구공 정도일 것입니다. 그런데 무게가 한 달란트, 즉 45kg 이나 되는 우박이 사람들 위에 쏟아집니다. 이 우박도 커다란 폭탄의 상징적인 표현이라고 한다면 얼마나 무시무시합니까? 물론 이 모든 사건은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 휴거된 후에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우리는 안전합니다. 안심하셔도 됩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분명히 무시무시한 세상 종말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지만, 우리의 영혼이, 심령이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입혀주신 주님의 의의 옷을 벗지 말고 긴장하고 살라는 것입니다. 옷은 성도의 말과 행동입니다. 성도답게, 의의 옷 입은 자답게 말하고 행동해야지, 세상의 영향을 받아 세상을 따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귀신의 영, 악령을 따라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성령을 따라 살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13-14)고 하였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자녀라면, 신랑 예수님의 순결한 신부라면 깨어 있어야 합니다. 도적 같이 오신다고 했으니 방심하면 안됩니다. 준비를 해야 합니다. 오늘 주님 재림하셔도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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