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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7-09-04 (월) 06:53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500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실한 소망(히 6:13-20)



믿음과 소망은 늘 함께 합니다. 소망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에 근거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믿느냐, 안 믿느냐에 따라 소망이 확실한지 아닌지 압니다. 그래서 소망이 확실한 사람은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오래 참습니다. 그리고 결국 소망대로 됩니다. 왜냐하면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은 소망이 없으며, 믿음이 약한 사람은 소망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주 흔들립니다. 오래 참지 못합니다.
문제는 여러분의 믿음이 크고 작음에 있지 않고,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에 달려 있습니다. 사실 믿음이 크다 작다는 믿음의 대상이 크냐 작으냐에 달린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이 이 세상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분, 우리를 엄청 사랑하셔서 정말 그 아들을 주신 분으로 믿는다면, 약속하신 말씀은 꼭 지키시는 분으로 믿는다면 소망도 분명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이 작은 분이라면 당연히 믿음도 작고, 소망도 확실하지 않게 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성령의 감동으로 우리 예수님이 정말 우리의 왕이며, 우리의 대제사장으로서 사명을 감당하였음을 설명하면서, 우리가 과거에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사랑으로 섬긴 것을, 지금도 섬기는 것을 잊지 않는다고 격려하였습니다(10절). 그러니 게으르지 말고 더욱 부지런하여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으로 오래 참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의 기업을 받는 자들을 본받으라고 하였습니다(11-12절).
       
그러면서 하나님 약속에 대한 소망이 확실하다는 것을 깨우쳐 주기 위하여 본문에서 아브라함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고 하실 때, 그가 전혀 가보지 않은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창 12:7, 17:8). 그리고는 많은 자손들을 일으켜 세우고 그 자손들을 복주며, 세상 민족들이 그 자손들을 통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창 12:2-3, 15:4-5). 75세가 넘은 지금 자식이 하나도 없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100세가 되어 받은 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믿음으로 순종하여 나갔을 때 그가 정말 이삭을 제물로 드리려는 모습을 보고서,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열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창 22:16-18)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3절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라고 한 것입니다. 자신보다 큰 자가 없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맹세하신 이 복을 누가 막는다는 말입니까? 당연히 약속한대로 성취됩니다. “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 복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14절)고 하신 대로 아브라함의 후손은 엄청난 복을 받았고, 번성케 되었습니다. 기근으로 인하여 요셉이 총리로 있는 애굽으로 이주할 때 가족이 모두 70여명이었으나, 출애굽을 할 때에는 약 200만명 정도가 되었습니다.
물론 아브라함은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었기에 독자 이삭을 바쳐야 하는 테스트를 이겨냈습니다. 정말 믿음으로 오래 참아 기업을 얻게 된 본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저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15절)고 한 것입니다. 무려 25년 동안을 약속을 믿고 기다렸습니다. 물론 도중에 믿음이 약하여져서 실수도 했습니다. 아내 사라의 간청에 마음이 약해져서 첩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기도 하고, 기근으로 애굽에 도망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인내했습니다. 그랬더니 약속대로 아들 이삭을 받았습니다. 즉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 믿음이 확실했기에, 그 귀한 아들을 바치라는 명령도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바치라고 할 때에는 무슨 뜻이 있을 줄 믿었던 것입니다. 자손을 그렇게 많게 하고 복을 주신다고 한 약속을 조금도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만약을 이삭을 데려간다고 해도 다른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약속을 이루실 줄 믿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감동하신 것입니다. 복을 주실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물론 인간들이 신실하지 못하여 자신들의 약속을 확신시켜주기 위하여 때때로 맹세를 사용하듯이 하나님께서도 맹세를 사용하셨습니다(창 22:16).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저희 모든 다투는 일에 최후 확정이니라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16-17절)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말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살아야 할 것을 예수님도 지적하셨습니다.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마 5:37)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공적인 약속을 하는 사람들은 누군가를 걸고 맹세를 했습니다. 이렇게 인간은 맹세를 중요시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맹세를 사용하셔서 그 뜻이 변하지 않음을 충분히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맹세할 때에 자신보다 더 큰 것을 걸고 맹세하지만, 하나님은 자신보다 큰 것이 없기에 하나님 자신을 걸고 맹세하신 것입니다. 약속을 분명히 지킬 것을 보증하면서 말입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실 때에 아브라함더러 3년된 암소, 암염소, 수양을 가져와 반으로 잘라 그 사이로 지나가시면서 약속하셨습니다(창 15:9). 즉 목숨을 걸고 언약을 맺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약속에 소망을 가져도 괜찮다는 말입니다. 이 소망이 이루어질 줄 확실히 믿고 지금 힘들어도 참고 인내하며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18절)고 하였습니다. 여기 두 가지는 약속하실 뿐만 아니라, 맹세까지 하신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그 속성상 거짓말을 할 수가 없기에 더욱 확실하다는 뜻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가 가진 소망이 바로 우리가 휘장 안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19절) 하였습니다. 휘장이라 함은 옛 성전의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법궤(언약궤)가 있던 지성소와 성소를 갈라놓았던 휘장을 말합니다. 일년에 한번 대제사장이 휘장을 가로질러 지성소에 들어가 그 백성들을 위하여 중보하였던 사실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직접 휘장 안에 들어가 하나님을 대면하여 죄 사함을 받으며, 말씀을 받으며, 전하게 된 사실을 튼튼하고 견고한 영혼의 닻(anchor)과 같은 소망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된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셨느니라”(20절)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그 휘장을 가르셔서 그 속에 들어가 단번에 스스로 희생제물이 되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 두려움이나 불안해하지 않도록, 우리의 허물과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사탄 마귀의 세력을 멸하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휘장 안으로 들어가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더 이상 이 세상에서 불안해하지 않고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중병에 걸려도, 아니 죽음을 앞두고도 두려워하지 않고 평안하게 남은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영원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우리도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결국 믿음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입니다. 그 약속대로 되리라는 믿음이 소망을 확실하게 합니다.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하나님은 거짓을 모르는, 진리만을 말씀하는 분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거짓말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한 말씀은, 우리들에게 하신 수 많은 약속들은 하나님의 속성상 지킬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하시든지 다 옳고 참된 것이며, 하나님이 하는 모든 말씀은 다 참(truth)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무엇을 약속하셨다면 하나님은 스스로 약속을 지킬 것이며, 지켜야만 합니다.
그래서 믿는 우리에게 주신 영생은 확실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 곧 나의 사도된 것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딛 1:1-2)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 실수가 없으십니다. 이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약속해 놓고 뒤로 물러서는 분이 아닙니다. 약속을 번복할 수 없는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얼마든지 신뢰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여호와 그가 네 앞서 행하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 하시리니 너는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신 31:8)라고 하셨으면, 그대로 믿으시면 됩니다. ‘아, 하나님께서 내 앞서 행하시며,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떠나지 아니하시는구나’ 그대로 믿고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으면 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놀라지 않으면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절하)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믿는 우리와 늘 함께 하시는 것을 믿는 자처럼 살면 됩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나 사건을 만나서 두려워하고 놀란다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잠시 잠깐 놀라거나 두려워할 수는 있지만 결코 오래가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제발 좀 그냥 우직하게 믿으세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믿음을 가지고 오래 참으십시오. 반드시 말씀대로 됩니다. 우리의 믿는 바 소망은 확실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인내하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문제는 인내하지 못하면 약속대로 못 받습니다(히 10:36). 믿고 인내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책임입니다. 아브라함은 인내하여 잘 참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히 10:37-38)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잠시 후에 오신다는 약속을 믿는다면, 하나님의 의인, 하나님의 사람들은 아무리 힘들어도 믿음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만약 힘들다고 뒤로 물러가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이 정말 아브라함이 되기 위하여 25년이 걸렸습니다. 이처럼 힘든 시간들을 뒤로 물러가지 않고 잘 참고 견디어 내면 결국 약속대로 이루어집니다.
우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처럼 우리에게 복의 복을 주시고, 번성케 하신다고 약속하셨으면 그대로 믿으십시오. 우리의 앞날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소망하십시오. 다만 우리는 그 확실한 소망을 가지고 오래 참아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약속을 이루십니다. 힘들다고 뒤로 물러서지 마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리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우리의 참 소망이 아닙니까? 우리보다 앞서 가신 예수님, 휘장을 가르시고 지성소까지 우리를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주시는 평안으로 끝까지 인내하며 주님을 따라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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