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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8-07-19 (목) 11:12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949    
영적인 부모로서(데살전 2:7-12)
오늘의 말씀(7/18/18)
영적인 부모와 같이 (데살전 2:7-12)

오늘 본문의 사도 바울은 그의 동역자들과 함께 영적 지도자로서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을 향한 뜨거운 고백을 드리고 있습니다. 이 고백 속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영적인 지도자 모습을 찾아보기 원합니다. 우리 영적 지도자들을 따르는 자들, 제자들, 구역원들, 영적 자녀들에게 어떤 모습, 어떤 태도로 우리가 대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부모가 친 자녀에게 하듯이 하라는 것입니다.

첫째로, 영적 지도자들에게는 깊은 정이 있어야 합니다.
“오직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7-8절상) 라고 하였습니다. 유순하다는 말은 온유, 친절(gentleness)을 가리킵니다. 당시 헬라인들은 이 단어를 고집스러운 아이들이나 일관성이 없고 잘 배우지 못하며, 다루기 힘든 학생들에게 인내심을 가지고 부드럽게 대하는 사람을 묘사할 때 사용하였습니다. 바울은 교인들이 아직 성숙하지 못한 그리스도인이라고 인식하고, 권위적인 자세보다는 어머니가 자녀를 대하는 유순한 모습으로 대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단어가 8절 상반절에 나오는‘사모하여’ 라는 말입니다. 그 뜻은 상대에게 자신의 느낌이 확 빨려 들어감을 의미합니다. 어머니가 자기 아이를 품에 안고 대할 때에 느끼는 감정입니다. 7절에 유모라는 번역보다 어머니라고 했어야 합니다. 어머니가 자기 자식을 깊은 정을 가지고 사랑하는 모습입니다.
오늘날 우리 영적 지도자들이 바라보는 분들을 향한 이런 정이 있는지요? 영적 자녀들, 제자들, 구역원들, 교인들을 향한 어머니의 정이, 사랑이 있는지요? 처음에는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별로 신경을 쓰지 않으면서 부주의 하여 표현 되어지지 않으면서, 시간이 흐르다 보니 있는 정마저 시들어 버리지는 않았는지요? 솔직이 대답해 보십시오. 그들을 향한 애정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습니까? 부모가 자녀들을 향한 깊은 애정이 있다면 반드시 표현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제자들에게, 구역원들에게, 교인들에게 깊은 애정이 표현되어야 합니다.

둘째로, 영적 지도자들은 온 가족 앞에, 교인들 앞에 삶 전체가 투명해야 합니다.
8절 하반절에 계속하여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으로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말 번역에는 목숨까지 준다고 하였지만 더 원어에 가까운 번역은, 복음을 나눈 것뿐 아니라 삶(life)을 나누기를 기뻐했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중적인 삶이 아니었다라는 말입니다. 말하는 것 따로, 생활 따로 아니었다라는 말입니다. 교회 생활과 가정 생활, 사회 생활이 다르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삶 전체가 하나님 앞에, 사람 앞에 투명하였다는 말입니다. 깨끗하였다는 말입니다. 우리를 따르는 자들은 다 보고 배웁니다. 지도자로서 이럴 때에 어떤 결정을 내리는가? 돈은 어떻게 벌고, 어떻게 사용하는가? 바쁘게 살면서도 여유와 웃음이, 유우머가 있는가? 실수나 실패를 하였을 때에 어떻게 대처하는가? 이런 생활의 실제적인 모습들을 다 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삶이 뚜렷이 다 보여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믿음이 확실하고, 영적으로 올바로 서 있음이 보여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과 그 동역자들처럼 자신있게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없이 행한 것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10절)! 거룩하고 옳고 흠이 없이 행한 것에 대하여 우리를 바라보는 자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이 증인이 되실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사는 이유는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바울 서신을 보면 바울에게 있어서 사랑은 주로 명사보다 동사로 나타납니다. 늘 무언가를 하는 것입니다. 사랑에 느낌이 따를 수 있지만, 그 느낌으로 사랑을 정의할 수는 없습니다. 사랑은 우리를 바라보는 자들의 유익을 위하여 무언가를 하는 것입니다. 목숨까지 내 놓을 정도로 사랑하니 어떻게 삶이 투명하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셋째로, 영적 지도자들은 이기적이지 않는 열심, 근면함이 있어야 합니다.
9절에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과 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노라”고 하였습니다. 아마도 데살로니가교회 교인들 가운데 일하기를 싫어하는 자들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주어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데살후 3:9-10)고 하였습니다. 영적 자녀들이 바울과 그 동역자들이 수고하고 애쓴 것을 다 알고 있지 않느냐 하면서 밤과 낮으로 일을 하였다 합니다. 자신들을 위하여서가 아니라 복음을 위하여서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지도자들은 자신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이기적인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열심이 있어야 합니다. 부지런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지도자들이 자기 욕심을 위하여서는 밤과 낮을 가리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가족을 위하여서는,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서는 게으른 것을 봅니다. 문제는 마음이, 관심이 어디에 있느냐는 것입니다. 무엇에 열정(passion)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와 의에 대한, 잃어버린 영혼들과 하나님 말씀에 대한 열정이 있어서 열심을 내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훗날 우리를 바라보는 그들로부터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들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얼마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여러분의 마음이 흐뭇해 지겠습니까?

넷째로, 영적 지도자들은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영향을 끼쳐야 합니다.
11절에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비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 하였습니다. 즉 영적 지도자의 역할은 따르는 자들을 권면하고(encouraging), 위로하고(comforting), 훈계하는(urging) 것입니다.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말입니다. ‘권면’은 그저 기분 좋게 해주려는 시도가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는 말을 뜻합니다. 자꾸 ‘안 된다’ ‘못 한다’ ‘NO’ 라고 하기보다 ‘된다’ ‘할 수 있다’ ‘YES’ 라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그들을 인도해야 합니다. 필요(need)와 원함(want)의 차이를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위로’는 실패와 어려움을 경험할 때 다가가 함께 나누며 공감을 표현해주는 것입니다. ‘경계’는 어떤 상황을 정직하고 진지하게 평가하며, 최선을 다하기 위하여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유익하지 못한 것을 계속 오래하면, 유순하게 ‘이것을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요’ 등으로 권하면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자라게 됩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왜 우리가 우리 마음대로 살고, 우리 자신을 위하여 살고 싶은 것을 억제하고 이런 영적 지도자가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까? 12절에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렇게 사는 것이 우리를 부르신 그 목적에 부합하는 삶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부족한 우리를 어두운 가운데 부르셔서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그 하나님 나라와 영광에 합당하게 행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여기 합당하게 행한다는 말은 가치 있는 행함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에 부합하는, 그 영광의 가치에 맞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드러나게 하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를 부르신 삶의 목적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고귀한 삶입니까?
영적 지도자가 공동체에 끼치는 영향은 대단합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대부분의 경우가 영적 지도자의 잘못으로 공동체가 파괴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큰 잘못을 범하고 있지 않다 하더라도 성경에서 말하는 이러한 영적 지도자의 역할을 못하는 경우 그 가정과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며 건강하지 못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지도자 여러분들!
이민 생활이 매우 힘들고 피곤하게 만들어도 우리를 바라보는 자들에게 어머니처럼 깊은 애정을 표현하며 살 수 있기 바랍니다. 그들로 하여금 사랑 받고 있음을 알도록 해 주십시다. 그리고 온 가정 앞에, 교회 앞에, 교인들 앞에 우리의 삶 전체가 투명하기를 원합니다. 위장하는 것이 없기를 원합니다. 분명하게 보여지기 원합니다. 부끄러울 것이 없기를 바랍니다. 모든 삶의 영역에서 말입니다. 그러러면 영적으로 확실해야 합니다. 믿음이 진지해야 합니다. 우리를 바라보는 자들이 증인입니다. 하나님께서 다 보고 계십니다. 물론 이 세상에 완전한 지도자가 어디 있습니까? 부족하지만 부족한 부분들도 드러나지고, 용서를 구하고 용서 받고 하는 가운데 변화되어 가는 아름다운 모습이 우리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때로는 자신을 생각하며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싶어도 참고, 허락하신 공동체, 우리가 책임을 져야 할 영적 가족을 생각하며, 더 나아가 하나님 나라를 생각하며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삽시다. 주님의 나라와 의를 향한 열정으로 나태해 지려는 자신에 대하여 채찍질 하면서 열심을 내고 부지런히 삽시다.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바랍니다. 아버지처럼 잘못할 때에는 지적하며 훈계하더라도 격려와 위로가 넘치는 지도자로 그들의 기억에 남기를 원합니다.
완전한 지도자는 될 수 없어도 하나님께 참된 지도자로서 인정 받기를 원하며, 영적 자녀들에게, 제자들에게, 구역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신뢰감을 줄 수 있는 지도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 동안도 여러 가지 어려운 가운데 이런 지도자로 살려고 애를 쓴 분들을 진심으로 격려합니다. 주께서 아시고 크게 축복하실 것입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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