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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8-09-10 (월) 09:21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485    
성도로서 주의하여야 할 것들(히 12:12-17)


성도들은 이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푹 빠져 살 수는 없습니다. 살아가는 이유가 세상 사람들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삶의 가치관이 다릅니다. 살아가는 사고방식과 방법이 다릅니다. 그래서 결코 세상적일 수가 없습니다. 성도들은 세상의 영향을 받지 않고,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게 살아감으로 세상에 선한 영향을 끼치고 살아갑니다. 바로 복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세상을 정복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성도들 가운데 갈등을 느끼며, 세상적으로 살아가는 분들이 많을까요? 고 하영조 목사님은 그의 히브리서 강해설교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아는 것과 믿는 것이 분리되어 있고, 믿는 것과 사는 것이 분리되어 있어서 그렇다. 아는 것과 믿는 것이 다르고, 믿는 것과 사는 것이 다르니 갈등이 생길 수 밖에 없고, 그냥 적당히 합리화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이다’고 하였습니다. 공감이 가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아는 참 지식은 참 믿음을 가질 수 밖에 없고, 참 믿음은 믿는 대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하나님을 아는 대로 믿고 있으며, 믿는 대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지난 주일에 살펴본 것처럼 마라톤 경주와도 같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때로 우리를 징계하시는데(히 12:4-11), 그 긍국적인 목적은 죄와 싸워 이기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징계는 우리에게 우리가 참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신하게 하며(7-8절), 우리를 더욱 성숙하게 하며(9절),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10절),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하여(11절)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지난 한 주간 주신 말씀을 생각하며 죄와 싸워 이기셨는지요?
오늘은 이러한 징계에 관한 교훈을 말씀하고 나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들 몇 가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징계를 받으면서 바르게 반응을 해야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첫째, 피곤하여 그만 두고 싶을 때 우리의 믿음과 소망을 든든히 하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12절) 하였습니다. 마라톤 경주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긴 시간 뛰면서 점점 손이 피곤해져서 아래로 쳐질 것입니다. 손을 내리고 싶어집니다. 무릎도 힘들어집니다. 다리가 흐트러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계속 결승점까지 잘 뛰려면 피곤하여 처지는 손을 위로 올려야 합니다. 힘들어서 쉬고 싶어하는 무릎도 일으켜 세우고 더욱 다리에 힘을 주고 뛰어야 합니다.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즉, 주님께서 동행해 주신다는 믿음을 더욱 강하게 하고, 잠시만 참고 계속 뛰면 결승점에 도달하여 주님을 만난다는 소망을 든든히 해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는 약한 손을 강하게 하여주며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여주며 겁내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는 굳세게 하라 두려워 말라”(사 35:3-4절상)고 하셨던 것처럼, 우리들의 피곤한 손과 약한 무릎을 굳게 해주시는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둘째, 곧은 길, 한 길을 가라고 합니다.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13절)고 하였습니다. 이 구절을 쉽게 풀어 말씀드리면 달리는 길의 정도를 만들어서, 레벨을 올바로 해서 비록 다리를 전다 하더라도 교정할 수 있게 하라는 것입니다. 꼬불꼬불하고 높낮이가 다른 길을 가면 저는 다리로는 너무 힘든 것입니다. 고쳐질 수가 없습니다. 우리 죄인들이 온전하여지려면 곧은 길, 정도를 가야 합니다. 눈에 보기에는 옆의 길이, 다른 길이 좋을 것 같아 보여도 그 길을 가면 우리 다리가 고쳐지지 않습니다. 힘들어도 곧은 길을 가다 보면 고침을 받습니다. 온전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 7:13-14)고 하셨습니다. 또 “네 발의 행할 첩경을 평탄케 하며 네 모든 길을 든든히 하라 우편으로나 좌편으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잠 4:26-27)고 하였습니다.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말고 곧은 길, 한 길을 가야 합니다.
셋째,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려고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14절상) 하였습니다. 물론 여기 모든 사람은 사탄, 마귀의 종들과도 화평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들과는 싸워야 하지요. 다만 믿는 모든 사람들과 화평하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 친하게 지내는 사람과만 잘 지내는 것이 아니라 그렇지 않은 사람과도 잘 지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 교회 교인들에게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하라”(롬 12:18)고 하였습니다. 할 수 없으면 화평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최선을 다해서 모든 사람과 평화롭게 지내라는 명령입니다. 고난과 고통 속에서도 적극적으로 화평하라는 말씀입니다. 싫더라도, 원수처럼 생각이 되어도 미워하면 안됩니다. 그것은 곧 살인입니다(요일 3:15). 그래서 모든 사람과 화평하려면 쉽게 용서해야 합니다. 이해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넷째, 늘 거룩함을 추구해야 합니다. “거룩함을 쫓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14절하)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미 거룩해졌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인이라고 불러 주십니다. 그렇지 않고는 나중에 주님을 볼 수 없습니다. 이렇게 위치적으로(position) 이미 거룩해졌기 때문에 우리는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구별되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순결을, 성결을 원하십니다. 주님께서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 5:8)고 하셨습니다. 또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벧전 1:16; 레 11:44)고 명령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즉 거룩해진 우리는 점점 더 거룩해져 가야 합니다. 여기 ‘거룩함을 쫓으라’는 말씀은 성화(sanctification)를 말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더욱 거룩해져 가야 하는 것입니다. 같은 맥락으로 “음행하는 자를 두려워하라”(16절상). 음행은 평화를 깨뜨리고, 거룩을 파괴합니다. 음행한 사람뿐만 아니라, 당한 사람도 순결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물리쳐야 합니다. 더러운 생각조차 회개하고 버려야 합니다.
다섯째,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나 두려워해야 합니다.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15절상) 하였습니다. 교회는 나오는데 복음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찬송도 함께 부르고, 헌금도 하고, 때로 봉사도 하는데 하나님의 은혜는 깨닫지 못한 사람입니다. 믿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교회에 나오는 것은 하나의 형식적인 종교생활입니다. 취미생활입니다. 정말 안타까운 사람입니다. 계속 그러다가 구원을 받지 못하고 심판을 받을까 두려워해야 합니다.
여섯째, 쓴 뿌리 때문에 주위 사람들을 괴롭게 하고 더럽히는 사람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15절하) 하였습니다. 이 구절의 배경은 모세가 가나안 땅을 눈 앞에 두고 경고한, “너희 중에 남자나 여자나 가족이나 지파나 오늘날 그 마음이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서 그 모든 민족들의 신들에게 가서 섬길까 염려하며 독초와 쑥의 뿌리가 너희 중에 생겨서”(신 29:18)라고 한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심령이 독초나 쑥의 뿌리 때문에 망하게 될까 경고하는 것이었습니다.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보다 더 무엇을 사랑하게 되면 그것이 채워지지 않으면 쓴 뿌리가 되어 주위 사람들까지 괴롭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세상이 더 좋기 때문에, 돈이 더 좋기 때문에, 명예가 더 좋기 때문에 그것이 채워지지 않으면 쓴 뿌리로 주위를 다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좋은 풀과 나무까지 오염시키게 됩니다. 시기 질투로 관계가 파괴됩니다. 정말 쓴 뿌리만큼 공동체를 망하게 하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진짜 뿌리째 뽑아야 합니다. 진실로 회개하고,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다 버리고 돌아서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에서처럼 무엇이 정말 소중한지를 모르는 자들을 주의해야 합니다. 영원한 것보다 일시적인 것을 좋아하여 망령된 자들을 주의해야 합니다. 사실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16절)고 하였습니다.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복을 넘긴 에서를 가리킵니다(창 25:27-34). 하나님 언약의 신령한 복을 몰랐기 때문에 배를 채우기 위하여 야곱에게 넘겨버린 엄청난 잘못을 한 에서 말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행동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것으로 행동하였습니다. 무엇이 더 중요한지 몰랐습니다. 우선순위가 잘못되었습니다. 눈 앞의 이익 때문에 믿음을, 하나님을 저버린 사람입니다. 다가올 영원한 세상보다 지금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을 성경이 망령된(godless) 사람, 하나님과 관계 없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에서는 나중에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아버지 이삭에게 복을 구하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그래서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17절)고 하였습니다. 후회하지만 이미 기회는 지나갔습니다. 우리 교회에 이런 분이 한 분도 없기를 바랍니다. 너무 늦기 전에 망령된 사람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 받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마라톤 경주는 쉽지 않습니다.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끈질김이 필요합니다.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것들을 주의해야 합니다. 더 이상 달리지 못하게 하는 것들을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가야 합니다. 결승점까지 달려야 합니다.
때로 피곤하여서 손이 쳐질 때에도, 무릎이 아파올 때에도, 다리에 힘이 빠져 그만 두고 싶을 때에도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소망을 더욱 든든히 붙잡아야 합니다. 우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십자가의 고난까지 참으신 예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3절).
곧은 길, 한 길을 가야 합니다. 그 길이 좁고 협착하여도 다른 길로 가면 안됩니다. 좌 우로 치우치면 안됩니다. 그래야 우리는 고침을 받습니다. 온전하여 집니다.
모든 사람과 화목하게 지내야 합니다. 아무리 싫은 사람이라도 한 피 받아 한 몸이룬 형제요 자매라면 화평하게 지내야 합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하고 더 사랑해야 합니다.
이미 거룩한 사람이 되었지만 더욱 거룩하기 위하여 힘써야 합니다. 더 거룩하기 위하여 힘쓰지 않는 사람은 거룩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 속에 성령 하나님이 거하는 사람이라면 날마다 죄성과 싸우며 점점 거룩하여 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은혜에 올바로 반응하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자들을 주의해야 합니다. 이 교회, 저 교회 기웃거리며 함께 예배하기도 하고 찬송도 부르지만 다 형식적이라면 나중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속히 마음을 열고 회심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쓴 뿌리를 가지고 주위 사람들을 괴롭게 하는 분들을 주의해야 합니다.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좋아하고 사랑하는 분들을 주의해야 합니다. 온 가족을, 공동체를 힘들게 하고 망하게 합니다. 만약 우리에게 쓴 뿌리가 있다면 속히 해결해야 합니다. 진실로 회개해야 합니다.
또한 성도라면 이 세상보다 앞으로 다가올 영원한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육신적인 축복보다 영적인 축복을 더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무엇이 더 중요한지 분별력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지금 정신을 차리고 올바로 신앙생활해야 합니다. 앞으로 기회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나중에 후회해야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망령된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보시기에 기뻐할만한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거저 받은 선물입니다. 그러나 구원 받은 후에 신앙생활은 마라톤 경주와 같이 달려야 합니다. 참고 인내하며 달려야 합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주의를 기울여 달려야 합니다. 그만 두고 싶다고 그만 둔다면 사탄 마귀가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오늘 주신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주의를 기울여 신앙생활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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