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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8-09-17 (월) 05:24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472    
율법과 은혜(히 12:18-24)


아일랜드 사람들이 미국 이민은 1850년대 들어와서 활발해졌습니다. 그 때 한 가난한 아일랜드 청년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기로 결심하고 돈을 열심히 모았습니다. 모든 돈으로 미국에 가는 삼등칸 배표를 샀으나, 먹을 것 준비할 돈이 별로 없어서 간신히 빵을 몇 개 사서 배를 탔습니다. 빵을 조금씩 아껴 먹으며 대서양을 횡단하였지만 내내 굶주림에 시달렸습니다. 배가 미국에 도착하기 전날 큰 마음을 먹고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마지막 식사는 남은 돈을 다 털어서라도 배부르게 먹고 싶었습니다. 맛있게 식사를 하고 나서 돈을 내려고 하자 웨이터가 이상한 표정으로 쳐다보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식사는 무료입니다. 배 운임에 다 포함되었습니다.’
신앙생활도 그렇게 하는 분이 있습니다. 이미 복이 주어졌는데, 복을 달라고 하던가 복을 누리지 못한다면 얼마나 어리석고 안타까운 일입니까? 참 성도라면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교회에게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엡 1:3)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때문에 주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진리를 모르는 채 자꾸 복을 달라고 하거나 안 받은 사람처럼 살아가는 분들이 우리 가운데 한 분도 없기를 바랍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12장에 들어와 우리의 신앙생활은 마라톤과 같으니 결승점에 계신 주님을 바라보고, 또 주위에서 응원을 하고 있는 앞서간 성도들을 생각하고 잘 참고 끝까지 경주하라고 하였습니다(12:1-11). 때로는 징계도 하시고, 격려도 하시는 주님을 의지하면서 말입니다(12:12). 우리를 훈련시키시며 코치하시는 주님이 바로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다만 주의를 기울여 경계할 것들을 말씀하셨습니다(12:13-16). 마라톤 경기에도 규칙을 어기면 실격이 되듯이 우리는 곧은 길을 가야하며, 힘들어도 모든 성도들과 화평하며, 늘 거룩함을 추구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는 자들과 쓴 뿌리가 있는 자들,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망령된 자들을 주의하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시내산과 시온산, 율법과 은혜를 대조하면서 다시 한번 히브리서의 주제라고 할 수 있는 새 언약이 옛 언약과는 비교할 수 없이 좋은, 탁월한 언약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받은 복이, 은혜가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 은혜를 누리라는 것입니다.
“너희의 이른 곳은 만질만한 불 붙는 산과 흑운과 흑암과 폭풍과 나팔 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아니라 그 소리를 듣는 자들은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기를 구하였으니 이는 짐승이라도 산에 이르거든 돌로 침을 당하리라 하신 명을 저희가 견디지 못함이라”(18-20절)고 하였습니다. 이 묘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기 위하여 시내산에 모였을 때 있었던 현상입니다(출 19장, 신 4-5장). 이스라엘 백성들과 그들의 짐승은 시내산에 가까이 하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인 인간이 감히 거룩하신 하나님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짐승도 가까이 했다가는 돌에 맞아 죽임을 당하는 것이었습니다. 천둥과 번개, 폭풍, 나팔 소리와 함께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그들은 무시무시한 공포에 사로잡혔던 것이었습니다(신 5:23-27). 그래서 하나님께서 더 이상 말씀해 주시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심지어 부르심을 받은 모세조차도 두려워했습니다. “그 보이는 바가 이렇듯이 무섭기로 모세도 이르되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21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누가 감히 하나님 앞에 서겠으며, 율법 아래 살겠습니까? 율법을 온전히 지킬 자가 없으니 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 앞에 다가가지 않으면, 안 믿으면 괜찮습니까? 결코 안되지요! 영원히 죽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사법을 알려주시고 짐승의 피를 가지고 제사를 드릴 때 일시적으로 중보자 대제사장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이렇게 율법 하에서는 감히 하나님께 마음대로 다가갈 수 없었지만, 복음의 은혜 아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마음대로 다가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로 말입니다. 그래서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6)고 명하신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는 특권을, 신령한 복을 받은 것입니다. 이 놀라운 복음의 은혜를 거절하면 율법을 거절했을 때보다 훨씬 더 무서운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어서 율법과 대조가 되는 복음의 은혜를 설명합니다.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들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22-24절)고 하였습니다. 여기 ‘시온산’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를 말합니다. “온전히 아름다운 시온에서 하나님이 빛을 발하셨도다”(시 50:2)라고 하였듯이, 하나님의 빛이 임하는 곳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동일한 의미입니다. 시온산에서 하나님께 신령과 진리로 드려지는 예배를 말합니다. 하늘의 예루살렘, 즉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을 상징합니다.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누리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천만 천사와 관계된 22절 하반절과 23절 상반절을 원어에 의한 더 정확한 번역을 하자면, “천만 천사들의 기쁨의 총회와 하늘에 기록한 장자의 교회와” 입니다. 그곳에 함께 하는 천만 천사는 하나님을 둘러싸고 있는 천사들로 하나님이 부리는 영들입니다. “모든 천사들은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히 1:14)라고 하였듯이, 성도들을 섬기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천사들을 섬기고 경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 기록한 장자의 교회”는 장자,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눅 10:20)고 하셨는데, 이는 다윗이 “저희를(악인을) 생명책에서 도말하사 의인과 함께 기록되게 마옵소서”(시 69:28) 하였고,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계 3:5),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계 21:27)에서 언급한 생명책(Book of Life)을 말합니다.
즉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자들, 우주적인 교회를 이룬 자들이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다. 의로우신 재판장이십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죄인의 모습 그대로 공의의 재판을 받아야 합니다. 바로 백보좌 심판입니다(계 20:11).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은 자들은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기에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또한 이 하늘의 교회에는 우리의 앞서 간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영웅들을 비롯한 구약의 성도들인, “온전케 된 의인들의 영들”(23절하)도 있습니다. 이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의롭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세상 사람들을 보시고 복음의 은혜를 거절하고, 믿는 것 같다가도 곁길로 가는 배교자들을 심판하십니다. 그러나 복음의 은혜를 받고, 그 은혜를 누리고, 아무리 힘들어도 주님을 버리지 않는 성도들은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게 됩니다. 그 이유는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 때문이었습니다. 무죄한 아벨의 피를 신원하신 하나님께서 그 피를 가인에게 돌려 그는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창 4:10-12). 아벨과 동일하게 무죄하셨던 예수님도 죄 없이 십자가 죽음을 당하였지만 그리스도의 피는 믿는 자들에게는 저주가 아닌 축복과 은혜를 가져다 주었으며, 하나님 앞에 자유롭게 나아가게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Savior)와 주(Lord)로 믿고 시인하여 구원을 받은 것은 율법을 지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 2:8-9)고 하였습니다. 시내산의 율법이 아니라 시온산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율법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그것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죄인인가를 가르쳐주는 도구가 율법입니다(롬 3:20, 갈 3장).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율법을 다 지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율법을 완성하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복음, 예수님의 십자가 때문에 죄 사함을 입었고, 사랑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살게 된 것입니다. 우리를 치료하는 능력이 임한 것입니다. 율법의 시내산이 아니라 은혜의 시온산으로 부르셔서 우리의 약함을 감싸주시고, 허물을 덮어주시고, 상처를 싸매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신약의 은혜 아래 있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큰 복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자꾸 시내산으로 가서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참으로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렇지 않고 이미 은혜의 길에 들어서서 천국의 소망을 갖고 믿음의 능력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엄청난 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이런 복을 받았음에도 영적으로 가난하게 살아간다면 얼마나 한심합니까? 이 진리를 올바로 알고, 아는 대로 믿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 믿음대로 살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받은 은혜를, 신령한 복을 누리고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은혜)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롬 8:31절하-32절) 하였습니다. 원어에 맞게 풀어 설명하자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우리를 대적할 수 없다. 자기 아들도 아끼지 않고 주셨는데 그 아들과 함께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은혜로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필요한 모든 복을 은혜로 주시는 분입니다. 이 은혜를 누리고 살아야 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성령님을 의지하고 사탄 마귀와 싸우면 우리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비록 우리는 약해도 내주하시는 성령님은 강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신실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또한 연약하여 무슨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곧 자백하고 회개하면 용서하신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9)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죄책감으로 고통 당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응답하신다는 확신도 가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 16:24)고 하셨습니다. 물론 주님 뜻 안에서 간구해야지요. 내 뜻대로, 내 욕심으로 구하면 들어주시지 않지요. 또, 우리의 앞날을 인도해주실 것이라는 확신도 가질 수 있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5-6)고 말씀한대로, 우리가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만 의지하고 모든 일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인정하고 살면 우리의 앞길을 하나님께서 인도하신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어서 늘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모세는 가나안 정복을 앞두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외쳤습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신 33:29)! 모세는 앞으로 하나님께서 가나안 정복을 도우셔서 대적으로부터 승리하게 하신다는 것만으로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복하다고 했는데, 하물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입은 우리는 얼마나 더 행복한 사람들입니까? 우리 성도들은 다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은, 신령한 복을 받은 행복한 사람들임을 잊지 마십시오. 세상적인 의미의 행복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주신 복을 감사하며, 그 은혜를 누리고 사시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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