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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8-09-20 (목) 10:34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515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데살전 4:13-18)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아무리 힘든 일을 만난다 할지라도, 아무리 어려워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시간이 지나가면 그치고, 잠시 잠깐 후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떠나 주님을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영혼이 먼저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 재림하시면 죽었던 육체가 다시 살아나 영화로운 몸이 되어 영원히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산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확실히 믿을 때 아무리 어려워도 오늘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용기와 힘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말론적 신앙생활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장례식에서 어떤 사람들을 보면 죽은 자에게 절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방성대곡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목탁을 두드리거나 묵주를 만지면서 죽은 자의 영혼을 위하여 주문을 외며 기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런 사람을 따라서 죽은 자를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바로 세계관의 차이입니다. 영원에 대한 관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랑하는 가족이 죽었는데, 가까운 친구가 먼저 죽었는데 슬프지 않을 사람이 어디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영원한 이별이 아니라고 믿는 사람들은 그리 많이 슬퍼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가르치고 있는 것이 인간의 종말에 대한 말씀입니다.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 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13절)! 죽은 후의 소망이 없는 사람들이 죽은 자를 앞에 놓고 방성대곡하며 슬피 우는 것이지, 죽은 후의 소망이 있는 자들은 그렇게 많이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죽는다는 것은 육체가 땅에서 잠자는 것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잔다고 표현 하였습니다. 언젠가 깨어난다는 뜻입니다.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것이 죽음입니다. 영혼은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죽는 순간 천사들의 손에 이끌려 천국으로 옮겨집니다.
그러나 천국 소망이 없는 불신자들에게 죽음은 정말 무섭고 절망적인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교회 교인들에게 그들이 예수님을 믿기 전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엡 2:12)라고 하였던 것처럼 말입니다. 소망이 없으니 절망 가운데 죽고, 그 후에는 영원히 고통 속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인들 가운데 초신자들이 죽으면 천국 간다는 소망은 있었으나, 주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죽은 자들은 재림할 때에 살아있는 자들보다 손해를 볼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즉 재림할 때 살아있지 않으면 무언가 불리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재림 전에 죽는 것에 대하여 더 슬퍼하였던 것입니다. 이유는 재림에 대한 올바른 진리를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14절)고 하였습니다. 바로 우리 믿음의 기초입니다. 우리가 부활의 첫 열매이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다고 한다면, 이미 죽은 성도들,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예수님처럼 다시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재림하실 때 하나님이 예수님과 함께 그들을 데리고 오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입니다.
이어서 바울은 주님의 특별한 계시의 말씀을 전합니다.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15절)고 하였습니다. 여기 ‘주의 말씀’은 아마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 종말에 있어질 사건들을 말씀하시면서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의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저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마 24:30-31)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주님 재림하실 때 이미 죽은 택한 자들을 온 사방에서 이끌어 내셔서 모으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현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고전 15:51-52)고 하였듯이, 그러니까 재림 하실 때 살아있는 자들보다 먼저 하늘로 이끌림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16-17절)고 한 것입니다.
물론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이지만 그 순서(sequence)를 말하자면 첫 번째로, 하나님의 큰 호령이 나면서 천사장이 그 명령에 따라 소리를 지르면 나팔소리와 함께 예수님께서 친히 강림하십니다. 두 번째로,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자던) 자들이 깨어 일어납니다. 죽은 지 오래되어 시신도 없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재창조하시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재림 시에 살아있는 자들이 영화로운 몸으로 변화를 받으면서 그들과 함께 공중으로 들어올려 집니다. 보통 ‘휴거(rapture)’라고 하지요. 네 번째로,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합니다. 마지막으로 항상 주님과 함께 있게 됩니다.
여기 부활하는 영화로운 몸은 영원히 죽지도 않고 병들지도 않고 노쇠하지도 않는 몸입니다(계 21:4). 죄를 모르는, 죄성이 없는 몸입니다. 이러한 몸으로 주님과 함께 영원히 천국에서 삽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바울은 4장 마지막 절에서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18절)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삶이 고달플 때, 환경이, 상황이 우리가 살고 싶지 않을 정도로 힘들 때 종말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재림하기 전에 죽는다 하더라도 먼저 휴거될 것이니 본문의 말씀으로 서로 위로하라는 것입니다. 소망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 삶은 잠시 잠깐이지만 죽은 후의 세상은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하는 천국은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참고 용기를 내어 다시 일어서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먼저 가더라도 너무 슬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만약 그 가족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믿고 살았던 사람이라면 말입니다. 천국 소망이 있으니까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 믿는 사람들은 죽음이 찾아온다 하더라도 예수님으로부터 끊어질 수 없습니다. 한번 예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게 되면 그 관계는 영원히 지속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8-39)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맺으며, 주님과 목자와 양의 관계를 맺으며, 신랑과 신부의 관계를 맺게 되면 영원히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죽음을 성경적으로 이해하고 믿으면, 전혀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고 새로운 시작이기에, 죽음이 두렵지 않기 때문에 얼마든지 담대하게 살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어떤 문제를 만나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사랑하는 부모가 세상을 떠나도, 남편이나 아내가 먼저 떠나도 그렇게 슬퍼하지 않습니다. 잠시 후 다시 만난다고 하는 소망이 너무나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시한부 종말론자들처럼 현실을 부정하거나, 현실 도피하려는 이단들입니다. 아무 것도 안하면서 죽기만 기다리는 극단적인, 비성경적인 종말론적 신앙인들은 사회에서 지탄을 받게 되지만, 균형 잡힌 성경적인 종말론적 신앙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조차 귀감이 되는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얼마나 멋있게 보이겠습니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늘 담대하게 살아가니 말입니다. 비록 이 땅에서 죽음을 당한다 하더라도 영혼이 주님과 영원히 함께 하기 때문에 그 날을 준비하고 살아갑니다. 영원의 관점에서 오늘을 거룩하게 살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떤 무명의 시인이 아래와 같은 짧은 시를 썼습니다.

세월이 살 같이 흐른다고 우리는 말한다
아,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니다
세월은 머물러 있다
우리가 가는 것이다

세월이라는 시간은 사실 영원하기에 인간의 입장에서는 그냥 머물러 있는 것과도 같습니다. 우리 인간이 그 영원을 향하여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어떤 영원을 보내기 원하시는 가에 따라 오늘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지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부르시는 그 날까지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슬퍼하지 않고 확실한 소망 가운데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기 원합니다. 거룩한 부르심에 합당한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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