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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8-10-04 (목) 11:06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426    
깨어 근신하여(데살전 5:1-11)
초대교회 교인들은 생활의 중심이 교회이었습니다. 자주 모여 자신들의 삶을 나누고, 예배를 드리며, 기도에 힘을 다했습니다. 특히 고난을 당할 때 교회에 모여 성도들과 교제하며 기도하였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큰 은혜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믿지 않는 사람들은 대부분 부유한 사람들이었는데 방탕하게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주로 원형경기장에서 마차 경기나 혹은 검투사들의 경기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거나 술집에서 주색잡기나 도박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거의 남자들에게 해당하는 것이지, 여자들이나 집안의 아이들에게는 해당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대조적인 생활이었습니까?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빛의 아들들과 어두움의 아들들, 낮에 속한 자들과 밤에 속한 자들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주님 재림에 대한 올바른 진리를 전했던(4:13-18) 바울은 재림의 시기에 대한 말씀과 아울러 영적으로 긴장하고 있으면서 빛의 아들들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으니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1-3절)고 하였습니다. 재림의 때(kro,noj)와 시기(kairou.j)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다는 말씀은 곧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행 1:7)라고 한 말씀을 반복한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 때는 하나님 아버지 외에는 천사도 모르고, 자신도 모른다고 하였습니다(마 24:36). 다시 오시기는 하는데 언제인지 우리는 모른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기다리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무작정 기다려야 합니다. 쉽지 않습니다. 그 때를 알면 가까이 가서 준비를 할텐데 말입니다.
그리고 그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임한다는 말씀도 예수님께서 “너희도 아는 바니 집 주인이 만일 도적이 어느 때에 이를 줄 알았더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니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눅 12:39-40)고 하신 말씀입니다. 즉 예고 없이 오신다는 것입니다. 도둑이 언제 우리 집을 털겠다고 하고 오는 법이 없습니다. 평안하다, 안전하다 생각하고 방심하고 있을 때 뚫고 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늘 문단속을 잘하고 있어야 합니다. Security Alarm 장치를 하고 지켜야 합니다.
또 하나의 비유를 들었는데 바로 해산을 기다리는 임산부의 예입니다. 사실 어느 때 진통이 올른지, 양수가 터질른지 모릅니다. 해산 날이 가까워올수록 더욱 아기 낳을 준비를 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긴장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종말을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이 죄 짓지 않고 거룩하게 살려면 영적으로 긴장하고 살아야 합니다. 느슨해지면, 방심하고 있으면 죄의 유혹에 넘어가기 쉽습니다. 영적으로 깨어있어야 합니다. 이는 우리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긴장하여 스트레스를 받는 것과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으면 오히려 정신적인, 육체적인 스트레스를 받지 않습니다. 느슨해 있기 때문에 사탄 마귀가 정신적인 육체적인 스트레스를 주는 것입니다.

주님이 언제 오시는지 모르기 때문에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6절)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바울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다시 한번 각인을 시킵니다. 어두움의 아들들이 아니라 빛의 아들들이라는 것입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4-5절)라고 하였습니다. 어두움에 속한 믿지 않는 자들에게 예수님의 재림은 밤에 오는 도적 같을 것입니다. 그러나 빛에 속한 우리들에게는 도적 같이 오는 것이 아닙니다. 깨어 있기 때문입니다. 빛에 속하였기 때문입니다. 참 빛되신 예수님에게 속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깜깜한 영혼들이야 재림이 급작스러운 것이지만, 빛 가운데 있는 영혼들에게는 급작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빛에 속한 자들답게 오직 깨어 근신하여야 합니다. 여기 근신하라는 단어는 베드로가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에 사용한 단어입니다. 깨어(be alert) 절제(self-control)하라는 뜻입니다.
이런 빛의 아들들은 행동이 다릅니다.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7-8절)고 하였습니다. 밤에 속한 자들은 잠자고 술 취하며 방탕하게 행하지만 낮에 속한 우리는 이런 행동과는 너무나도 다른 행동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행한다는 말씀입니다(엡 6:13-17). 우선 우리의 마음을 보호해주는 믿음과 사랑의 방패를 붙이라는 것입니다. 사탄 마귀의 불화살을 막아야 하기에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돈독히 하며, 다른 사람을 향한 사랑의 마음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 둘과 함께 구원의 소망의 투구(helmet)를 써야 합니다. 머리는 우리의 삶을 통제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주장합니다. 사탄 마귀가 의심의 화살을 쏠 때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재림에 대한 소망에 흔들리지 않으면 빛의 아들들처럼 행동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역경 가운데 아무리 힘든 시간을 지난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9-10절)고 다시금 구원의 확신을 갖도록 합니다. 빛의 아들들과 어두움의 아들들의 마지막 운명은 너무나 큰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 빛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여 구원을 받아 영원히 천국에서 살지만, 어두움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심판을, 정죄를 피할 수 없어 영원히 벌을 받습니다. 바로 3절에서 말한 “멸망이 저희에게 홀연히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여기 멸망이 영원한 형벌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자들은 먼저 죽은 자들이든, 주님 재림 시 깨어있는 자든지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바울은 우리가 빛의 자녀로서 이런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서로 권면을 하고 덕을 세우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11절)고 하였습니다. 여기 ‘권면하고’라는 뜻은 ‘위로하다, 용기를 북돋우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믿음과 사랑으로 방패를 삼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고 서로 영적 전쟁에서 용기를 잃거나 마음이 약해지지 않도록 권면하고 위로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서로 믿음 안에서 격려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서로 비난하고 판단하며 수군거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히 10:24)고 하였습니다. 또 ‘덕을 세운다’는 뜻은 ‘집을 세운다’라는 의미로 여기서는 서로 영적으로 성장하도록 도우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주위의 형제 자매들이 영적으로 강건할 수 있도록, 건강한 믿음으로 자라가도록 시간을 투자하는 것입니다. 주님 닮은 성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바로 빛의 자녀들이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빛의 자녀라면 정말 깨어 근신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언제 부르실지, 언제 재림하실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서 방심해서는 안됩니다. 영적으로 긴장을 늦추지 않아야 합니다. 말씀을 붙들고 기도해야 합니다. 믿음과 사랑의 방패를 가지고 사탄 마귀의 불화살을 막고 우리의 마음을 절제해야 합니다.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고 빛의 자녀로 행하고 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서로 권면해야 합니다.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아야 합니다. 덕을 세워야 합니다. 서로 세워주어야 합니다. 이러한 모습과 행동들이 우리들 사이에서 넘쳐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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