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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8-10-08 (월) 09:00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479    
성도의 의무 II (히 13:4-9)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로 우리들은 놀라운 특권과 축복을 받고 있고 누리고 있기에 그에 따르는 책임, 혹은 의무가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성도로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고 살아야 하는지, 다른 사람에 대한 우리의 의무가 무엇인지 살펴보았습니다(1-3절). 우리의 형제 자매들을 꾸준히 변함없이 사랑해야 하고, 낯선 나그네들에게조차 손 대접을 잘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내 눈에 지금 보이지 않지만 믿음 때문에 학대를 받고 있는 자들, 갇힌 자들을 생각하고 위하여 기도하며 도와 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성도로서 두 번째 의무는 우리 자신에 대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선 자신과 배우자와의 관계를 말합니다. 결혼을 귀하고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성적 순결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4절)고 하였습니다. 여기 우리말 번역의 ‘귀히 여기고(be honored)’라는 뜻은 영광스럽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결혼을 영광스럽게, 존귀하게 여긴다면 당연히 침소(marriage bed)를 더럽히지 않습니다. 순결을 지킵니다. ‘음행하는 자들(fornicators)’은 부부관계를 벗어나서 하는 모든 부도덕한 성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을 뜻합니다.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고전 6:18)고 한 후에, “너희 몸은 너희가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니라”(고전 6:19)고 하였습니다. 우리 몸을 우리 마음대로 못한다고 합니다. 우리 것이 아니고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령이 거하시는 전인 우리 몸에 성적인 죄를 짓겠느냐는 말씀입니다. ‘간음하는 자들(adulterers)’이라 함은 좀 더 구체적으로 부부로서의 서약을 어기고 다른 남자 여자와 관계를 맺는 자들을 뜻합니다. 이런 자들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제가 늘 이야기합니다. 죄라고 해서 다 똑 같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죄가 우상숭배이며, 그 다음이 성적인 죄인 것을 신구약 성경 전체가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그렇지만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란하고 부도덕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자유분방한 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결혼을 성스러운 것으로, 영광스러운 것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유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제일 먼저 만든 공동체가 남자와 여자가 하나가 되어 부부관계를 맺는 가정이었습니다.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결혼을 하여 이 땅에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 땅을 정복하고 모든 피조물들을 다스리도록 하였습니다(창 1:27-28).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주님과 교회의 관계로 설명하셨습니다. 주님이 교회의 머리가 되듯이, 남편이 아내의 머리가 되어 리더로서 책임을 감당하도록 하고 아내는 하나님이 허락한 그 권위를 인정하고 남편을 따르도록 하였습니다(고전 11:3). 또한 주님이 교회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듯이, 남편은 아내 사랑하기를 목숨을 다해 사랑하도록 하였고 아내는 교회가 주님에게 순종하듯이 남편을 주로 여기고 순종하라고 하였습니다(엡 5:22-33; 벧전 3:1-7). 그러므로 성도는 남편으로서, 아내로서 결혼을 소중히 여기고 그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이 책임과 의무를 다한다면 당연히 결혼의 순결을 지킬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벽난로 안에서의 불은 온 집안을 따뜻하게 하지만, 벽난로 밖으로 나온 불은 온 집을 태웁니다. 마찬가지로 성(sex)은 결혼 안에서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러나 결혼 밖에서는 너무 추하고 부부관계를 파괴시키는 것입니다. Highway 에 중간에 있는 guardrail 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것이 무너지면 정면충돌로 큰 사고가 나는 것입니다. 무서운 것은 성적인 죄를 범하는 사람은 몸도 마음도 병들지만, 무엇보다도 그 영혼이 병들게 됩니다. 회복이 쉽지 않습니다. 정말 마음을 찢고 처절한 회개를 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어서 우리 자신과 돈, 물질과의 관계를 언급합니다.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5절)고 합니다. 바로 앞서 제가 언급한 우상숭배의 일종이 돈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우상숭배의 죄를 짓는 것입니다. 오해하시면 안됩니다. 돈 자체가 죄가 아닙니다. 부자가 되는 것이 죄가 아닙니다. 돈을 사랑하여 돈의 노예가 되는 것이 큰 죄입니다. 그저 돈에 집착하는 것이 큰 죄입니다. 세상 사는 재미를 돈 버는 재미로 사는 것이 큰 죄입니다. 바울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라고 하였습니다. 아마 다들 경험해 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돈을 사랑하게 되면 아무리 많이 돈을 많이 벌어도 부족해서 더 벌어야 합니다. 유명한 20세기 미국의 석유왕 John Rockefeller 가 젊었을 때, 한 친구가 그에게 ‘얼마나 돈을 벌기 원하는가’ 물었더니 ‘one million dollars’ 이라고 답을 했다고 합니다. 그가 백만 불을 벌었을 때 또다시 그 친구가 ‘얼마나 더 원하는가’ 물었더니 ‘another million’ 이라고 했답니다. 인간의 욕심은 한도 끝도 없는 것입니다. 이미 이 진리를 경험했던 솔로몬 왕은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도 헛되도다”(전 5:10)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 돈 욕심 때문에 망하는 사람이 많지요. 성경에도 돈을, 재물을 사랑하다가 망한 사람들의 예가 많이 나옵니다. 본인만 망하는 것이 아니라 주위 사람도 함께 망하는 것이었습니다. 출애굽을 하고 나서 여호수아 가나안 정복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이성 전투에서 패하여 많은 사람을 죽게 한 아간(수 7장)이나 초대교회 때에 하나님의 것을 훔쳤던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행 5:1-10) 등 말입니다. 그래서 5절에 우리에게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고, 자족하라고 한 것입니다. “내가 궁핍함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1-13)고 고백한 바울처럼 말입니다. 믿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주님 안에서 내가 자족할 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5절하)고 하신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6절)고 시편 118편 6절을 인용하여 주신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어떤 형편이든 상황이든 요청하면 도우시는 분입니다. 믿고 의지하시기를 바랍니다. 그저 현재 주어진 것들을 감사하며 자족하십시오.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마지막으로 우리의 믿음을 굳게 하라고 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이르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저희의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받으라”(7절)고 합니다. 여기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전하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은 그들을 목회하던 자들을 가리킵니다. 즉 목회자들을 생각하고, 그들의 행실의 끝을 주의하여 보고, 믿음을 본받으라고 합니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제게 경종이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이 저를 생각하고, 저의 행실의 끝을 주의하여 보고, 믿음을 본받아야 하는데 제가 그렇게 살고 있는지 말입니다. 만약 이전까지 그렇게 온전하게 못했다면 이 시간부터라도 최선을 다하여 그렇게 살기를 다짐해 봅니다. 성도들이 목사를 생각하고, 목사의 행실의 끝을 주의해 보아도 되고, 믿음을 본받을만한 삶이 되려고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특히 은퇴하기까지, 아니 죽기까지 제 행실을 조금도 부끄럼이 없기를 원합니다. 물론 부족한 것이 많고 연약하기에 자신은 없습니다. 내일 넘어질지 모릅니다.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하지만, 다른 것을 몰라도 제 믿음을 본받으라는 말씀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몸인 교회를 사랑하며,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는 것은 본받으셔야 합니다. 저는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8절)고 한 말씀을 확실히 믿습니다.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하나니”(말 3:6절상) 하셨고, “그는 회전하는 그림자처럼 변하지 아니 하시나니”(약 1:17절하)라고 한 말씀을 믿습니다. 사람들처럼 조석으로 변하지 않으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여러분들도 확실히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믿는 대로 사시기 바랍니다.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식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식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9절)고 하였습니다. 당시 유대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율법주의자들의 영향을 받아 율법 가운데 의식법과 제사법을 지키려는 자들에게 경고하는 것입니다. 각종 절기를 지키려고 하고, 그 제사 음식을 먹는 것 가지고도 시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도 제사를 드린 음식을 먹는 것이 옳은지 먹지 않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질문에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니라”(롬 14:17)고 하였습니다. 한번은 주님께서 베드로의 환상 중에 율법에서 말한 정결하지 못한 음식을 베드로에게 내려 주면서 그에게 먹으라고 하였더니, 먹기를 꺼리는 그에게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한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행 10:15)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율법에 얽매일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율법의 가르침을 배우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살아가는 것이지 율법주의자가 되어서 그 의식법과 제사법을 따라 무엇은 되고 무엇은 안된다는 식으로 살면 안됩니다. 겉보다도 마음, 속 사람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마음에 할례를 받아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내주하시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는 것입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14)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율법주의자들과 달리 또 다른 교훈들이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거짓 선생들이 미디아를 통하여, 혹은 실제로 교회 안에 들어와 성도들을 헷갈리게 하고 있습니다. 유다서를 우리에게 주신 이유는 그러한 거짓 선생들을 경계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저희는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치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유 1:4)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경공부를 올바로 해야 합니다. 잘 모르면 정통 개혁주의, 복음주의 신학교에서 공부를 한 목회자들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아무 설교나 가르침을 그냥 그대로 듣고 배우면 안됩니다. 잘 모르겠으면 물어보고 들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올바른 진리를 알고 깨달아 믿음의 진보가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성도로서 우리 자신에게 묻고 다짐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성령님의 인도를 잘 받아야 합니다. 내 자아를 내려놓고 성령님의 음성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우선 결혼하신 분들은 믿는 남편으로서, 아내로서 그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결혼을, 가정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맺어주신 영광스러운 결혼임을 잊으시면 안됩니다. 순결을 지켜야 합니다. 사탄 마귀는 자꾸 유혹하여 음행을 저지르게 합니다. 자신의 남편이나 아내에 만족하지 못하게 합니다. 결국 성적인 죄에 빠져 가정을 파괴합니다. 늘 경계하십시오. 자기 자신만 망하는 게 아니라 온 가족이, 주위 사람들까지도 엄청난 피해를 당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무서워 하십시오. 아니 결혼할 때 하나님 앞에서 한 서약을 죽을 때까지 지키십시오. 주님을 사랑한다면, 말씀대로 허락한 남편이나 아내를 더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힘들면 성령님께 도움을 구하십시오. 주위에 영적인 지도자들이나 성숙한 분들에게 도움을 청하십시오. 이겨내야 합니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분들은 그런 마음가짐으로, 결단으로 결혼해야 합니다.
그리고, 돈을 사랑하지 마십시오. 예수님께서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눅 16:13). 돈도 섬기고, 하나님도 섬길 수 없습니다. 돈도 사랑하고 하나님도 사랑할 수 없습니다. 돈이 우상이 되면 안됩니다. 사람이 추해집니다. 하나님에게만 버림을 받는 게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습니다. 필요하면 허락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늘 함께 하시며 돌보시는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 옆에 있습니다. 자족하십시오.
또한, 영적인 지도자를 보고 배우십시오.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십시오. 그들의 끝이 유종의 미를 거두도록,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위하여 기도해 주십시오. 다른 교훈에 속아 넘어가지 마십시오. 성경을 올바로 배우시고, 배운 말씀을 그대로 믿으십시오.
결국 우리는 훗날 각자가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우리 부모님이나, 남편이나 아내나 자식이 믿음이 좋다고 그 덕을 볼 수 없습니다. 우리 자신이 살아온 날들에 대하여, 어떻게 행하고 살았는지에 대하여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판단을 받아야 합니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고 하였습니다. 그 때 상을 잃어버리지 않고, 오히려 많은 상을 받는, 칭찬을 듣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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