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등록 비번분실

전체방문 : 2,625,351
오늘방문 : 151
어제방문 : 495
전체글등록 : 3,255
오늘글등록 : 0
전체답변글 : 2
댓글및쪽글 : 12

좌측_배너 배너 001

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8-10-15 (월) 07:27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466    
성도의 의무 III (히 13:10-21)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로 우리들은 놀라운 특권과 축복을 받고 있고 누리고 있기에 그에 따르는 책임 혹은 의무를 계속해서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마지막 장에서 성도로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고 살아야 하는지, 다른 사람에 대한 우리의 의무가 무엇인지(1-3절) 그리고 우리 자신과의 관계에 있어서 우리의 의무가 무엇인지(4-9절) 살펴보았습니다. 우리의 형제 자매들을 꾸준히 변함없이 사랑해야 하고, 낯선 나그네들에게조차 손 대접을 잘 해야 하며, 믿음 때문에 학대를 받고 있는 자들, 갇힌 자들을 생각하고 위하여 기도하며 도와 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 결혼하신 분들은 믿는 남편으로서, 믿는 아내로서 그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하는데, 결혼을, 가정을 귀하고 영광스럽게 여겨야 한다고 했습니다. 순결을 지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돈을 사랑하지 말아야, 돈이 우상이 되면 안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영적인 지도자를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마지막으로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를 생각해보며 하나님을 기쁘게 해야 할 성도의 의무를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면 이 세상에서 구별된 생활을 함으로 고난도 감당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그 위에 있는 제물은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이 이 제단에서 먹을 권이 없나니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니라”(10-11절) 하였습니다. 이는 구약시대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이 드리는 제사를 말합니다(레 16장). 대제사장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위하여 어린 양을 죽여 성소에 들어가 그 피를 지성소 휘장에 뿌리며, 죽은 양의 몸은 먹지 못하고 영문 밖으로 가져가 불태웠던 것입니다. 물론 히브리서 기자는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다시금 강조하기 위해서 언급한 것입니다. 예수님도 영문 밖 즉 예루살렘 성문 밖 갈보리 산 위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고 몸을 찢기셨습니다. 그래서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12절)고 한 것입니다. 우리를 거룩하게, 구별되게 하시려고 성문 밖에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런데 당시 유대인들 가운데 자꾸 성문 안으로, 짐승을 제사드림으로 죄 사함을 받으려는 자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유는 아직도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주님을 만난 사람은 성문 밖에서 자신을 드린 주님의 속죄제사에 영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문 밖에서 주님이 죽은 것은 성문 안의 사람들에게서 멸시와 천대, 버림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아직 믿지 못하는 성문 안의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고, 핍박을 받아도 참아야 합니다. 누구를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말고 주님과 함께 그 고난에 동참해야 합니다. 성문 안의 높은 자리를 추구하지 말고, 성문 밖의 낮은 자리로 내려가야 합니다. 그래서 “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13절)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거룩하게 하려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이미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기에, 정말 우리는 이 세상에서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고난과 역경이 있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사람들의 칭찬과 영광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하는 고난을 기뻐해야 합니다. 바울은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롬 8:17)고 하였습니다. 비록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지만 여기는 영구한 도성이 없고 오직 장차 올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기 때문입니다(14절).

둘째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면 희생제사를, 예배를 드려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먼저 찬양의 제사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15절)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더 이상 짐승의 제사나 곡식의 제사를 원하지 않습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단번에(once for all) 담당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의 마음을 담은 입술의 찬양을 원하십니다. 희생제사로 말입니다. 여가 시간에, 아무 것도 할 것이 없는 시간에 부르는 찬양이 아닙니다. 우리 개인을 위한 시간을 희생하고 의지적으로, 지속적으로 찬양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증거하는 찬양입니다. 내 개인을 위한, 한풀이(stresses)를 위한 찬양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한, 영화롭게 하기 위한 찬양입니다. 하나님 살아계심을 간증하는 찬양입니다. 구원하심을 감사하는 찬양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증거하는 찬양입니다. 다윗의 찬양 “여호와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열방 중에서 주를 찬양하오리니 대저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 위에 광대하시며 주의 진실은 궁창에 미치나이다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으시기를 원하나이다”(시 108:3-5)라고 한, 시편의 찬양들처럼 말입니다. 찬양은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시 150:6)라고 명령하였습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입술로 찬양의 제사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행동으로 드리는 희생제사도 있습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 드리는 영적인 예배입니다(롬 12:1-2).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 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16절)고 하였습니다. 우리 자신을 희생하여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가진 것을 서로 나누어주는 것입니다. 초대 예루살렘교회가 그 본을 보여주었었습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눠주고”(행 2:44-45) 하였습니다.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는 성도는 사랑을 실천합니다. 행동으로 옮깁니다. 선을 행하고 가진 것을 나눕니다. 바울은 “내가 사람의 방언을 하고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고전 13:1-2)고 하였습니다. 즉 사랑의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인 것입니다(약 2:17).

셋째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면 영적 지도자들 존중하여야 합니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17절)고 하였습니다. 여기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은 목회자들, 영적 지도자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만약 9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목회자가 성경 말씀이 아닌 다른 교훈을 가르치는 자들이라면 당연히 배척해야 합니다. 그러나 목회자가 성경말씀을 가감이 없이 그대로 전하고 가르치는 자라면 교인들은 존중해야 합니다. 존경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물론 말씀에 어긋난 것을 명하면 당연히 듣지 말아야 하지요.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의 맥락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남편과 아내와의 관계에서와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교회의 머리, 권위가 주님에게 있듯이 가정의 머리, 권위를 남편에게 부여했듯이 그래서 아내가 남편을 존중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교인들은 목회자를 존중하고, 물론 목회자는 당연히 교인들을 사랑하고 돌볼 책임이 있지요. 그래서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고 한 것입니다. 무슨 말씀이냐 하면, 나중에 목회자는 자기에게 맡겨진 양들의 영혼을 위하여 사랑하고 잘 돌보았는지 주님과 회계할 때가 있는 것을 알고 경성한다는 뜻입니다. 목회자는 엄청난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여러분의 의무는 하나님이 교회를 위하여 목회자에게 권위를 부여한 것을 믿고 존경하며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시면 나중에 주님께서 물으시게 될 때 할 말이 별로 없고 꾸중을 듣게 될 것입니다. 아니 목회자를 존중하지 않으면 지금도 여러분에게 유익이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목회자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목회를 하게 해야 양들이 유익하지, 목회자가 근심으로 목회를 하면 어떻게 양들에게 유익하겠습니까? 당연한 말씀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양들이 목회자를 존중하지 않으면 양들이 손해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목회자를 존중하여 영적으로 많은 유익을 얻고 훗날 주님에게 칭찬 듣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목회자를 위하여 기도해 주셔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우리가 모든 일에 선하게 행하려 하므로 우리에게 선한 양심이 있는 줄을 확신하노니”(18절) 하였습니다. 사도들과 그 동역자들을 위하여 기도해달라는 것입니다. 속히 보고 싶은 양들을 만날 수 있도록 기도해달라고 합니다(19절). 이유는 그들에게 있는 선한 양심을 따라 모든 일을 선하게 행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정말 목회자에게 필요한 것이 기도입니다. 사탄 마귀는 목회자 한 사람 넘어뜨리면 수많은 양들이 넘어가는 줄 알기에 강력하고도 집요하게 공격합니다. 그래서 지난 주일에도 말씀드렸듯이 타락한 목회자들이 있지 않습니까? 끝이 좋지 않게 끝나는 목회자들 말입니다. 목회자가 처음 부르심을 받을 때의 선한 양심을 따라 선하게 행하도록 여러분이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사실 목회자를 위하여 기도해주시는 분들은 목회자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분들입니다. 하나님에게 많은 복을 받을 분들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양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케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20-21절)! 그 다음에 나오는 22절-25절까지는 히브리서 기자가 성도들에게 문안하는 것으로 끝을 맺지만, 사실 20-21절이 히브리서의 결론이요, 축도입니다. 목회자들이던 양들이던 우리 모두에게 큰 목자, 즉 영원한 목자장이 되시는 예수님을 우리 하나님께서 부활하게 하신 평강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온전하게, 성숙하게 하셔서 모든 선한 일에 하나님의 뜻을 행하게 해달라고 기원합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게, 즐겁게 하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큰 영광을 받으시니 그런 하나님의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기를 기원합니다.
나 주님의 기쁨되기 원하네 내 마음을 새롭게 하소서
새 부대가 되게 하여주사 주님의 빛 비추게 하소서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겸손히 내 마음 드립니다 나의 모든 것 받으소서
나의 맘 깨끗게 씻어주사 주의 길로 행하게 하소서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사랑하는 여러분!
정말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며, 성령으로 우리와 늘 함께 하시는 우리 주님으로 말미암아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즐겁게 하는 우리의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구별된 거룩한 생활을 함으로 말입니다. 다르게 사는 것 때문에 이 세상에서 고난을 당한다 할지라도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목자장이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고 바라보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입술의 찬양의 희생제사가 늘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며,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생각하며, 감사의 제사가 우리의 찬양을 통하여 매일, 매순간 드려지기 바랍니다. 선한 행동을 하며, 나눠주기를 즐거이 하기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희생제사입니다.
또한, 세워주신 목회자들을 존경하고 순종하여 여러분의 영혼의 유익함이 있기를 바랍니다. 선한 양심으로 끝까지 선한 행동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965 주일설교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라(빌 3:12-14) 한태일 목사 2018-12-31 441
964 주일설교 큰 기쁨의 좋은 소식(눅 2:8-20) 한태일 목사 2018-12-24 415
963 수요설교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사 9:6-7) 한태일 목사 2018-12-20 323
962 주일설교 성탄의 기쁨을 놓치지 않으려면(눅 2:1-7) 한태일 목사 2018-12-17 337
961 수요설교 성도의 책임과 의무(데살전 5:19-24) 한태일 목사 2018-12-13 382
960 주일설교 언약 백성의 복(눅 1:67-80) 한태일 목사 2018-12-10 329
959 수요설교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뜻(데살전 5:16-18) 한태일 목사 2018-12-06 320
958 주일설교 예언의 성취(눅 1:57-66) 한태일 목사 2018-12-03 331
957 주일설교 믿은 자에게 복이 있도다(눅 1:39-56) 한태일 목사 2018-11-26 320
956 절기설교 감사의 열매를 드립시다(벧전 1:23-25) 한태일 목사 2018-11-19 324
955 주일설교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은(눅 1:25-38) 한태일 목사 2018-11-12 339
954 수요설교 종말을 살아가는 성도는(1) (데살전 5:12-15) 한태일 목사 2018-11-09 299
953 주일설교 세례 요한의 탄생은(눅 1:5-25) 한태일 목사 2018-11-05 319
952 주일설교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도록(눅 1:1-4) 한태일 목사 2018-10-29 312
951 수요설교 사람을 살립시다! (요 10:7-10) 한태일 목사 2018-10-18 414
950 주일설교 성도의 의무 III (히 13:10-21) 한태일 목사 2018-10-15 466
12345678910,,,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