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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8-10-18 (목) 10:46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415    
사람을 살립시다! (요 10:7-10)
그냥 두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사람을 살리는 일만큼 감동을 주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사람을 구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나, 혹은 의사나, 911 구조대원 등이 너무 소중한 분들입니다. 그들의 도움을 받아 살아난 사람들은 얼마나 고맙게 생각하고 그 은혜를 갚으려고 하겠습니까?
   금번 부흥사경회 강사 목사님이 주제를 ‘사람을 살리는 교회’로 주셨습니다. 그런데 집회 시간들 말씀들을 살펴보니 주제 성경인 요한복음 10장 10절은 없어서 제가 대신 이 구절과 문맥으로 말씀을 전하기 원합니다. 사람을 살리는 성도가, 사람을 살리는 교회가 얼마나 귀합니까?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죽음에서 살아난 우리들이라면 과거의 우리처럼 주위에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야 하겠지요. 그리고 살아난 사람들을 도와서 풍성한 삶을 살도록 해야 하겠지요.

   우리 예수님께서는 단 하나 밖에 없는 우리의 생명을 살리시기 위하여, 그리고 생명을 얻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아름답고 풍성한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하여 2000여 년 전에 사람의 모양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를 이 세상에서 영원한 죽음에 이르게 하지 않고, 우리 인생을 마귀에게 사기 당하거나 도둑질 당하지 않는 비결, 아니 우리가 풍성한 은혜를 입고 사는 비결을 목자가 양을 치는 예를 가지고 오늘 본문에서 설명하십니다.
   오늘 이 비유의 말씀을 잘 이해하려면 당시의 목자들이 양을 이끌고 다니는 풍경을 상상해 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나라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족장 시대부터 유목민족으로서 얼마든지 목자가 양을 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많은 목자들이 자기 양을 이끌고 다니며 꼴을 먹게 하고 물을 먹이는 평화로운 모습을 어디서나 볼 수 있습니다.
   목자들은 하루 종일 양을 치다가 밤이 되면 자기 양들을 몰고 공동 우리로 옵니다. 웬만한 부자 목자가 아니면 자기 고유의 양 우리가 없습니다. 또 우기 때에는 집 가까운 곳에서 꼴을 구할 수 있지만, 건기 때에는 며칠씩 가야 꼴을 구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당일에 집에 돌아올 수 없으니 해가 져서 어두워지면 공동 우리에 자기 양들을 넣어 놓습니다. 이 양 우리는 보통 돌담을 사각형 모양이나 원형으로 만드는데, 거기에는 문이 하나 있습니다. 목자들이 양 떼들을 문으로 다 들이고 나면 문을 닫고, 문 옆에 문지기가 있어 밤새도록 그 양들을 지킨다고 합니다. 문지기는 목자들이 고용한 사람이거나 목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문지기 역할을 하였다고 합니다. 도둑들이나 맹수들로부터 지키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양의 우리의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요 강도라고 한 것입니다(요 10:1).
   그러다가 아침이 되면 목자들이 하나 둘 나와서 문지기의 확인을 받고 문을 통하여 우리 안으로 들어가 자기 양을 부릅니다. 양의 특징 중 하나는 눈이 너무 나빠서 그 시력이 -10 정도라고 합니다. 즉 약 1m 거리 이상 되는 것은 전혀 보지 못합니다. 대신 청력이 뛰어나서 자기 목자의 음성은 알아듣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목자들이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면 양들이 목자 앞으로 나온다고 합니다(요 10:3).
   우리 인간들은 양처럼 단점이 아주 많은 불안정한 존재입니다. 목자가 없으면 맹수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눈이 나빠 어떤 길이 안전한 길인지, 참된 행복의 길인지도 볼 수도, 알 수도 없습니다.
   그런가 하면, 한편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은 무한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인간의 능력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때로는 천사보다 더 지혜롭고 존귀하지만, 어떤 때는 악마보다 더 지독하게 악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즉 인간의 마음이 어디로 쏠리느냐에 따라 무한히 아름다울 수도 있고 무한정 추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만약 인간이 바른 길로, 참된 길로 인도되기만 하면 인간은 지속적으로 아름답고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바로 목자이신 예수님의 부르시는 음성을 듣고 인도함을 받으면 단지 생명만 얻는 것이 아니라 아름답고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오늘 본문에서 우리 주님이 양의 문이라고 하십니다(7절). 1-6절까지 목자와 양과의 관계를 비유로 주님 자신을 설명한 것을 못 알아들은 제자들에게, 또 “진실로 진실로”라고 강조하시면서, 자신이 양 우리의 문이라고 하시고 자신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라서 자기 양들이 듣지 않았다고 합니다(8절). 물론 주님보다 먼저 왔던 선지자들을 다 통틀어 도둑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거짓 선지자들이나 사두개인, 바리새인들과 같은 유대종교지도자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주님도 이 세상에 양을 도둑질하는 강도들이 우글거린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입니다. 강도들뿐만 아니라 이리나 늑대 같은 맹수들이 양들을 삼키려고 동서남북에서 노리고 있음을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더욱 주님의 보호가 필요합니다.
    왜 예수님께서 자신을 양의 문이라고 비유하셨을까요? 이유는 자신을 통해 영생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메시아,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9절)고 하셨습니다. 양이 문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당연히 도둑이나 무서운 짐승에게 잡혀 먹힐 것입니다. 그러나 문으로 들어가면, 예수님을 통하면 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어서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10절)고 설명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믿고 따르면 죄 사함을 얻어 생명이 주어지고, 들어가며 나가며 꼴을 먹고 풍성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다 죄인이기에 구원 받지 못하면 반드시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영원한 멸망에 이르게 됩니다. 사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 죽음을 향해 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해도, 고상한 사람이라는 명예로운 소리를 들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아도 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입니다. 죄를 숨길 수 없습니다. 죄의 결과인 사망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아직도 목자이신 예수님 앞에 나오지 못한 영혼들을 살려야 합니다.
   그런데 죽음을 이기고 살 수 있는 길이 있는데 오직 한 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요 14:6). 마치 양의 우리에 문이 하나 밖에 없듯이 말입니다.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담을 넘어가는 자는 도둑놈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구원 받는 길이 여러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모든 종교가 다 똑같다고 하면서 어디에나 다 구원 받는 길은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오직 한 길, 우리 주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안된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진리를 믿고 따르는 것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욕합니다. 배타적이다, 혹은 독선적이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흔들리면 안 됩니다.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 진리를 주장하는 것은 분명히 다릅니다. 혼동하면 안됩니다. 사랑이란 명분으로 비진리와 타협하고 관용을 베푸는 것은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목숨을 걸고 진리를 지켜야 합니다. 비록 욕을 먹어도 진리를 지키고 주장하는 것이 복입니다. 주님께서 기뻐하십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이 복음의 진리는 우리의 영혼이 구원 받는 것, 단지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보다 훨씬 더 풍성합니다. 더 풍성한 생명을 얻게 해 주신다는 뜻은 주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주셔서, 영원히 살게 하신 다음에는 나 몰라라 하는 분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생명을 주시고는 더 풍성히 생명을 누리도록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자녀 삼으시는 것이라고 했으니, 어느 부모가 자식을 낳아 놓고 ‘그래 너 혼자 잘 살아봐’ 하면서 나 몰라라 합니까? 사생아나 가짜 자식이 아닌 다음에야 그럴 수가 없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천국으로 부르시는 그 날까지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필요를 채우시는 분입니다. 풍성한 은혜를 주시는 분입니다.
   물론 오해하시면 안됩니다. 이 풍성한 생명이 만사형통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 믿고 만사형통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 인간은 간사하기 때문에 만사형통하게 되면 교만하여져서 망가질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믿는 우리를 만사형통하게 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무슨 일을 당해도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입니다(롬 8:28).
   다만 생명이라고 다 같은 생명은 아니지 않습니까? 숨만 겨우 쉬는 생명도 있습니다. 병원에 가보십시오. Nursing Home 가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렇게 살아갑니까? 사실 죽는 것보다는 낫기에 감사하고 사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받은 생명은 겨우 살아가는 그런 빈약한 생명이 아니라, 젊은 청년이 지칠 줄 모르고 뛰듯이 역동적인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심령에 기쁨이 넘쳐 흐르며, 감사생활로 말미암아 즐겁게 일하는 활기찬 생명입니다. 비록 원하고 바라는 것이 다 안 이루어져도, 어떤 경우에는 고통이 떠나지 않아도 그런 것이 우리의 역동적인 생명력을 빼앗아 가지 못합니다. 그럴수록 오히려 더 찬송하며 삽니다. 목자 되시는 주님께서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실 줄 분명히 믿기 때문에 심령에 평안이 있습니다. 좀 부족한 것이 있어도 감사하며 삽니다. 주님 안에서 자족합니다. 주님 주시는 풍성한 생명 때문에 말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라고 고백하였습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입니까? 양이신 여러분의 인생의 목자입니까? 영생으로 인도하는 하나 밖에 없는 문이 되십니까? 여러분들을 잘 인도하여 쉴만한 물가로, 푸른 초장으로 데리고 가서 꼴을 먹이시는 분으로 믿으십니까? 도둑으로부터, 무서운 맹수로부터 지켜주시는 분으로 믿습니까? 그렇다면 주님의 음성을 듣고, 온전히 신뢰하며 따라가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안전하게 살 수 있습니다. 아무리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모든 것을 주님의 음성, 하나님 말씀 안에서 해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우리를 지켜주시고, 어떤 위기에서도 우리를 건져주실 것입니다. 이 믿음으로 금번 집회를 사모하셔야 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여러분에게 복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삶의 모든 영역에 막혀 있는 것을 풀어주시기 원하십니다. 영적인 것, 육체적인 것, 정신적인 것, 관계적인 것, 경제적인 것 등 할 것 없이 회복시켜 주시기 원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여러분을 겨우 생명만 유지하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풍성한 은혜를 주시기 원하십니다. 참 평강과 기쁨을 주시는 분입니다. 이런 하나님 아버지를 온전히 신뢰하셔야 합니다. 풍성한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온전히 신뢰하시면 넘치는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그래서 오늘날도 세상의 눈으로 보면 망할 것 같은데 망하지 않고 오히려 기쁨으로 행복하게 사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풍성한 은혜와 복을 받아 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사람들로서 축복의 통로가 되어 복음의 능력으로 사람을 살려야 합니다. 깜깜한 바닷가에 빛을 비추는 등대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냥 겨우 생명만 부지하고 사는 자들에게 풍성한 삶을 살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치유와 회복이 되고, 풍성한 삶을 살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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