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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8-11-26 (월) 07:13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050    
믿은 자에게 복이 있도다(눅 1:39-56)


믿음에는 지(知)정(情)의(意) 세 요소가 있습니다. 지적으로(intellectually) 복음의 내용을 알고 이해하여, 감정적으로(emotionally) 반응이 따라오되, 의지적으로(willingly) 마음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물론 이 셋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의지적으로 결단하여 예수님을 구세주(Savior)로, 주(Lord)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행 2:36)고 베드로가 설교하자, 이 말을 들은 사람들 중 마음에 찔려서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물었을 때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 2:38)하자 3000여명이 회개하여 세례를 받고 초대 예루살렘교회가 세워진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듣고 알아서 마음에 찔림이 있다 하더라도 의지적으로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믿음이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즉 믿음이란 지식적으로 아는 것으로 그치는 것도 아니고, 감정적으로 찔림을 받는 것으로 그치는 것도 아닙니다. 반드시 의지적 결단이 뒤따라야 합니다. 물론 결단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지지난 주일에 살펴본 대로 동정녀 마리아에게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 그녀의 몸에서 메시아, 곧 그리스도가 성령으로 잉태될 것을 계시하자,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 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38절)라고 고백한 것처럼 말입니다. 처녀가 임신하여 애를 낳게 되니 앞으로 사람들의 오해나 핍박이 있다 할지라도 그녀는 믿음으로 반응하였습니다. 결단하고 믿음으로 사실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사실 약혼자 요셉도 임신 사실을 알고 나서 가만히 끊으려고 했으니까요(마 1:18-19).

오늘 본문은 마리아의 믿음에 대하여 친족 엘리사벳이 성령충만하여 확즣하여 주고 있고, 심지어 그녀의 뱃속에 있는 아기 세례 요한의 확증과 그녀의 찬양이 나타나 있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의 계시를 받고 나서 마리아는 속히 엘리사벳에게 가서 그녀가 이미 6개월 전에 기적적으로 임신이 되었다는 말씀을 들었으니(36절) 문안인사를 하기 원했습니다(39-40절).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때 엘리사벳의 뱃속에서 아기 세례 요한이 기쁨으로 뛰놀았다는 것입니다(41절, 44절). 이미 모태에 있을 때부터 성령충만함을 입은 아기 세례 요한은(15절) 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엘리사벳도 성령충만을 입어 문안 인사하는 마리아에게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내 주의 모친이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고”(42-43절)고 하였습니다. 그녀에게도 성령님께서 깨우치게 해 주신 것입니다. 바로 마리아가 메시아, 그리스도를 임신한 사실을 말입니다. 그래서 큰 소리로 마리아와 마리아 뱃속의 아기 예수님을 축복하는 것입니다. 엘리사벳이 마리아를 “내 주의 모친”으로 부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주(Lord)로, 그리스도로 인정이 됩니다. 유대 산중의 제사장의 부인 엘리사벳에게로부터 말입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마리아에게 “믿은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주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리라”(45절)고 확증시켜 줍니다. 성령의 권위로 마리아의 믿음을 높이 평가하며 축복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질 줄 그대로 믿고, 순종하는 자는 이미 복을 받은 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 23:19)고 한 것처럼, 바울이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행 27:25)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아직 약속의 말씀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앞으로 말씀대로 될 것을 믿는 것입니다. 믿기 때문에 또한 순종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엘리사벳을 통하여 성령께서 확증해 주심을 경험한 마리아는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니다(46-55절).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의 기도처럼 말입니다(삼상 2:1-10). 그녀는 감사와 기쁨으로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찬양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과 행하신 일을 기뻐합니다. 그래서 마리아의 이 찬가를 라틴어로 Magnificat 라고 부르는데 그 뜻은 ‘my soul exalts/magnifies’로 ‘내 영혼이 (주를) 높인다’ 입니다. 이 찬가을 살펴보면 마리아는 시편의 말씀을 많이 인용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우선 마리아는 자신이 처한 비천한 상황을 보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는데 자신에게 놀라운 복을 허락하시는 하나님께 개인적인 감사와 찬양으로 시작합니다. “내 영혼이”(46절), “내 마음이”(47절), “그 계집 종의 비천함을 돌아보셨음이라 …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48절),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49절) 라고 고백함으로, 하나님과 자신의 개인적인 관계 속에 허락하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향하여 “주를”(46절), “내 구주를”(47절), “능하신 이 …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49절)라고 고백하면서, 이런 놀라운 분이 자신을 돌아보아 큰 일을 행하심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즉 마리아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분명히 알고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위대하신 하나님 앞에 겸손히 자신에게 하신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 진다고 하는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에게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긍휼을 베푸시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을 찾으신다고 합니다.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 도다”(50절)! 그러나 교만한 자들은 치셔서 그 권력을 빼앗으시고, 오히려 비천한 자들을 돌아보셔서 높이십니다(51-52절). 굶주린 자들에게 먹을 주시지만 부자들은 빈손으로 가게 하십니다. “주리는 자는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를 공수로 보내셨도다”(53절)라고 찬양합니다. 이 세상의 두 부류의 대조적인 사람들을 말하며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반전시키심을 고백합니다. 굶주리며 가난하게 살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과 부자로 살지만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가난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이나 부자이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 해당하는 말씀은 아닙니다. 주후 1세기 당시에야 대체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가난했고, 권세자들이나 부자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기에 당시 누가복음을 읽는 사람들은 무슨 뜻인지 잘 알았습니다. 오늘날도 대체적으로 가난한 자들이 부자들이나 권세자들보다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더 의지하는 것을 봅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부자들은 심령이 부하여서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 5:3)라고 하셨고, 낙타가 바늘 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만큼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하셨듯이(마 19:24; 막 10:23) 말입니다.
이제 마리아는 찬양 마지막 단락에서 하나님께서 그의 조상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창 12:1-3; 15:1-10)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분이심을 찬양합니다.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및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54-55절)라고 합니다. 이 세상 모든 나라와 백성들 가운데 이스라엘을 택하셔서 자기 소유로 삼으시고, 자신의 종 이스라엘을 도우셔서 긍휼히 여기시고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고 지키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사실 구약을 살펴보면 전혀 축복을,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택함을 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 우리들을 택하시고 긍휼을 베푸시며 사랑하셔서 구원하시며 시마다 때마다 도우시는 하나님을 어찌 찬양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마리아의 찬양은 하나님을 향한 그녀의 믿음과 사랑과 하나님 말씀에 대한 깊은 이해를 나타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찬양을 드릴 때의 태도는 우리의 영혼이 주님을 기뻐하며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찬양을 받으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입니다. 주님께 드리는 찬양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크게 찬양을 올려 드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들 때문입니다. 구원하셨을 뿐 아니라, 허락하신 모든 복을 인하여 찬양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 같이 비천하고 연약한, 추하고 못난 자들을 위하여, 전혀 받을 자격이 없는 우리에게 베푸신 많은 은혜를 생각하면 찬양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마리아는 석 달쯤 엘리사벳과 함께 있다가 집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56절). 처녀가 임신 3개월이 되어 유대 산중에서 나사렛으로 돌아왔을 때 사람들이 얼마나 놀랐을까요? 그러나 마리아에게는 그런 사람들의 반응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주신 말씀을 확증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아기 세례 요한도 뱃속에서 기뻐하며 뛰놀았습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엘리사벳이 확증하며 축복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찬미의 노래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하나님 은혜의 도구가 되기 위하여 어떤 모욕과 수치도 당할 각오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약속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마지막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사복음서를 살펴보면 마리아가 한 말들은 별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하인들에게 예수님이 시키는 대로 하라고 하였고(요 2:5),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그 아래서 슬피 울며 있었을 뿐입니다(요 19:26). 하지만 “믿은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주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리라”(45절)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하나님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자는 복 있는 자입니다. 이미 신령한 복을 받은 자요, 앞으로도 복을 받을 자입니다. 그 안에 주님이, 성령님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평범하고 비천했던 마리아는 믿음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이루는 도구가 되었던 것이며, 믿음의 눈으로 영원의 시간을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도저히 풀 수 없는 우리 앞에 놓여진 어떤 어려운 문제도 영원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합니다. 좋던 싫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겠다는 믿음의 결단이 있다면 지금 우리 주위에 펼쳐진 상황을 하나님의 성품을 묵상하며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선하신 분입니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분입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렇습니다. 그저 감사하십시오. 찬양하십시오. 기도하십시오. 하신 말씀대로 될 줄로 믿습니다. 마리아처럼 하나님의 일에 쓰임을 받는 도구가 될 줄로 믿습니다.

내 마음에 근심있느냐 어둔 길로 행하느냐
우리 주 예수 바라봄으로 밝은 빛 찾아오리
눈을 주님께 돌려 그 놀라운 얼굴 보라
주님 은혜 영광의 광채에 세상 근심은 사라지네

저 죽음을 이기신 예수
우리들도 따릅니다
죄의 권세를 물리치려고 주님을 따릅니다
눈을 주님께 돌려 그 놀라운 얼굴 보라
주님 은혜 영광의 광채의 세상 근심은 사라지네

주 말씀은 변치 않도다 그 언약을 의심하랴
세상 끝날이 올지라도 그 구원은 성취되리
눈을 주님께 돌려 그 놀라운 얼굴 보라
주님 은혜 영광의 광채에 세상 근심은 사라져 없어지네
세상 근심은 사라지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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