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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9-01-07 (월) 10:06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202    
여호와 하나님을 힘써 알자(호 6:1-6)


누구를 안다고 하는 것은 실제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떻게 얼만큼이나 아느냐는 것이 쉽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이름만 알 수도 있고, 얼굴만 알 수도 있고,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 피상적으로(superficially) 알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사실 우리는 어떤 사람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 사람에 대해 조금 알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일단 관계를 맺고 나서 자주 만나 삶을 나누다 보면 조금 더 알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 가지고 그 사람을 많이 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함께 살아보아야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하긴 결혼을 하여 부부로 산 지 10년이 지나도 서로 잘 모르겠다는 분도 있습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요. 많은 책을 읽은 분이나 많은 사람을 대해본 분은 이해의 폭이 넓어서 더 잘 알 수가 있는가 하면, 책도 별로 읽지 않고 늘 홀로인 분은 이해의 폭이 작아서 더 잘 모를 수 있습니다.
헌데 우리가 가장 행복할 때는 누군가가 나를 잘 알고 이해해줄 때가 아닙니까?  어떤 사람과 대화가 통할 때 가장 기쁘고 정말 친구로 여기지 않습니까? 반대로 우리를 너무 모르기 때문에 전혀 대화가 안되는 경우 실망하고 그 사람과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때에는 먼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까운 관계를 맺고 사는 사람들이라면 그들을 알려고 해야 사랑할 수 있습니다. 모르면 사랑은커녕 오해를 하게 되고, 관계가 소원해집니다. 교제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우리 믿는 사람들이 꼭 잘 알아야 할 분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믿는 신구약 성경의 하나님입니다. 대충 알아서는 곤란합니다. 수박 겉핥기 식으로 피상적으로 알아서는 곤란합니다. 정말 잘 알아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세상의 어떤 신과 달리 인격적인 하나님이시기에 우리가 어떤 분인지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얼만큼 아느냐가 신앙생활을 좌우합니다. 너무 중요합니다. 많이 알면 알수록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깊어져서 큰 복을 누리면서 신앙생활 할 수 있습니다.
솔로몬 왕 이후로 이스라엘 자손들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하여 잘 배우지 못하여, 알지 못하는 바람에 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는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라고 외쳤습니다(3절). 여기 ‘알자’라는 히브리어는 단순히 지식적으로 안다는 뜻이 아니라, 아주 가까운 가족관계 혹은 부부관계를 가지면서 알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헬라어의 ‘안다(ginw,skw)’는 그와 동일한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 10:14-15)고 말씀하실 때 사용한 단어입니다.

오늘 본문은 주전 8세기 여로보암 2세가 북왕국 이스라엘을 통치하던 때에 호세아 선지자가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고 그 백성들에게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을 당할 것을 예언을 하는 가운데, 계속 반복되는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심판을 받기 전에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아니 과거에도 하나님께 범죄하여 벌을 받지 않았느냐, 그러니까 회개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살자는 것입니다.
호세아는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1절)고 외치고 있습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심하게 징계하시지만 회개하고 돌아서기만 하면 자비와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치유하실 능력이 있으신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그것도 속히 말입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2절)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범죄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잘 몰라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3절)고 한 것입니다. 힘써 하나님을 올바로 알게 되면 다른 것을 의지하지 않게 되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게 되니까 앗수르에게 망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믿게 되면 하나님은 일정하게 우리에게 임하십니다. 마치 겨울에 밤이 길어 아침이 오지 않을 것 같아도 반드시, 정확하게 아침이 오듯이 말입니다. 혹은 마른 땅을 적셔주는 비 같이 말입니다. 이스라엘에는 1년에 두 번 비가 옵니다. 바로 10월-11월에 내리는 이른 비와 3월-4월에 내리는 늦은 비입니다. 보리농사를 시작할 때와 추수 바로 전에 내리는 비입니다. 긴 여름내내 비가 오지 않아서 밭이 거의 말라버리는 것 같을 때에 놀랍게도 비가 쏟아집니다. 풍성한 비가 내립니다. 축복의 단비입니다.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에 부어주시는 은혜를 뜻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을 잘 모르면 너무 힘든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무지가 곧 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너무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자꾸 죄를 짓고 살아서 그 대가를 치르게 되는 것을 마음 아파하십니다. 하나님의 안타까운 심정을 호소하는 것을 보십시오.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내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4절)라고 하십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대표가 되는 지파 에브라임과, 아니 남왕국 대표가 되는 유다지파, 즉 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이 도대체 어떻게 해 주어야 하겠느냐는 말씀입니다.
그들에게 인애가 금방 사라진다고 합니다. 여기 ‘인애’는 언약적 사랑을 말합니다. 즉 약속을 했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약속을 지키는, 책임지는 사랑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약속을 해놓고 잘 지키지를 않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은혜를 받으면 지키는 것 같다가 잠시 후에는 지키지를 않습니다. 처음에 사랑하는 것 같은데 그 사랑이 금방 식어집니다. 그래서 아침 구름, 쉬 없어지는 이슬 같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저희를 치고 내 입의 말로 저희를 죽였노니 내 심판은 발하는 빛과 같으니라”(5절)고, 아주 강하게 선지자들을 보내서 심판을 말씀했다는 것입니다. 그 정도가 되면 ‘우리가 어찌 할꼬’하면서 회개하고 돌아서야 하는데 그들이 안 듣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6절)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 모르기 때문에 인애가 사라져도, 약속을 저버려도 그저 형식적인 제사만 드리면 다 되는 줄 알고 있었습니다. 마치 오늘날 주중에 아무렇게나 살아도 주일에 예배만 드리면 된다는 식의 신앙생활이었습니다.
도대체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몰라서 죄를 짓는 것이었습니다. 늘 죄를 짓고 사니 어떻게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겠습니까? 2000여년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게 고대하던 메시아가 오셨음에도 몰라보고 오히려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얼마나 핍박하였습니까? 아니, 아직도 메시아를 기다리는 유대인들이 있지 않습니까?
아삽이라는 시인은 “내가 이같이 우매무지하니 주의 앞에 짐승이오니”(시 73:22) 라고 하였습니다.  짐승과 달리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인간이 하나님에 대하여 우매무지하면 짐승과 다를 바가 없다는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창조하실 때 짐승과 달리 지정의를 탁월하게 하시고, 양심(conscience)을, 도덕성(morale)을 허락하셔서 하나님을 알 수 있게 하셨고(롬 1:19-20), 더군다나 성경 말씀을 주셔서 우리가 얼마든지 하나님을 알 수 있게 되었는데 어떤 핑계나 이유를 대면서 하나님을 모르겠다고 한다면 그에 대한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부모의 마음을 알아주는 자녀를 부모가 엄청 좋아하듯이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알아주는 자녀들을 정말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비록 다윗이 큰 실수를 할 것을 아셨어도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행 13:22절하)고 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왕으로 삼으셨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아는 다윗을 기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몰라주면 하나님은 서운하신 것입니다. 계속 몰라주면 진노하십니다.
2019년 새해를 맞으면서 우리는 이전보다 더 많이 하나님을 알기 원합니다.  정말 힘써서 알기 원합니다. 하나님에 대하여(Knowing about God) 간접적으로 조금 아는 것에서, 이제는 우리의 삶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직접 경험함으로 하나님을 아는(Knowing God), 작년보다 더 잘 아는 새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전보다 더욱 하나님을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더 큰 은혜를 경험하게 되고,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조금 알기 때문에 믿음이 없거나 믿음이 아주 작은 것입니다. 그래서 더 큰 은혜도 받지 못하고, 더 많은 복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 모르기 때문에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입니다. 의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작은 일에도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는 것입니다. 또 주위 사람들과 자꾸 갈등을 겪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도 짜증이 나고 힘들어하는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고 하셨는데도, 주님 안에 쉬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어서 예수님께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 11:29-30)고 하신 것입니다. 배우라는 것입니다. 너무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괴롭기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올바로 알게 되면 우리 삶에 참된 평안을 누리며, 참된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로서, 우리의 주권자로서 오늘도 함께 하시며 역사하시고 인도하심을 알게 될 때 모든 것 다 내어 맡겨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또는 잘못 알고 있어서 오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께 무작정 달라고 부르짖으면 원하는 대로 다 주시는 분을 알고 있는 분도 있습니다. 그랬다가 내 소원대로 안 이루어지면 하나님을 떠납니다. 혹은 내 생각으로 ‘최선을 다하여,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 동원하여 경배하고 찬양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지’ 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열심히 율법만 지키면 구원도 받고 하나님께서 좋아하실 것으로 알았던 유대인들처럼 말입니다. 그들 나름대로 얼마나 열심을 내었습니까? 그런데 주님께서 그들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마 7:23).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은 성경 말씀을 배울 때 소유할 수 있습니다. 신구약 성경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계시된 삼위의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 분의 성품과 마음을 알아가야 합니다. 그 분이 하시는 일에 대하여도 알아야 합니다.
잘 아려면 우선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오직 나를 듣는 자는 안연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평안하리라”(잠 1:33)고 하였습니다. 또 종종 소리 내어 읽어야 합니다. 정독해야 합니다. 시간 내서 공부해야 합니다. 그리고 배운 대로 살아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 1:3)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머리로만 아는 지식만 늘어가면 머리만 커지는 비정상적인 사람이 됩니다.  교만해집니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올바로 아는 사람은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게 됩니다. 겸손해집니다. 성령의 열매를 많이 맺게 됩니다.  입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손과 발로 섬기게 됩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빛이 됩니다. 덕이 됩니다.
여러분! 새해에 우리 모두가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복을 받는 비결을 말씀드렸습니다.  올해 우리 교회 표어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힘써 알자!’ 정말 우리 가든교회 성도들이 올 한해 하나님을 더욱 알게 됨으로 선하신 하나님으로부터 놀라운 복을 받는 한 해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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