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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2-01-30 (일) 01:39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616    
조심하고,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리 (눅 21:29-36)



어리석은 바보가 아니라면 어떤 일에 노란 경고등 사인이 들어오면 대처하게 되어 있습니다. 경고등에 불이 들어왔는데 가만히 두면 큰 일 납니다. 나중에 뒷감당하려면 몇 배의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분야에서 마찬가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예수님은 이제 며칠 안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텐데, 그 전에 제자들에게 재림의 여러 가지 징조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세상 끝날에 자신이 다시 올 것이라는 것을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27절)고 확실하게 말씀해 주셨을 때에는 제자들이 그에 대한 준비를, 대처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하늘과 땅에 재림의 징조들이 있을 때에 우리가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 예수님께서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니다. 우선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다시금 사인을, 징조를 보면 아 이제 때가 되었음을 깨달으라고 합니다.
“이에 비유로 이르시되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 싹이 나면 너희가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운 줄을 알라”(29-30절)고 하였습니다. 어떤 나무도 마찬가지이겠지만, 팔레스틴 땅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무화과 나무의 가지에 싹이 나면 어린아이도 봄이 온 줄을 압니다. 사실 늦은 봄이라고 합니다. 또한 싹이 난 가지가 연하여 져서 잎사귀를 내면 이제 곧 여름이 오겠구나, 그러면 열매도 맺히게 될 것을 알게 되듯이, 재림의 징조를 보면 곧 오심을 깨닫고 준비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리라”(31절)고 하셨습니다. 여기 이 세대는 문맥상 예수님 당시 세대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한 세대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 때에 큰 환란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란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마 24:21절)고 하셨고,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35절)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만약, 예수님 당시 세대라고 한다면 주후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는 심판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 이후에도 더 심한 환란은 많았습니다. 예수님 재림 직전에 다가올 환란과는 비교가 안 되는 것입니다. 전무후무한 대 환란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심판이 다 이루어질 것이라고 확실히 선포하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천지가 다 없어진다고 합니다(33절상). 새 하늘과 새 땅이 펼쳐질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도 살펴 보았듯이 사도 베드로는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 3:12-13) 하였고, 사도 요한도 마지막 때의 계시를 받아 말씀하시기를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계 21:1)고 하였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고 영원할 것이라고 하십니다(35절하). 한번은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그러나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의 없어짐이 쉬우리라”(눅 16:17)고도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0장 35절에도 성경은 폐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구약의 이사야 선지자도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사 40:8)고 하였습니다. 정말 성경 말씀은 그대로 다 이루어지며, 나중에 천국에서도 이 말씀으로 주님께 은혜를 받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의 그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의 권위 아래 복종해야 합니다.
즉 누가는 재림의 징조들은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미 징조들은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시간에 계속 일어날 것입니다. 경고대로 초대교회 성도들은 주후 70년에 말씀대로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박해받는 동안에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을 증거할 수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멸망은 이제 온 세상을 심판하기 위하여 영광 가운데 오실 마지막 때의 전조(preview)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달라스신학대학원의 유명한 신약 성경학자인 Darrell Bock 은 본문 주석에서 누가가 강조하는 것은, “예루살렘의 멸망에서 종말이 어떨지의 대한 예고편을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종말에서는 그 멸망의 강도가 훨씬 더 강렬할 것이다. 예루살렘의 멸망이 아직 끝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기 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멸망은 서로 연관되며, 앞의 것은 궁극적인 멸망이 어떨지를 묘사한다. 둘 다 하나님의 계획에서 종말론적 사건이며, 예루살렘 멸망은 종말을 계약하고 보증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재림을 확실히 준비하라고 합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34절)!
무엇보다 먼저 스스로 조심하라고 합니다. 조심하지 않고 방탕하게 살거나, 술 취하거나, 어떻게 살까 하는 염려로 인하여 마음이 둔하여 져서 준비가 되지 않으면 큰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안이하게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단들이 그렇듯이 재림을 준비하는 두 가지 극단적인 모습들이 있습니다. 1) 곧 재림하실 것이니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 직장도, 사업도, 가정도 다 그만두고 기도원에서 말씀만 읽고 기도하고 찬송만 부르자는 주장입니다. 그런가 하면 2) 불신자들처럼 아무렇게나 살자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차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니 천국가는 것은 확실하니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분들 말입니다. 마음이 둔해진 것입니다. 그러다가 재림의 날이 덫과 같이 임하여 꼼짝 못하고 당하여, 슬퍼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스스로 조심하라고 하신 것은, 지난 주일에도 말씀드렸듯이 더욱 거룩하고 경건한 삶으로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재 주어진 일에 열심히 충성하는 것입니다. 교회 일이든, 세상에서 주어진 일이든 무론하고 주께 하듯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다만 시험에 빠지지 않게 조심하는 것입니다. 시험에 빠져 있을 때 예수님이 오시면 어떻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35-36절)고 하십니다. 아무도 예수님의 재림을,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온 세계 모든 사람에게 임합니다.
그러니까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고 합니다. 마태는 두 비유로 이 진리를 교훈하였습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그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마 24:37-43)고 하였습니다. 즉, 노아 때의 어리석은 사람들이 홍수의 심판을 준비하지 않고 있다가 갑자기 멸망케 되었던 일을 상기시키며, 예수님의 재림은 급작스러운 사건이 될 것이니 깨어 준비하고 있어야 할 것을 말씀하였습니다. 노아 자신도 정확히 언제 홍수가 쏟아져 그 땅을 심판할 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신실하게 방주를 준비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노아의 예언을 믿지 못했던 사람들은 전혀 준비하지 않고 있다가 전부 물에 잠겨 죽고 말았습니다. 두번째 비유는 두 여자가 밭에서 같이 매를 갈다 가도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라고 하시면서 깨어 있으라고 하십니다. 아무리 가까이 지내던 사람이라도 깨어 준비하지 않던 사람은 버림을 받을 것이라고, 심판 받을 것을 경고합니다. 남편이던 아내이던, 자식이던 부모이던, 친 형제이던 간에 믿지 않고 준비하지 않던 사람은 버림을 받게 됩니다.
지금 예수님은 재림의 교훈을 머리로 아는 지식이 아니라, 실제로 안다면 행동으로 옮길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항상 기도하면서 실제로 깨어 준비를 하고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핍박과 대 환란을 피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간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예수님 재림하실 때 믿음을 지키며 복음의 증인으로 살았던 신실한 자들처럼 반갑게 맞이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도 십자가의 죽음 앞에서 감당할 힘을 얻기 위하여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기까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그 때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서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마 26:38)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기도하고 제자들에게 가보니 쿨쿨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하신 유명한 말씀이,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 26:41)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주님이 죽음을 앞두고 특별히 사랑했던 세 제자에게 깨어 기도하고 있으라고 하셨건만, 그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몰랐던지 잠을 잤던 것입니다. 깨어 기도를 했어야 시험에 들지 않고, 예수님을 배신하지 않았을 텐데 깨어 기도하지 못했기 때문에 시험에 빠졌습니다. 예수님은 기도하셨기에 시험을 이기시고 끝까지 십자가를 지시고 죽음을 맞이하신 것입니다.
더군다나 재림의 징조들을 보고 있는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다면, 깨어 있지 않다면 시험에 드는 것입니다. 항상 기도하는 이유가 깨어 있기 위해서 입니다.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정한 시간에 기도할 뿐만 아니라, 하루 종일 기도하는 자세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 마귀가 우리를 이기지 못합니다.
아마도 여러분이 기도하지 않는 이유는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심각한 줄 알면 대처하는 것이 보통 사람입니다. 더군다나 오늘도 마라나타, ‘주님 어서 오시옵소서’ 라는 믿음이 있다면, 재림의 소망이 있다면 더욱 기도로 깨어 있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사도 바울은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엡 6:18) 라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사탄 마귀는 우리로 하여금 깨어 기도하지 못하게 자꾸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세상에 빠져 있어서 세상이 너무 좋다면 재림의 징조를 보아도 조심하지 않습니다.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노란 경고등 사인이 보이지 않습니까? 징조가 보이지 않습니까? 재림이 가까이 온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지난 주일에 말씀드렸듯이 개인의 종말도 언제 올지 모릅니다. 안심하지 마십시오. 깨어 있어야 합니다. 깨어 있는 사람만이 하나님 나라를 경험합니다.
기독교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면, 즉 세상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볼 수 있다면 성령님에게 민감하기에 조심하며 삽니다. 방탕하지 않습니다. 술 취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어떻게 살까 염려하지 않습니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기에 재림을 준비합니다. 그 영광의 시간을 사모하며 삽니다.
혹시 영적으로 각성이 필요한 분은 없습니까? 긴장이 풀어진 채 그냥 하루 하루 살아가는 분은 없습니까?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십시오. 그냥 그렇게 사시면 큰 일 납니다. 영적으로 잠을 자다가 예수님 재림하시면 어떻게 하시려고 합니까? 육신적으로 자다가 이 세상을 떠나면 참 큰 복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영적으로 잠을 자다가 이 세상을 떠나면 예수님의 얼굴을 어떻게 보시려고 합니까?
우리 모두는 생각지도 않은 때에 홀현히 임할 주님을 반갑게 맞이하는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마 24:45).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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