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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7-05-26 (금) 00:17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1493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엡 5:1-7)
전도가 제일 힘든 경우가 믿는다는 사람들, 특별히 교회에서 직분을 가졌다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닮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오히려 믿는 사람들이 해서는 안되는 말을 듣거나 행동을 본 사람들입니다. 또 전도를 받아 믿어보려고 교회에 나왔다가 시험을 받아 교회를 떠나는 분들 가운데 믿는 사람들의 그런 모습에 실망을 당한 분들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으로서 구원을 받았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과거에 은혜를 받았다는 것이 아니라, 현재 그 부르심에 합당한 거룩한 삶, 구별된 삶을 살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4장의 결론으로 바울은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은 성도는 내주하시는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시키는 일을 하지 말고,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 4:32)고 하였습니다.
   5장에 들어와서 바울은 더욱 적극적인 성도의 삶을 말하고 있는데, 한마디로 앞서 4장 32절에 나타난 하나님의 성품을 본받아 사랑으로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1절에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하셨는데, 여기 '본받는 자(imitator)'의 뜻은 그 고유한 성품을 닮는 것을 말합니다. 즉 사랑이신 하나님의 성품을 본받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성도들이 그 사랑을 본받을 수 있는 이유는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롬 5:5 하) 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그 부모를 닮는 것은 당연하지요. 이유는 부모의 DNA, 유전인자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라가면서 그 행동이나 말을 부모처럼 하지요. 우리 성도들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요 1:12). 양자의 영을, 그 DNA를 우리가 받았다고 하였습니다(롬 8:15). 그 결과 하나님 아버지께서 거룩하시니 우리도 거룩하게 되고, 그가 인자하시니 우리도 인자하게 되고, 그가 그리스도 안에서 겸손히 낮아졌기에 우리도 우리 자신을 낮출 수 있고, 그가 용서하시니 우리도 용서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능력은 자연적인(natural) 것이 아니고 초자연적인(supernatural) 것입니다. 성령의 초자연적인 역사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 나타나는 성품입니다.
   이 사랑을 실천하는 가장 크고도 분명한 증거는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다 용서할 수 있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누구를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아직 내 자신의 의가 나타나는 것이며,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히 역사를 못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죄가 철저하게 용서함을 받은 속죄의 은혜를 입은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 아버지를 닮고자 하는 갈망으로 인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으로 용서합니다. 모든 사람을 품는, 어느 누구나 품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일 먼저 그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2절에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자녀들은 자라가면서 부모들의 말이나 행동을 배우게 됩니다. 따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이 보기에 닮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들의 삶은 그리스도를 배우며, 그를 따라 행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사랑하라고, 그 사랑 가운데 행하라고 하십니다. 물론 까리따스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마음에 드는 누구에 대하여 좋은 감정이나 느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을 보기 위하여 희생하는 사랑입니다.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입니다. 2절에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렸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향기로운 제물(offering)과 생축(sacrifice)이 되어 하나님께 드려졌다고 하였습니다. 레위기서 1장부터 5장까지 보면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5가지 제물을 드릴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다 오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징하는 제물들입니다. 처음 세가지는 번제(burnt offering)와 소제(grain offering)와 화목제(peace offering)입니다. 번제(레 1:1-17)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를 온전히 순종하여 그의 생명을 기꺼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상징하며, 소제(레 2:1-16)는 완전하신 그리스도를, 화목제(레 3:1-17; 4:27-31)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평화를 가져오는 중보의 역할을 가리킵니다. 이 세가지는 모두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을 의미하기에 성경은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레 1:9, 13, 17; 2:2, 9, 12; 3:5, 16)의 제물들 이라고 합니다. 반면에 다른 두 제물, 속죄제(sin offering)와 속건제(tresspass offering)는 꼭 필요한 제물이지만 하나님께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 제물입니다. 비록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를 다 담당하심을 상징하고 있으나, 십자가 상에서의 주님의 고통스러운 부르짖음인,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를 생각나게 하는 제물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의 모습을 보기가 안타까웠을 뿐 아니라 즐거웠을 리가 있었겠습니까? 물론 부활로 말미암아 죄를 이기신 희생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죄인의 자리에 있을 때에 우리를 사랑하실 뿐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인의 자리로 옮겨졌을 때에도 계속하여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사랑받을만 하여서 사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죄를 짓고, 온전치 못해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잊고 있을 때에도, 불순종할 때에도, 그의 사랑에 보답하지 못할 때에도, 심지어 성령을 슬프게 할 때에도 사랑하십니다. 마치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듯이 말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의 자녀들에게도 임하게 되었는데, 그래서 우리도 그렇게 사랑하라고 명하시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돌아가시기 전날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요 13:34-35)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사랑을 잘못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죄 자체를 다 받아주는 사랑이 아닙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본문 3절에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고 하였습니다. 사탄은 거짓, 즉 가장하기를 좋아합니다. 하나님께서 참 사랑을 말하시면, 사탄은 참 사랑을 가장한 가짜 사랑을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우리의 귀를 유혹하여 어지럽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경건하고, 이타적이며, 용서하는 것이라면, 이 세상 사탄이 말하는 사랑은 정욕적이며 이기적인 것입니다. 내게 매력적이며, 내가 즐길 수 있는, 내게 만족을 주는, 반드시 무엇인가 돌아오는 것이 있어야 하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언제나 나의 필요와 기대를 충족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나의 육신이 원하는 것이라야 합니다. 그러므로 조건적이며, 자기중심적입니다. 그래서 음행(immorality)과 더러운 것(impurity)과 탐욕(greed)은 사탄이 주장하는 세상적 사랑과 분리될 수가 없습니다. '음행'(porneiva)은 모든 성적인 죄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의에 거슬린 성적인 욕구를 절제하지 못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더러운 것'은 음행보다는 더 일반적인 부도덕을 가리킵니다. 불결한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단어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마음이 회칠한 무덤같음을 비유하시면서 무덤에서 시신이 썩어져 가는 것을 묘사할 때 사용하셨습니다(마 23:27). 그리고 이미 "저희가 감각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4:19)하고 옛 사람, 이방인의 삶을 묘사했듯이, 탐욕과 더러운 것은 뗄 수가 없습니다. 어떤 모양이라도 더러운 죄와 부도덕은 자기 중심의,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한 탐욕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큰 대조를 이룹니다. 이렇게 '사랑'이라는 가면을 쓴 사탄의 놀음은 막대한 영향을 끼쳐 배우자를 학대하게 되고, 아이들이 무시되고 버려져서 가정이 파괴되는 경우를 종종 보지요. 그래서 성도들에게는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고 강하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죄는 합리화 될 수도 없고, 참아서도 안됩니다.

   바울은 그런 죄와는 조금도 상관치 말라는 말씀에 이어서 계속해서 말을 조심할 것을 권면합니다. 말로 죄를 짓지 말 것을 말하십니다. 4절에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누추함(obscenity, filthiness)이라 함은 성도들이 입에 담기에 힘든 더럽고 추한 욕을 말합니다. 5장 12절에 나오는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을 말합니다. 어리석은(foolish, stupid)말은 세상적인, 횡설수설하는 말을 가리킵니다. 희롱의 말(coarse joking)은 어리석은 말과는 달리 어떤 사람을 향한 비방, 조롱 따위를 가리킵니다. 성도는 이러한 더럽고 추한 말에 휩쓸리지 말고 감사하는 말에 참여하라는 것입니다. 감사한다는 것은 겸손과 이타적인(unselfish) 마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사람은 감사가 없지요. 왜냐하면 자신이 당연히 좋은 것들을 받기에 합당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남을 위하여 사랑하며 사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필요를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으로부터나 어떤 사람에게 받은 그 무엇은 전부가 자격이 없는 사람이 은혜로 받은 것으로 여기고 감사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기 보다는 섬기며 살지요.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통하여 사탄의 자녀로, 사탄의 영향을 받아 거짓 사랑과 계속하여 부도덕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말하고 있습니다. 5절에 "너희도 이것을 정녕히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고 하였습니다. 음행하는 자, 더러운 자, 탐하는 자를 우상숭배자라고 하였습니다(골 3:5). 습관적으로 음행하며, 더러운 것에 거하며, 탐욕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한 자녀가 아닙니다. 새로운 피조물에게 나타나는 품성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요일 3:9-10)고 하였고,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딛 2:11-12)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자가 확실한 하나님의 자녀라면 성령에 의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죄를 싫어하고 미워하며 하나님의 의를 추구하며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교회 안에 입으로는 구원받았다고 하면서 죄 가운데 거하는 자들을 향하여 너희는 구원받은 자들이 아니며, 하나님께 속한 자들도 아니라고 강하게 역설하셨던 것입니다(고전 6:9-11). 이러한 말씀을 듣지 않고 부인하려는 자들에게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를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에게 임하나니 그러므로 저희와 함께 참예하는 자가 되지 말라"(6-7절)고 하였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여러분의 말과 행동에는 사랑이 넘쳐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체험한 자들은 그 사랑을 배우며, 사랑하며 살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배웁니다. 그의 발자취를 따라 갑니다. 자신을 기꺼이 버린 희생제물의 삶을 배웁니다. 닮아 갑니다. 나도 남을 위하여 희생하며 살려고 합니다. 향기로운 제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셨던 주님처럼 나도 향기로운 제물이 되어 뭇 사람들에게 사랑의 향내을 피우며 살기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타락한 삶 속에 계속 거할 수가 없습니다. 그 더러운 이름조차 부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부도덕한 죄에 대하여 얼마나 진노하시는 지 성경은 종종 뚜렷이 가르쳐 줍니다(민 25:1-9). 또한 더러운 말을 입에 담을 수가 없습니다. 누구를 희롱하거나 어리석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의 말을 할 뿐입니다.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이 덧입혀졌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주장하는 세상이 말하는 사랑에 속지 마십시오. 그들의 결국은 하나님의 진노입니다. 그들과 동참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어떻게 행하며 사십니까? 믿는다고 하면서도 용서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내 개인적인 욕심을 위하여 사십니까? 탐심과 탐욕이 여러분의 말과 행동에 나타납니까? 쉽게 입에서 더러운 말이 나옵니까? 곤란합니다. 훈련이 필요합니다. 자신을 쳐서 죽이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눈이 주님께 고정되어 있어야 합니다. 늘 주님을 묵상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녀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그 사랑으로 행하십시오. 그 사랑에 헌신하십시오. 그래서 만약에 우리 주위의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당신 안에 있는 예수님이 보인다고 한다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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