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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7-07-06 (목) 10:58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1323    
두 종류의 추수(계 14:14-20)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의 관심은 ‘도대체 이 지구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이나 환경공학 전문가들은 환경친화적인 문명 혹은 기술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석탄과 석유의 사용을 가능하면 줄이려고 합니다. 지구온난화가 이것들을 소비하는 데서 기인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애쓴다고 해서 이 지구의 종말은 오지 않을까요? 성경은 반드시 종말이 있다고 합니다. 인간 개인의 종말이 있듯이 말입니다. 사도 바울이 주님의 재림이 임할 때 믿는 자들이 부활할 것을 설명한 후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고전 15:24)고 하였는데, 여기 ‘그 후에는 나중이니(Then the end will come)’라고 번역된 것이 바로 지구의 종말을 뜻하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의 끝이 온다는 것입니다. 언제 주님의 재림이 임할른지 모르지만 그 날은 반드시 옵니다. 그리고 그 날에 임할 심판에 대하여 두 종류의 추수로 비유하여 오늘 본문에서 요한을 통해 환상으로 보여주십니다.

   하나는 곡식추수이며 또 하나는 포도추수입니다. 먼저 곡식 추수는 알곡을 천국에 들이는 것입니다.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가 앉았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이한 낫을 가졌더라”(14절)고 하였습니다. 성경에서 구름은 자주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를 상징합니다(예- 시 104:3). 주님의 재림도 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하였습니다(막 13:26; 14:62; 계 1:7). 여기서도 구름 위에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가 앉았다고 합니다. 바로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자신을 칭하실 때 유일하게 ‘인자(Son of Man)’ 곧 사람의 아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에게 그리스도 곧 메시아라는 칭호를 사용하지 않은 것은 이 칭호가 지나치게 정치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유대인에게 그리스도라는 칭호는 왕적인 지도자의 직책을 의미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지도자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인자라고 하실 때에는 두 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 자신의 낮아지심, 고난을 의미했습니다.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인간들에게 배척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의미할 때 사용하셨습니다. 또 다른 의미는 부활 승천 후 높아지신 지위를 나타낼 때 인자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 이 세상을 심판하는 권세를 얻으신 것을 나타내는 의미로 사용하셨습니다(예- 마 16:27; 19:28; 24:27-37).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께서는 인자로서 고난을 받으시고 부활 승천하신 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다스리고 계십니다. 다니엘은 주님에 대하여 계시하기를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셨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않을 것이요 그 나라를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단 7:13-14)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이 세상의 모든 권세 영광 나라를 다 주셨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바로 그 주님에게 충성을 다하는, 만왕의 왕의 신하인 것입니다.
   이러한 주님께서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시고 손에 이한(sharp) 낫을 가지셨습니다. 금 면류관은 승리자가 쓰는 화환입니다. 왕의 면류관입니다(계 19:12). 이한 낫, 즉 날카로운 낫을 가지셨다는 것은 자기 백성들을 챙기는데 실수가 없으시다는 뜻입니다. 자기 백성을 정확히 구분해 내십니다. 가라지가 아닌 알곡, 참 믿음을 가진 자들의 이름을 부르실 것입니다.
   그런데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네 낫을 휘둘러 거두라 거둘 때가 이르러 땅에 곡식이 다 익었음으로라 하니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곡식이 거두어지니라”(15-16절)고 하였습니다. 많은 해석자들이 15절 때문에 당혹해 합니다. 주님이 천사의 말을 들어야 한다니 말입니다. 그래서 14절에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가 주님이 아니라고 해석하는 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천사는 단지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뿐입니다. 하늘의 성전으로부터 온 천사이기에 하나님 아버지에게 메시지를 받고 전할 뿐입니다. 추수의 시기는 오직 하나님 아버지만 아십니다. 예수님께서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막 13:32)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자기 마음대로 그 시기를 정하는 자는 하나님 아버지의 권세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만이 이 지구의 종말을 정하시는 권세가 있습니다. 그래서 추수의 시기를 정하신 것을 한 천사가 예수님에게 알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16절에 보면 땅에 곡식이 다 익었기에 낫을 휘둘러 거둔다고 하였습니다. 곡식이 다 익었다는 뜻은 믿는 자의 수가 다 찬 것입니다. 택하신 자기 백성의 수가 다 채워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마 24:31)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시고 택하신 자들이 결국 변화하여 하나님 나라 백성들이 된 것입니다. 누가는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행 13:48)고 하였으며, 바울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롬 11:25) 이스라엘이 더러 완악하게 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선택한 자들이 다 믿을 때는 바로 심판의 때입니다. 아마 그 때에는 이 세상의 죄가 도저히 심판을 지체할 수 없을 정도로 악해져 있을 것입니다. 마치 밤이 아주 깊으면 아침이 거의 온 줄로 알듯이 말입니다.

   이어서 17절 이하에 포도추수가 나옵니다.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또한 이한 낫을 가졌더라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이한 낫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가로되 네 이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하더라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굴레까지 닿았고 1600스다디온에 퍼졌더라”(17-20절)고 하였습니다. 믿지 않는 자들에 대한 심판은 주님께서 직접하도록 하지 않으시고 천사를 시키는 것을 봅니다. 더러운 피를 주님의 손에 묻히기를 싫어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배려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익숙한 것이 포도주를 담그는 것이었습니다. 포도를 수확한 후에 여러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는 포도주 틀에 넣습니다. 그리고 나서 남자들이 들어가서 발로 포도주를 밟습니다. 그러면 포도를 밟는 사람들의 아랫부분이 벌겋게 물들고 옷도 피에 젖은 사람처럼 붉은 물이 듭니다. 포도가 많으면 무릎까지 포도주스로 가득해집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에돔에서 붉은 옷을 입고 나타나는 한 사람에게 누군가가 “어찌하여 네 의복이 붉으며 네 옷이 포도즙 틀을 밟는 자 같으뇨”(사 63:2)라고 질문을 하니까, “만민 중에서 나와 함께 한 자가 없어서 내가 홀로 포도즙 틀을 밟았는데 내가 노함을 인하여 무리를 밟았고 분함을 인하여 짓밟았으므로 그들의 선혈이 내 옷에 튀어 내 의복을 다 더럽혔음이니”(3절)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망할 때 그들의 가슴을 아프게 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바로 에돔 족속이었습니다. 같은 부모에게서 난 야곱의 형 에서의 후손이었으나 늘 이스라엘을 괴롭히며 힘들게 했기에, 주님께서 오실 때 이 에돔 사람들을 짓밟아서 그 원한을 풀어주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신약성경 계시의 특징은 그 기초가 구약성경에 있다는 것입니다. 앞서 살펴본 구름 위에 앉으신 인자를 예언한 다니엘처럼 말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믿는 자들을 괴롭히며 힘들게 하는 자들에게 크게 진노하십니다. 반면에 조금이라도 선대하는 자들에게는 절대로 잊지 않고 갚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탄 마귀의 하수인들이 성도들이 연약할 때 공격하고 고통을 주는 것을 절대로 간과하지 않으십니다. 때가 되면 반드시 포도즙 틀에 넣어서 짓밟으실 것입니다. 그들의 피가 말굴레(horse’s bridles)까지 닿게 됩니다. 마치 말을 타고 강을 건너는 것을 보면 어떤 때에는 굴레까지 물이 차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 피가 1600스타디온에 퍼진다고 합니다. 약 290km 입니다. 이스라엘 땅 북쪽 끝에서 남쪽 끝까지를 말합니다. 영적인 의미는 이 세상 전체 다 입니다. 무시무시하지 않습니까? 온 세상이 피로 물드는데 말굴레까지 차는 강처럼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감사찬송 가운데 ‘감사하는 성도여’(통일 306장) 4절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과 일맥상통하는 가사입니다.
       주여 어서 오셔서 우리 거둬 줍소서
       죄와 슬픔 중에서 우리 건져 줍소서
       모든 성도 영원히 하늘 집에 이르러
       천군 천사 어울려 추수 찬송 부르리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둘 중에 하나입니다. 이 전에 살았던 사람들까지 다 포함해서 말입니다. 알곡추수에 해당하느냐? 아니면 포도추수에 해당하느냐?
   우리는 언제가 이 추수 때인지 모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달려 있습니다. 내일일 수도 있고, 10년 후, 20년 후, 50년 후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100년 후는 아닌 것 같습니다. 온 세상에 복음이 전파되는데 그렇게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 같지 않습니다.
   아니 우리 각자 인생의 추수는 이 땅을 떠나는 날입니다. 그 시간이 오기까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모든 인간은 자기가 산 삶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합니다. 만약 아직도 성령을 받지 못한 분이라면, 진실한 믿음이 없다면 바로 지금 회개하시고 우리 주님을 진실로 영접하십시오. 간구하십시오. 그리고 정말 믿음이 있다고 하면 여러분의 삶에 무엇이든 그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포도추수인 백보좌 심판이 아니라 알곡추수인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실 것이라면 지금부터라도 사랑하며 사십시오.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원수조차 사랑하려고 애쓰십시오. 나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하여 사십시오. 자신의 주위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많은 사람은 복 받은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으니까요. 사랑을 실천할 기회가 많으니까요.
    그래서 어쩌면 고난 중에 있는 성도가 빛이 나는 것 같습니다. 본인 스스로가 경험하고 있기에 누구보다 더 고난 중에 있는 성도를 돌볼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고난 중에 있는 성도는 깨어 기도하기에 더더욱 복을 받고 있는 자입니다. 앞으로 하늘나라에서의 상급은 말할 것도 없구요. 그래서 교회 안에 어려움 중에 있는 성도들이 있는 것이 교회로서는 복입니다. 중보기도 제목이 많은 것이 복입입니다. 그들을 사랑하고 기뻐하고 자랑해야 합니다. 고난이 없으면 인간은 간사하여 쉽게 교만해져서 자기 욕심을 따라 살기 쉽습니다. 그래서 넘어지기 쉽습니다. 고난을 감사하십시오. 고난이 없을 때 고난 당하는 자들을 보살피십시오.
    마지막 종말이 올 때까지 이 세상은 이대로 굴러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거나 잊고 삽니다. 그러나 그것은 스스로 속이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세상 종말은 좀 늦어지더라도 자신들의 죽음은 반드시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자신은 죽지 않을 것이라고 믿거나, 죽음을 잊고 산다면 속이는 것 아닙니까? 얼마나 어리석은 인생입니까?
    우리 성도들이 할 일은 남은 인생을 아름답고 고귀하게 사는 것입니다. 후회 없이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는 시간을 잡을 수 없습니다. 오늘을 어떻게 사셨습니까? 내일은 어떻게 사실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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