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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8-07-12 (목) 10:46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912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데살전 2:1-6)
이 사회에서 지도자로서 지도력이 있어 속한 공동체를 잘 이끌어 나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든가, 주지사라든가, 사업체의 CEO 라든가, 어떤 단체장, 심지어 한 가정의 가장이라도 말입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사역하는 지도자는 더 어렵습니다. 일반 사회의 지도력과 영적 지도력은 많이 다릅니다. 그리고 사탄 마귀가 방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인들로부터 수많은 요구를 받기도 하고, 오해를 받기도 하고, 때로는 적대적인 감정으로 공격을 당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한다고 해서 언제나 존경을 받는 것도 아니고, 교인들이 늘 고마워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실 지도자만 그런 것은 아니죠. 모든 교인들이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시험을 받아 떨어져 나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위해 일하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일의 가치를 하나님 안에서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힘들 때마다 동기를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주님이 주신 각자의 사명을 왜, 무슨 힘으로 감당하고 있는지 생각해보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안에서 해야 합니다. 주님만 바라보고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우리들이 갖고 있어야 할, 특히 지도자라면 꼭 기억해야 할 영적지도력의 특징들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끈기가 있어야 합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감이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아나니”(1절)라고 하였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2차 전도여행 중 빌립보에서 귀신들렸던 여종을 낫게 해 주었다가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너희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말하였노라”(2절)고 하였습니다. 바로 그 여종의 주인이 자신에게 손해를 끼쳤다 하여 그들을 잡아 관원에 끌고 가서 모함을 하게 되고 무리들이 고소를 합니다(행 16:19-22). 그 결과 옷을 찢기고 매를 맞으며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그러나 밤 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니 기적이 일어나 풀려나게 됩니다. 이것을 보면 우리는 아무리 열악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정말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여야 합니다. 그럼 강하여 집니다.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엡 6:10) 한 것처럼 말입니다.
빌립보에서 이런 사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데살로니가에 가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마도 별 기대를 하지 않고 갔는데 놀랍게도 큰 무리가 복음을 깨닫게 되어 데살로니가 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행 17:1-4). 바울과 실라가 데살로니가의 한 회당에 들어가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았어야 할 것을 증명하며, 그들이 전하는 예수가 바로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몇몇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많은 유대교로 개종한 헬라인들과 귀부인들이 믿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시기하여 폭력배들을 매수하여 난동을 일으킨 것입니다(행 17:5). 그래서 “우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감이 헛되지 않은 줄 너희가 친히 아나니”(1절) 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을 힘입어’ 끈기 있게 주님의 일을 하다 보면 영적 치열한 싸움 중에도 기대하지도 않는 놀라운 성령님의 역사를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라고 기도하면서 일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에만, 복음에만 헌신해야 합니다. 바울은 “우리의 권면은 간사에서나 부정에서 난 것도 아니요 궤계에 있는 것도 아니라”(3절)고 하였습니다. 여기 ‘간사’의 뜻은 ‘속임, 사기’의 의미보다 ‘오류(error)’라는 의미입니다. 즉 바울은 자신이 전하는 복음은 오류가 없는 참된 진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정’의 뜻은 당시 이교 사상의 영향으로 ‘부도덕(impure)’하다는 의미입니다. 바울도 부도덕한 사람으로 비난을 받았다는 것입니다(Leon Morris). 그러나 바울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또 ‘궤계’라 함은 마술로 ‘속임(trick)’을 뜻합니다. 바울이 기적을 행한 것이 마술사가 눈을 속이는 것이라고 비난을 받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결코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은 자신들이 전하는 말이 하나님의 진리만을, 복음만을 전하고 있다는 것을 마음속 깊이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전하는 것이 전혀 오류가 없으며, 부도덕한 것도 아니고, 속이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선언은 사역자들의 삶에서 입증되었기에 힘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의도가 순수한 것이었음이 삶에서 분명히 드러난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과 달리 당시에도 거짓 선생들은 “여럿이 저희 호색하는 것을 좇으리니 이로 인하여 진리의 도가 훼방을 받을 것이요 저희가 탐심을 인하여 지은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를 삼으니 저희 심판은 예수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저희 멸망은 자지 아니하느니라”(벧후 2:2-3)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만, 복음에만 헌신되어 있다면 우리의 삶에, 모든 생각과 행동에, 모든 삶의 영역에 그것이 나타나야 합니다. 사실 삶에서 뒷받침이 되지 않으면 그야말로 간사나 부정, 궤계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래서 100% 순수한 삶으로 검증된 것만이 참 진리인 것입니다. 99%만 순수하다고 해도 진리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보냄을 받아 일해야 합니다. 바울과 동역자들은 “오직 하나님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 전할 부탁을 받았으니”(4절상)고 하였습니다. 여기 ‘옳게 여기심을 입어’라는 단어는 금속을 제련할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금속의 순수성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테스트하는 것입니다. 즉 바울과 실라, 디모데는 하나님의 테스트에 합격한 것입니다. 그들의 믿음이 입증된 것입니다. 즉 복음전도자로, 선교사로, 주님의 일꾼으로 입증이 되어 하나님께서 보내셨던 것입니다. 그들이 데살로니가로 보내진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늘 자신의 뜻보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았던 것입니다.
우리도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서 그 일 때문에 우리를 보내셨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테스트하시고 합격한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을 실천에 옮기는 자들이어야 합니다.

넷째로, 일하는 동기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함,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라도 아첨의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거하시느니라”(4절하-5절)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사역하는 동기는, 모든 관심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데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었고, 하나님의 전지하심을 믿었고, 하나님의 심판과 상급을 믿었고, 하나님의 능력과 돌보심과 사랑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들에게서 인기를 끌거나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CORAMDEO 의 삶이었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게도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 1:10)고 하였습니다.
사실 우리가 하는 일에 효율적이지 못한 것은 일의 방법이나 행정, 구조상의 문제들보다는 동기에 있습니다. 진리에 대한 확신, CORAMDEO 에 대한 확신이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4절의 ‘옳게 여기심을 입어’라는 단어와 ‘마음을 감찰하시는’이라는 단어는 동일합니다. 검증 받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지 인정을 받게 되리라는 것을 기대하고 일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실지 아니면 화를 내실지 알아보려고 일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리리라 확신하며, 사람의 인정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에게 아첨하는 말도 할 필요가 없고, 탐심도 필요가 없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다 아시니까 말입니다.
물론 저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은 참 믿음을 가진 성도에게도 인정이 된다고 믿습니다. 굳이 인정 받으려고 한 일은 아니지만 성도들은 알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초대 예루살렘교회 일곱 집사를 선택할 때에 믿음과 성령이 충만하여 칭찬 듣는(인정 받는) 사람들이 선택된 것입니다.
바울과 동역자들은 결코 사람들에게 영광을 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도로 능히 존중할 터이나 그러나 너희에게든지 다른 이에게든지 사람에게는 영광을 구치 아니하고”(6절) 하였습니다. 그들이 사도이기 때문에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에게서 당연히 존중히 여김을 받아야 하지만, 그들 스스로는 결코 교인들에게 영광을 구하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사역자로서, 지도자로서 교인들이 당연히 존중해야 합니다만, 존중하지 않는다고 해서 마음 상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면 그것으로 만족한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특히 지도자 여러분!
교회에서, 성도들 사이에서 지도력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도자로서, 혹은 주님의 일을 하는 자로서 반드시 있어야 할 특징들은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굳이 지도력을 발휘하려고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끈기 있게 일하셔야 합니다. 온전히 하나님의 진리에만 헌신하셔야 합니다. 우리를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순수한 마음으로 일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입증한 보석들입니다. 돈이나 명예나 세상 욕망에 대한 탐심은 늘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가 왜 주님의 일을 해야 하는지 그 동기를 점검해야 합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하지 말고 하나님만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사람에게 인정 받으려 하지 말고 하나님께 인정 받으려고 해야 합니다. 사람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해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님이 역사하십니다. 확실히 믿고 우리의 삶에서 진리의 말씀이 나타나기를 축원합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롬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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