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등록 비번분실

전체방문 : 5,167,303
오늘방문 : 22464
어제방문 : 17300
전체글등록 : 3,869
오늘글등록 : 2
전체답변글 : 2
댓글및쪽글 : 18

좌측_배너 배너 001

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1-08-05 (목) 05:13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782    
행함이 있는 믿음 (2) (약 2:21-26)

야고보 사도는 믿음이라고 다 같은 것이 아니라 죽은 믿음도 있고, 산 믿음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정말 구원을 받은 산 믿음이라면 행함이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믿음의 증거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머리로 예수님이 구세주요, 주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정의 모두로, 전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2장 문맥상 구원을 받은 믿음이 있다면 구체적으로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는 최고의 법을 최선을 다해 지키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말로만 믿는, 머리로만 믿는 지적인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17절). 그 정도의 지식은 타락한 귀신들도 믿고 알고 있다고 하였습니다(19절).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귀신들이 믿는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산 믿음의 예로 두 사람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대조적인 아브라함과 라합입니다. 아브라함은 유대인으로 족장이었습니다. 라합은 이방인으로 기생이었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살아있는 믿음의 소유자들이었기에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롬 4장, 히 11:8-12), 라합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이름을 올리는 자가 되었습니다(마 1:5).
먼저 아브라함에 대하여 말합니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21절)라고 합니다. 바로 창세기 22장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서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 했던 사건을 언급합니다. 물론 그 이전에 갈대아 우르에 살던 그를 부르실 때에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모든 것을 두고 떠나 가나안 땅에 정착한 그를 가리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 15:6)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75세까지 살던 고향 땅을 떠난 행동이 있었습니다. 그가 무엇을 믿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로 하여금 큰 민족을 이루고 복을 주어서 그의 이름이 창대하게 되고, 그를 복의 근원이 되겠다는 약속의 말씀이었습니다(창 12:2). 아브라함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이었습니다(창 15:5). 아니 그런 약속을 하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무조건 말씀을 따라 갔습니다. 하나님과 논쟁을 벌이거나 따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인격을 믿었고, 거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기에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30년쯤 후에 귀하게 받은 아들 이삭을 기꺼이 바치려는 행동이 그가 의롭게 된 사실을 증명하였다는 말씀입니다. 이삭을 제단에 드려서 의롭게 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는데, 그 증거 중의 하나가 이삭을 바쳐 순종하는 행동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행위로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은 확실히 알고 있지 않습니까(엡 2:8-9)? 구원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의가 우리에게 임하는 것은 믿음으로 받는 선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 믿음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22절)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이 그가 처음에 믿음이 약했는데 이삭을 바침으로 믿음이 강해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산 믿음이 있었기에 스스로 말씀을 순종하여 그 믿음이 온전함을 증명했다는 뜻입니다. 즉 산 믿음이 있는 자는 행함이 따르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한 일을 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믿음이 산 믿음으로 온전하다는 것을 보여주게 되어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야고보는 앞서 언급한 창세기 15장 6절 말씀이 22장에서 성취가 된 것을 가리켜, “이에 경에 이른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23절) 한 것입니다. 또한 역대하 20장 7절과 이사야 41장 8절에서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벗, 친구라고 표현한 사실을 언급하였습니다. 곧 행동으로 나타나는 산 믿음의 가진 자들은 하나님과 아주 친밀한 관계를 맺는 특권을 받은 것입니다. 그들과 친구처럼 가까이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24절) 이었습니다. 행함이 따르는 믿음이어야 하나님께 옳다 인정을 받게 되는, 의롭다 하심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행동에 근거해서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것이 아니라, 정말 구원을 받은 산 믿음은 하나님에게 헌신하고 사랑하며,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행동으로 그 실체가 드러난다는 말씀입니다.

이어서, 또 한 사람 라합의 믿음의 본을 말합니다.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25절) 하였습니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라합은 아브라함과 대조적으로 이방인에다가 낮고 비천한 계급의 기생 신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산 믿음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여호수아 2장의 사건입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정탐하기 위하여 보낸 이스라엘 정탐꾼 두 사람을 자신의 집으로 맞아들여 추격하던 여리고 사람들로부터 보호해주었습니다. 그들을 좇던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가서 찾도록 유도한 다음에 그 정탐꾼들이 안전하게 도망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만약 라합이 추격하던 여리고 사람들을 속여서 정탐꾼들을 도망하게 한 것을 여리고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그녀는 죽음을 당할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한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듣고는, “우리가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의 연고로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하지에 하나님이시니라”(수 2:11)고 고백한 것처럼, 하나님을 믿었기에 그 정탐꾼들을 보호해주고, 도와주었다는 것입니다. 즉 산 믿음이 그런 행동으로 나타났기에 분명히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26절)고 하면서 2장을 끝맺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믿는 자에게 죽음이라는 것은 영혼은 하나님께로 가고, 몸은 흙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영혼이 없는 몸은 죽은 시체일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말로만 믿음인 것입니다. 아무런 생명력이 없습니다. 영혼이 있는 몸이 산 것이니, 믿음도 행함이 있어야 산 믿음입니다. 살아있어 역사합니다. 행합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우리가 가진 믿음이 죽은 것이 아니라 산 것이라면 죽지 않은 것이기에, 생명이 있기에 반드시 움직이게 되어 있습니다.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말씀으로 살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우리 안에는 성령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죄성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간사한지 그 마음이 수없이 변하고 생각도 바뀝니다. 아브라함이라고, 라합이라고 갈등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로 하여금 믿음의 행동을 하게 한 것이 무엇입니까? 믿고 있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았습니다. 모든 것을 알고 계시며, 약속에 신실하신 분인 것을 알았기에 이삭을 바쳐도 다시 살려주어야 그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게 될 것을 믿었습니다. 천지만물을 지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었기에, 분명히 여리고 성도 무너질 것을 알았기에 정탐꾼들을 살려주고 자신이 살게 될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유명한 선교사 Hudson Taylor는 ‘믿음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붙드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신실하심을 믿기에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 머리로 이해할 수 없어도, 내 생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하신 약속에 신실하심을 붙들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전인격적으로 하나님에게 자신을 의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자신을 내어 맡기는 이런 헌신이 없으면 그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그래서 행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이웃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제일 먼저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에게 자신을 내어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에게 내 자신을 내어 드리기 위하여 죄성과 싸워야 합니다. 정말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면 자신 안에 적을 물리쳐야 합니다. 그렇게 살지 못하게 하는 죄성을 따르지 않고, 성령님을 따르려고 애쓰는 사람이 살아있는 믿음을 가진 자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 설교에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고 하셨습니다. 행동하는 산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살려고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 이러한 산 믿음으로 살아 하나님의 친구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1210 주일설교 감사해야 할 이유 (시 93:1-5) 한태일 목사 2021-11-14 662
1209 주일설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징조들 (1) (눅 21:5-11) 한태일 목사 2021-11-07 766
1208 수요설교 하나님과 원수가 되려 하십니까? (약 4:4-6) 한태일 목사 2021-11-05 787
1207 주일설교 은혜의 선물 (롬 5:12-21) 한태일 목사 2021-10-31 816
1206 주일설교 헛된 영광을 구하느냐 아니면 참된 영광을? (눅 20:45-21:4) 한태일 목사 2021-10-24 735
1205 주일설교 메시아,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 (눅 20:41-44) 한태일 목사 2021-10-17 742
1204 주일설교 산 자의 하나님 (눅 20:27-40) 한태일 목사 2021-10-10 765
1203 주일설교 성도의 하나님과 세상 나라에 대한 의무 (눅 20:20-26) 한태일 목사 2021-10-03 814
1202 수요설교 욕심과 기도 (약 4:1-3) 한태일 목사 2021-09-30 786
1201 주일설교 예수님을 거절하면 (눅 20:9-19) 한태일 목사 2021-09-26 764
1200 주일설교 하늘로부터 주어진 권세 (눅 20:1-8) 한태일 목사 2021-09-19 955
1199 수요설교 하나님의 지혜로 선한 열매를 맺으십시오 (약 3:13-18) 한태일 목사 2021-09-16 905
1198 주일설교 성전을 청결하게 하십시오 (눅 19:45-48) 한태일 목사 2021-09-12 812
1197 수요설교 예수님의 인사이더 (막 4:21-24 :35-43 ) 관리자 2021-09-11 736
1196 주일설교 예루살렘 성을 보시고 우시는 예수님 (눅 19:29-44) 한태일 목사 2021-09-05 817
1195 수요설교 말에 실수가 없는 자 (2) (약 3:7-12) 한태일 목사 2021-09-02 772
1,,,11121314151617181920,,,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