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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9-12-02 (월) 08:26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871    
올바로 알고 믿는다면 (눅 6:39-49)


누가복음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가 제자도(discipleship)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은 누가 참된 제자인지 비유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네 가지 비유가 나옵니다. 우리 하나님을 올바로 알고 믿는 제자라면 어떤 삶을 사는지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선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39절)고 합니다. 우리가 어디로 갈지를 모르는데 우리를 소경이 인도하기를 원하시는 분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를 따라가면 다 구덩이에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인도하는 자는 우리의 앞날을 알고 있어서 올바로 인도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는 자라야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인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케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40절)고 하셨습니다. 즉, 우리 신앙생활의 목표는 우리의 선생이신 예수님처럼 온전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격이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또한, 참된 제자는 다른 사람을 판단하기 이전에 자기 자신부터 판단합니다. 두 번째 비유입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의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41-42절)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는 너무 관대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엄한 경향이 있습니다. 남의 잘못은 잘 보는데 자신의 잘못은 잘 보지 못합니다. 어쩌면 내 잘못은 들보이며, 다른 사람의 잘못은 티 정도인데도 말입니다. 객관성을 잃고 자기중심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눈 속의 들보를 우선 제거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위선을 탓하기 전에, 불평하기 전에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우리 자신에게 위선이 없는지 살펴야 합니다. 잘못은 없는지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부터 해결해야 합니다. 그래야 성숙한 참된 제자입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을 인도할 수 있는 선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소경이면서 선생 노릇을 하는 위선자들이 있습니다. 자기 기만, 곧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자신을 기만하게 합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무엇보다도 먼저 입으로만 믿음을 고백하는, 행동으로 보여주지 못하는 신자들의 믿음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구세주(Savior)와 주(Lord)로 믿는다면 성령이 그 안에 내주하셔서 말씀을 순종하게 하여, 그 열매의 증거들이 나타나야 하는데, 열매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성령의 인침을 받은 사람이라면 성령께서 그 사람이 하나님께 속하였음을 증거합니다(롬 8:14-16).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겉으로는 구원 받은 것 같으나 아니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마 13:20-22). 하나님 은혜에 대한 잘못된 관점이나 ‘하나님은 이런 분이겠지’ 라는 나름대로의 가정(assumption)을 가지고 구원 받은 것으로 여깁니다. 자신이 짓는 명백한 죄에 대하여 별 죄책감 없이 하나님 은혜가 덮어 주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믿음을 시험해 보라고 합니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후 13:5)고 하였으며, 성찬식을 대할 때에도 자신을 살피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고전 11:28). 이것은 속 마음과 동기, 하나님의 거룩함과 영광을 향한 갈망 등을 test 해보는 것을 말합니다. 심지어 가장 어리고 연약한 초신자라도 복음을 올바로 깨닫고 믿는다면, 정말 주님을 만났다면 그 마음은 하나님의 의를 추구하려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열심이 있어야 합니다. 비록 육신이 약하여 다 이루지 못한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어떤 사람이 입으로 신자라고 하면서 현재 짓고 있는 죄에 대하여 해결할 마음이 없다면 구원을 받았는지, 그의 과거 죄가 씻음을 받았는지 의심할 충분한 이유가 됩니다. 입으로 신자라 고백하면서 습관적으로, 회개치 않고 ‘죄’임을 알면서 계속 죄를 범한다면 그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입니다(요일 3:6-10).
또 자기에게 속고 사는 두 번째 이유는 신앙생활이 아니라, 종교생활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는 믿음이 없는데 교회에 출석하고, 설교도 듣고, 찬송도 부르고, 좋은 프로그램과 교회 활동에 참여함으로 자신이 마치 신앙이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진심으로 예수님을 자신의 삶의 구세주와 주로 받아들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종교적 활동이 믿지 않는 자로 하여금 자기가 구원 받았다고 생각하게 한다는 말입니다.
세 번째 자기 기만의 이유는 스스로 하나님과 deal 하기 때문입니다. 불순종한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돌아서는 대신에, 내가 선한 일을 함으로 죄가 용서함 받게 되어 구원을 받는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크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지요. 하나님을 떠나서 누가 어떤 선한 일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모두가 다 죄인이고, 죄가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켰는데요. 죄로 말미암아 사망과 심판의 저주가 왔는데요. ‘내가 선한 일을 하면 죄에 대한 벌이 줄어들던가 없어지겠지’ 하는 생각은 마치 ‘죽을 병이 걸려서 죽게 되었는데 영양식을 하면서 운동을 좀 하면 치료가 되겠지’ 라고 생각하는 것이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병을 고치고 나서 영양식을 하면서 운동을 해야지요. 우리는 이렇게 자기를 속이고 사는 자들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참된 제자는 그 마음에 선한 것들로 쌓여 있어서 선한 열매들을 내게 되어 있습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43-44절)고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여기 ‘못된 열매’라는 의미는 ‘부패하고 썩은 열매’를 뜻합니다. 못된 나무에서 그런 열매가 열리지, 먹을 수 있는 좋은 열매가 열릴 수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는 그 열매를 보고 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이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말과 행동은 ‘우리 마음에 무엇이 가득한가’가 결정합니다.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45절)고 하셨습니다. 즉 우리의 마음에 선한 것으로 가득한지, 악한 것으로 가득한지, 무엇으로 쌓여있는지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입으로 ‘주여 주여’하고 하나님을 부른다고 참 제자가 아니라고 합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천국에 다 들어가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느냐”(46절)라고 하셨습니다. “주여(Lord)”라는 말은 유대인들에게 감히 입에 담지 못하는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를 대체하는 호칭입니다. 지금, issue 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순종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믿고 따르던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요 8:31하) 하였습니다. 구원 받는 믿음과 순종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자들에게 주님은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 7:23)고 합니다. 입으로는 ‘주’라고 부르며 따랐는지는 몰라도 그들의 마음은 불법, 즉 반역이었다는 것이 불순종의 행동으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좋은 나무에서 그런 열매가 열릴 리가 없다라는 말입니다. 이런 믿음을 야고보서에서는 죽은 믿음이라고 하였습니다(약 2:19). 물론 참된 믿음을 가진 신자라고 하여 죄 없이 완전한 삶을 산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를 자백하고, 주님의 용서를 구하고, 회개하여 돌아서서 의를 추구하는 변화의 삶이 우리가 하나님께 속했다는 증거라는 말씀입니다. 최선을 다하여 성령을 의지하고 말씀에 순종하고 산다는 것입니다.
즉, 구원에 이르는 자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을 듣고 행함으로 자기 삶의 기초를 쌓는 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누구와 같은지 보여 주시기 위하여(47절), 네 번째 비유의 말씀을 하십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 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히되 잘 지은 연고로 능히 요동케 못하였거니와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주초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히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48-49절)고 하였습니다. 구원 받는 사람과 받지 못하는 사람을 집 짓는 것에 비유하고 계십니다. 참 제자와 거짓 제자의 차이입니다. 집 짓는 두 사람이 똑 같이 말씀을 듣습니다. 올바로 알고 믿는 지혜로운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어리석은 사람이나 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집을 짓는 것도 같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하여 무너질 집을 짓고자 하겠습니까? 처음 의도는 자신이 살고자 하는 집을 잘 짓는 것이지요. 집을 짓는 주거 환경이나 장소도 비슷합니다. 그런데 주초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기초(foundation)가 반석이냐 아니면 흙, 모래냐는 것입니다. 어떻게 짓던 간에 둘 다 나중에 폭풍을 같이 만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이 두 사람의 삶에 겉으로 드러난 환경은 비슷하다는 말입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보다 나은 환경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같은 동네에서, 어쩌면 같은 교회를 다니며, 같은 설교를 듣고, 교제하며, 세상에서 고난도 비슷하게 당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무슨 차이가 있었습니까? 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며, 순종하여 주초를 반석 위에 놓고 지었는데, 다른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치 아니하여 주초 없이 흙 위에 지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큰 물이 나고 탁류가 부딪히매 집이 무너져 파괴되었던 것입니다. 즉 듣기만 하고 순종하지 않은 사람은 인생살이에서 큰 풍랑을 만나거나, 나중에 심판이 임할 때 무너지게 됩니다. 하나님을 올바로 알고 믿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즉 참 제자의 표시는 단지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믿고 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약 1:22-25)고 하였습니다. 즉 주님을 안다고 고백하면서도 순종하지 않는 자는 새로운 삶이 어떤 것인지를 금방 잊어버리는 자와 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그 진리에 대한 지식을 고백하더라도 하나님을 순종하지 않고 그 진리 안에 살지 않는다면 자신을 기만하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생각과 의지로 짓는 것입니다. 자기 의와 자기 만족, 자기 의지로 집을 짓는 사람은 주초 없이 흙,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입니다. 결국 무너지게 됩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길은 순종의 삶입니다. 변화된 삶입니다. 바로 그것이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오늘 본문의 네 가지 비유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말씀들입니다. 소경의 인도를 받게 되면 당연히 구덩이에 빠지게 됩니다. 올바로 알고 믿는 제자들은 자신을 잘 아는, 자신의 미래를 알고 있고 본받을만한 주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다른 선생을 따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며 비판하기 전에 자신을 먼저 판단합니다. 내게 무슨 잘못이 있는지, 해결하지 않은 어떤 죄가 있는지 살피고 진정으로 회개하고 돌이킵니다.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늘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성령의 열매들입니다. 입으로만 믿는 것이 아닙니다. 실천하는 행동이 따르는 것입니다. 기초가 반석인 집을 짓고 있습니다. 그래서 웬만한 폭풍이 몰아쳐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마지막 대 환란이 닥쳐도 괜찮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말씀은 참으로 구원 받은 믿음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을 올바로 알고 믿는다면, 정말 주님의 제자라면 주님의 뜻을 따라 행하고 살려고 애를 쓰며,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산다는 것입니다. 심령을, 속 사람을 말씀으로 쌓고 삽니다. 하나님을 모든 것 다해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합니다. 주님을 위하여 나 자신을 내어 버리는 희생을 감당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 동안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도 크기에 내가 치러야 할 희생을, 대가를 기꺼이 감당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은 웬만한 어려움이 닥쳐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이런 믿음으로 이 세상을 헤쳐나가기를, 승리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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