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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0-01-27 (월) 07:04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925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빌 3:7-11)


새해를 맞아 우리 모두 목표를 정하고, 교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세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잘 달려가고 있는지요? 그 일을 위하여 기도를 계속하고 있는지요? 주님의 자비와 긍휼을 힘입기 위하여 울면서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우리에게 어떻게 해야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지, 승리할 수 있는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자신도 과거를 돌아보며 정직하게 평가하며, 승리의 미래를 향해 전진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는 사도 바울이 3차 전도여행 후 로마의 감옥(house arrest)에 갇혀 있을 때에 2차 전도여행 중에 세워진 빌립보교회를 향해 쓴 서신입니다. 천에 자주색 염료를 입혀 파는 이방인 장사꾼 루디아의 집에서 시작되었습니다(행 16:12-15, 33-34). 성경은 이 여인이 하나님을 공경하는(예배하는, 경외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이 교회의 최초의 새신자들은 귀신들렸던 하녀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침을 받고 믿음을 가지게 됨으로, 또한 바울과 실라가 옥에 갇혔을 때에 기도하고 찬송할 때 지진이 일어나서 옥문이 열려 간수가 죄수들이 다 도망한 줄 알고 자살하려는 것을 바울이 막고 복음을 전하여 믿게 되어 그 자신과 권속들이 세례를 받게 됨으로 개척멤버가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교회에 애정을 가지고 자신이 현재 처한 상황을 알려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기쁨의 생활을 하고 있음을 상기시켜 주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이라도 믿음에 굳게 서서 기뻐하며 살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서신서 전체에 계속 흐르는 주제가 3장 1절에서도 언급한 ‘주 안에서 기뻐하라’ 입니다. 네 장으로 된 빌립보서에서 기쁨이라는 단어가 모두 16번 반복됩니다.
3장 문맥은 바른 진리를 알아서 잘못된 진리인 율법주의를 전하는 자들을 물리치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니 자신처럼 세상의 모든 자랑거리를 다 버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의는 율법을 지키거나 선한 일을 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주어지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7절) 하였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세상적으로 자랑할만한 것은 너무 많다고 하였습니다(5-6절). 혈통을 자랑하였습니다. 지파도 왕족임을 자랑하였습니다. 예루살렘에 유학하여 정통파인 힐렐학파 가말리엘 수하에서 공부했습니다. 히브리어와 헬라어에 능통하고 율법에도 능통하였음을 자랑하였습니다. 열심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도 핍박했습니다. 613가지 율법 계명을 다 잘 지켰다고 생각하며 자기 의를 자랑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는 그런 자랑을 다 해로 여겼습니다. 여기 ‘해’는 원어적인 의미에서 ‘손해(loss)’를 뜻합니다.
우리도 예수님 믿기 전의 세상 자랑거리를 다 해로 여겨야 합니다. 교회를 힘들게 하는 것이 세상 자랑거리를 교회 안에 그대로 가져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사장이 교회에서도 사장대접을 받으려 하고, 세상에서 박사가 교회에서도 박사 노릇을 하려는 것입니다. 자랑하려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영적인 자랑도 있습니다. 어떤 은사를 가진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을 우습게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은사라도 하나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좋은 은사를 가지고 교회의 하나됨을 깨뜨리려 한다면 오히려 그 은사가 없는 것이 낫습니다. 직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섬기라고 준 직분을 가지고 자랑하려고 하며, 자꾸 하나됨을 깨뜨린다면 오히려 직분을 내려놓는 것이 낫습니다. 은사에 앞서, 직분에 앞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기본적인 교양이 중요합니다. 품격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가진 좋은 은사나, 직분으로 교회에 유익을 끼치고, 잃어버린 영혼들이, 상처받은 영혼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해야 합니다.

바울이 세상적인 모든 자랑을 해로 여길 수 있었던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오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8-9절)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다음부터는 그 모든 세상 자랑을 잃어버리고, 아니 배설물(쓰레기)로 여기게 된 것입니다. 대신 예수 그리스도를 얻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얻게 됨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모든 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가 전가됩니다. 그런데 만약 세상의 모든 것을 얻는다 하더라도 예수님을 얻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세상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나중에 심판이 기다릴 뿐입니다. 반면 예수님을 얻게 되면 나중에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것은 물론 지금 세상에서 예수님의 능력, 성령님의 능력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가난해도 부유함을 누립니다. 무식해도 똑똑해집니다. 심지어 병이 들어도 감사하게 됩니다. 할렐루야!

바울은 이어서,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한다”(10-11절)고 하였습니다. 10절의 본동사는 ‘알려고 한다’입니다. 이 동사를 수식하는 것이 ‘본받아’ 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살라는 것입니다. 우선 알려고 하는 것이 세 가지를 말합니다. 경험적인 지식입니다. 첫째로, 바울은 그리스도를 더 알려고 합니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더 많이, 더 깊게, 더 친밀하게 아는 것을 말합니다. 알면 알수록 더욱 주님을 사랑하며 닮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지혜를 알기 원했습니다. 둘째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을 알려고 합니다. 사람을 살리는 능력, 죽어도 사는 능력 그 놀라운 능력을 더 많이, 더 깊게, 더 효과적으로 경험하는 것을 말합니다. 셋째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어떻게 동참하는 것인지 알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어떻게 하면 주님을 위한 고난을 잘 감당할 수 있는지 아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하여 기꺼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주님처럼 되기 원한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가장 고상한 지식인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있습니까? 얼마나 그리스도를, 부활의 능력을 알고 있습니까? 그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습니까? 그리하여 정말 주님을 본받기 원합니까?
온갖 고난 가운데 십자가에 죽기까지 낮아지시고,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였던 예수님의 모습을 본받기 원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을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롬 6:6) 하였고,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도 믿노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롬 6:8-11)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주님의 죽으심을 본받아야 합니다. 죄에 대하여 죽으심 말입니다. 그리고 의에 대하여 살으심을 본받아야 합니다. 늘 나는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의에 대하여는 산 자로 여겨야 합니다. 여기 ‘여긴다’는 말이 아주 중요한 단어입니다. 주님의 능력이 내 안에서 역사하는 줄 여기는 것입니다.
물론 주님을 본받아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려고 하면 고난이 찾아옵니다. 우리 예수님도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큰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난에 참예함을 알기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11절을 다시 보면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하였습니다. 물론 미래의 부활을 말하고 있지만, 현재적으로 적용하자면 바울은 우리 믿는 자들의 육신이 죽어 있다고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감정이나 의지, 심지어 사랑마저도 육신적인 것은 죽어 있음을 압니다. 바울은 어떻게 해서든지 육신의 유혹과 정욕을 벗어나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과연 가능합니까? 우리가 죄성을 지닌 몸을 지니고 있는 상태에서 유혹과 정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육체의 욕구와 싸우고 훈련하는(discipline) 과정을 통하여 우리 몸이 훈련될 수 있습니다. 그로써 상당한 수준까지 육체의 욕망을 죽이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 때에 다른 생명을 살리는 능력이 나타납니다. 주님을 닮기 위하여, 주께 나를 드리기 위하여 내 삶을 포기하는 것 자체가 큰 고통이지만 나를 포기할수록 엄청난 성령의 능력, 기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것을 부활의 능력이라고 한 것입니다.
얼마나 자신 안에 있는 죄성과 치열한 싸움을 싸워야 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딤전 4:7절하-8절)고 하였습니다. 우리 몸과 마음이 길들여지기만, 절제되기만 하면 성령의 능력은 얼마든지 우리 안에 나타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을 위하여 자신을 부인하며 살기 위하여서는 먼저 주님의 사랑을 기억해야 합니다. 훈련의 첫걸음입니다.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에베소교회 교인들은 그 처음 사랑을 잊어버렸기에 열심히 일은 하는 것 같았지만 주님께 야단을 맞았습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 2:4)! 첫 사랑의 환희와 감격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주께 매달리고 헌신했던 시간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동일한 사랑으로 우리에게 다가와 주시는데, 우리가 멀리 떠나 있었다면 다시 그 사랑으로 돌아서야 합니다. 회개하고 처음 행위를 회복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기다리시던 주님께서 멀리 하십니다.
정말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스케줄에 맞추시며 우리를 억지로 붙들려고 하지 않으십니다. 어찌하든지 우리가 주님과 가까이 해야 합니다. 붙어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변할 수 있습니다. 본받을 수가 있습니다.
자주 만나고 가까이 있어야 사랑이 깊어질 것이 아닙니까? 그런 교제가 없기 때문에 첫 사랑을 유지하지 못할 뿐 아니라, 깊어지기는커녕 첫 사랑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모세가 그렇게 하나님의 강한 능력을 체험하게 된 것은 그가 하나님과 가까이서 교제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신 34:10) 하였습니다. 다윗도 그렇게 늘 주님을 가까이 하면서 찬양을 드리고 살았기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칭찬을 들었던 것입니다. 주님께 가까이 가면 모든 것이 잘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도 잘 보이고, 주님의 뜻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주님을 가까이 하면 주님을 닮게 됩니다. 세상 자랑 다 버릴 수 있습니다. 주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나 자신은 죽고, 주님께서 사시는 것처럼 살 수 있습니다. 변화 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한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나 자신이 주님 옆에 가까이 있으면 됩니다. 왜 하나님께서 가끔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십니까? 우리가 자꾸 멀리 가니까 가까이 오게 하기 위하여서 입니다. 사람들은 마음이 편하면, 부하면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대로 가면 안 되는 줄 아시고 어려움을 주셔서 주님을 붙들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오기 전에 주님을 붙들고 사는 자가 지혜로운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첫 주일에 우리 교회가 내용이 있는 교회에서 품격이 있는 교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말씀을 전했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품격이 있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올해 표어를 그렇게 정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의 자녀들이 자신을 닮아가는 것을 너무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세운 목표대로 더욱 주님을 닮아감으로 더욱 품격이 있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십자가의 죽으심을 본받기 원합니다. 기꺼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죽기까지 하신 주님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뜻에 기꺼이 죽을 수 있기 바랍니다. ‘주님! 주의 죽으심을 본받게 하소서!’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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